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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년 신년 제2강 하나님을 믿으라(막 11:20-25)2024-01-15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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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신년 2강 말씀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 막 11:20-25

요절/ 22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성경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두 가지 큰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요 13:34-35)과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마 28:18-20)입니다. 이 두 명령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각 개인과 공동체는 이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수 없습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일은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동역해야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작년 신년 말씀은 로마서 15장 1-13절에 기초하여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였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려면 그리스도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성숙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자라야 합니까?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서 자라야 합니다 (고전 13:13; 골 1:4-5). 2024년에는 믿음이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이 말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합니다. 이미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상황에서는 체념합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에게 고난을 극복하고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고전4:21). 이 능력은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능력, 특히 산을 옮기는 힘과 기도와 용서의 힘을 가르치십니다.


첫째, 산을 옮기는 믿음의 능력 (20-23). 


며칠 동안 예수의 제자들은 많은 놀랄 일들을 경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환영하며 외쳤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9). 다음 날,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은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상징했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케 하시고 자기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전을 남용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제자들은 혼란스럽고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20절). 이에 베드로가 생각나서 예수께 말하였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당신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21). 그는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에 정말 놀랐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큰 소리를 잘 쳤지만, 정작 그의 말에 아무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에 능력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2-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베드로의 열정을 이해하셨습니다. 그가 영적인 능력을 갖고 싶어 한다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방법이나 기술, 기법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능력의 근원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근원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성경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많은 속성 중에 하나입니다. 그분의 이름인 God, ‘엘로우힘’에 내포되어 있는 그분의 정체성의 일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를 알려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창1:3). 빛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데 사용되는 태양 광선 그 이상의 것입니다. 빛에는 전파, 마이크로파, 감마선 등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빛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땅과 바다, 각종 채소, 꽃과 나무, 각종 동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새의 종은 11,000종이 넘습니다. 각 종은 개별적으로 색깔이 다르고, 고유한 특성과 능력을 갖고 있으며 별개의 소리를 냅니다. 우리는 아침에 그들이 합창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활한 우주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거대해 보입니다. 특히 세계를 여행하려고 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구는 태양에 비하면 아주 작습니다. 그리고 태양은 은하계에 있는 1,000억 개의 별 중 하나일 뿐입니다. 게다가 은하계의 수는 2,000억 개 이상, 어쩌면 2조 개에 달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 능력의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노래하게 됩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둘째,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그의 구속역사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출20:2)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구약 전체에 걸쳐 반복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잔인한 바로의 억압을 받으며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을 통하여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 신음하며 죄와 사망의 종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그의 전능하신 능력을 행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값을 단번에 지불했습니다(히10:10).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실 때, 죄의 권세는 영원히 파해졌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부활을 통해 강력하게 나타났습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은 또한 병자를 고치는 일, 만국을 통치하는 일, 악을 심판하고 멸하는 일 등 다른 방법으로도 나타납니다. 이 능력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것이 얼마나 무한하고 끝이 없는가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 힘으로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한 마디라도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나라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분의 크신 사랑을 알게 되고 그분의 임재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Wi-Fi 비밀번호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인터넷의 방대한 자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액세스하려면 Wi-Fi 비밀번호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우리에게 열려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해 이 능력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는 길입니다(요14:6).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나아오는 사람을 누구든지 영접하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친히 전능하신 능력으로 산을 움직이심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있는 산은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그러한 것들을 말합니다. 질병, 사별, 가난, 소외, 침체 등 이런 것들이 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산에 직면하고 있습니까?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국제적 차원에서 우리는 세계적인 갈등,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불확실성, 타락해가는 도덕적, 윤리적 환경, 기후 변화와 자연 재해, 미래의 전염병 등에 직면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져 체념과 방종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때가 산을 바다로 옮길 때입니다. 하나님을 믿읍시다!


세계대표인 란워드목자는 2023년 국제여름수양회를 준비하고 진행할 때, 마치 거대한 산을 옮기는 것과 같았다고 합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봉쇄 조치를 견뎌낸 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영적인 불안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실제로 여행 제한, 비자 문제, 재정적 어려움 등 산더미 같은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히 대규모 국제대회를 열 수 있겠는가? 일부 회의 기획자들은 “해외 참석자들 없이 최대 1,000명의 북미 사람들만 참석하도록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요한일서 1장 5절 말씀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그는 주님께서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주변에 같은 마음을 가진 많은 동역자들을 붙여주셨습니다. ISBC를 위한 한국의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의 기도가 그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도전하여 북미 1,500명, 해외 대표자 500명 총 2,000명의 참석을 위해 기도제목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북미와 한국의 목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메신저와 소감 강사들을 세우고 훈련하였습니다. 또한 전 세계 UBF 지부를 방문하여 수양회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산과 같은 문제들을 하나둘씩 바다에 던지셨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여행 제한이 풀리고, 재정이 공급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국제수양회가 열렸습니다. 주님께서는 북미에서 1,691명, 한국에서 약 300명을 포함한 567명의 해외 참가자들을 더해 총 2,258명이 참석케 하셨습니다. 목표치인 2천명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지와 소감을 성령의 능력으로 축복하셨습니다. 그 결과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로 살겠다고 헌신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후 북미 많은 UBF 지부들이 새로운 힘을 얻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을 학기 사역을 축복해 주셔서 부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과 영광으로 우리에게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제 올해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유럽 SBC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체코 프라하는 종로2부에서 파송하여 기도지원하는 곳이니 더욱 각별한 관심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체코에서 열리는 유럽수양회가운데도 역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유럽은 인본주의, 세속주의, 쾌락주의가 만연한 곳입니다. 그것들이 유럽의 산입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능히 그것들을 바다에 던지고 큰 영적 부흥을 일으키게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기도 합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면 우리가 어떤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까? 22-23절을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을 믿고자 할 때 이상하게도 마음속에 의심이 생깁니다. 의심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우리 마음속에는 더 많은 의심이 일어납니다. 이 의심이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것은 심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귀의 일입니다. 처음부터 에덴동산에서 마귀는 인류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의심하도록 유혹했습니다. 여자의 마음에 의심이 심어졌을 때 그녀는 속아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의심은 사탄의 강력하고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마귀가 주는 의심은 하나님에 대한 사실을 왜곡시킵니다. 가짜뉴스를 만들어냅니다. 세상은 그런 거짓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반면, 성경은 다음과 같은 진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신7:9; 시36:7; 요일4:8).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시100:5; 시118:1; 벧전2:3).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레11:44-45, 사6:3, 벧전1:16).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출34:6-7; 요엘2:23; 고전10:13). 하나님은 자비롭습니다. (대하30:9; 요나4:2; 롬9:15). 하나님은 항상 당신을 사랑하는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롬8:2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로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요3:16).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마음에 붙잡을 때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롬8:37).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의심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채우지도록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의심을 극복할 때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산에게 명령할 수 있습니다. “가서 바다에 던져지라” 그러면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UBF 선교사들과 목자들은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 이제껏 이 일을 해왔습니다. 최근 란워드목자는 몽골,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 여러 아시아 국가를 방문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불교도, 힌두교도, 이슬람교도들입니다. 그들의 종교는 거대한 산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이들 나라에 믿음으로 선포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삶이 변화되고 새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30여년 전에 신아굴라, 임마태, 권바울 선교사를 중심으로 몇몇 선교사들이 몽골로 파송되었습니다. 몽골은 수 세기에 걸친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70년간 공산주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몽골어 성경도 없었습니다. 이때 파송된 UBF 선교사들은 열심히 몽골어를 배워 믿음으로 몽골어 성경을 만들었고,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했습니다. 가정교회가 세워졌고, 일부는 새로운 지부의 개척자들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몽골 가정교회의 2세들이 자라서 세례를 받고 역사의 주역들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제 몽골이 세계에 대해 선교사를 파송하는 비전을 갖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껏 하나님의 축복하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키우는데 귀하게 쓰임 받았고,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을 배출했습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세계선교에 크게 쓰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은 여러 방면에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작년 11월, 란워드목자와 한국선교팀이 스리랑카를 방문하였습니다. 하루는 스리랑카의 한 공원을 걷고 있을 때 현지 고등학생들이 “Korea, Korea, BTS”을 외치며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란워드목자와 같은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에게 다가와 관심을 보였습니다. 요즈음 한국 문화가 정말 인기가 많습니다. K팝, K드라마, K푸드의 인기가 짱입니다. 이것은 한국 젊은이들을 다음 세대 선교사로 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이를 믿고 우리가 제자 양성, 세계 선교를 힘써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둘째, 기도와 용서의 능력 (24-2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이르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4절).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기도하고 구하라는 엄청난 초청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문제와 필요를 가지고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정말로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때 주님께서도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이 하나님 자신인 것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항상 선하고, 가장 기뻐하시며 완전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롬12:2; 약4:3).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할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막힘없이 역사합니다. 이런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산을 바다에 던지는 희생제물로 그의 삶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으셨습니다. 이런 종류의 기도로 많은 선교사님들이 그들의 삶을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데 그들의 삶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계속 기도합시다.  


예수님은 25절에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구에게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 죄를 사하여 주시리라.” 기도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절대적인 요구 사항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용서해야 합니까? 또 누구를 용서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ESV, NIV)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남을 용서하지 않을 정당한 이유가 없음을 말해줍니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서 우리 죄인들은 결코 갚을 수 없는 일만 달란트, 즉 수 십 조를 하나님께 빚진 사람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조건 없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대조적으로, 우리에 대한 죄는 약 4개월치 월급, 약 이천만원 정도의 빚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에 비하면 아주 작은 액수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빚을 탕감 받았는데 형제에게 작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비유에서 주인은 그런 사람을 악한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마18:32). 당신은 악한 종이 되고 싶습니까? 물론 아니죠!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실제로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기억할 때 그것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a)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최근 스리랑카 사역에서 용서의 힘이 역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명의 위대한 선교사 백바나바와 전누가선교사는 오랫동안 같은 선교지에서 사역해 왔습니다. 그러나 한 목자 가족을 돕는 과정에서 서로 오해가 생겨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동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셨습니다. 뜻하지 않는 어려움에 봉착하여 금식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전누가선교사가 그동안 백바나바 선교사를 힘들게 했다는 것을 깨닫도록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이에 전누가선교사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에 백바나바 선교사도 누가선교사를 진심으로 용서했습니다. 이로인해 서로에 대한 사랑이 회복되었고 그들은 앞으로 있을 수양회를 함께 기획하고 동역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가 은혜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고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줍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올해는 산을 옮기는 믿음과 용서하는 사랑의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엡3:20,21을 나누겠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