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8강
여호와,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
본문: 출애굽기 33:7~34:35 요절 : 출애굽기 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지난 말씀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결혼 후 남편이 신혼집을 어떻게 만들지 구상하고 있는 사이에 애인과 바람을 피웠습니다. 신랑이신 하나님은, 처음에는 이스라엘을 다 죽이겠다고 하셨다가, 모세의 말을 들으시고, 죽이진 않고, 가나안으로 보내고 이혼하겠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이혼하겠다고 하신 말씀 앞에 백성들은 크게 슬퍼하며, 몸에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SNS, 인스타 계정 다 폐쇄하고, 그 좋아하던 유튜브랑 넷플릭스 드라마도 안 보고 슬퍼하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리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고, 그분의 은혜 앞에 겸손히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진영 밖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와 백성들 (출애굽기 33:7~11)
33장 7절을 읽겠습니다.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시내산 언약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함께 살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금송아지 사건으로 진영은 죄로 더럽혀졌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임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33장 3절에서 “내가 너희 가운데 한순간이라도 임하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스스로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죄가 있는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은 마치 전신이 물에 젖은 사람에게 고압 전기를 흘려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의 죄로 인해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없게 된 진영 밖 멀리 떨어진 곳에 임시 회막을 세웁니다. 회막은 ‘만날 회 + 장막 막’으로, 영어로는 ‘tent of meeting’, 즉 ‘하나님과 만나는 장막’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모세는 진영 밖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죄로 오염된 이스라엘 진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판 금송아지인 물질과 쾌락의 우상들이 즐비하고 그 영향력 가운데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도 집에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거 같지만 문제는 내 마음이 문제입니다. 스마트폰과 미디어는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과 유익을 가져다 주지만 시도 때도 없이 ‘카톡카톡’ 울려대어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고, 내 소중한 시간들을 순삭시킵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으로의 퇴근은 또 하나의 직장과 같습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동역자가 눈을 불을켜고 교대 근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맞벌이든 외벌이든, 누구도 여유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마치 놓쳐버린 출근 버스처럼 멀어져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진영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즉,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과 공간을 따로 마련해야 합니다. 오늘과 같은 주일예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예배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는 시간과 몸을 구별해 드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새벽기도, 말씀 묵상, 일대일 성경공부, 혹은 퇴근길에 캠퍼스에 들러 짧게 드리는 기도도 진영 밖을 떠나 회막을 찾는 발걸음과 같습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서라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지속할 때,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8~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 백성들은 장막 문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면 구름 기둥이 내려와 회막 문에 섰고, 하나님은 그곳에서 모세와 친구처럼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광경을 본 백성은 각자 장막 문에 서서 예배드렸습니다. 이때 예배는 몸을 굽히며 엎드려 경배하는 것으로서, 곧 겸손과 경외심의 표현입니다. 그들은 얼마 전 금송아지를 예배하며 그 주위에서 뛰놀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다시 올바른 예배의 대상을 찾아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정해진 예배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예배당도 없었고, 설교도 없었지만 그들을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중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와 예배 드리고 싶은 자들은 회막으로 찾아왔습니다. 줄이 길게 드리워졌을 겁니다. 그들은 더 이상 허탄한 금송아지에게 예배를 드리지 않고, 유일한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동일하신 하나님께 이 시간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을 볼 수 없습니다. 또 모세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배를 드리나요? 오늘날 우리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2000년 전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참 회막이요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세보다 더 나은 중보자인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길 기도합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본문은 이 시점에서 여호수아라는 인물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뿐만 아니라, 임재하시지 않을 때에도 회막을 지켰습니다. 이 회막은 진영 밖에 임시로 만들어진 것이라 아직 회막을 섬기는 정식 제사장들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키며 성막을 관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여호수아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인내와 충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는 얼마 전 모세가 시내산에 머무는 40일 동안에도 백성들과 함께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고, 산 중턱에서 조용히 모세를 기다렸습니다. 그러고보니 여러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갔습니다. 모세 역시 애굽에서 도망쳐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살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졌습니다. 다윗도 사울 왕을 피해 광야로 도망쳐 10년 간 광야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도 오랜 기다림,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들도 성장해갔습니다. 오늘 날 청년들은 장래를 위해 많은 노력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지만, 앞날은 불확실하고, 희망을 찾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헬 조선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탈출 만이 답이라고들 말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오늘날 우리 청년들에게도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의 훈련을 허락하십니다. 이 기간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잘 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나의 생각과 세상에서 들려오는 여러 음성을 내려놓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인내의 씨름을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작지만 소중한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내와 충성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소망 가운데 키워가십니다.
2. 모세의 간절한 중보기도 (출애굽기 33:12–23)
33장 12, 13절을 읽겠습니다.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모세는 회막에서 하나님께 세 가지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첫째, “주께서 우리를 주의 백성 삼아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지만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마치 결혼한 부부가 한쪽의 배신으로 인해 관계가 끊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경우 서류 상으로는 여전히 부부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남보다 더 멀어진 상태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을 모세에게 “네가 이끌어낸 네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합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었다면, 이 백성을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겨 주십시오.” 그는 자신이 받은 은총을 백성에게 돌려, 하나님이 다시 그들을 받아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둘째, “우리를 떠나지 마시고, 함께 가 주옵소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으나 그 땅에 함께 가지는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것조차 큰 은혜입니다. 그들은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진멸당해야 마땅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살려 주셨고 심지어 약속하신 땅도 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임을 알았기에 이렇게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가지 않으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보내지 마소서.” 모세는 가나안 땅보다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물질적 축복보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구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구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성공하고, 하나님 없이 잘사는 것은 결코 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주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죄를 지을 때 성령의 책망이 들리고, 뭔가 일이 꼬이고 잘 안 되는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은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형통한 환경이나 물질적인 축복이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여 주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여름 수양회에서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법을 먼저 배우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일용할 양식과 소감을 왜 쓰는 것 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날마다 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모세의 마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셋째,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 주옵소서.” 이 기도에는 모세의 깊은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보다, 하나님의 축복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알고 싶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더 깊이 경험하길 원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모세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더 알고 싶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해서 입니다. 세상 영광을 좇고, 세상 우상을 좇는 사람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기도의 마지막 정점에서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우리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 세 가지 기도를 다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그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가시겠다고 약속하시며,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제한적으로나마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깨어졌던 언약이 다시 회복되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모세의 중보기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누린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만을 위한 특권여기고 누리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은혜를 통해 백성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데 사용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기며, 하나님 자체를 갈망하며, 공동체와 양들을 위한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3.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과 다시 맺은 언약(출애굽기 34:1~9절)
1절부터 3절까지 다 같이 읽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2 아침까지 준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 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3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아무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깨어진 언약은 모세가 간구하고, 하나님이 승락하셨다고 해서 저절로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직접 돌판 두 개를 깎아 시내산으로 올라오라고 명하십니다. 첫 언약 때는 하나님이 친히 돌판을 제공하셨지만, 두 번째 언약에서는 모세가 돌판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고고학적으로는 돌판의 크기는 A4 용지 정도 크기에 두께는 3~5cm 정도였을 것으로 봅니다. 두 판을 합하면 약 15~20kg 정도 됩니다. 결코 가볍진 않지만 들고 다닐 수 있는 무게입니다. 아마도 모세는 밤새 손이 부르트도록 그 돌판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중보자의 기도가 단순히 말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들이는 수고임을 보여줍니다.
4~7절을 읽겠습니다. 4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 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 강림하시고, 모세와 함께 서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소개하십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먼저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두 번 반복하여 선포하십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중요한 개념이나 감정을 강조할 때, 우리말처럼 ‘참으로’, ‘정말로’ 같은 부사를 사용하지 않고, 같은 단어를 두 번 반복하여 표현합니다. 따라서 ‘여호와라 여호와라’는 ‘나는 참으로 여호와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전체에 걸쳐 지금까지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알려 오셨습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 일, 큰 권능으로 바로와 애굽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일, 또 홍해를 가르신 사건 등 하나하나가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고 다시 언약을 체결하는 이 일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참으로 잘 드러내는 일 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이 자신을 3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용서하신 것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가 잘 드러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 친히 어떻게 선포하십니까? 요절 말씀인 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자비롭다는 말의 원뜻은 본래 어머니의 자궁에서 비롯된 단어 입니다. 이는 어머니가 자신의 태에서 태어난 자식에게 갖는 마음입니다. 이는 하나님 안에 있는 죄인들을 향한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또 은혜롭다는 것은 호의와 은총을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택적인 호의로서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택한 자들에게 기꺼이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시는 마음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한다는 말은, 직역을 하면 코가 길다는 뜻인데요, 그 이유는 히브리인들에게는 코가 진노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코가 길기에 진노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곧 참을성이 크다는 뜻 입니다. 인자가 많다는 것은 단순한 사랑의 감정 이상으로, 언약을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을 성실하게 베푸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실이 많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 신뢰할 수 있는 성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분,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시기에 이스라엘은 용서를 받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삶 속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체험하고 계신 줄을 믿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과 사는 은혜를 누리고,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닮아가길 기도합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고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벌을 면제하지는 않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게 서로 상충되는 말 아닌가요? 여기서 보응의 의미는 단순한 복수나 징계가 아니라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예로들면 다윗이 간음과 살인죄를 지었을 때, 그 영향으로 다윗의 자녀들 간에 간음과 살인죄가 반복하여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24장 16절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 때문에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도 아버지 때문에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게다가 인자는 1000대까지 악에 대한 보응은 3, 4대까지이니 비교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또, 죄를 용서하되, 벌을 면제하지는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함께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용서받지만, 죄의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으신다는 뜻입니다. 신자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도, 사회법에 따라 벌금도 내고 감옥도 가게 됩니다.
8~9절을 읽겠습니다. 8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9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모세는 이때 하나님 앞에 급히 엎드려 경배하며 간구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임을 언급하며, 자신과 백성을 동일시하여 ‘우리와 동행하소서’라고 요청합니다. 또한 자신과 백성이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고백하면서도, 그들을 주의 기업으로 삼아달라고 간구합니다. 목이 뻣뻣하다는 표현 히브리식 표현으로 소에게 멍에를 씌워 일을 시키고자 할 때 고집부리며 버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큰 죄를 범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알고서도 회개하기를 거부하며 버티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하여 자기와 백성이 이런 상태일지라도 악과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아달라고 관계 회복을 요청합니다.
우리 또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목이 곧은 백성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절망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제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의 성품 덕분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 곧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중보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은 말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범죄할 때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중보하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마치 모세가 아론과 백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비로서 우리 안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지고 살고 있는가를 알 때, 나 역시 목이 곧은 양들이나 자녀들을 품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감당만 받던 이스라엘 백성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주고 감당해 주는 모세의 자리로 점차 옮겨가게 됩니다.
4. 다시 세워진 언약(34장 10~35절)
하나님은 다시 돌판에 첫 번째 계명과 같은 10계명을 새기셨고, 더불어 이방 신과 혼인 금지, 절기 지키기 등 세부 규례도 주셨습니다. 이는 금송아지 사건 후 타락하기 쉬운 백성을 보호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마음에 새기도록 돕는 조치였습니다. 모세는 드디어 다시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돌판 둘을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옵니다. 이때 모세의 기쁨은 어떠했을까요? 말할 수 없이 크게 기뻤을 겁니다.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에서 광채가 났으나 알지 못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광채로 인하여 모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에 모세는 자신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심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것도,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다시 맺어주신 것도 이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목이 굳은 자들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이 성품을 생각할 때, 이런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모세보다 더 좋은 중보자가 계시고, 우리 안에는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시므로 우리는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때마다 ‘목이 곧은 백성’임을 인정하고, 때마다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의지하여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자신이 이러한 은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또한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 같은 자녀와 양들을 겸손히 섬길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섬기는 자들에게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 잘 드러나고, 나타내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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