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종로2부 여름수양회 주제1강
아버지의 크신 사랑
본문: 누가복음 15:11~32 (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라고 운을 띄우며 시작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는 청중들은 누구였을까요? 그들은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죄인과 세리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던 자들과 죄를 범하며 살았던, 상반된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하나님의 사랑을 알길 원하시는지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1장. 아버지를 떠난 아들과 그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 한 아버지가 두 아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품꾼이 매우 많았고, 모두의 먹을 것을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따스한 분이셨습니다. 품꾼조차 따스하게 채워주시는데 그의 두 아들에게는 오죽했을까요? 아들 각자에게 항상 필요한 것을 채우시며 때에 맞춰 배불리 먹이고 사랑으로 키웠을 것입니다. 12절입니다.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어느 날, 둘째가 아버지에게 와서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합니다. 현재에도 “아빠, 아빠 유산 좀 미리 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게 정신 좀 차려라”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 당시에도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가 얼른 돌아가시길 바란다는 패륜적인 말이었습니다. 이를 보면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만 원할 뿐 그의 인생에 아버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러한 아들을 보며 돈을 가지고 어디에 쓸 건지, 왜 필요한지 묻지 않으시고 아들의 요구에 따라 재산을 나눠 주었습니다. 아들을 오랫동안 지켜봐 오며,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삶을 살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의 저 확고한 결정 속에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것 또한 알고 계셨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데 거기에 매를 들고, 혼을 내면 오히려 마음을 닫아 아버지와의 관계성을 끊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바로 이 관계성을 재산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런 사랑을 모르는 둘째는 그저 자신의 손에 들린 어마어마한 재산을 바라보며 만족해하였습니다.
자신의 바람대로 재산을 받은 둘째는 앞으로 어떤 삶을 선택했는지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둘째는 재산으로 받은 가축과 땅을 며칠도 안 되어 현금으로 만들어 먼 나라로 갔습니다. 집에 있는 동안에는 일요일이면 예배에 가고 매일 기도와 양식을 하라는 아빠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하든 알지 못하도록 먼 나라로 가길 결정하였습니다. 앞으로 자신이 꾸려갈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먼 나라에서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여러 재미있고 자극적인 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말씀에서도 ‘허랑방탕하여’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전 뜻으로 쉽게 말해 둘째는 말과 행동이 헛되었고, 술과 여자에 빠져 추하고 지저분한 생활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수록 점점 더 강한 자극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쾌락을 좇으며 가진 재산을 흥청망청 써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있듯,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잠깐의 행복을 느끼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익숙해질수록 더 큰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둘째가 끊임없이 갈망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일시적인 쾌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완전한 만족을 줄 수 없기에, 그는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원했고, 결국 자신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의지하던 ‘돈’마저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 흉년까지 들며 둘째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갈망하던 쾌락을 취할 형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오갈 데 없게 되자 그는 한 사람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 돼지를 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돼지는 매우 부정하다고 여겨 종들 중 가장 낮은 종이 돼지를 돌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둘째는 그런 돼지에게 밥을 주고 집을 청소하는 일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찬란한 생활을 접고서도 다시 살아가기 위해 나름의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배고파 돼지 먹이에 불과한 쥐엄 열매라도 먹으려 했지만, 사람들은 둘째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하며 아무도 주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이제 돼지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회복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자신의 삶이 돼지만도 못한 것을 깨닫고 둘째는 그제야 비참해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둘째가 어떤 방향을 잡았나요?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무도 그에게 강요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스스로 돌이켰습니다. 이를 헬라어 원어로 보면, ‘제정신이 돌아왔다.’입니다. 둘째는 그동안 먼 나라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쾌락에 빠져 분별력을 잃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비참한 현실을 보며 제정신이 돌아온 것입니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의지 부족이나, 환경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것이 문제의 작은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근본 원인은 아닙니다. 근본 원인은 모든 것이 풍족한 아버지 집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정확한 원인 진단을 하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비로소 정확한 원인 진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이 말은 단순한 감정의 변화가 아닌, 깊은 내적 깨달음에서 온 방향 전환이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가고자 마음 먹는 것, 이것이 바로 회개의 시작입니다.
그는 깨닫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18,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그는 한 가지 마음의 결단을 합니다. 깨닫는 것과 결단은 또 다릅니다. 영적인 깨달음을 얻어도 결단하기 어려운 이유는 죄의 미련과 자존심 때문입니다. 먼 나라에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과 자신이 돌아가더라도 남 부럽지 않게 성공하여 당당하게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비참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선다는 것은 너무나 자존심 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둘째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그것은 그의 깨달음이 자신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닌, 하늘과 아버지 앞에서 죄인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반성과 회개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그는 결단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20절 ‘돌아가니라’까지 함께 읽어겠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인간적으로 볼 땐 비참해 보이지만, 그의 선택은 지금까지 했던 어떤 선택보다도 현명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풍성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를 아버지는 어떻게 맞이해주셨을까요?
20절 하반절을 읽겠습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둘째가 집으로 돌아갈 때 멀리서 자신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의 모습을 보고 달려가 돼지 냄새가 나든, 그의 몸이 더럽든 신경 쓰지 않고 둘째를 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새 옷과 반지, 신을 준비하시며 자신의 상속자인 ‘아들’로서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버지가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자신을 떠난 이들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는 아들이 돌아오게 될 길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버리고 멀리 떠났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결코 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창문 밖을 보며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렸습니다. 사실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매우 지치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멋대로 살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49장 15절은 말합니다. “여인이 어찌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떠난 이들이 속히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달려오시는 분입니다.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발견한 아버지는 그 아들을 향해 힘껏 뛰어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연장자가 먼저 달려가 입 맞추는 것은 무조건적인 용서를 의미합니다. 그 아들이 어떤 죄를 지었고, 어떤 잘못을 했던 아버지는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그저 아들의 돌아옴을 기뻐하며 먼저 달려가심으로 그의 죄와 허물을 모두 덮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영접해 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로 인해 더럽고 냄새가 나더라도 우리를 끌어안으시며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감당 못할 죄는 없습니다. 다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이 용서의 사랑을 영접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낭비한 둘째에게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며 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그저 대충 형식을 갖추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옷은 제일 좋은 새 옷으로 준비하시며 송아지도 그냥 송아지가 아닌 살진 송아지로 둘째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이 모든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장. 첫째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과 그 풍성함 아버지는 무사히 돌아온 둘째를 위해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집안 모든 사람들이 이를 기뻐하며 먹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이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첫째였습니다. 첫째 아들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밭일을 하던 중 집에서 들리는 잔치 소리에 이상함을 느끼고 종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첫째는 그제야 둘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첫째의 심정이 28절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첫째는 둘째의 소식에 화가 났습니다. 드디어 둘째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엔 첫째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아들을 향해 아버지는 어떻게 대하였을까요? 28절 ‘아버지가’부터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가 친히 집에 나오시고 첫째에게 다가갔습니다. ‘권하다’를 헬라어 원어로 보면 ‘따뜻하게 위로하고 도우며, 인내로 설득한다.’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첫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마음을 다해 아들의 굳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둘째를 발견하고 달려가셨던 것처럼, 이번엔 집 밖에 있는 첫째를 향해 직접 집 밖으로 나와 부드럽게 달래십니다. 첫째는 그런 아버지에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나에게는 염소 새끼도 주지 않으시면서 어떻게 재산을 모두 날려버린 이 아들에게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실 수 있어요?”라고 자신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불만을 내뱉었습니다. 이 말을 보면 첫째가 너무나 억울해 보입니다. 잔치할 때조차 첫째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보다 펑펑 놀다 온 둘째를 위해 그 귀한 살진 송아지를 내어주다니 너무 불공평해보입니다. 이런 첫째에게 아버지는 말합니다. 함께 31절을 읽겠습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아버지는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안에 있는 첫째 아들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소유가 얼마나 많은가요?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계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가게 될 하나님 나라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첫째는 아버지를 너무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그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안 주셨다고 불평하고 또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버지 집에 함께 하며 모든 것을 누리도록 하셨지만, 그는 이 사실을 모르고, 스스로 마음이 좁아져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는 그 모든 풍성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3절은 말합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로마서 8장 32절에서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첫째는 아버지가 부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능력 있는 아버지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누리도록 주신 그 모든 은혜를 자신이 일을 해서 받을 보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그저 재산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꺼이 주고 싶어 하는 아버지’로 신뢰해 나가길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가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은혜를 마음껏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함은 우리의 상상보다 더 크고 깊습니다. 첫째처럼 나의 노력으로 얻게 될 염소 한 마리를 원하신다면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또한 둘째처럼 아직 먼 나라에서 헤매고 계시다면 여러분을 애타게 기다리시며 지금도 우리를 위해 달려갈 준비를 하고 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길 기도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의 풍성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풍성한 세계로 들어가 함께 누리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린 이 사랑을 통해 아직 먼 나라에 있는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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