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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5년 성탄 3강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누가복음 2:1-14)2025-12-22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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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성탄 제3강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말씀 / 누가복음 2:1-14

요절 / 누가복음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Merry Christmas! 올해도 변함없이 성탄절이 찾아왔습니다. 성탄절은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신 날입니다. 그 선물은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귀한 선물을 받았는데 하는 일이 너무 바빠서 포장을 뜯어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C.S. Lewis 가 쓴 책 “스크루테이프”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마귀의 전략이 나옵니다. 스크루테이프가 졸개 마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진지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그릇된 생각을 넣고자 하지 말아. 그냥 실제적인 말을 하라구.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아, 영적인 사고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하지 않겠어?' 밥을 먹으러 나간 그에게 석간신문을 보게 하라구. 뉴스에 빠지게 해.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그가 분노하게 만들어.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갖게 해. 그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라고."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바쁩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 하는 생활문제에 마음이 다 가 있습니다. 각종 SNS, 특히 유튜브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류 최대의 선물을 풀어볼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이 나실 때 그를 영접할 마음의 여유가 없던 그 시대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풀어보도록 (Unboxing)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것인지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에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때는 약 2천 년 전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 제국을 다스릴 때였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 고조선이 한 무제에 의해 멸망한 지 약 100년 후요,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지 약 30년 후였습니다. 당시 서양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제국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제국은 로마 제국이었습니다. 당시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의 영웅 줄리어스 시저의 양아들로 최초로 황제가 된 인물입니다. 그는 'PAX ROMANA" (로마의 평화)라는 슬로건 아래 북으로 영국, 남으로 북아프리카, 동으로 인도, 서로는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세계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쥔 가이사 아구스도가 무엇을 명하였습니까? "천하로 다 호적하라!" 호적하라는 것은 자기 본적지에 가서 새로 주민등록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식민지 사람들의 인구를 정확히 파악하여 세금을 확실히 걷고 부역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자가 하나도 없도록 함이었습니다. 식민지 백성들을 더 효과적으로 착취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러한 명령을 들은 백성들의 마음은 반발심이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또 우리를 쥐어짜려고 하는구먼! 우리 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장사를 며칠 쉬면 어떻게 하지? 대책이 없네!" 그러나 가이사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습니다. 호적명령이 떨어지자 모든 사람들이 생업을 멈추고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호적하러 가야 되는 사람들 중에 누가 있었습니까? 4, 5절입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인테리어 가게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가게 문을 닫고 고향으로 가야 되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140 Km로 나귀를 타고 가도 일주일은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당시에 여자는 호적을 하러 반드시 고향에 가지는 않아도 되었습니다. 다른 가까운 사람이 대신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가 혼자 나사렛에 있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정혼한 상태에서 아기를 가진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만삭이 된 마리아와 같이 여행을 떠납니다. 요셉은 비록 식민지 백성이지만 마리아로 인해 행복했습니다. 마리아를 나귀에 태워 편안하게 섬겼습니다. "마리아, 만삭인데 이렇게 여행을 하게 되어 미안해요. 하지만 내가 잘 보살펴 줄 테니 마음 편히 먹으세요" 요셉과 마리아는 쉬어 가면서 싸 온 김밥과 귤도 같이 먹었습니다. 아베 마리아도 불렀을 것입니다.


이들의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 만삭이 된 여인이 베들레헴으로 간다! 구약성경을 잘 아는 유대인들은 미가서 5:2절 말씀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곳은 메시아의 탄생지로 예언된 곳이었습니다. 가이사의 호적명령 약 700년 전, 하나님은 선지자 미가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베들레헴아! 네게 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그 아기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인데 그 아기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도다." 상고에 영원에 있다는 것은 그 아기는 영원 전부터 계신 분,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구주 하나님이 아기의 몸으로 그곳에 태어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가이사의 호적명령을 사용하셨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가이사가 호령하며 천하를 통치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호적 명령을 내리게 하시고 메시아가 베들레헴에 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의 호적명령이 없었다면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갈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나실 그때에 정확히 베들레헴에 있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잠언 16:33은 말합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사람이 돌이나 나무 조각을 던져 결과를 봅니다. 돌이나 나무 조각이 공중에 던져졌다가 떨어집니다. 그 결과는 얼마나 세게 던졌는지, 공기의 흐름이 어떤지, 떨어진 충격이 어떤지에 따라 정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쓰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로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로마서 8:28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 하나님은 전능한 분이십니다. 선한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롤러코스터가 급강하한다 해도 그것을 탄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스릴을 즐깁니다. 이는 그들이 결국 안전하게 터미널에 들어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 신자들의 특권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하시는 자들을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큰 평강을 누립니다. 만물을 주관하시며 그를 믿는 자들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6, 7절입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에는 각 지방에서 호적하러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라는 말을 볼 때, 처음에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어느 공동 숙소 같은 곳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마리아가 산통을 시작하자 그들에게는 방이 필요하였습니다. 여관에 방이 많았겠지만, 사람들이 이미 다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여관 주인에게 사정하였습니다. "제 아내가 아기를 낳아요, 제발 방을 하나 내주세요!" 그러나 호적 특수를 노리는 주인은 가난한 요셉의 사정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투숙한 사람들도 마리아의 산통 소리를 듣고도 모두 귀를 틀어막았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 정말이라니까.."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NIV에는 "because there was no room for them in the inn."으로 되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영어 단어 'room'은 '방'이라는 뜻도 되지만 "여유"라는 뜻도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메시아 예수님을 모셔 들일 여유가 없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마구간으로 가서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아기를 강보에 쌓았습니다. 강보는 광목과 같은 거친 천을 말합니다. 그들은 나사렛에서 출발할 때 마리아의 출산 가능성을 생각하고 강보를 준비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기를 어디에 뉘었습니까? 구유에 뉘었습니다. 구유가 무엇입니까? 소나 말이 여물을 먹는 움푹 파진 나무 그릇입니다. 말똥으로 범벅된 땅바닥에 놓을 수는 없었기에 구유에 아기를 올려놓은 것입니다. 얼마 전에 안진화 사모님이 소망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가장 위생적인 수술실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기는 낳자마자 부드러운 옷에 감겨 신생아실로 옮겨졌습니다. 요즘에 아기들은 다 그렇게 태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친 광목에 쌓였습니다. 만일 문제가 되면 응급으로 도울 수 있는 의료진도 없었습니다. 위생 상태가 심히 의심스러운 말 밥통에 뉘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인 분이 누구십니까? 한 아기로 오신 메시아이십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습니다. 그는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 아기 예수님이 가장 낮은 곳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왕궁은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성전의 성소는 제사장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구간에는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유에 나신 것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찾아가겠다. 너희가 아무리 슬프고 운명적인 처지에 있어도, 내가 그곳에 내려가서 너희를 만나 주겠다"입니다. 구주 예수님은 우리를 높은 곳으로 오도록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수준까지 올라오면 너희를 만나 주겠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낮은 곳, 천한 곳으로 친히 내려오셔서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입니다. 


둘째, 아기 예수님은 환영받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 예수님이 나셨을 때 가이사 아구스도도 달려와서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 면장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관에 묵고 있는 사람 중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가운데 태어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앞으로의 삶을 예고합니다. 이사야 53:3은 말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 가운데 과거에 왕따를 당했던 상처가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나실 때부터 왕따를 당하셨습니다. 우리 죄인이 왕따를 당하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왕 되신 예수님이 비천한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 멸시를 받습니다. 가족들의 핍박을 받기도 하고 캠퍼스에서는 투명 인간 취급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먼저 가신 길이요 그의 제자인 우리들이 가야 할 마땅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환영의 팡파르 가운데 세상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멸시 가운데 오셨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오직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려면 낮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 더 낮은 곳에 계십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가장 먼저 누구에게 알려졌습니까? 8, 9절입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 하는지라." 주의 사자는 성전에 있던 제사장들에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들에게 먼저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당시 목자는 천한 신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업상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짐승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 말하는 법이나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병들어 죽은 양이나 들짐승에게 찢긴 양을 수시로 처리해야 되었기에 율법이 규정한 정결 예법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부정한 자로 여겨졌고 법정에서 증인으로 채택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천한 자들에게 임하는 것을 봅니다. 


주의 사자가 나타나고 주의 영광이 두루 비추자 목자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천사가 전해주는 소식이 무엇입니까? 10절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천사는 자기가 목자들을 무섭게 해 놓고는, 무서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천사는 말합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보라! 소식을 전하는 천사도 감탄하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보라! 보라! 감격에 찬 음성입니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온 백성에게“ 미칠 소식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 탄생의 소식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합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아니 세상에 그런 소식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뉴스를 보면 온갖 종류의 나쁜 소식만 가득합니다. 가이사의 호적명령도 식민지 백성들에게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청년들의 취업이 더 어려워졌다, 박사 학위를 받아도 취업이 안된다는 소식, 각종 재난과 사고 소식으로 가득합니다. 도대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1절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심각한 문제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뭐라고요? 뭔 그런 끔찍한 말씀을 하세요? 오늘도 날씨도 좋고, 등 따습고 편안한데... 이렇게 편안하게 살다가 가면 되는 것 아니야? 그런데 재앙을 당하게 되어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런 처지에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둘째, 오직 구원자가 우리를 구원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형편이 좀 나아지게 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임박한 위험이나 재앙에서 건짐을 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한 비탈길에서 어린아이가 앉아서 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위쪽에서 브레이크가 파열된 트럭이 막 돌진해 내려옵니다. 아이를 그냥 두면 끝장입니다. 바로 그 순간 어떤 청년이 몸을 던져 그 아이를 잡아채서 구출합니다. 이런 것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셋째, 이 구원은 구주를 의지하는 모두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재앙이 닥친다, 모두 구원이 필요하다, 구주를 의지하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세 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아니 즐거운 크리스마스에 피차에 축복을 빌고 산타클로스가 주는 선물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지내면 되지! 웬 갑자기 그런 심각한 말을 하지?” 예, 이해가 됩니다. 사실 요즘 현대 교회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인간이 직면한 문제, 곧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을 잘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 땅에서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주로 말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 더 나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포인트는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가 구주 예수님을 통해 얻는 복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영원한 심판에서 벗어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인생의 근본 문제인 죄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세상은 살인, 강도, 폭행, 절도, 간음, 유괴, 방탕, 질투, 이기심, 물질주의 등으로 인한 행위들이 가득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악한 행위들의 뿌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 타락한 심성, 부패라는 단어로 나름대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이 '죄'라고 합니다. 성경은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원죄와 함께 태어나 죄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사람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영광, 곧 영적, 도덕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롬3:23)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단절되었고, 잘려 나간 가지처럼 생명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역사하며 두려움, 죄의식, 정욕, 교만, 미움, 시기 등의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그런 죄악된 내면 때문에 악이 행해집니다. 죄인을 처벌하고 교정 시설에 가둔다고 해서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속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면의 이 보이지 않는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는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육신의 사망뿐만 아니라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그런 압제로부터 구원해 줄 구원자를 대망하였습니다. 로마 제국을 타도할 메시아가 온다면 정말 행복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안정된 좋은 직장을 원합니다. 멋있고 아름다운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에 대한 열망이 강합니다. 누가 자기에게 그러한 안정과 행복을 준다면 그를 구원자로 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의 지도자들은 자국민들의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사람들의 근본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일시적인 정치, 경제문제 해결, 나의 현실 조건 개선을 위해 오신 구주가 아닙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주이십니다. 


마태복음 1:21 절은 말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죄의 결과인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십니다. 이를 통해 복음을 완성하시고, 누구든지 이제 예수님을 믿는 자의 죄를 사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3:16 절은 이 기쁜 소식을 함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기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십니다. 신실하다는 것은 faithful 인데, 미쁘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신실하다는 것은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며 우리가 의지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 하신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직후 창세기 3:15 절에서 메시아를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구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12:3) 모세를 통해 그와 같은 한 선지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18:15) 다윗을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임마누엘과 한 아기,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내용은 오실 구주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 하신 약속을 지키사 마침내 구주를 세상에 보내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는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십니다. 죄로 인해 원수 된 인간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놀랍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세상의 구원자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롬5:8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이 일은 가장 나쁜 소식 가운데 살던 인생들에게 주어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천사의 성탄 메시지가 끝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3, 14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구원 약속을 지키신 신실하신 하나님,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사랑의 하나님, 구유에 낮아져 오신 겸손하신 성자 하나님,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실 주님, 그분은 지극히 아름답고, 존귀하며, 사랑이 충만하신,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이제 하나님과 모든 믿는 사람 간의 화평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죄와 사망이 쏘는 독소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평강이 충만합니다. 그 평강으로 이웃과 화평합니다. 


결론적으로, 사람으로 오신 구주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죄와 사망의 세력을 정복하게 하시며 장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이 모든 은혜가 주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이 복된 성탄에 구유에 나신 아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우리 마음에 모셔 들이길 기도합니다. 구유에 한 아기로 오신 구원의 왕, 평화의 왕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Happ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