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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6년 봄학기 특강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디모데후서 4:1-8)2026-03-09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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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봄학기 특강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 디모데후서 4:1-8

요절/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서는 사도 바울의 서신서 중 특별히 ‘목회서신’이라고 불립니다. 선배 목회자인 사도 바울이 후배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목회에 관한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쓴 편지입니다. 그중에서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이며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후배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남긴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로마 마메틴 감옥에서 2차 투옥된 상태입니다. 마메틴 감옥은 바위를 정으로 쪼아 만든 지하 감옥으로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유일하게 주먹 하나만 한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으로는 사형장으로 가는 길만이 보이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감옥의 조그만 구멍 사이로 보이는 사형장으로 가는 길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떠날 기약이 가까워 옴을 느끼는 길목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유언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바울은 사도로서, 스승으로서 자신의 권위로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심판자 되신 예수님 앞에서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그의 나라를 세우실 것인데, 그때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명령을 사람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디모데가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할 명령은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첫째, 말씀전파(복음 증거). 전도자로서 디모데의 사명은 무엇보다도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파하라’(preach)는 대중 앞에서 선포하라는 의미입니다. 선포하되 전도자로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란 말씀은 영어로 ‘in season’이든지 ‘out of season’이든지, 즉 성수기이든지 비수기이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입니다. 목회자인 디모데도 사람인지라 사람들의 반응이 좋고 복음 진리에 호의적인 때에는 얼마든지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고 복음 진리에 적대적일 때는 말씀을 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의 일을 하도록 명합니다. 

둘째, 말씀 중심의 교육 훈련입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성도들을 말씀으로 영적 무장을 시키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것입니다. 경책이란 원어로는 ‘노출시키다’는 의미가 있고, 영어로는 ‘correct’로 바로잡아 주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전파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삶이 엉망인 사람에게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지적 호기심에 만족만 주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성품과 실제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잘못이 드러나고 부끄러워져야 합니다. 성경 66권에는 필자들의 신앙관이 담겨있고 삶과 선택이 모두 묻어 있습니다. 말씀 공부를 통해 잘못된 점이 지적되고 부끄러워지고 고치도록 해야 합니다. 경계하는 것은 그러한 죄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어 다시는 그러한 죄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권하는 것은 위로한다는 의미로 죄를 지적받아 책망을 받은 사람이 너무 낙심하지 않도록 다시 힘을 내어 옳은 일을 행하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알게 하고 책망하되 위로자의 마음과 자세로 경책 경계하며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의 매를 들어야지 무지막지한 말로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로자의 마음을 가지고 경책하고 경계하며 범사에 오래 참음으로 말씀을 가르치면 조금씩 변화됩니다. 말씀의 가르침으로 조금씩 변화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성경을 가르칠 때 한쪽으로 치우쳐 가르치지 말고, 사람마다 형편에 맞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양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3, 4절에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현시대의 상황을 잘 묘사한 것 같습니다. 말세의 때에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라 많은 스승을 둡니다. 또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게 됩니다. 해리포터나 마법사 같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며 마음에 드는 말만 하는 선생들을 찾습니다(3). 그들은 진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거짓된 이야기와 가르침을 따를 것입니다(4). 사람들은 진리보다는 거짓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자신의 즐거움을, 성경 선생보다는 자기 마음에 드는 말만 해 주는 ‘멘토’를 더 찾게 됩니다. 자신의 귀를 살살 긁어 주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자기의 스승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SNS와 유튜브로 인해 이렇게 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목회자인 디모데 자신도 괜히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 고난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자칫 위축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후배 목회자 디모데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신중하라’는 말을 NIV 성경은 ‘keep your head’라고 번역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곤란한 처지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뜻인데, ‘냉정해라, 정신을 차려라, 이성적으로 행동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물론 이는 복음 전도자로서 살 때에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디모데는 정신을 차리고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되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하게 주신 명령이 디모데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신 명령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풀타임 말씀 사역자뿐만 아니라 평신도 말씀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목자들에게도 이 명령은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할 명령인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후서 3장에서 말세를 이길수 있는 길은 성경에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려면 먼저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충보면 지루하고 재미없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듣기 싫을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좋은 말만 해 주고, 내게 편의만 제공하는 곳으로 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참된 진리를 가르쳐 주고 때로는 책망하며 잘못을 바로잡아 주려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딤후 3:16, 17) 해 주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12, 13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사람의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까지 찔러 쪼갠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능력과 감동력이 사람의 마음에 역사합니다. 오직 성경만이 죄 문제를 해결하고 죄의 삯인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게 하는 진리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여 열심히 읽고, 가르치고, 또 가르침을 받고, 뿌리내려 살다 보면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많은 유익을 주는데, 그것은 온전함과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평생 온전함과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추구하며 살아가야합니다. 그 근거가 바로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평생 성경을 얼마나 귀히 여기며 사랑하고 또 성경에 착념해야 하고 말씀을 잘 들어야 됨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희 목자님들은 캠퍼스 시절 말씀 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서 받은 말씀을 캠퍼스 학생들에게 전하였습니다. 말씀을 전파할 때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제자양성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여러분들이 말씀을 전파하고자 세계선교 사명에 순종하였습니다. 2부 목자님들 가운데에는 평신도로서 사명을 감당하시거나 선교사로 사명을 섬기신 분들이 많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며 양들을 섬기고, 젊음과 물질과 시간을 희생하며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신 분들이 너무나 귀하고 존경스럽습니다. 물론 지금은 80년대 같은 캠퍼스 사역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 가르침을 인내로 실천하신 분들의 변화된 삶이 있습니다. 전도는 기술이나 훈련으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으로 변화된 삶 자체가 전도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계속하여 말씀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저희의 회개하고 변화된 삶이 언제 어디서든지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바른 교훈’을 잘 듣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90년대 나미비아에 도착했을 때 몇 명의 형제들과 말씀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거짓말도 잘하고 약속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그중 세 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와 말씀 공부를 하기로 했던 형제들이었는데, 음악 콘서트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저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고, 나미비아를 떠나기 전까지도 전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말씀을 전할 때 스피릿이 있었습니다. 짐바브웨 개척을 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센터 구입 후 안정적으로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단기 선교사들도 여러분 오셨습니다. 한양센터의 한 목자님은 짐바브웨에서 마음껏 양을 치고 싶다며 단기 선교사로 왔었습니다. 짐바브웨 대학 맞은편에 센터가 위치하고, 직장과 집의 거리도 차로 10분 이내였습니다. 항상 푸르고 예쁜 꽃들이 많고 기후도 너무 좋습니다. 직장에서도 명퇴 걱정 없이 정년퇴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비교적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와서는 모든 것이 복잡하고 새로워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집 내부 수리를 하면서 모임에 참석해보니 할 것도 많고 일정도 분주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랜 기간 아프리카에서 평신도 선교사로 살았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작은 무리의 양들을 섬기면서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지내다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국에서 목자님들이 더 많은 고난을 감당하며 사명을 섬기시는 모습에 감동되고 존경합니다. 동시에 고생하시는 목자님들을 볼 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부족한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또 풀타임으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됩니다. 그런 저에게 이번 특강 말씀을 준비하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전도자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가 먼저 말씀 공부를 새롭게, 그리고 더 열심히 해야됩니다. 무엇보다 기회가 주어지든지 주어지지 않든지, 조건이 좋든지 좋지 않든지, 언제 어디서든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말씀을 전하는 일을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합니다. 전제란 구약의 제사에서 어린 양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사르기 직전에 그 제물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바로 그 포도주 역할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흘리게 될 순교의 피가 하나님의 제단에 자기 일생의 제사를 마무리하는 전제(a drink offering)가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을 하나님 나라를 향해 떠날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둡거나 슬픈 기색을 조금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로마 시민이었던 사도 바울은 자신이 십자가형이 아닌 참수형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참수형을 받아 붉은 피를 쏟을 것을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신 제사인 ‘전제’에 비유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순교를 앞둔 시점에서 자신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를 회고합니다.


 7, 8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여기서 ‘싸우고’, ‘마치고’, ‘지켰다’는 동사에는 완성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싸움으로 묘사함으로써 예수님을 증거하는 전도자의 삶에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런 어려움을 참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말씀을 전파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7b)라고 합니다. 이는 인생이 마라톤 풀코스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마라톤은 자신과의 긴 싸움입니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히 12:1b,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이 모든 믿음의 경주를 인내하며 마지막 결승점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씀을 전파하며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내로써 자신에게 맡겨진 경주를 달렸습니다. 마침내 결승점에 이르렀고 완주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바울은 믿음을 지켰다고 합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말은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어떤 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훼손되지 않도록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지킨다’는 말은 잃어버리지 않고 보존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미 받은 믿음을 신실하게 유지하고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고 그는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딤후 2:8), ‘주님과 함께 죽으면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게 될’(딤후 2:11)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을 지켰습니다. 수많은 거짓 선생들과 가르침들이 그 믿음을 훼손하고 무너뜨리려 했지만 그는 평생 그 믿음에 신실했습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음을 믿었습니다. 그분과 함께 죽으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이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으로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이런 완주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8절에 보면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면류관은 바울뿐만 아니라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모든 자에게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입니다. 이 면류관을 받을 확신으로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영광스러운 소망으로 충만했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누리는 축복과 특권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 바울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과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살아가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게 됩니다.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국민대 모퉁이돌, 상명대 바이블하우스에서 전도 용품을 준비하고 소잉을 하시는 목자님들의 모습이 생동감이 넘칩니다. 전도의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목자님들의 헌신과 수고를 축복하시고 새 양을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자양성을 위해 기도할 때 지혜와 영적인 힘을 주시고 이 시대에 말씀을 전파하는 성경 선생으로 사용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가 사도 바울의 마지막 유언적 명령을 영접하고 전도자요 성경 선생으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씀을 전파하기를 기도합니다. 전도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함께 일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장차 승리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기를 소원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