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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6년 마태복음 3강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마태복음 3:1-17)2026-03-1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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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마태복음 3강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말씀/ 마태복음 3:1-17

요절/ 마태복음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질문 하나 합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누구일까요? 엘리야? 말라기? 세례 요한? 예, 세례 요한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적으로 보면, 요한은 이미 예수님이 오신 신약 시대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는 말라기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라고 하면 무엇이 연상됩니까?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에 관하여 책망한 사람입니다. 말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특히 백성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을 두고,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엄히 책망하였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도둑들이다! 이런 너희를 하나님이 너희를 축복하실 수 있겠느냐?"한 것입니다. 말라기는 북이스라엘 아합왕 시대에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백성들을 불같이 책망한 엘리야와 같았습니다. (왕상18:21) 


무엇보다, 말라기 선지자는 앞으로 메시야가 오심으로 이루어질 새 시대를 예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제2의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래서 말라기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헬라와 로마의 압제 아래 있으면서 오실 메시야를 고대했습니다. 메시야 전에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간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을 고대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드디어 그 제2의 엘리야와 메시야가 오신 내용입니다. 이로써 새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새 나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새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 나라를 경험하고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 마태복음 3장부터 공부합니다. 1장은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 2장은 동방박사의 방문, 그리고 예수님이 애굽에서 다시 돌아와 나사렛에 정착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장 1절입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1절은 "그 때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때는 세례 요한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그 때를 말합니다. 누가복음 3:23을 보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때는 약 30세쯤 되셨습니다. 그러니 2장과 3장 사이에는 약 30 년의 시간 간격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혈통적으로 당연히 제사장이 될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어려서부터 광야에서 자랐습니다. (눅1:80) 학자들은 그가 광야의 수도사들이라 할 수 있는 에세네파 공동체에서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은 것으로 봅니다. 이런 요한은 때가 되자 광야에서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전파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2절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는 새 시대가 왔다는 선포입니다. 이 소식은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감격적인 말입니까? 해방 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유다가 이제 독립 국가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헬라 제국 다음에 로마 제국이 온 것처럼, 이 지상에 새 나라가 임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 곧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선포입니다. 이 영적인 나라의 왕이 오셨다는 선포입니다. 


그런데 이 새 나라가 임했으니 이제 백성들이 해야될 일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하라고 하면 우선 부담감을 갖습니다. 내가 지은 부끄러운 죄를 고백하라는 말같이 들려 거부감을 듭니다. 그러나 “회개하라”는 것은 이제 임박한 천국에 들어오라는 초청장과 같습니다. 회개라는 말은 원어로 "메타노니아"인데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어떤 종교적인 행위를 더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곧 우리 중심의 소원과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이 단순하고 분명한 말씀을 담대히 전파하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든지 모든 것을 불문에 부치겠다! 이제 마음을 바꾸어 죄에서 돌이켜 오실 메시야를 영접하라는 천국으로의 초청 말씀입니다. 


회개의 진면목을 보여준 사람은 바로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입니다. 그는 유대 사회에서 매국노라고 불린 세리였습니다. 그는 험한 세상에서 동족들이 어떻게 되든 돈만을 위해 살던 자였습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다른 세리가 나옵니다. 삭개오입니다. 그는 세리 중에서도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마음을 바꾸는 회개가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평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참 자유와 평강을 누리며 영원한 나라를 이어받습니다. 회개에는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회개는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에 천국이 임하게 하는 축복된 길입니다. 


천국이 무엇입니까? 여기서의 천국은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함으로 어두움의 권세자 마귀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탄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자입니다.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귀가 통치하는 곳에는 살인과 거짓, 미움과 시기, 탐심과 다툼 등 갖가지 죽음의 세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귀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잠간 동안 잘 먹고 재미있게 살고자 애쓰지만 결국 영원한 멸망에 이릅니다. 마귀가 통치하는 이런 세상에 메시야가 오심으로 마귀의 통치가 파하여지고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메시야의 통치하는 영적인 나라가 천국입니다. 천국은 마귀가 다스리는 이 세상 나라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천국은 사랑과 평화의 왕 그리스도가 다스리십니다. 그 나라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사랑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늘에서 오는 참된 평화가 그 마음에 임합니다. 그 평화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뿐 아니라 다가올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누리는 평화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한 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약 700 여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것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소리가 무엇입니까? 소리는 어떤 인격체가 아니라 물리적인 음파일 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단지 메신저로서의 기능을 하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낮추고 오직 메시야의 말씀만 드러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외치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당시 왕이 행차할 때 선구자가 미리 가서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은 메시야가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의 길을 곧게 하였습니다. 열등감이나 운명주의로 그 마음이 패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영접하도록 도왔습니다. 봉우리처럼 높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봉우리를 깎아냄으로 겸손하게 하였습니다. 커브 길처럼 삐뚤삐뚤한 마음의 길은 진리의 말씀으로 일직선이 되게 하였습니다. 바위 같은 장애물이 길 위에 있으면, 영적인 불도저로 밀어내어 곧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메시야께서 사람들의 심령에 임하실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세례 요한의 사명은 사람들로 회개하고 메시야를 영접하도록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먼저 회개한 사람으로 분명한 스피릿이 없으면 그런 영적 도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메시야의 선구자 요한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4절입니다.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낙타털 옷은 낙타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아주 검소한 옷이었습니다. 그의 옷은 광야에서 낮에는 뜨거운 태양 빛을 막아주고 추운 밤에는 잠을 잘 때 담요 역할을 하였습니다. 헐렁한 낙타털 옷을 단단히 묶기 위해 가죽띠를 허리에 졸라매었습니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웰빙 음식일 수 있으나 당시에 이는 광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검소한 먹거리였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안락하게 살 수 있었으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철저한 자기 절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의 외침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5,6절입니다.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과 온 유대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요단강 사방 모든 지역으로부터 그에게 나아왔습니다. 세례 요한의 외침은 실로 400여 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가운데 있던 백성들에게 단비와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양심의 고통을 받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마음 속 깊이에서는 회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이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심령에 들려진 요한의 메시지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자발적으로 요한에게 나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거국적인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요한에게 나온 사람들 중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7절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독사의 자식들아!" 이는 그들이 사탄의 자식들이라는 것으로 아주 심한 욕설이었습니다. 그 종교 지도자들이 아주 사악한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8,9절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세례 요한이 그들을 혹독하게 책망하는 것은 무조건 정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돕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들이 특히 회개해야 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는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존경하였습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문제는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인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의로 말미암아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누구나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그의 후손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구속역사에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택함 받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택하심이 무조건 그들의 구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회개하고 메시야를 영접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금수저는 없습니다. 누구나 동일 선상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현재 요한의 발밑에 있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혈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열매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10절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도끼가 가지나 나무 몸통에 놓인 것이 아닙니다. 뿌리에 놓였습니다. 이는 심판의 철저함을 말합니다. 가지나 몸통이 잘려져도 뿌리만 보존된다면 다시 가지나 나무가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잘려져 나가면 끝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아무리 종교 지도자라 할지라도 그 심판은 예외가 없고 철저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누구 밑에서 몇 년 훈련을 받았다, 내가 관록있는 목자다, 내가 과거에 어떤 열매를 맺었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 나의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과거를 자랑하며 형식적인 신앙 생활하는 것을 회개하고 지금 현재적으로 주님 앞에서 바로 서야 합니다. 에스겔서 33:18,19절입니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면 그가 그 가운데에서 죽을 것이고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과거에 선을 행했던 악을 행했건 지금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마서 2:6-8절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여기서 참고 선을 행한다,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한다는 모두 현재형 동사입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입니다. 과거가 어떠했던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가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입니다. 


11,12절입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 요한은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도왔습니다. 회개하고 메시야를 영접하고 천국을 소유하도록 도전했습니다. 회개한 자들에게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요한의 물세례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켜 거듭나게 하는 역사는 메시야가 하십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심으로써 하십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것인데, ”성령과 불“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불은 죄를 태우고 정결케 하는 성령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과학에 물리적 변화와 화학적 변화가 있습니다. 요한의 역사는 겉모습만 바뀌게 하는 물리적 변화라면, 메시야의 역사는 그 성질 자체를 변하게 하는 화학적 변화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메시야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이사야 40장 3절 말씀을 통해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어지는 40:10a절을 보면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이 길을 예비하는 그 분이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하나님 되신 메시야 앞에서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신을 드는 것은 가장 천한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그가 메시야가 누구신줄 알았을 때 자기는 그 앞에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교만한 이유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 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될 때 그 앞에 엎드러지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그의 신을 드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는 미물에 불과함을 알게 됩니다. 메시야 예수님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십니다. 회개하는 자를 천국에 들이시고 그렇지 않는 자를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지십니다.


13절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세례 요한이 메시야에 대하여 증거할 때 마침 예수님이 그 자라신 곳인 갈릴리로부터 오셔서 요단강에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고자 하셨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어떻게 합니까? 14절입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레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5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죄를 고백하고 요한의 물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세례를 받고자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요한과 예수님이 함께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to fulfill all righteousness) 


여기서 "모든 의"는 무엇을 말할까요? 여러 가지 하나님의 뜻? 12절의 말씀과 같이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것“? 여기서 "모든"이라는 말 πᾶσαν (pasan)는 "여러 종류"라기보다 '완전한', '온전한'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인정받아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15절의 "모든 의를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세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받으시는 물세례의 의미는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사 십자가 죽음으로 향하는 그 여정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주 예수님이 피조물이요 죄인에 불과한 요한 앞에 꿇어 세례를 받으십니다. 인류 대속의 길, 십자가를 지시는 메시야의 길을 가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16절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성부 하나님은 요한의 세례를 받으사 고난의 메시야 길을 가기로 결단하신 예수님을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닫혔던 하늘 문이 열리고 이제 하나님의 은혜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성령을 내려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이제 예수님과 항상 함께 하사 능력과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17절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께서는 친히 예수님이 '자신의 아들' 되심을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메시야 임명식을 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공식적으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메시야 선포를 통해 다음의 몇가지를 배웁니다. 


첫째, 하나님의 희생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순종하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한편 성부 하나님의 마음은 아팠습니다. 이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기로 작정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심정이셨습니다.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절규하실 때에도 외면하셔야만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찢어질 것 같이 아팠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의 아들을 내어주신 크신 희생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아셨습니다. 자신이 대속 제물이 되고자 기꺼이 결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결단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선포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일생 메시야의 길을 가도록 힘이 되신 말씀이었습니다. 메시야의 고난을 길,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바를 생각할 때 예수님은 큰 힘을 얻고 그 길을 힘차게 갈 수 있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희생과 예수님의 순종, 이 모든 것은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심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였지만 하나님은 이런 우리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아들의 희생을 통해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우리와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우리를 사랑과 평화로 영원히 다스리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회개함으로 천국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