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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3년 사도행전 21강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사도행전 22:30-24:27)2023-08-2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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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말씀 / 사도행전 22:30-24:27

요절 / 사도행전 24:15

"그들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23장과 24장입니다. 23장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공회에서, 그리고 24장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 심문 받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마10;18) 바울을 통해서도 그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심문을 받는 가운데 어떻게 자신과 복음을 변증합니까? 바울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복음 전도자로서의 소망을 새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1.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본문 이전 내용을 기억해보면, 바울은 21장 후반부에서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그를 반대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교회 지도자들의 조언에 따라 7일간의 결례를 행합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이 성전에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데리고 온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들의 선동으로 온 성이 소동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때 천부장이 급히 나타나 바울을 보호합니다. 그를 영내로 데려가는 중에 바울이 층대위에서 유대인들에게 변증하도록 허락합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말을 듣다가 분노가 치밀어 다시 그를 죽이고자 소동을 벌입니다. 이에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를 채찍질하려고 하였으나 바울이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힙니다. 바울은 그 날 영내에서 지내고 이제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22:30절입니다.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 천부장은 왜 유대인들이 그토록 광분하여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지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과 대면하게 합니다. 바울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믿음과 사역을 증언하기 시작합니다. 


23:1절입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유대 공회는 정 중앙에 의장이 착석하고 70명의 공회원들이 그들 둘러 반원형으로 둥그렇게 앉습니다. 심문을 받는 사람은 의장 앞에 서서 증언을 합니다. 지금 바울은 그와 같이 70여명의 공회원들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회적으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위가 높은 자들 앞에 서기만 해도 오금이 저립니다. 잘못 말하면 사형 언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증언대에 선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기가 죽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공회를 주목하며 담대하게 말합니다. "오늘날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이는 지금까지의 바울의 삶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에 따른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제 자기가 증언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것임을 자기 양심이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여기서 양심은 NIV에 "in all good conscience"로 선한 양심을 말합니다. 이 선한 양심은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고 정직하게 사는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속까지 꿰뚫어보시는 하나님 앞에 거짓된 것이 없으면 사람들 앞에서도 거짓될 것이 없습니다. 속이거나 가릴 것이 없습니다. 바울은 선한 양심의 소유자였습니다. 24:16절에도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썼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선한 양심이 그를 담대하게 하였습니다. 공회 앞에서도 떳떳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가장 중심에 있는 양심을 선하게 가져야 합니다. 자기 양심이 깨끗하면 먼저 자신이 떳떳합니다. 자유롭고 담대합니다. 양심이 깨끗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디모데전서1:5절은 말합니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합니다. 선한 양심에서 참 사랑이 나옵니다. 사도 베드로도 신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3:16) 사람 앞에서 사는 사람은 이중적이 됩니다. 그 양심이 깨끗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는 진실된 삶을 살므로, 깨끗한 양심의 소유자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늘 선한 양심을 지키기를 기도합니다.


2. 자기의 생명을 지킨 바울 

23:6절입니다.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바울은 공회원들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때 자신이 바리새인이며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 때문에 심문을 받고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가 이와 같이 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는 사실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 중에 정통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인생들의 진정한 소망, 곧 부활을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바울은 지혜를 발휘하여 그 위기를 벗어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바울이 단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예루살렘에서 뿐만 아니라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증거해야 될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가진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유용한 선교자원이었습니다. 이런 그는 계속하여 악화되어 가는 상황에 자기를 그냥 맡겨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지혜를 발휘하여 그 곤경을 빠져 나온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자기의 유익만 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고귀한 피조물로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귀중히 여기듯 객관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명인의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귀중히 여기는 그러한 마음으로,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며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런 마음으로 자기를 지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날 밤에 바울을 격려하십니다. 11절입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앞에서 보았듯이 바울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울면서 말렸지만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행21:13) 하며 사명을 위해 자기 목숨도 기꺼이 바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결박과 환난이 현실이 되자 위축되고 소심해졌습니다. 두려워졌습니다. 우리는 "대 사도 바울이 두려워하다니"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도 사람입니다. 이런 그를 주님은 어떻게 도우십니까?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담대하도록 그를 격려하시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이는 주님께서 반드시 그를 지키시고 로마에 가도록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배울 점은 주님은 우리가 곤경에 빠져 있을 때 약속의 말씀을 주심으로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환난을 겪습니다. 이 때 우리는 머리를 쓰고 힘을 다해 문제를 극복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점점 큰 파도가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두렵습니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말씀이라도 허투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 때 염려와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곤고나 환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시카고 본부에 있을 때 한 가지 어려운 문제를 처리해야 되었습니다. 몇 주 동안 염려와 걱정, 두려움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도우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게 하셨습니다.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NIV는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로 되어 있는데, Cast 는 던져 버리라는 것입니다. 창던지기를 하듯 염려를 하나님께 힘껏 던져버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던져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또한 시편3:5,6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말씀을 붙들고 마음에 평안을 누렸습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반드시 로마에 가게 될 것을 약속하심으로 그로 하여금 모든 두려움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염려되는 문제, 두렵게 하는 문제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듦으로 능히 이겨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유대인의 암살 위협을 쓰셔서 선을 이루신 하나님

23:12,13절입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천부장이 바울을 든든히 지키자 유대인들 가운데 40여명의 암살단이 조직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바울이 공회에 올 때 길에서 매복하여 그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16절입니다.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바울의 생질이 그들의 음모를 들었습니다. 바울에게 결혼한 누이가 예루살렘에 있었고 그녀에게는 청년인 아들, 곧 바울의 조카가 있었습니다. 그가 암살단의 음모를 들었습니다. 암살단은 음모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얼마나 조심하겠습니까? 이런 음모를 듣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하필 바울의 조카가 들었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조카로 하여금 그들의 비밀스런 대화를 듣도록 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요?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반드시 로마로 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은 숨어서 일하시지만 놀라운 지혜로 모든 일을 섬세히 인도하는 분이심을 보게 됩니다.


구약 에스더서를 보면 모르드개가 대궐 문 앞에 있을 때 우연히 반역자들이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듣습니다. 왕비 에스더는 그 말을 왕에게 전해주어 암살을 피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왕은 그때 모르드개를 포상하는 것을 잊습니다. 나중에 모든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 때, 반전이 필요하게 된 때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 따라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시를 데려다가 역대일기를 읽게 합니다. 마침 그때 모르드개가 과거에 했던 일을 기억하고 그에게 상을 주고자 합니다. 이 일을 통해 하만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닙니다. 은밀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그 하신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놀라운 지혜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생질의 말을 들은 바울은 무엇을 합니까? 바울은 하나님이 어차피 자기를 보호하실 것이라고 하며 뒷짐 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민하게 움직였습니다. 17절을 보면 바울은 먼저 한 백부장을 청하여 자기 조카를 천부장에게 데려가도록 하였습니다. 조카가 천부장에게 직접 가서 그 유대인들의 암살계획을 말하도록 하였습니다. 중간에 누설되지 않도록 조심하였습니다. 천부장이 듣고 액션을 취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정하신 뜻을 이루시지만 이미 세상에 내신 합리적인 원리를 쓰셔서 일하십니다. 신자들의 노력과 기민한 행동을 사용하십니다. 결단을 사용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 안에 특별한 소원도 주시고, 힘과 능력도 주십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어떤 학생은 기말고사를 잘 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실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는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는 요행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이 아니라 미신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공부하지 않고 노는 그에게 좋은 성적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그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최선을 다 한 그를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18세기 영국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알아서 세계선교를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이 구태여 선교사로 나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윌리암 캐리가 개신교 첫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인도 세람포에 나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왕성한 선교사역으로 많은 신자들이 생기게 하였고 인도 사회 변혁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그 이후 영국은 영적 잠에서 깨어나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도전하는 사람을 쓰셔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자기의 미래를 운명에 맡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아갔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의 암살 계획을 듣고 즉시로 주도면밀하게 행합니다. 23절을 보면 천부장은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 창병 이백 명 총 470 명의 군사로 호위하게 합니다. 바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철통같은 경비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밤 제 삼 시(밤 9시)에 로마 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로 출발하게 하였습니다. 총독 벨릭스에게 편지를 하여 바울의 소송 건을 직접 총독이 조사해보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나중에 보면 바울의 로마 길이 열리게 됩니다. 유대인의 바울 암살 계획은 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악도 쓰셔서 하나님의 선, 곧 바울을 안전하게 가이사랴로, 또 더 나아가 로마로 가게 하는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바울은 가이사랴까지의 여행 경비를 지불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무려 470명 병력의 철통같은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람들이 악을 도모할 때 분노합니다. 특히 우리 자신을 해하려 할 때 그를 미워하고 대항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는 악한 자들의 계획도 사용하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운 문제가 있으십니까? 악한 자들이 괴롭힙니까? 그 모든 일을 통해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믿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요동하지 않고 항상 형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환난을 통해 더 많은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전천후 감사하며 믿는 사람들이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질문 중의 하나, 악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선하신 하나님이 악을 창조하셨을까요?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의 창조자가 아닙니다. 악을 조장하거나 유발하는 분도 아니십니다. 악이란 성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선이 결핍된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이 선한데 그 선한 것이 타락한 상태가 악입니다. 결국 악은 인간의 죄로 인해 발생하게 된 타락인 것입니다.


4. 전염병 같은 자 바울

24:1절입니다.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바울이 가이사랴에 내려간 지 닷새 후에 바울을 고발하는 자들이 왔습니다. 더둘로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대변하여 고발합니다. 그 고발 내용이 어떠합니까? 5절입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그는 바울이 "전염병과 같은 자"라고 합니다. 개역 성경에는 "이 사람은 염병이라"합니다. 염병 같은 자가 아니라 염병 그 자체라고 합니다. (KJV- this man a pestilent) 또한 더둘로는 바울이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라고 합니다. 더둘로가 이렇게 바울을 고발하는 이유는 로마 총독은 군중들의 소요를 가장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는 제국내의 평화를 깨뜨리는 어떤 소요에 대해서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소요 주동자는 물론 추종자들까지도 잔인하게 처형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더둘로는 바울이 백성을 선동하여 소란을 일으키는 아주 위험한 전염병과 같은 자라고 고소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바울이 복음 전도자로서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힘써 증거했습니다. 온 천하 어디로 가든지 많은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며 전염병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체험하였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예전에 코로나 양성인 사람이 다녀간 곳이면 건물 전체를 폐쇄하고 근처의 사람들은 다 역학 조사를 받아야 되었습니다. 전염병은 소리 없이 퍼져 많은 사람을 감염시킵니다. 바울은 복음을 퍼뜨리는 전염병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퍼뜨리는 복음의 전염병 같은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5.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인하여

더둘로의 고발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입장을 변증합니다. 자신은 다른 유대인들과 동일한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이 믿고 있는 성경 말씀을 똑같이 믿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기가 믿는 도가 이단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 15절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바울도 유대인들과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소망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은 성경에 약속된 소망입니다. 복음이 주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되는 신자의 참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4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또한 계시록20장을 보면 인류 역사의 맨 나중에 원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집니다. 거기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습니다. 그 때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생명책이 펼쳐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됩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줍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영원한 낙원으로, 그렇지 않은 자는 불 못에 던져집니다. 이것이 최후에 일어날 일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되는 것이요 이것이 바로 신자들의 소망입니다. 우리 신자들의 소망은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은혜, 최고의 축복입니다. 다른 모든 축복은 다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바울의 믿음, 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복음 전도자로서의 열정은 바로 이런 부활의 소망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니 잃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사나 죽으나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자 했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그는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부활의 소망을 날마다 새롭게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바울의 변명을 들은 벨릭스는 그가 무죄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를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바울에게서 돈을 받고자 자주 불러내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돈을 주기는커녕 그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했습니다.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벨릭스는 2년이 넘도록 바울을 가두어놓았습니다. 성경은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간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로 하여금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도록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그가 로마 선교를 위해 영적 준비를 하는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복음의 일꾼은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자기만의 개인 시간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에게는 분명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 소망이 그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복음의 투사가 되게 하였습니다. 세상은 복음의 원수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미 얻은 영원한 부활의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붙들고 복음 전파에 따르는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개인 경건시간을 통해 다가오는 가을학기를 잘 준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