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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1년 민수기 7강 `열두 수령들의 정탐 보고⁠`(민수기 13,14장)2021-11-08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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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민수기 제 7 강  


열두 수령들의 정탐 보고


말씀 / 민수기 13,14장
요절 / 민수기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오늘은 그 유명한 갈렙과 여호수아가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외친 그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의 용장들의 확신에 찼던 그 외침을 다시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려움 없이 사명의 땅에 나아가는 비결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시는 가나안 땅을 정탐할 정탐대를 구성하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보면 바란 광야에 이른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 눈앞에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올라가 즉각 그 땅을 차지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주저하며 먼저 정탐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신1:21,22). 

합리적으로 백성들은 가나안의 지리나 상황을 알아야 그곳을 공격하고 정복할 것이 아닌가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나안 정복은 이 전쟁의 대장이신 하나님이 작전을 세우시고 어떻게 공격할 지를 정하십니다. 따라서 그들이 정탐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정탐을 허락하셨습니다. 정탐을 통해 다른 무엇보다 가나안 땅이 정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과 같음을 확인하고 하나님과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을 덧입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적들의 현황을 알더라도 더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계기로 삼도록 하심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각 지파에서 12명을 뽑아 정탐대를 구성했습니다. 그들은 각 지파의 족장은 아니었지만 차세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삼무아, 사밧, 갈렙, 이갈, 호세아, 발디, 갓디엘, 갓디, 암미엘, 스둘, 나비, 그우엘 등이었습니다. 여기서 10명의 이름은 생소하고 불신의 사람들이기에 앞으로도 우리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기억해야 할 이름은 유다지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 호세아 뿐입니다. 모세는 이 두 사람중에 눈의 아들 호세아의 이름을 여호수아로 개명했습니다. 호세아는 구원이란 뜻이고 여호수아는 ‘여호와가 구원이시다’는 뜻으로, 여호수아가 자신이 구원역사의 주체가 아님을 분명히 알도록 함입니다. 구원역사를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부담감과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구원의 주이심을 믿을 때 그런 생각들이 사라집니다. 

모세는 정탐대에게 정탐루트를 제시합니다. 네겝 길로 올라가 우리로 하면 백두대간같은 산지를 타고 정탐하는 것이었습니다. 정탐해야 할 내용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정말 그 땅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좋은 땅인지를 확인하는 것, 둘째, 전쟁과 관련하여 거민의 강약과 다소, 성읍의 형태를 알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정탐대를 향한 훈시는 ‘담대하라’는 한마디와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는 말로 끝났습니다. 담대할 때 적지에서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땅의 실과는 백 마디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한 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정탐대는 모세의 방향에 따라 남쪽 신 광야부터 팔레스타인 최북단 하맛 어귀 르홉까지 충분히 정탐했습니다. 그들은 네게브 평원에서 헤브론에 도착했는데 그곳이 아주 오래된 도시이고 그곳에는 아낙 자손인 거인 아히만, 세새, 달매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들은 대표적으로 가나안 땅이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한편 에스골 골짜기는 대표적으로 가나안 땅이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의 포도송이는 얼마나 크고 탐스러운 지 장정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와야 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가장 달콤하고 맛있는 과일중 하나인 석류와 무화과도 있었습니다. 정탐대는 탐스런 포도송이가 인상적이었는지 그곳 이름을 에스골 곧 ‘포도송이’라고 불렀습니다.

드디어 40일 만에 돌아온 정탐대는 모세와 아론, 그리고 온 회중 앞에서 정탐보고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땅 과일을 보여주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맞다고 말했고 가져온 커다란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보여주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어 그들은 그 땅이 얼마나 정복하기 어려운 곳인 가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크고 거기에는 거인족인 아낙자손이 있고 가나안 땅 어디에도 무주공산은 없고 곳곳에 가나안 거민들이 바글바글 살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동요하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말들은 틀린 말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눈으로만 보고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마치 미국 우주인이 우주에 갔을 때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했지만 구쏘련 우주인은 말하기를 “두 눈을 씻고 봐도 신은 없었다”고 한 것과 같았습니다.

백성이 동요하자, 갈렙이 나서 백성을 조용히 하게하며 말했습니다.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지만 나머지 열 두령들은 고개를 저으며 “우리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가나안 백성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 그 땅을 악평하고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곳을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그곳은 뺏기도 어렵지만, 뺏는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 백성들이 욕심을 내고 계속 쳐들어 오기때문에 불안과 죽음의 땅이란 의미입니다. 열 두령은 신장이 장대한 백성들에 대해 이야기하므로 백성들을 더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가나안 백성가운데 거인들이 몇 있는 것은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열 두령은 모든 가나안 백성들이 다 거인이었다고 과장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네피림의 후손들인 아낙자손을 보았다고 말했는 데 네피림의 후손은 노아의 홍수때 다 죽었으므로 이 역시 뻥이었습니다.  그들은 전설적인 네피림의 후손들이 아직도 살아 활보한다고 말함으로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환타지 수준으로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사람이 나타나면 이리저리 도망치는 메뚜기 정도로 작고 약하고 초라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지나치게 적들을 크게 보았고 자신들은 지나치게 왜소하게 보았습니다.

가나안 땅 정탐보고회는 잠깐 은혜롭다가 결국 초상집으로 변했습니다. 온 회중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밤새도록 통곡했습니다. 200만 명이 밤새도록 곡소리를 내며 우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음날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차라리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는 게 나았는데, 힘들게 이곳까지 와서 결국 가나안 거인들의 칼에 맞아 죽게 됐다며 지금이라도 애굽으로 돌아가자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와 아론은 어떻게 할 수 없어 회중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때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나서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회중들을 설득했습니다. 7-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이 말한 요지가 무엇입니까?

첫째, 가나안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그 땅은 정말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최고의 땅입니다. 심히 아름다운 땅은 놓쳐서는 안 될 땅입니다. 최고의 땅이기에 당연, 정복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 정복의 어려움은 그 땅의 가치를 반증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가나안 정복전쟁의 주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 문장에서 하나님이 주어이고 그들은 목적어입니다. 가나안 땅을 접수케 하는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기뻐하시면 어떤 악조건에서도 그들은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시고 그 땅을 주시고자 이미 결심하셨으므로 그들은 두려워말고 그 땅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셋째, 하나님을 거역해서는 안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절대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과 세계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두렵다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성공보다 순종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열매가 있든 없든 캠퍼스에 나아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도리람 저드슨은 미얀마에서 선교할 때 아주 오랫동안 열매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족 중에 죽는 사람이 생기고 그 자신이 감옥에 1년간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외적 성공과 실패로 자신의 사역을 평가하지 않고 어찌하든지 복음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줄기차게 성경을 번역하고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그랬을 때 결과적으로도 그의 순종으로 후에 수십만의 크리스천들이 미얀마에서 생기게 되었습니다.

넷째, 상황파악을 좀 더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백성들을 두려워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메뚜기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보다 크고 강한 가나안 백성들과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객관적인 판세분석입니다. 그러나 분석을 좀 더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분석으론 분명 적들이 더 크고 강합니다. 그러나 후원세력까지 파악해야 합니다. 가나안 백성들은 강하지만 후원자가 없습니다. 그들 뒤에 있던 가짜 신들은 여호와를 보고 다 줄행랑을 친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계산에 넣으면 이스라엘이 훨씬 더 크고 강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오히려 거인이며 가나안 백성들이 메뚜기같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고 약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비록 작지만,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신에 대해 거인의식을 가졌던 분이 바로 소년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골리앗을 업신여기며 호기있게 그에게 나아갔습니다. 만약에 근거없이 자신감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이없는 사람이지만 다윗의 호기의 근거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처럼 다윗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해 자신을 크게 여기고 적들과 상황을 작게 여깁니다. 본문의 갈렙 장군이 훗날 헤브론 산지를 정복할 때 그곳에 거인들이 있었지만 담대하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하며 그곳을 향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영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은 거인의식을 가지고 삽니다. 반면 육신의 눈만 있어, 부족한 자신과 어려운 상황만 보는 사람은 메뚜기 의식을 가지고 삽니다. 거인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담대하고 용기있게 살지만 메뚜기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항상 눈치 보고 두려워하는 쫄보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을 볼 때 두려움과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느냐 못 보느냐, 계산에 넣느냐 그렇지 않느냐 의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계산에 넣음으로 자신을 크게 여기고 사명의 땅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거인의식을 가질 때 우리는 적들을 향해 담대히 외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강한 사자나 호랑이가 토끼를 사냥할 때 토끼를 두려워 할까요? 누구도 밥을 대할 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시간 우리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한번 외쳐볼까요?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캠퍼스는 우리의 밥이라”, “직장도 우리의 밥이라”, “가정도 우리의 밥이라..”

한 목자님은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팀장으로 인해 회사생활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하며 하나님께 나가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그를 좋게 본 한 다른 부서의 팀장이 그를 스카웃하게 하심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회사생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한 사모님은 자신의 학력 때문에 두려워 캠퍼스 교문 앞에서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믿음이 없는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캠퍼스에 용감하게 나갈 수 있었고 나중에는 캠퍼스 양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하호호 웃으며 목자생활을 즐겁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양들이 사모님을 두려워하고 피해 다닐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사명을 감당할 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담대한 마음, 즐기는 마음으로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20년 전에 드린 서원기도에 기초해서 내년 1월에는 포천 UBF를 개척하러 가고자 합니다. 제가 2달 후에는 종로센터를 떠나게 되어 무척 아쉽습니다. 이시간은 제가 개척할 캠퍼스에 정탐보고를 간단히 드리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금요기도회때 다시 하겠습니다. 포천은 북한에서 가까운 도시로 통일의 도시로 불리웁니다. 또한 요새 포천 is 포춘(Fortune)! 행운의 도시로 부르기도 합니다. 근래 기독교방송에는 아침마다 포천시 광고가 나오는데 포천 is 포춘, 행운의 도시 포천으로 오세요~ 라는 멘트가 나옵니다. 포천에는 차의과대학, 대진대, 그리고 경복대가 있습니다. 첫째 아들과 정탐여행을 갔다 왔는데 그는 열 두령처럼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쉬없이 했습니다. 차의과대학은 너무 교만하고, 대진대는 너무 수준이 낮아 복음역사가 잘 안될 것이니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차의과대학은 수준이 높기에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의대나 간호대는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주의 종들이 많이 배출됩니다. 또한 대진대는 학교 순위는 낮지만 갈릴리의 제자들처럼 겸손히 주님을 찾고 주님을 배우고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복대는 전문대여서 취업에 전념하고 단순하게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일군들이 배출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마크윤 선교사님과 느헤미야 선교사님과 대진대를 방문했는데, 전에 정탐할 때는 금송아지 우상처럼 생각되어 거북하게 보였던 대진대 상징이 아주 긍정적으로 보였습니다. 대진대 학생들이 소처럼 성실하고 꾸준히 공부하여 이 나라와 사회에 이바지 하도록 하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소는 일생 열심히 몸으로 봉사하고 나중에는 최고의 고기로 다시 주인에게 봉사하는 정말 귀한 동물입니다. 소와 같이 충성스런 주님의 일군들이 이 캠퍼스에 배출될 비전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대진대를 돌아볼 때 마다 우상숭배의 본거지 같은 신흥종교 대순진리회의 예배당이 조금은 두렵기도 하였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이곳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빈 허당임을 깨닫고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북한이 가까운 통일의 도시 포천에서 장차 통일한국에 쓰임 받을 주님의 종들을 세우는 일을 하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차의대와 대진대와 경복대는 아주 적절한 캠퍼스임을 믿습니다. 대진대가운데 하나님의 비전이 충만한 것을 깨닫고 확신과 감사를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담대하게 나아간 갈렙을 축복하시고 헤브론을 기업으로 주신 것처럼 포천의 대진대와 차의대와 경복대를 통일한국의 헤브론으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목자님들의 기도와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발언을 들은 회중들은 그들이 입바른 소리를 한다고 그들을 돌로 치려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영광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백성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그들이 자신을 멸시했다고 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10번이나 이적을 보이시며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을 판단하고 무엇을 결정할 때 하나님을 투명인간 취급했습니다. 사람도 자신이 존중받길 원하고 멸시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을 멸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염병으로 쳐 멸하시고 새로운 사람들로 새 민족을 이루어 자신의 뜻을 성취하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하게 하시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을 여러 나라들이 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죽이셨다고 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끝까지 인도할 능력이 없어 그러셨다고 하나님을 조롱하게 되니,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리 말아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지만 인자가 공의보다 크신 분이니 그 인자하심을 따라 그 백성을 멸하지 말아달라고 모세는 간구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의 간구대로 그들을 사하시기로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불신이 너무 깊기에 그들이 정탐한 40일을 40년으로 환산하여 광야에서 훈련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 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서 “내 종 모세”라고 하며 변호하셨는 데 이제 갈렙에 대해 “내 종 갈렙”이라고 하셨습니다. 갈렙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종이라 불릴만 합니까?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지 순종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하면 상황이 어떻든 그는 올라가고자 했습니다. 갈렙 이란 이름의 뜻은 개입니다. 개는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주인이 무엇을 던지고 물어오라 하면 열심히 달려가 그것을 물어 옵니다. 앉으라면 안고 서라면 서고 달리라면 달립니다. 갈렙은 하나님에 대해 그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갈렙은 본래 에서의 후손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 유다지파의 수령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는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구속역사에서 주인공이요 선봉장으로 쓰임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을 주시지 않고 40년간 훈련하시겠다고 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슬퍼하며 그 다음날 모두 산꼭대기로 올라가 가나안으로 가겠다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들은 청개구리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가라고 하면 가지 않고 가지 말라고 하면 가려고 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아말렉인과 가나안 인들에게 쓰라린 패배를 당했습니다.


결론입니다. 사명의 땅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명의 땅을 바라볼 때 현실만 바라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담대함, 자신감, 거인의식을 가지고 용기 있게 사명의 땅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