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출애굽기 11강
십계명
말씀/ 출애굽기 20:1-21 요절/ 출애굽기 20:2,3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십계명"입니다. 제가 AI 에게 십계명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 또는 생각이 어떠한지를 질문했습니다. 이런 대답이었습니다. 첫째, 기독교인들은 십계명을 도덕과 윤리의 기본 틀로 생각한다.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라고 믿는다. 둘째, 비기독교인들은 십계명을 사회의 보편적인 도덕 규범 또는 역사적인 법률의 기초로 이해한다. 일부 사람들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같은 계명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거나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기도 한다. 요약하면 십계명은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를 잘 정리한 원칙이라는 긍정적인 인식과, 자유와 다양성을 억압하는 구시대적인 규범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혹시 십계명이 하나님이 내신 모든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다. 그래서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 구원을 받는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신 대상은 애굽에 있는 노예 백성이 아닙니다. 그들로 하여금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이를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바로 전 19장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들로 삼으신 사람들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이를 지키면 구원을 받고 어기면 심판을 받는 윤리와 도덕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람들이 되도록 하기 위한 삶의 지침으로 주신 것입니다. 곧 윤리가 아니라 진리로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일까요?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성품과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도가 지켜지고 각 사람이 참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러한 뜻과 소망을 생각하는 가운데 본문을 살펴보기를 기도합니다.
1,2절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십계명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하시기 전에 그 계명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가를 먼저 밝힙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계약서 내용보다 누구와 계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법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의도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계약을 맺는 당사자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신가, 그의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고된 노동으로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10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자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셨습니다.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노예 백성이었던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나는 너를", "네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같이 하나님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신 여호와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주시는 십계명은 그들을 괴롭게 하려 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시키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 대해 언제나 선한 의도를 갖고 계십니다. 그들이 다시는 종이 아니라 영원히 자유를 누리를 백성들이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과 선한 의도를 믿고, 곧 우리를 위해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믿고 들어야겠습니다.
3절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십계명 중에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NIV에는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신들도 같이 섬기는 것을 금지하시는 것입니다. 곧 다신교 신앙을 금지 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거의 모든 종교가 다신교였습니다. 애굽도 다신을 섬겼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는 가나안 땅도 여러 신을 섬겼습니다. 그리이스나 로마도 다신을 섬겼습니다. 하늘의 신, 땅의 신, 불의 신, 바다의 신, 바람의 신, 전쟁의 신, 사랑의 신, 출산의 신 등 수많은 신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신교가 팽배한 세상에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소위 사람들이 신이라고 여기는 그런 것들을 하나님과 더불어 섬기기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믿음은 참으로 혁명적이었습니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이 제1 계명, 곧 유일신 사상을, 비신자들은 개인의 종교의 자유,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계명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정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실로 유일한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현재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요 영원토록 살아계신 유일한 신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소위 신이라고 하며 섬기는 것들은 다 피조물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건을 신으로 삼고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이사야 44:8-18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무를 벱니다. 그 벤 나무로 불을 때어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합니다. 몸을 덥게 하고 고기 굽는 땔감으로 쓰고는 나머지 나무로 우상을 만듭니다.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기도하여 말합니다.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한 가를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성경이 증거하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이십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신 자존자이십니다. 이 하나님 외에 우리가 섬길 다른 신은 전혀 없습니다. 십계명의 제 1 계명,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21세기에 돌이나 나무를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긴다는 신자들이 다른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21세기의 대표적인 우상은 돈입니다. 돈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돈을 의지합니다. 또한 세상에서의 성공과 명예를 추구합니다.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세상 것들로 나의 믿음의 대상, 소망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명백한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여러 우상들; 돈, 성공, 명예, 쾌락 등의 유혹을 이기는 길이 무엇입니까? 유혹을 이기고자 그것과 싸우면 항상 집니다. 우리가 이기는 길은 하나님만을 적극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사랑은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우상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8:34b-36)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은 마땅한 진리의 길을 가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모든 거짓된 우상으로부터 참 자유를 얻게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거짓된 우상 숭배에 빠져 다시 자유를 잃고 종노릇 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만을 섬김으로 참 자유와 생명과 복을 누리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계명을 첫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둘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4절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하나님을 나타내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간 사이에 금송아지 형상을 만듭니다. 그것을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깁니다. 하나님은 이에 크게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 그 앞에 절하며 섬기는 것의 문제점이 무엇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아무리 멋있고 거룩하게 보이는 형상으로 만든다 해도 그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분으로 그 어떤 것에도 제한받지 아니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든 순간 우리는 무한 광대하신 하나님을 우리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이 섬기는 모든 형상은 거기에 자기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 앞에 엎드리는 것은 우상을 이용하여 자기 욕망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 자체를 섬깁니다. 우상 숭배자는 자기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신을 이용하여 자기를 섬기는 자들입니다. 우리도 만일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고 섬기기보다 그분을 이용하여 무엇을 얻기 위해 섬긴다면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망령되게 부른다는 것은 "헛되게" 부른다, "가치 없는 존재로" 부른다는 뜻입니다. 서양에서는 욕을 할 때 ‘God’ 이라는 말을 넣기도 합니다. ‘Jesus’ 말도 비하하는 말로 사용합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지만 그 마음을 전혀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넷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8-11절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십계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2, 3계명은 이를 어길 때는 정죄함이 따릅니다. 방금 읽은 4번째 계명의 내용이 가장 깁니다. 5번째 계명은 축복의 약속이 있는 유일한 계명입니다. 10번째 계명은 유일하게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 내면의 탐심을 죄를 규정한 계명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제 4 계명의 내용이 가장 깁니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의 기원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어떤 소감을 발표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입니다. It was very good! 하나님은 제 7일 째에는 안식하시면서 그 지으신 천지를 감상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제 7일에 쉬면서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기본적으로 쉬는 날입니다. 여기서 쉬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수고하는 세상 일을 쉬는 것을 말합니다. 노동을 하고 장사를 하고 회사에 출근하여 일하는 그런 일을 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일들 심방이나 구제, 성경공부나 소감모임을 쉬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먹고 사는 생활 문제는 하나님이 책임져 줄 것이니 오직 그날은 노동을 쉬고 하나님을 전심하여 즐거워하며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시대에 와서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구약의 거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안식일도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안식을 빼앗아가는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참 안식을 준 날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안식일 후 첫날, 곧 일요일을 주님의 날, 주일로 기념하며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이후 우리 기독 신자들은 주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안식일, 곧 주일을 잘 지킬 때 우리에게 복이 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복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뜨겁게 사랑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모든 것이 나옵니다. 마음이 변화되면 사람이 변하고 그 인생이 변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쾌활하고 인기가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파티에 다니는 것을 즐겼습니다. 이러던 그가 십자가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성당에서 밤을 지내며 기도하였습니다. 성당의 신부님이 프란치스코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바꾸어 놓으시면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최고의 축복이 무엇일까요? 우리 마음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에 주일 예배를 영과 진리로 온 마음을 다하여 드릴 때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순수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만들어집니다.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 이러한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날을 복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4계명, 곧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형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이를 대신 계명이라고 합니다. 대인 계명은 6개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입니다.
12절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사야 29:13a에 보면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공경“이라는 원어 "카베드"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는 부모님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며, 자녀는 부모님을 하나님을 대하듯이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단순히 순종하는 것을 넘어서 마음으로 공경하고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때로는 부모님이 불신자이고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부모님이기에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나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성이 모든 인간 관계성의 기본입입니다. 이 관계성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좋습니다. 그런 사람은 부모님 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잘 섬깁니다. 부모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자녀들의 우애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형제 우애를 실천합니다. 윗사람들과 뿐만 아니라 옆사람들과의 관계성도 좋습니다. 손 아래 자녀들은 부모를 보고 자랍니다. 그들도 부모를 공경하게 됩니다. 실로 부모 공경은 모든 인간 관계성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맺게 해 주는 생명줄과 같습니다.
부모 공경은 축복의 약속이 있는 첫계명입니다.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네게 준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입니다. 또 영적으로는 장차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이 땅에서 건강 장수를 누립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속도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부모님과 자기를 복되게 하는 축복된 계명입니다.
여섯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입니다. 살인은 두 가지 면에서 큰 죄입니다. 첫째, 살인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여탈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심각한 월권입니다. 둘째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살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파괴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실제적인 살인뿐만 아니라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5:21,22) 미워하는 마음은 그 사람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곧 살인하는 마음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살인죄에 해당합니다.
일곱째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 시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되는 성스러운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간음은 이 성스러운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부부가 아닌 남녀가 범하는 간음, 간통과 같은 모든 행위는 단순한 성범죄 차원을 떠나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깨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후일에 예수님은 이 계명을 더욱 확대하사 마음으로 범하는 정욕죄까지도 정죄하셨습니다. 정상적인 성윤리가 위협받는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명의 말씀을 지켜 영육간의 순결을 지켜야겠습니다.
여덟째 계명은 "도둑질 하지 말라"입니다. 이 계명은 이웃의 재산권 보호에 대한 계명입니다. 도둑질의 대상은 물적 재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지식, 정보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됩니다.
아홉째,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입니다. 이는 법정에서 위증을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헐뜯는 중상모략도 해당됩니다. 교회공동체에서 부지불식간에 많이 행해지는 죄가 바로 남을 험담하는 것입니다. 서로 상황을 잘 알고 분별력을 갖자고 하는 대화가 어느새 남에 대한 뒷담화로 변합니다. 남의 등 뒤에서 험담을 하는 것입니다. 남의 말하는 것은 재미가 있습니다. 나는 아니니까 하는 마음으로 우월감을 누립니다. 잠언에서도 말하기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잠18:8) 그러나 남에 대한 험담은 회복할 수 없이 그 사람의 명예를 실추케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서 하지 못할 말은 그 사람 뒤에서도 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언제든지 좋은 점, 장점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험담에 참여하지 말고 그런 말을 하는 자를 책망해야 합니다. 친한 동역자들을 이간질시키는 가십하는 자를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마지막 10번째는 탐심의 죄입니다. 17절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탐심은 아직 실행되지 않은 마음의 욕심입니다. 오늘날 형법에도 실행되지 않은 마음의 탐심은 처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탐심은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하와가 처음 범죄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았을 때 그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탐심 때문이었습니다. 탐심은 간음, 도적질 등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3,500년 전에 내면적인 죄인 탐심을 죄로 규정한 십계명은 참으로 높은 수준의 계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십계명이 어떤 인간이 만든 법률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신적 기원을 가진 율법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실 때, 뭇 백성은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심히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모세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19) 하나님은 위의 십계명 외에 앞으로 많은 계명의 말씀을 주십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이 모든 계명들을 간단히 요약하셨습니다. 그것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셨습니다. (마22:37-40) 결국 십계명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게 하심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아름다운 공동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심입니다. 이웃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율법을 한 계명으로 요약하면 결국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6:5,6절에서 가장 큰 계명으로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십계명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윤리와 도덕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살아가는 방식, 곧 진리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따라야 할 진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유를 누립니다. 죽음이 주는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롭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확신에서 자유함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종 되었던 그의 백성이 이와 같은 참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셔서 날마다 하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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