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출애굽기 17강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말씀/ 출애굽기 31:18-33:6 요절/ 출애굽기 32:31,32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애굽기 25장부터 제일 마지막 장인 40장까지는 성막에 관한 기사입니다. 성막에 대한 설계도를 알려주신 내용이 25~31장이고, 설계도대로 성막을 만드는 내용이 35~40장입니다. 앞부분과 뒷부분이 바로 연결이 되어,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성막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40:34절과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다 라고 끝나면 내용이 깔끔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간인 32~34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기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사건입니다. 이는 사람이 얼마나 쉽게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가를 잘 나타냅니다. 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경고를 받게하시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오늘 말씀에는 죄를 용납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잘 나타납니다. 이런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잘 아는 모세는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모세의 중보기도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31:1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앞의 24장을 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언약식을 맺었습니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 그리고 아론의 두 아들과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이 시내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습니다. 그 후에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습니다. 거기서 사십 일을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에 관한 모든 규례를 주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새긴 증거판 둘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산 아래 있던 백성들은 어떠하였습니까? 32:1절입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가 안 보이자 불안해졌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야 되는데 인도자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에 그들은 아론에게 가서 말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백성들은 이렇게 말해야 될것 같습니다. "모세가 없으니 아론, 당신이 우리를 인도하시오!" 또는 "모세를 대신할 지도자를 세워주시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신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모세가 그들에게는 신적인 존재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홍해를 가르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게 하고, 기도로 아말렉을 무찌른 이런 일, 물론 이는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만, 하나님의 대행자로 그들 앞에서 행한 모세는 신적인 존재로 보였습니다. 그들 중에 모세 같은 일을 행할 자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아론에게 요구합니다.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백성들은 아직도 애굽에서의 습관에 깊이 배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애굽 사람들처럼 사람이 신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신을 만들어 숭배하면 그 신이 자기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이런 요구를 하면서 모세를 어떻게 부릅니까?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 이라고 합니다. “이 모세”는 영어로 보면 "This fellow Moses"인데 "모세, 그 친구", "모세, 그 녀석"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에 대한 존경심이 전혀 없습니다. 그가 산에 올라갔는데 아직도 안 내려오는 거 보니, 우리를 버리고 혼자서 애굽으로 돌아갔거나 무슨 사고가 난 것 같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의 이런 요구에 대한 아론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2~6절을 보면 아론은 백성들에게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것을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아론은 그 금송아지 앞에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은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아론이 왜 이런 기가 막힌 일을 주도했는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직접 말씀하신 십계명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제 1 계명이 무엇입니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그런데 눈에 보이는 다른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론이 그와 같이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정확한 이유는 알수 없지만 이렇게 추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첫째, 백성들의 위협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세를 기다리다가 인내심의 한계가 온 백성들은 모세를 이 친구, 이 녀석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아론은 이런 무리들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을 경우 자기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둘째, 만일 그가 이제 모세를 대신하여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된다면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셋째, 아론 자신도 애굽의 우상숭배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고자 하였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백성들이 금 송아지 앞에서 "뛰놀았다" "indulge in revelry" "난잡하게 뛰놀았다" (현대인의 성경) 는 것은 그들이 우상을 통해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만드는 모든 우상에는 그들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금송아지에는 금과 수소의 힘이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우상을 통해 그런 것을 추구하며 즐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세 번 서약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40여 일 만에 하나님이 제 1 계명으로 금하신 죄를 범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우리 모든 인간의 모습입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하나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더 구합니다.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보다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음에도 세상의 작은 어려움에 부딪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붙듭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실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 때문입니다.
2.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라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그 동안 오래 참으셨습니다. 출애굽할 때에도, 광야 길에서도 그들의 수많은 불평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3:7,7:4,10:3,12:31,22:25).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그들을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모세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부패했다는 것은 "썩었다"는 것입니다. 썩은 것은 버려야 합니다. 10절입니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싹 쓸어 없애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모세를 통해 큰 나라를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 앞에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었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하나님의 뜻인데 제가 순종해야죠. 사실 저도 이 백성들을 감당하느라 지쳤습니다. 제가 이렇게 우상숭배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백성들을 이루어보겠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아브라함에 버금가는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고자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1-13절입니다.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모세는 3가지 근거로 기도합니다. 첫째, 11절. “이들은 저, 모세의 백성이 아니라 주의 백성입니다. 주님이 애굽에서 구해내신, 그리고 피로 언약을 맺으신 백성, 주님의 소유, 미우나 고우나 주님의 사람들이 아닙니까?” 라는 것입니다. 둘째, 12절. “이들을 진멸하시면 애굽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여호와가 이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이유는 산에서 다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명예가 뭐가 되겠습니까? 모든 이방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해 악평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셋째, 13절. “조상들과 언약을 맺지 않으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분이 아니십니까? 그러니 부디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해주십시요.” 이 상황에서 모세는 백성들 편을 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이들이 처음 실수한 것이니 좀 봐주시지요. 이들이 아직 노예 근성이 빠지지 않았으니 좀 이해를 해 주세요"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진멸당하기에 마땅한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다만 그는 이 문제는 하나님의 명예가 달린 문제임을 집중적으로 호소하였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고 강력한 기도였습니다. 분명한 근거가 있는 기도요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고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무엇보다 모세가 이와 같이 기도한 이유는 백성들에 대한 그의 책임감과 사랑도 있지만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의 우상숭배에 진노하셨지만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심을 모세는 알았습니다. 10절을 다시 한번 보면 하나님은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는 "Now leave me alone" 인데 내가 이들을 진멸할 것인데 "나 말리지 말라"라는 말입니다. 정말 진멸하려면 그냥 하시면 됩니다. "나 말리지 말라"는 것은 실상 "나 좀 말려줘"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은 "나 저 사람 보기 싫어서 교회에 안 나올거야" 합니다. 그 말을 여기저기 하고 다닙니다. 정말 안 나오려면 안 나오면 됩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내 사정 좀 들어주고, 나 좀 말려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이 백성들에 대해 진노하시면서도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심을 알았습니다. 애증의 상태에 처한 하나님을 이해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기뻐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모세의 기도로 말미암아 진멸당할 백성들이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한편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신명기 9:20을 보면 하나님은 이 때에 아론도 죽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모세가 아론을 위하여 기도함으로 그의 생명도 보전되었습니다. 중보기도가 얼마나 귀하며 능력이 있는지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의 첫째 임무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중보기도하는 것입니다. 중보기도에는 죄인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중보기도에 힘쓰는 제사장 직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3. 백성들이 죄를 깨닫도록 돕는 모세 15,16절입니다.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모세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멸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들은 후 십계명 돌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진에 가까이 와서 보니 금송아지가 보였습니다. 백성들은 그 앞에서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 우상과 그 백성들을 볼 때 분노가 폭발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결혼식을 하고 신랑이 잠시 외출한 사이에 신부가 다른 남자를 집에 들여놓은 것과 같았습니다. 이러한 백성들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손에서 그 십계명 돌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버렸습니다.
20절입니다.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모세는 금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랐습니다. 부수어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금송아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가루를 물에 타 백성들로 하여금 마시게 하였습니다. 불탄 금송아지 가루 물을 마시는 백성들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모세는 사람이 마실 수도 없는 것, 자기들이 신으로 섬긴 것을 들이 마셔 뱃속에서 소화되고 배설되는 것을 통해 자기들의 죄를 철저히 깨닫게 한 것입니다.
한편 모세는 아론을 책망합니다. 21절입니다.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그러자 아론은 "아, 당신도 이 백성이 악한 자들인 것을 알지 않아요? 모세 당신이 산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그들이 내게 와서 신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금을 받아서 불 속에 넣었는데 ‘펑’하고 이 송아지가 나왔지요" 무슨 말입니까? 모세와 백성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습입니다. “모세, 당신이 기약도 없이 산에 올라가 그렇게 오래 있던 그 잘못은 생각 안하나요? 나는 이들이 위협하여서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어요.” 참으로 비겁한 모습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보다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행하는 인본주의적인 지도자였습니다.
25절을 보겠습니다.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모세가 보니 "백성이 방자"하였습니다. 여기서 "방자하다"는 것은 "running wild"로 한 마디로 제멋대로 날뛴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깨뜨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금송아지를 불살라 그 가루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의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out of control”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을 것입니다. "지가 늦게 내려와 놓고 왜 이 난리야! 지도자가 어디를 가면 언제까지 온다든가 스케쥴을 알려야지..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나?"
아직도 자기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모세를 대적하는 이런 자들에게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였습니다. 이에 모세는 "진 문에 서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합니다. 이에 레위 자손이 다 그에게 모입니다. 그들은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하나님과 모세를 대적하는 자들을 칩니다. 자기 형제든, 친구든, 이웃이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날 죽임을 당한 자가 삼천 명 가량 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일어난 초유의 큰 사태였습니다.
30절입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모세는 백성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범한 죄를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이제 모세는 여호와께 나아가 그들의 죄를 속해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가 어떠합니까? 31,32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모세는 백성들이 큰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그는 자기의 생명을 걸고 백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주께서 기록한 책은 구원, 곧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버려 달라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백성들의 죄사함을 구한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목숨을 바치는 기도였습니다. 육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놓고 드린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사도 바울의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그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하였습니다. (롬9:2)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모세의 기도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3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인가요 아닌가요? “모세, 네가 네 이름을 걸고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누구든지 하나님께 범죄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지워 버리시겠다” 하십니다. 모세는 범죄하지 않았으니 지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백성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풀리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지만, 즉 그들과 화해하지는 않으시지만 그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주고자 하십니다. 한 천사를 보낼테니 모세는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의 죄를 보응할 때는 보응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스러져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그렇게 말씀하시고도 하나님은 또 무엇을 하십니까? 3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3,000 명이 죽임을 당한 것과 별개로 하나님이 백성을 치셨습니다. NIV 에는 “struck them with a plague” 인데 하나님이 그들을 전염병으로 치신 것입니다. 전염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여하튼 모세의 생명을 건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노는 누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언제나 자비롭고 은혜가 많으신 분, 사랑이 많으신 분으로 생각합니다. 예, 그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한편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뛰어난 성품은 거룩입니다. 사람이 이 하나님의 거룩을 침해할 때, 즉 범죄할 때 하나님은 맹렬히 진노하십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을 많이 말합니다. 언제나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분이라고 할 때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언제나 그 모습으로 있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아가며 죄를 회개하고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언제까지 내 모습 이대로가 아니라 매일 매일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데에서 진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실 수 없으시지만 상하고 통회하는 심정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회개하는 심정을 가진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근거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오실 메시야의 구속 사역에 근거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은 통회하는 자의 죄를 사해 주십니다.
4. 슬퍼하는 백성들 33: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 가라 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사실 이는 백성들이 처음부터 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말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된 땅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죄를 깨닫는 과정에서 가나안 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땅은 주시되 그들과 같이 가지는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한 백성인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특별함도 없고 존재 의미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회개하는 가운데 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같이 가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였습니다.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않았습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볼 때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마치 범죄한 아들을 징계하는 가운데서 아들의 뉘우치는 모습을 볼 때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와 같이.
이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4절을 보면 그들은 이미 장신구를 다 떼어냈습니다. 통회하는 가운데 자기 멋 내는 장신구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장신구를 떼어 내라고 하십니다. 어려운 명령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고민 좀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중보자 역할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이 많이 돌아섰습니다. 이제 그들과 같이 갈지 말지를 생각해보겠다고 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용서하고 같이 가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속히 범죄한 이스라엘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배반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를 위한 대속자가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늘 감사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기도를 힘입어 늘 회개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모세와 같이 이 시대를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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