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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5년 출애굽기 15강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지으라(출애굽기 25:1-27:21)2025-06-2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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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출애굽기 15강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지으라


말씀 / 출애굽기 25:1-27:21

요절 / 출애굽기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출애굽기 20장부터 23장까지를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위시한 많은 율법을 주셨습니다. 24장에서는 그 율법들을 근거로 하여 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청종하며 순종하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기는 배교 사건이 중간에 있지만(32-34장) 이제부터 40장까지는 성막에 관한 내용입니다. 25-31장은 하나님께서 성막 건설에 대한 설계도를 알려주시는 내용이고, 35-40장은 그 설계도대로 성막을 만드는 내용입니다. 성막을 설계도대로 만들기 때문에 25-31장과 35-40장 내용은 거의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성막에 대해 반복하여 말씀하실까요? 이는 성막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무엇보다 성막을 짓도록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기 원하는 분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하나님을 잘 배우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25: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이는 성막을 짓기 위한 재료를 모으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성막 건설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기적적으로 만들 수도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백성들에게 가져오라 하십니다. 이는 백성들이 성막을 짓는 데 참여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어떤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길 원하십니까?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기쁜 마음으로”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로 예물을 받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받기 원하십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드릴 예물이 무엇입니까? 3-7절을 보면, 금속 3종류; 금, 은, 놋입니다. 실 4종류; 청색, 자색, 홍색, 가는 베 실입니다. 그리고 염소 털을 드립니다. 여기서 흰색 실을 뽑습니다. 가죽 2종류; 숫양과 해달 가죽입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보석들입니다. 백성들이 광야에 있었는데 어디서 이런 귀한 물건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 백성들로 부터 받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애굽에 살면서 조금씩 모아 둔 것이었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런 것들은 매우 귀중한 물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기쁜 마음으로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물품으로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8절입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성소를 지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성소를 짓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이 그들 중에 거하고자 하심입니다. 물론 이는 실제로 하나님이 그 성소 안에 담겨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소 안에만 계시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신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주보다 크십니다. 만물을 만드신 분입니다. 나중에 솔로몬도 웅장한 성전을 완공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왕기상 8장 27절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성소에 계시겠다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의 영광을 나타내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심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백성들 가운데 거하고자 하십니까? 이는 백성들과 함께 하사 그들을 보호하고 복되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복의 근원이십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얼굴을 뵈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무한한 행복을 누립니다. 창세기의 야곱은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는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도 빼앗고, 외삼촌 라반으로부터 양떼들도 많이 얻었습니다. 4명의 아내와 12명의 아들도 얻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다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내면이 불안했고 장래가 두려웠습니다. 이런 그가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습니다. 그는 비록 허벅지가 골절되어 절었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사람이 되어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창32:31)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될 때 가장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더욱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이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는 것은 심히 부담스런 일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부담스런 그들과 함께 거하기 원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기초하여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한 주권이요 그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지난 3:14절에서도 보았듯이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삼위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이 전혀 없으십니다.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삼위 하나님의 복된 관계성 가운데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 점에 대해 예수님은 요한복음 17:21절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사 그들의 힘과 기쁨과 생명이 되시고 그들의 아버지요 목자가 되고자 하십니다. 지금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힘과 기쁨과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아버지요 목자가 되고자 하십니다. 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삶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물이 떨어졌을 때, 양식이 없을 때 하나님이 그들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의심했습니다. 이런 믿음이 연약한 그들을 도우시기 위해 눈에 보이도록 성소를 만드시고 그곳에 계심을 알도록 하십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성막을 어떻게 지어야 하나요? 당시 이방인들은 신전을 자기들이 디자인한 데로 지었습니다. 그들의 신을 기쁘시게 하고자 웅장하고 멋있게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막은 나름대로 지으면 안 됩니다. 9절입니다.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모양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40절을 보면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라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내 산에서 하늘에 있는 참 성막을 보여주십니다. 그 이미지는 모세에게 Photographic Memory (사진 기억)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참 성막의 모양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부터 성막 설계도의 수치를 자세히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의 모양을 보여주시고, 이제 세심하게 수치를 가르쳐 주시며 성막을 만들도록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방 신전처럼 멋지게 만들어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안 되는 것일까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지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거룩이란 한 마디로 지극히 아름답고 영광스러워서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성품을 말합니다. 에스더서 4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1a절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자에게 금 홀을 내밀어야 살 것이라." 세상의 황제인 아하수에로 왕에게도 부름을 받지 않고 그에게 나아갔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사람이 임의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길을 통해서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막을 건설할 때도 하나님이 어떻게 만들지 자세히 지시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님이 제시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속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우리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으십니다. (행4:12) 예수님도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서 갈 자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10절부터 하나님은 먼저 언약궤, 떡상, 등잔대의 설계도를 말씀하십니다. 성막에서 가장 중요하고 신성시되는 기구는 언약궤입니다. 법궤 또는 증거궤라고도 합니다. 언약궤의 크기는 대략 우리 일대일 책상의 1.5배 정도입니다. 직사각형의 박스입니다. 박스 네 귀퉁이에 고리를 답니다. 채를 꿰어 둡니다. 이 채(봉)는 안치되어 있을 때나 이동할 때나 언제든지 꿰어 둡니다. 궤를 이동시킬 때는 레위 지파 고핫 자손 어깨에 매어 옮깁니다. 이는 신성한 법궤를 손으로 만지지 못하게 함이었습니다. 사무엘하 6장을 보면 웃사라는 사람이 언약궤에 손을 대어 즉시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웃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약궤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듭고 겉은 금으로 쌉니다. 박스의 상단, 곧 덮개를 속죄소라고 부릅니다. 속죄소는 죄를 속함 받는 장소인 지성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언약궤의 뚜껑을 말합니다. 속죄소를 영어로는 ‘Atonment Cover’ (속죄 덮개- 죄를 덮는 곳) 또는 ‘Mercy Seat’ (시은좌- 은혜의 자리) 라고 부릅니다. 궤는 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싸지만, 속죄소 곧 언약궤 상판은 전체를 순금으로 만듭니다. 금은 거룩함, 불변성을 상징하는데 하나님이 거룩하시며 불변하신 분임을 나타냅니다. 속죄소 위에 두 천사가 있는데 두 천사는 서로 마주 보되 고개를 아래로 곧, 속죄소를 향합니다. 날개를 펴서 속죄소를 덮습니다. 이 두 천사는 따로 만들어서 속죄소 판에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금 한 덩어리를 두드려서 속죄소와 그에 연결하여 천사 둘을 만듭니다. 전체가 한 덩어리입니다. 금이 연성이 가장 좋은 금속이라고는 하지만 한 덩어리의 금으로 속죄소와 두 천사를 쳐서 만드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궤는 물건을 담기 위한 기구인데 언약궤 안에는 무엇이 들어가나요? 21,22절입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언약궤 속에는 증거판, 곧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시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갑니다. 나중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가 추가로 들어갑니다. 언약궤 속에 십계명 돌판이 들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성막의 가장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보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기를 나타내시고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2절만 다시 한번 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여기서 "거기서"는 속죄소 곧 언약궤 상판을 말합니다. 십계명 돌판을 담은 그 궤의 덮개 위에서, 천사들이 날개로 덮고 있는 가장 거룩한 그 중심 지점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만나십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1년에 1회 대속죄일 (유대 종교력 7월10일)에 짐승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와 이 속쇠소 위에 피를 뿌립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 바로 그 지점이 피뿌림이 있는 속죄소인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피를 통해 인간의 죄를 속하시고 인간을 만나십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사 그들과 함께 하기 원하시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죄문제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하고 그것은 오직 피 흘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지만 또한 지극히 거룩한 분이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죄로 인해 임의로 거룩하신 그 분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딜렘마입니다. 그 딜렘마의 해결이 피입니다. 피는 죽음을 말합니다. 죄의 대가인 죽음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아무 소용이 없죠?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데 그 사람이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 대신에 소나 양을 죽여 그 피를 속죄소에 뿌렸습니다. 물론 사람의 피 값과 짐승의 피 값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애당초 짐승의 피로는 사람의 죄를 완전히 속죄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었습니다. 여하튼 하나님은 피뿌림이 이루어지는 속죄소에서 사람을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3-30절은 떡상(Table)에 대한 내용입니다. 떡을 올려놓는 상입니다. 이것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쌉니다. 네 귀퉁이에 고리를 달아 채를 꿰어 넣습니다. 그 위에 진설병이라고 불리는 떡을 올려놓습니다. 모두 12개로 6개씩 두 줄로 쌓습니다. 열두 개의 떡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합니다. 안식일마다 12개의 떡을 올려드리고, 다음 안식일에 교체합니다. 교체된 떡은 제사장들이 성막 안에서 먹습니다. 중동의 더운 날씨에 일 주일간 떡이 상하지 않고 보존되기 위해서는 아마 과자처럼 말려서 올려 놓았을 것입니다. 이 떡을 올려드리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양식을 공급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진설병은 원어로 ”레헴파님“인데 "얼굴 떡"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거기에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사 그들의 생명의 공급자요 유지자가 되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31-40절은 등잔대에 관한 내용입니다. 등잔 갯수는 일곱입니다. 끝이 살구꽃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살구꽃은 원어로 '샤케드'인데 '지키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신다는 의미입니다. 38절에 보면 등잔대 외에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만드는데, 이 3가지를 만드는 순금의 총 중량이 한 달란트입니다. 오늘날 34Kg으로 요즘 금 시세로 따지면 약 50억원입니다. 성막의 모든 물품 중 아마 속죄소와 그룹들 다음으로 가장 비싼 기구일 것입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만 있고, 성소에는 3기구가 있습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오른 쪽에 떡상이 있고 왼쪽에 등잔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면에, 지성소 앞을 가리는 커튼 바로 앞에 분향단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향을 피우며 기도하는 곳입니다. 성소의 이 세 가지 기구, 떡상, 등잔대, 분향단을 성소의 3대 성구(聖具)라고 부릅니다. 분향단에 대한 설계도는 30장에 나옵니다. 


26:1절입니다.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이제는 성소를 덮는 휘장에 대한 내용입니다. 덮개는 총 4장입니다. 제 1,2휘장은 성소 널판지에 붙여서 덮고 제 3,4 휘장은 우리가 텐트를 칠 때 비를 막는 용으로 덮개를 치듯 넓게 칩니다. 제 1휘장은 청색, 자색, 홍색 실로 만듭니다. 휘장에 천사들을 새겨 놓습니다.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제 2휘장은 백성들이 가져온 염소털로 흰색 실을 내어 만듭니다. 흰색은 순결을 상징합니다. 제 3휘장은 숫양 가죽으로 만듭니다. 숫양 가죽을 붉은 색으로 물들인 후에 만듭니다. 제4 휘장은 해달 가죽으로 만듭니다. 해달은 “Sea cow”라고 하여 바다 속에 사는 생물입니다. 해달의 가죽은 아주 두껍고 튼튼하여 비를 막아주고 강렬한 태양 빛과 모래 바람으로부터 성소를 보호해 줍니다. 해달 가죽이 제일 바깥쪽에 덮여 있기에, 성소를 외부에서 보면 거칠고 투박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곱고 아름답고 영광스럽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겉으로는 고운 모양이 없으셨습니다. 이사야 53:2는 말합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내면이 심히 아름다우십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성소를 덮는 휘장들은 각각 길이 약 14미터, 폭 2미터로 각각 10개를 만듭니다. 그 10개의 휘장을 50개의 고리로 연결하여 성소를 덮습니다. 휘장이 덮는 성소 자체는 조각목 (아카시아 나무) 널판으로 만듭니다.


31-37절은 지성소와 성소 사이, 성소와 성소 밖 사이에 드리우는 휘장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두 개의 휘장(커튼)인데 성소와 성소 밖 사이에 드리우는 휘장을 첫째 휘장, 지성소와 성소 사이의 휘장을 둘째 휘장이라고 부릅니다. 두 휘장의 차이점은, 첫째 휘장 위치에는 5개의 기둥이 있고 그 휘장에는 천사 모양이 없습니다. 둘째 휘장 자리에는 4개의 기둥이 있고 그 휘장에는 천사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왜 지성소에 들어가는 휘장에는 천사 모양이 그려져 있을까요? 이는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다시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룹들로 그 길을 지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둘로 찢어졌습니다. 둘째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27장은 성소 외부에 있는 물품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소 바로 밖에는 물두멍을 둡니다. 이는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갈 때 손발을 씻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정결한 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앞에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짐승을 불태워 제사드리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짐승의 희생을 통해 속죄함을 받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막 전체를 두르는 세마포 담이 있습니다. 담의 높이는 약 2.5미터로 사람이 밖에서 볼 수 없습니다. 전체 길이는, 가로 약 22미터, 세로는 약 45미터입니다. 이 흰색 세마포 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막을 치는 정 중앙에 위치했습니다. 세마포 담의 동쪽에는 성소로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은 동쪽 담 길이의 2/5로 매우 넓습니다. 전체 벽의 40% 가 문입니다. (20/50규빗) 이는 성소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입니다. 다른 문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문은 넓습니다. 누구나 그를 믿으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외에 다른 문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20,21을 보면 성소 안 등잔대에 불을 켜도록 하십니다. 24시간 불을 켜 두는 것은 아니고 저녁에 등잔불을 켜서 밤 동안 빛을 비추게 하고 아침에는 끄고 새 기름을 넣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 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신자들이 어두운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함을 말합니다. 한편 지성소 가장 가까이 근접해 설치하는 분향단의 향은 24시간 늘 사르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성도들의 기도가 항상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나타난 성막의 구조를 볼 때, 성막은 영구적인 건물이 아니라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장막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 중에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이동하기 쉬운 성막을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이 성막은 광야 여행 때부터 약 480년이 지나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기까지 이스라엘의 유일한 중앙 성소였습니다. 이 성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삶 중심에 항상 임재하십니다. 그들과의 언약관계를 유지해 주십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였든지, 설사 하나님을 잊고 거역하였어도 그들을 한 순간도 떠나지 않으시고 임마누엘로 동행하십니다. 이 성막은 계시와 언약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성소 안의 물품들도 다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언약궤는 예수님으로 인한 속죄, 떡상은 생명의 떡 예수님, 등잔대는 세상의 빛 예수님, 분향단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성막을 덮는 휘장은 예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물두멍은 우리의 죄를 온전히 씻어 주시는 예수님, 번제단은 우리 대신 제물이 되시는 예수님, 성막 문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유일한 문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이 장막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역사 속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눈에 보였던 건물 성전을 헐면 사흘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성전된 예수님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요2:19-21)


예수님은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참 성전이 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참 성전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심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오신 이후 이제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는 성전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16에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 영원토록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신자의 삶은 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토록 함께 하심을 믿고 누려야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기억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속죄소에서 만나 주십니다. 이는 비록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에게 죄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이 유지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유용성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은혜와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며 주님의 귀한 일에 쓰임 받는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참 성전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주신 것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늘 우리의 죄를 주님께 들고 나아가 죄사함 받는 가운데 임마누엘 해 주시는 주님의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