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21강
21장은 흰 보좌 최후의 심판 이후에 만물이 새롭게 되는 내용입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새롭게 되는 내용입니다. 교회는 그저 핍박받으며 힘들게 사는 공동체가 아니라 천국의 모습을 담고 있는 곳입니다. 교회를 통해 천국을 보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고자 했던 그 종말의 완성된 모습을 통해 우리 모임이 어떻게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1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새 하늘과 새 땅’할 때의 ‘새’는 고물차를 수리해서 새 차가 되고 얼굴을 성형해서 새 얼굴이 되고의 그런 ‘새’가 아닙니다. 전에 없었던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임을 의미합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우리가 살며 수없이 사탄의 핍박을 받던 그 땅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어떤 몸으로 부활을 할 것인가를 말하면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될 것을 말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좋은 말인데 신천지가 사용하니 안타깝습니다. 종말이 완성될 때도 하늘과 땅은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입니다.
2절. 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정한 것 같더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계속된 사상이 신부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신랑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합니다. 이는 교회가 새롭게 되는 것이 사람의 힘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능력 때문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종말의 환란을 통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이루시는 것이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불 못에 던져지는 것을 통해 이제 교회는 신부로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입니다.
3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기를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요1장 14절을 연상시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의 ‘거하시매’가 바로 같은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천국을 한마디로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상태’라는 말입니다. 구약에서도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이 수없이 반복됩니다. 출애굽기의 주제는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다시 찾아 오셔서 성막을 통해 함께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천국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4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해주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눈물이 있는 것은 사망이 지배하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끝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제가 군복무 할 때 한 사병이 구타로 숨졌습니다. 그런데 지휘관들은 우리들을 다 불러놓고 입을 맞추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군대가 너무 싫었습니다. 수많은 비리가 난무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전역하면 반드시 양심선언을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역을 하니 30개월의 군 생활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전역 이후의 삶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때로는 억울한 일도 당하고 오해를 받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오랫동안 상처와 쓴 뿌리로 남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다 잊어버릴 것입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5절. 보좌가 앉으신 이가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를 새롭게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나의 질긴 죄 성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을 봐도 아무리 당이 분리되고 창당이 되도 그 밥에 그 나물입니다. 그래서 절망이 됩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천국은 새롭게 된 사람들로 충만한 곳입니다.
6절.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19장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 상에서의 음성이 연상됩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면서 구속이 완성이 되었고 종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루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목적이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역사의 시작과 끝을 쥐고 계신 분입니다. 그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생명수 샘물을 마시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7절.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기는 자는 앞 2,3장에서 반복해서 배웠습니다. 회개하는 게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게 이기는 것입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은 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싸워서 이기라고 합니다. 이 말씀과 연결을 시킬 때 8절이 올바로 해석이 됩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 사람들 중에 첫 번째로 두려워하는 자를 언급합니다. 이는 그저 무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며 살다가 내 인생 망칠 것 같은 영적인 두려움을 갖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초기에는 목자님이 사랑해주시고 많이 챙겨주시니 좋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자립해야 합니다. 늘 회개의 소감을 쓰라고 합니다. 그래서 반발심이 듭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런 목자의 삶이 망할 것 같은 두려움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로 뺍니다. 적당히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가 유황불 못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자이시며 동시에 심판자이십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얘기하는데 이것은 대부분이 도덕적 타락과 우상숭배에 관련된 단어들입니다.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마음의 첫 자리에 올려놓으면 우상숭배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늘 회개하고 그를 붙잡는다는 것인데 그런 사람이 도덕적 타락 속에 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을 올바로 영접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을 당할 것인데 이것이 영원한 심판입니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8절에서 언급한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9절부터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얼마나 완벽한 천국인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9절. 한 천사가 요한에게 말하기를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교회가 얼마나 잘 단장된 신부인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10절은 2절의 반복입니다. 11절부터 세부적으로 묘사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성에서 나오는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 성소 안에 일곱 등잔대의 불을 켰는데 이는 세상의 빛 되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빛이었습니다. 그것이 새 예루살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2절. 크고 높은 성곽이 있다는 것은 이 교회가 철저히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며 열두 문에 열두 천사가 있다는 것은 그곳으로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 문들 위에 열두 지파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세상만민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란 의미입니다. 14절. 그 성의 성곽에는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어린 양의 피와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뜻입니다.
15절. 천사가 성을 측량을 합니다. 16절의 길이와 너비가 같다는 것은 구약 성소와 성전의 지성소도 정사각형이었는데 그것에서 나온 표현으로서 이 역시 구약의 성소를 실현하는 교회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는데 만 이천 스다디온이라고 합니다. 이는 2200킬로인데 새 예루살렘성이 이렇게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도 12*1000인데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크기의 충족성을 말합니다. 17절의 144규빗도 12*12이므로 택함 받은 만민이 들어올 수 있는 크기를 말합니다.
18절부터는 이 새 예루살렘 성이 매우 찬란한 보석과 금으로 치장된 것을 말합니다. 17,18장에서 나왔던 음녀도 매우 화려한 보석과 금으로 치장한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것과 찬란한 것은 다릅니다. 19,20절엔 열 두 보석이 나오는데 이는 구약 대제사장의 가슴에 붙였던 열 두 보석이 박힌 흉배를 생각나게 합니다. 대제사장들로 가득한 교회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열 두 진주와 맑은 유리 정금이란 표현들은 점도 흠도 없이 완벽한 어린 양의 신부를 나타내는 말들입니다.
22절.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이곳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라면 성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성전을 보지 못하였다는 말이 구약의 성전예배가 새롭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는 성전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직접 성전이 되십니다. 그 성은 해와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구원을 받은 만국 백성들이 그리로 들어갑니다. 25절에서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침입하는 적군이 있다면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세력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밤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둠의 세력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속되거나 가증하거나 거짓말하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믿음에서 떠난 배교한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것입니다.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특별히 새 예루살렘성인 교회가 얼마나 영화롭고 찬란한 곳인지를 보여줍니다. 만물이 새롭게 되지만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가 새롭게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십니다. 천국은 물리적으로 어떤 장소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서 찾아집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이 천국이며 이것이 마지막 날에 온전히 완성됩니다. 과연 우리 공동체가 장차 이런 잘 단장된 신부가 될 것을 믿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 모임에 와서는 이곳이 천국이라는 말을 합니까? 혹시 그 반대는 아닙니까? 종말의 때에 이기는 자가 되어서 힘써 나 자신을 신부로 준비시키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모임이 천국을 닮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