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송년 특강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요절 /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찬송 /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요! 특송 /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범사에 감사하라
을사년을 보내고 2026년 병오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병은 붉다는 것이고 오는 말을 의미하여서, 붉은 말의 해라고 합니다. 붉은 말이라고 하니, 여포가 탄 적토마가 생각이 납니다. 우리 모두 적토마를 탄 장수가 되어서, 2026년을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주일은 한 해를 뒤안길로 떠나 보내는 주일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섭섭한 마음, 아쉬운 마음 등이 교차할 것입니다. 한 해를 보내는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가져야 할 마음을 알려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제1장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상황
사도 바울이 증거하는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은 제2차 선교여행 중에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사도행전 17장).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가게 된 경위는 사도행전 16장 9절에 나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 바울은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영접하고 마게도냐로 건너가서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지금 그리스라는 나라에 속한 항구 도시로서, 로마 치하에서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마황제들은 이곳을 황제숭배의 거점으로 만들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의 신전을 건립하고, 황제숭배를 위한 대규모의 페스티발들을 개최하였습니다. 황제숭배를 위한 후원자가 되어야만, 정치적으로 성공하거나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황제숭배의 전당에서 3주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들이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번성할수록,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핍박도 커져만 갔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하였고, 로마의 황제숭배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반역자로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역이나 사업을 하는 것도 차단되었습니다. 사회에서 성공의 사다리가 사라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보다 더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동족이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들의 핍박입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은 로마권력보다 더 악랄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고, 사건을 왜곡하여 로마당국에 거짓 밀고를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7장 5절에서 7절은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유대인들의 고발로 인해 바울은 밤중에 급히 베레아로 피신하였습니다. 그 후 바울은 고린도(Corinth)에서 핍박받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핍박을 많이 받았으므로, 핍박받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였습니다. 억울한 핍박을 받게 되었을 때, 어떠한 심령이 들었을까요? “정말 보자하니깐, 해도 해도 너무 하네!” 라는 억하심정이 들고, 대항해서 싸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살전 5:15절에서 말씀합니다: “삼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한 해를 보내는 지금 우리의 심령에도 억하심정이 있습니까? 누구한테서 받은 무시와 부당한 처우가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제2장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우리는 기뻐할 때 어떻게 하나요? 어떻게 기쁨을 표현하나요? 예! 마음으로 조용하게 기뻐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보다 적극적으로 ‘펄쩍! 펄쩍!’ 뛰면서 소리치고 즐거워합니다. “야호! 야호!” 여기서 ‘항상’이라는 수식어가 나옵니다. 영어로는 always입니다. Ways가 무엇이죠? 길입니다. 길은 하나의 선택의 경로입니다. 내가 선택해서 머무르게 된 현재의 위치입니다. 나는 지금 여기 서 있습니다. 여기 내가 선택해서 온 이 길에서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독일어로는 allezeit로서 시간적 의미입니다. Zeit는 시간입니다. 현재의 시간, 지금의 이 시간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말과 한자어로는 恒常, 늘 변함없이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외부적 충격에도 변함이 없이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제 기뻐할까요? 요즘 입시철인데 내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하였을 때 기뻐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원하는 직장에 취직을 하거나, 바라던 시험에 합격하였을 때 기뻐합니다. 직장에서 승진을 하였을 때 기뻐합니다. 반지하의 햇볕이 잘들지 않는 빌라에서 살다가, 앞이 탁 트이고 햇볕이 잘 드는 아파트로 이사할 때 기뻐합니다. 양이라고 불리다가, 어느 날 목자라고 불릴 때 기뻐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거나, 인간조건이 좋아질 때 기뻐합니다. 그러면 언제 기뻐하기 힘들까요?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인간조건이 좋아지지 않을 때 기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아니 뭐라구요! 한 두번도 아니고, 항상 기뻐하라구요!” “아니 어떻게 기뻐할 수 있나요? 내가 원하던 학교에 떨어졌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나요? 회사에서 나의 승진차례인데, 동료의 모함으로 승진에서 누락되었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나요? 양들을 돕고자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였지만, 아무도 남지 않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나요?” 반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를 한 번 찾아볼까요?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으므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초점을 맞추고 살고 있는데,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문제가 많고, 죄악들 투성이입니다. 요일 2장 16절은 말씀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이런 세상에 사는 우리 인생들은 여러 모습의 죄악들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절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죄악에 빠져 고통받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나라 그 아름다운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낮아져 오셨습니다. 무시당하고 버림받았다고 슬퍼하는 자들을 위해서, 그 차갑고 더러운 마굿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인간조건이 좋지 못해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구유 안으로 낮아져 오셨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그 모진 십자가 형틀을 짊어 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짐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게 되었습니다(눅10:20).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이 세상을 잠깐 살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야 합니다. 지금 연말을 맞이 하듯이, 일년이라는 시간도 잠깐입니다. 우리 인생도 길어야 8~9십년이고 금방 말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돌아갈 영원한 고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요14장 2절과 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하늘나라 시민권을 부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늘나라 시민권을 부여 받은 우리는 언제든지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참된 자유함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상처와 슬픔을 회복시켜 주시므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무엇인가 손해를 보았거나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가는 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앞으로 인생이 잘 안 풀릴거야! 지금 승진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앞으로도 승진하기 어려울거야! 지금 입은 경제적 손실을 영영 복구하지 못하고, 이제 쫄쫄 굶게 될거야! 양들을 위해서 바친 나의 시간과 젊음이 아무 의미없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거야!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항상 승리합니다.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나인성으로 가실 때였습니다. 성문에 가까이 오셨을 때,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죽은 자는 한 늙은 과부의 독자였습니다. 그 늙은 과부는 남편이 죽은 후, 모든 소망을 독자에게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독자가 죽었습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 말씀하셨습니다(눅 7:13). “울지 말라!” “울지 말라!” 누가 이 과부에게 울지 말라고 할 수 있읍니까? 천지만물의 창조주 만이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창조한 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죽은 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예수님의 말씀은 그 죽은 독자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그 어떤 흑암도 없습니다. 죽음도 예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의 빛이 가득합니다. 요11장 25절과 26절은 말씀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울지 말라!”, “기뻐하라!”
셋째, 내가 존재하므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퀴즈입니다: 나의 눈 알 하나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요즘 인기가 있는 엔비디아나 테슬라 주식 전부와 내 눈 한 알과 바꿀 수 있을까요? 저는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나 자신이 얼마나 귀한 지 알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시가총액으로 환산하면, 지구 상의 모든 주식의 시가총액을 다 더한 것보다 더 큽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귀합니까? 내가 존재하는 자체로 얼마나 기쁩니까? 내가 나 스스로를 기뻐한다면, 나의 옆에 있는 배우자나 자녀에 대해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내 옆에 계신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우리는 나 자신과 우리 옆에 있는 분들을 볼 때, 놀라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와! 대단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우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하시고, 귀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유 외에도 더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연말을 보내는 이 때, 우리 각자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보기를 기도합니다.
제3장 쉬지말고 기도하라
기도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인터넷 시대에 SNS를 통해서 수시로 친구들과 교제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SNS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문자를 보내고 찬양하는 것, 하나님께 어려움을 들고 나가 부탁하는 것, 하나님 앞에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 등이 모두 기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한다는 것이 - 말 그대로 -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잠시도 쉼이 없이 기도를 하라는 뜻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쉬지말고’라는 단어를 영어로는 continually; 독일어로는 ohne Unterlaß라고 합니다. 헬라어로는 ἀδιαλείπτως(아디알레이프토스)로서 “반복적으로”를 의미합니다. 즉, 꾸준하게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루 중에 때를 정해서 예를 들면, 새벽에 일어나서든지 또는 저녁에 자기 전에 반복적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정기적인 모임에서 기도하는 것도 됩니다. 그러면, 왜 쉬지 말고 기도를 하여야 할까요? 첫째, 기도만이 사단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 어떤 믿음의 장수라도 기도를 하지 아니할 때, 사단의 시험에 들고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집니다. 벧전 5장 8절을 보면,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이런 다윗도 기도하지 않았을 때 사단의 올무에 걸렸습니다.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그 남편 우리야를 고의로 죽였습니다.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게 되었고, 침상이 썩기까지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이런 두려운 현실 앞에서 누가 감히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 기도는 신자가 보유한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신자가 보유한 핵폭탄으로서 사단이 가장 무서워하는 무기입니다. 영국 시인이자 기도의 종이었던 William Cowper는 “사단은 가장 약한 성도라도 그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벌벌떤다(Satan trembles when he sees the weakest saint upon his knees).”고 하였습니다. 신학자인 Edward McKendree Bounds는 “기도는 사단의 책략을 꺾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고, 모든 위험에 대비하는 최고의 방책”이라고 하였습니다. Martin Luther는 "나는 오늘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일하기 전에 최소한 세시간을 먼저 기도하여야만 합니다("Ich habe heute so viel zu tun, dass ich die ersten drei Stunden im Gebet verbringen muss)."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천지만물의 창조주께서 나를 만나 교제해 주시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자주 SNS로 연락을 취합니까? “자기 오늘 뭐해? 시간 있어?”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잠시도 잊지 못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고 우리의 영혼에 평안을 누립니다. 우리의 심령에 평강이 흘러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제4장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고마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 감사하게 되나요? 맛있는 음식을 대접 받았을 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았을 때, 아픈 병을 잘 치료받았을 때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런 경우뿐만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범사라는 말은 독어로는 in allen Dingen으로서, 모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in all circumstances로서 모든 상황입니다. 우리말과 한자어인 범사(凡事)는 모든 凡(범), 사건 事(사)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모든 일, 모든 상황, 우리가 마주하는 생활의 전 영역을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생각, 나의 형편, 나의 감정으로는 감사하기 어려운 그 일이나 상황에서도 감사를 하라고 하십니다. “아니 뭐라구요? 감사하라구요?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냐구요? 여기서 불평을 터뜨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인간인가요?”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치는 좋지 않은 일이나 억울한 일 앞에서 감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큰 그림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8은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지금 당장에 마음에 들지 않은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까? 자녀들이 마음을 뒤집어 놓고 있습니까? 지금 당장에 감당하기 어려운 손해를 보았습니까? 관계성 있던 양들이 떠나갔습니까?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도록 권면합니다. 왜 감사하여야 할까요? 감사할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평할 때 보이지 않던 그것들이 감사할 때 보이게 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열쇠입니다. 감사할 때, 모든 것이 변하여 선으로 바뀝니다. 송명희 시인은 1963년 출생 당시 누군가의 실수로 소뇌를 다쳐서 팔다리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뇌성마비(Cerebral Palsy)라는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였을 때, 아름다운 시를 지었고 노래가 되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 나 남이 모르는걸 깨달았네 /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 송명희 시인은 장애가 없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일을 행하고, 간증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최근에는 육체는 더 연약해졌지만, 삶의 고통과 천국 소망을 주제로 한 신작 시집 ‘그 나라’를 발표하는 등 심령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닉 부이치치라는 사람이 어떻게 인생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을까요?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그가 요한복음 9장 3절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말씀을 영접하였습니다. 자신에게 두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선한 주권을 믿었습니다. 그는 '나는 행복합니다!'를 고백하며, 행복의 전도사로서 간증하고 있습니다. 2025년 11월 16일에는 “상처받은 자를 위한 챔피언목자들(Champions for the Brokenhearted)”을 출간하였으며, 2028년까지 10억 명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목표로 감사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감사할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새로운 길이 보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만나는 어떠한 상황이라도 먼저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5장 하나님의 뜻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denn das ist der Wille Gottes in Christo Jesu an euch).”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이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 인생들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결론입니다: 한 해를 보내는 이 즈음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를 배웁니다. 사도 바울은 핍박받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도록 권면합니다. 한 해가 지나가듯이, 우리 인생도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지나가게 됩니다. 이처럼 짧은 시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들은 세상의 것들에 연연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어떤 어려움이나 핍박이 있습니까? 기뻐하거나 감사하지 못할 일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 가운데 선하신 뜻을 두셨습니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기쁨과 감사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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