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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3년 송년특강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편 23:1-6)2024-01-0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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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송년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


말씀: 시편 23:1-6

요절: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전할 말씀의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입니다. 오늘 본문의 서술양식은 시입니다. 시는 역사서, 예언서, 복음서, 서신서 등과 다르게 매우 짧고 압축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문학양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23편, 이 한편의 짧지만 아름다운 시를 통해 우리 인생이 누구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참 행복을 누리며 모든 인생길에 희망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갈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젊은 청년들, 중년의 목자님들과 사모님들, 노년의 원숙미를 보여주시는 시니어목자님들 모두 많은 것을 갈망하고 이루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실제로 인생은 무거운 짐짝 같이 우리를 짓누르고, 망망한 바다 위에 홀로 남겨지는 외로움과 두려움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만 의지할 때 이 힘겨운 인생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어두움 가운데에서 절망하고 있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위로하여 주십니다.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참 목자가 되십니다. 오늘 본문의 시를 쓴 주인공 다윗은 이 진리를 가슴에 간직하고 승리하는 인생을 산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오늘 다윗의 위대한 고백을 통해 우리 인생의 참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다윗의 이 뜨거운 신앙고백을 바로 나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PART 1. 여호와는 나의 목자(1~4)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어느 누구도 개입되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다윗은 소년 시절에 아버지의 양을 치며 목자로 살았기에 누구보다도 목자와 양의 관계를 잘 알았습니다. 그는 양의 운명이 목자에게 달려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양이란 동물은 겁이 많고 약한 동물입니다. 특별히 털이 많고 커다란 몸집에 비해 발목이 약해서, 다치기도 쉽고, 맹수가 나타나도 그 약한 발목 때문에 도망치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겁도 많아서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만 봐도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치는 동물이 양입니다. 따라서 양에게 목자의 존재는 자신의 생명과 연결되는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양은 목자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만이 자신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런 양을 먹이고, 보살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또 이들을 돌보면서 양과 같은 자신의 연약한 모습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양들은 연약하고 지혜가 부족하여서 목자가 돌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동물입니다. 다윗은 자신도 양과 같이 목자 되신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는 것은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목자가 값을 주고 양을 사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그 양이 목자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표시로 예리한 칼로 양의 귀에 상처를 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 값으로 우리를 사시고, 그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은 나의 목자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4절에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상식적으로 어느 바보 같은 목자가 양 99마리를 두고, 고작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 온 광야를 헤매겠습니까? 그러나 그 목자가 찾아 헤매는 그 고작 한 마리는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선한목자 예수님은 양 하나를 귀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양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시는, 연약하고 부족한 자를 찾아서 광야를 헤매는 분, 나를 귀하게 여기시고, 나를 위해서 발걸음을 떼시는 분, 그분은 바로 우리의 선한목자 예수님이십니다.

 

 또 다윗은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모든 지식과 소유에 대해서 항상 갈급하고 부족함을 느낍니다. 보기에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사람도 정작 그 자신은 남모를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저보다 더 나은 자를 바라보고 좇아가느라 피곤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것만 채워지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다 싶다가도 정작 그것을 채워도 그 즐거움은 잠시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됩니다. 또 채운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또 다른 피곤을 쌓아갑니다. 옛날 영국의 한 귀족이 자신의 집의 하녀가 하는 혼잣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내게 5파운드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귀족은 이 하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 5파운드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하녀의 행복해 하는 얼굴을 보기위해 문틈으로 얼굴을 빼꼼이 내밀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하녀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에이 10파운드라고 말할 걸’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고백했습니다. "모든 만물의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는도다"(전 1:8)

  

 다윗은 왕이요 장군이요 뛰어난 시인이며, 음악가로서 인간적으로 볼 때 전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인간 조건들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행복하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는 말씀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요, 다윗 자신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선한 목자의 돌보심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의 행복은 전적으로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품삯을 바라고 양을 치는 삯군에게 맡겨진 양들은 비참합니다. 삯군 목자는 그 삯에만 관심이 있고 양들의 행복에 관심이 없습니다. 삯군은 양들을 방치한 채 자신이 편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양들은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자유 할 수 없습니다. 꼴을 제대로 먹지 못해 쇠약하고, 병들어 애처로운 신세가 됩니다. 반면에 선한 목자는 양의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양떼를 보살피는데 온 힘을 기울입니다. 양떼를 부지런히 살피고 양떼를 위하여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아니 합니다. 목자는 양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필요를 공급해 주기 위해 애씁니다. 선한 목자의 돌봄을 받고 자라나는 양들은 통통하게 살이 찌고 그 마음에 무한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선한목자 예수님, 나의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아갈 때 내 영혼이 살찌고, 참 안식과 평화를 누리며, 부족함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양들은 배가 부르지 않거나 안심되지 않으면 결코 눕지 않습니다. 양들을 쉬게 하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긴장과 괴로움과 배고픔에서 벗어나 자유함과 만족감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양들은 자체방어 수단이 없기 때문에 위험에 처하는 기미만 보여도 달아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다리가 짧아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합니다. 양은 목자가 자기와 함께 있어 줄 때 안심하고 평화를 느끼게 되고 그 때야 비로소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 양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양들 내부에 형성되는 긴장과 적대의식과 경쟁의식도 그 원인이 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잘 아시겠지만 동물 사회에도 뚜렷한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양들은 머리를 들이 받아 서로의 우위를 결정하는데 이런 경쟁으로 인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긴장하게 되면 안정을 취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목자가 그들 가운데 있게 되면 이러한 경쟁을 하지 않게 되고 안식과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나의 목자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시고 내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지고 참된 안식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또 목자는 양들을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합니다. "쉴만한 물가”는 잔잔이 흐르는 "물가에 있는 쉼터"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물가에 있는 쉼터"는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양들이 마른 목을 축이고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양은 본래 겁이 많고 온 몸에 털이 덮여 있어 자칫 물에 빠지면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살이 거세게 흐르는 물에 접근하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야 합니다. 잔잔한 시냇물이 없을 때에는 목자가 흐르는 물을 돌로 막아서 잔잔케 하고 난 뒤  양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목자는 곁에 서 있게 되는데, 목자는 이 때 피리를 붑니다. 왜냐하면 양들이 그 피리 소리를 듣고서 안심하고 물을 마시는 일에 집중할 수 있고, 다른 짐승들에게는 경고의 신호가 됩니다. 혹시 피리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을 목자 삼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심령을 울리는 아름다운 피리소리로 내 귓전에 들릴 것입니다. 목자가 들려주는 피리소리에 양들은 흔들리는 물빛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도망할 필요도 없이 편안하게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은 우리를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몸이 물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이 우리 영혼도 성령의 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목마른 우리 영혼에 생명의 물을 부어주십니다. 요한복음7장 37절, 3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가 쉴 만한 물가를 아시고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영생수가 되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요 4:14). 이 생명의 물을 마실 때 우리 영혼은 참된 만족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는 힘든 세상을 살면서 그 마음이 곤고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절망하고, 병으로 고통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염려와 상대적 열등감에 비참해 하기도 하며, 정욕과 쾌락을 좇아 살다 끝도 없는 허무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딱하고 어려운 처지 곧 곤고함에 빠지는 때는 우리 영혼이 범죄할 때입니다. 시편 107:10,11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나 우리가 빈손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시고 아무 값없이 우리에게 죄 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 은혜를 덧입을 때 우리 영혼은 소생함을 얻고, 목자가 인도하는 의의 길, 곧 진리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확신에 찬 고백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목자는 계절에 따라 양들을 인도합니다. 때로는 거친 골짜기를 지나기고, 산지를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늘을 찾아 동굴에 들어가 쉬고 있는 사나운 늑대도 만나게 됩니다. 늑대가 편안하게 누워있는데, 그 바로 앞에 탐스러운 먹잇감이 지들끼리 뭐라고 떠들면서 지나갑니다. 이 늑대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집 밖에서 시끌벅적하게 마치 picnic 이라도 나온 것처럼 태연하게 지나가는 양들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그저 땡큐죠. 늑대가 ‘이 놈의 양을 확..’하고 뛰쳐나가려는 순간, 그 옆에는 목자가 커다란 지팡이를 들고 떡하니 버티고 서 있습니다. 목자가 곁에 있다는 것은 양들도 늑대 굴 앞을 담대하고 도도하게 걸어갈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 즉 그의 자비로우시고 의로우신 성품과 그의 약속의 신실함으로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의로운 지팡이로 나를 지키시고, 나로 방황치 않게 하시며, 그 길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PART 2. 여호와는 나의 주 (5-6)


 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 있는 양이 아니라 연회에 초대받은 손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선한 주인이 되시고 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리스도의 어린 양의 잔치에 초대받은 영광스러운 손님이 됩니다.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은 세상 두려움과 원수들을 피하여 숨은 나를 환대하시고 연회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식탁은 각종 진기한 음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나의 잔이 넘치도록 그 사랑을 내게 부어주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신 것 같이 앞으로도, 아니 평생 동안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따를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는 날 동안 그 좌우 전후에서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산다는 것은 가족이 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고대에 가족이란 의미는 너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살 때 내 문제는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담당해야 할 문제이고, 하나님이 내 목자인 이상 내 문제는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내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 성실하심으로 풀어 가실 것입니다. 내 문제를 아버지, 곧 나의 목자 하나님이 풀어 가시는 동안 나는 다만 그 가족으로 양으로써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으면 됩니다.


 저는 1969년 1월 5일에 경기도 이천의 자그마한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막노동과 공장일을 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저는 열등감에 깊이 병들어 살았습니다. 또 어려서 본 음란물로 인해 내면을 더럽히는 정욕에 취해 살던 자였습니다. 먹고 살기에 여념이 없으신 부모님, 자기 앞가림하기에 바쁜 친족과 친지들, 자기 야망을 채우기 위해 나를 이용해 보고자 했던 교사들과 교수들, 나를 좋아했지만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었던 무력한 친구들, 이렇게 참되고 선하고 능력 있고, 신실하고 완벽한 목자를 만나지 못했을 때 저는 인생의 짐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피눈물 흘리며 살았습니다. 억만큼 되는 쇳덩어리를 지고 가는 것 같은 무거운 인생의 짐, 죄 짐을 짊어지고 고통스럽게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경쟁의식과 시기심으로 피곤한 인생을 살았고, 또 원하지 않던 전공, 원하지 않던 학과에 들어가게 되어 늘 삶이 불만족스러웠습니다. 동아리 활동이나, 학과공부 등 그 어떤 것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살던 저는 군대로 도피하였습니다. 그러나 군 생활 중 근무 후에 음주를 해서 유치장에 들어가기도 하고 군기교육대를 2번이나 가게 되서 심한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얻게 되었습니다.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잘못되어 망하거나 죽을 것 같은 공포가 계속해서 저를 엄습했습니다. 저는 그 어디에서도 참 만족과 평강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뭔가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던 연애상대도 쉽게 마음이 변하는 변덕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상처만 받은 채 헤어졌습니다. 저는 스스로는 제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없는 정말로 무력한 양과 같은 존재임을 뼛속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UBF 성경공부를 통해 선한 목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여전히 무력하고 더럽고 성실하지 못하고 어리석었지만, 제가 예수님을 목자로 여기고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뜻에 순종하고자 기를 쓰고 버틸 때 예수님께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제게 참 쉼과 평안, 그리고 세상에서 누려보지 못했던 행복을 맛보게 하시는 것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캠퍼스 선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를 쓰고 말씀공부와 전도, 제자양성 역사에 힘쓸 때, 저에게 가장 합당하고 아름다운 함메리 목자님을 동역자로 주셨습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두 자녀도 주셨습니다. 부족했지만 연건센터를 개척하는 목자로 세우시고 젊은 시절을 대학생들을 섬기고 먹이는 목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직장에서 지혜와 지식이 부족했지만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맡겨진 일들이 하나하나 해결되게 하셨습니다. 또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배당되어 고민하고 큰 두려움이 들어 절망하고 드러누웠을 때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셔서 다른 능력 있는 직원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놀라운 일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모임에 오게 된 후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여기고 그분의 뜻을 알고 순종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기도하고 양식 먹고 성경10장을 매일 통독하고 영적인 서적을 읽는 영적 기본생활을 꾸준히 감당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때마다 말씀을 주시고 제가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도전적인 일들을 해내게 하셨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캠퍼스에 오르는 것은 많이 도전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이를 해내게 하셨고 직장일도 아무 문제없이 무난히 해내게 하셨습니다. 병약하고 두려움 많고 도전적인 일을 엄두도 못하던 제가 45세라는 나이에 미국의 캔터키 대학교 행정대학원 유학생 선교사로 나가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2년 동안 마음껏 미국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피싱하며 제자로 양성하며 행복하게 살게 해 주셨습니다. 덤으로 행정학 석사학위도 주셨습니다. 이렇게 저의 목자가 되어 주사 저의 모든 것을 넘치게 채워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7년 미국에서 귀국한 저에게 하나님은 제게 또다시 선교비전을 주시고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케 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이 주신 비전을 미국 선교비전으로 영접하고 미국에 다시 나아가기 위해 6년여를 날마다 기도하며 백방으로 길을 찾고 수소문하고 외교부 주재관 자리에 지원했었지만 아쉽게도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50대 중반이 되고 퇴직도 얼마 남지 않아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자 저는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남은 공직생활을 안일하게 지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6월경에 주일 소감을 쓰고 있을 때 54세에 선교사로 나아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제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다 막혀있는데 그러면 직장을 그만두고 나아가라는 말씀인가? 아니면 다시 외교부 주재관에 도전하라는 말씀인가 하며 현실적인 길을 찾았지만 제 능력으로는 아무런 길도 찾을 수 없었고 아무런 문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연말에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장 자리가 4급으로 조정되면서 제가 발탁되어 2024년 1월자로 발령받아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서울의대 뿐만 아니라 탐라국에 있는 제주대, 한라대, 제주관광대 학생들도 전도하고 제자 양성하도록 섬김의 지경을 넓혀 주셨습니다. 제 힘으로 할 수 없었던 탐라국 선교사의 길을 여시고 편하고 안일하게 살기보다 고난스럽고 불편하고 또 경제적으로 비용이 들어도 캠퍼스 선교를 위해 희생하며 예수님을 배우며 선교사의 스피릿으로 살게 하시는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남은 인생도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모시고 살 때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없는 양과 같은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누구의 인도하심을 받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시대는 우리를 유혹하는 정욕과 죄의 세력들이 가득합니다. 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 끝도 없는 경쟁에 고통하며, 서로의 욕심 앞에 누군가는 절망하고 또 누군가는 이를 지키고자 근심하며, 두려움에 빠져 살아갑니다. 우리가 이런 거친 세상과 내면의 고통 앞에 참 안식과 평강을 누리며 승리하는 길은 오직 선한 목자 되신 나의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 삼을 때 그 어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두려움 없이 지나며, 참 쉼이 있는 잔잔한 물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가 2023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선한목자 하나님은 올 한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남은 일생을 선한목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다윗과 같이 승리하는 인생,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에 사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