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민대 Bible Cafe 제 1 강 회개하라 말씀 / 누가복음 3:1-6 요절 / 누가복음 3: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나님 아버지, 2017년 새학기에 저희가 만나고 또 이렇게 바이블카페를 통해 모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가운데 인생의 참 기쁨과 자유를 알아가길 기도합니다. 또한 이 자리에 모인 저희가 하나님 안에서 함께 교제하고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좋은 친구이자 동료 되길 기도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진수입니다. 새학기를 맞아 여러분을 만나고 또 함께 성경말씀을 나누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을 초대하는 저의 메시지는 바로 “회개하라”입니다. 아니, 있던 사람도 쫓아낼 것 같은 말로 다른 사람을 초대하겠다고? 맞습니다, 저는 “회개하라” 이 말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회개’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잘못한 것을 고백해야 할 것 같은 죄책감? 그 죄책감 때문에 느껴지는 고통? 아니면 24시간 나를 감시해야 할 것 같은 답답함? 만약 ‘회개’라는 것에 정말 죄책감, 고통, 답답함 밖에 없다면, 제가 이 말로 여러분을 초청하진 않았겠죠. 그러나 여러분, 회개는 즐거습니다. 회개는 여러분과 저를,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즐거운 선물입니다. 그러면 더 구체적으로, 이 회개가 무엇일까요? 다함께 3, 4절을 읽겠습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오늘 우리가 보는 성경에서는 회개를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 또 곧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님은 메시아, 즉 예수님인데, 다시 말해 회개란 예수님이 오실 길을 곧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의 영혼에, 여러분의 마음에 찾아가길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찾아와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도록 만들어주려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과 자유를 맛보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 장애물이 우리에게 찾아오려는 예수님의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에 대해 알아갈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과 우리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에 기초해 세상과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살 때 가장 큰 기쁨과 행복과 자유를 맛볼 수 있게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 무엇도 앗아갈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까? 언제라도 허무하지 않을 행복이 있습니까? 어떤 것에도 메이지 않고 나를 사랑할 자유가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이러한 기쁨과 행복과 자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서는 공허한 기쁨, 일시적 행복, 나조차도 사랑할 수 없는 부자유가 있을 뿐입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착하다는 것은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고 어른들이, 남들이 시키는 대로 가만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떼쓰는 게 없었습니다. 사춘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도, 학교 친구들도 저를 좋아했습니다. 자기의견도 없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자면 하자는 대로 다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는 것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엔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커져갔습니다. 나는 이렇게 당신들을 생각하고 당신들을 맞춰주는데, 왜 당신들은 내가 무얼 원하는지 어떤 감정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가 하는 피해의식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이전의 삶과 완전히 반대로 마음에 쌓인 분노와 피해의식을 많이 표출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변했습니다. 철학과 사회학을 많이 공부한 저는 논리와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몰아붙이기를 자주했습니다. 욕도 많이 해서 나중에는 말끝마다 욕을 붙이는 게 습관이 될 정도였습니다. 어린 시절처럼 바보처럼 아무 것도 표현 못하느니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하나님이 싫었습니다. 하나님은 옛날의 내 모습처럼 무조건적인 순종과 복종을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왜 당신 눈치 봐야 돼?” 저는 열렬한 안티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후배든, 우리 목자님들처럼 캠퍼스에서 전도하는 사람이든 기독교인을 만나면 다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저 앞에 전도하는 사람이 보이면 그가 제게 말을 걸 수 있도록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다른 무언가에 나의 화를 쏟아 부어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마음에 기쁨과 행복과 자유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다른 이들의 말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기에 매여 기쁨과 슬픔이,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부자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대학교 3학년 때 UBF 목자님을 만나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공부를 할 땐 다신 안 볼 것처럼 격렬하게 논쟁했지만, “나를 한 번 가르쳐봐라!”하는 마음으로 매주 만나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저는 성경의 마태복음 11장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말씀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의 모든 것을 다 받아준다는 예수님의 그 자신만만한 말씀이 왠지 모를 평안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다 싫어했다 바뀔지 몰라도 예수님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하나도 없는 말씀이었지만, 이 말씀에서 저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도 좋아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진수야, 너 좀 못나고 누가 좀 싫어하면 어떠냐? 넌 좀 싸가지 없긴 한데, 그래도 널 사랑한다.” 그 때 저는 한 가지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장 바라고, 나를 가장 만족시키는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도, 언제 변할지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고상한 학문적 성취도, 하나님께 받는 사랑보다 저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저를 변하게 했습니다. 저는 함께 기독교를 욕하던 후배들에게 성경을 공부하라고 권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종교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은근히 무시와 조롱을 받을 때도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교수님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사정을 설명하고 먼저 일어날 용기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여전히 다른 이들의 말과 행동에 민감하고 화를 잘 내는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를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 힘과 자존감이 생겼습니다. 내가 사랑받기 위해 남들에게 잘 해주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삶의 옥죄던 모든 부자유와 일시적이고 허망한 기쁨과 행복이 아닌, 영원하고 궁극적인 기쁨과 행복, 그리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삶이 너무나 즐겁기에 과거의 안티 기독교인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저의 이 모든 변화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나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단 사실을 인정하는 것, 바로 회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 바로 회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5절 말씀처럼 회개는 저의 영혼과 내면에 파인 상처의 골짜기를 메우고, 산처럼 솟은 분노를 낮추고, 굽은 길처럼 꼬인 저의 인격을 평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물론 저와 하나님의 관계를 끊는 골짜기와 산과 굽은 길 같은 문제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 답답하고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떨 땐 회개하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회개하게 됩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단 사실을 다시금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기쁨과 행복과 자유를 누립니다. 이것이 바로 6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하심 아니겠습니까?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 행복, 자유, 바로 그 구원을 되찾기 위해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잃었던 것을 되찾는 것이니 어찌 회개하는 것이 즐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나오는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활동하기에 바로 앞서 이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또 다른 부분에서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첫 가르침 또한 “회개하라”하는 것으로 강조되어 나타납니다. 왜 하필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첫 메시지가 “회개하라”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이제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회개의 메시지는 바로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초대하는 즐거운 선물이자, 초청장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그 초청장을 신나게 돌리고 다녔던 것이지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이미 그 초청장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자신 있게 제안합니다. 그 초청을 승낙해보세요. 나에게 예수님이, 그리고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경과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세요. 놀랍게도 내 마음의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이 낮아지고 굽은 길이 펴져서 기쁨과 행복과 자유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랑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7년, 하나님께 초청받은 우리가 함께 하나님을 찾아가는 좋은 친구이자 동료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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