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봄맞이 수양회 제 1강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말씀/ 다니엘 3:1-30 요절/ 다니엘 3:17,18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오늘 말씀은 절대적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다니엘의 세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강요받았을 때,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믿음으로 승리하였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에게 여러 우상과 악한 세상 문화 앞에 무릎 꿇도록 강요합니다. 이때 우리는 갈등합니다.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 유혹과 도전에 맞서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 그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1장.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다니엘의 세 친구(1-18절) 1절을 보십시오. “느부갓네살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고는 육십 규빗이요 광은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느부갓네살왕은 9층 건물 높이의 엄청난 금 신상을 만들어 바벨론 지방의 두라평지에 우뚝 세웠습니다. 평지에 세웠기에 멀리서도 볼 수 있었고, 햇살이 비추이면 똑바로 쳐다 볼수 없이 찬란히 빛났습니다. 이 신상의 낙성식은 느부갓네살 즉위 18년째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 해는 바벨론이 온 천하를 평정하고 유다마저 멸망시킨 그 다음 해입니다. 왜 왕은 이것을 만들어 세웠을까요? 16년 전,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왕에게 꿈을 통해 장차 일어날 일들을 계시해 주셨죠. 꿈에서 한 신상을 보이셨는데, 머리에서 발까지 금, 은, 동, 철, 진흙 순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순서대로 세상 역사의 통치권이 옮겨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벨론은 금 머리에 해당하였는데, 하나님은 그 꿈대로 그의 나라를 크게 번성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것을 잊어버리고 이 모든 영광이 자기 노력과 힘으로 된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는 금 신상을 세워 정복한 모든 백성들로부터 경배받고,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우상 전체를 금으로 만들어 자기 왕국이 다른 왕국에게 먹히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입니다. 왕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나중에 느부갓네살왕은 하나님의 징계로 사람에게서 쫓겨나 7년 동안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는 자가 됩니다(단5:21). 2절을 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전령을 보내어 전국의 모든 고위 공무원들을 낙성식에 불러 모았습니다. 이 가운데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있었습니다. 낙성식은 바벨론의 영화답게 실로 멋있고 장엄하게 열렸습니다. 금 신상은 각 도에서 뽑힌 전문가에 의해 화려하게 장식되었습니다. 식장 중앙 상단에는 황금의자에 왕과 왕후가 앉았습니다. 그 아래에는 각 도에서 뽑힌 수많은 고급 관리와 모사들이 줄을 맞추어 예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바벨론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각종 악기로 국가와 황제 찬가를 연주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멋진 제복을 입은 왕궁 친위대가 사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뒤로 수 천 개의 오색 깃발들이 휘날리며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축제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눈에 거슬리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풀무불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절하지 않는 자를 즉시 집어넣는 처형장소였습니다. 축제 분위기와 살벌한 분위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드디어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낙성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금 신상을 향하여 섰습니다. 그러자 반포하는 자가 크게 외칩니다.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4-6) 드디어 웅장한 음악이 멋있게 울려 퍼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태풍 앞에 쓰러지는 볏짚처럼 일제히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코를 땅에 박을 정도로까지 하였습니다. 이를 본 왕은 참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말뚝처럼 우뚝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였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한 눈에 확 띄었습니다. 절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텐데, 이들이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출애굽기 20:3-5a은 말씀합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 절하지 말라” 우상에게 절하는 것은 십 계명중 제 1,2계명을 어기는 것이기에 그들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8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왕에게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12절을 읽겠습니다.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이들이 포로로 잡혀와 국가로부터 큰 혜택을 받았는데도, 왕을 높이지도 않고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으므로 반역죄를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분노하여 당장 끌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을 직접 심문하였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14)” 이 말을 각색해 보면 ‘너희들~ 그동안 나에게 충성을 다했잖아, 이렇게 하면 나에 대한 배신행위야, 모르고 그랬지~. 사실 아니지~.’ 이어서 말합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악기 소리가 나면 내가 만든 신상에 절하도록 해라~ 그러면 봐 줄께~ 너희니까 특별히 한 번 더 기회 주는 거야. 알았지~. 하지만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집어넣을 거야,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왕은 회유와 협박으로 최후통첩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처럼 우리에게 절대적인 복음신앙으로 살지 말고, 현실과 타협하며 살도록 여러모로 회유하고, 협박하고, 두려움을 심습니다. 가정에서는 제사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조상도 모르는 불효막심한 자식이라고 핍박합니다. 설이나 추석명절에, 전화해서 ‘아버지, 예배보고 고향에 내려갈게요’ 한다거나, 일찍 고향에 내려갔다가 ‘아버지, 예배 보러 빨리 올라가야 해요’ 말하면 “신앙생활 적당히 해라. 너는 우째 그리 유별나야?” 핀잔을 받습니다. 핍박해도 안 되면 최신 모델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 주면서 마음을 사로잡고자 회유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어떤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합니다. 이 정도 되면 마음이 약해져 신앙생활에서 타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회유에도 꿈쩍하지 않으면 ‘납부금을 내주지 않겠다’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 하며 강경책으로 선회합니다. 우리 학사들은 어떻습니까? 직장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미움 받고 정신적인 압박을 받습니다. 토요일이나 주일에 있는 회사 단합대회에 참석하지 않고 토요성경모임이나 주일예배에 참석하게 되면 상사로부터 팀웍을 깨는 사람이라고 핀잔을 듣고, 진급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하겠다는 압박을 받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마음이 오그라들어 새 가슴이 되기도 하고 걱정 근심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런데 왕의 위협 앞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어떤 대답을 하였나요? 16절을 보십시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이 일은 왕과 토론하거나 타협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 신상에게 절하는 것을 왕과 그들 사이의 문제로 보지 않고, 왕보다도 더 높으신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금 신상에게 절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세상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왕의 명령을 어김으로 현재 누리는 권력과 부와 가족의 행복,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 잃게 되는 것보다 우상에게 절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을 더 싫어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17,18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들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17) 풀무불은 용광로로서 온갖 종류의 금속을 녹일 수 있는 온도를 가진 뜨거운 불입니다. 저희 치과에서 많이 사용하는 금은 보통 1064℃에서 녹고요, 구리는 1084℃, 철은 1535℃ 에서 녹습니다. 그러니 용광로 구실을 하려면 적어도 1600℃는 넘어야 하겠죠. 자! 생각해봅시다. 이들의 대답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1600℃를 넘는 풀무불에 던져져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능히 건져내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와! 대단한 믿음입니다. 무슨 근거로 이런 믿음의 말을 하였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깊이 관계성을 맺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사 이스라엘 백성을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뒤쫓는 애굽군대를 물로 덮으사 그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바벨론 왕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두렵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들이 섬기는 이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능력으로 그의 사랑하는 백성을 보호해 주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할 것이다” 이 약속은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저는 대학 1학년 가을에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세 가지를 결단하였습니다. 첫째는 술을 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결혼 전까지는 여자 친구를 사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선교사나 고아의 아버지로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은 지 3개월 후 치대 고등학교 동문 술자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습니다. 내가 술을 잘 먹는 줄 아는 선배들이 나에게 뭐라고 할까? 나를 어떻게 대할까? 몽둥이로 맞지는 않을까?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83학번인데, 당시에는 선배로부터 구타가 많았던 때입니다. 이때 고전10:13말씀이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저는 이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모임에서 선배가 술을 권하자, 맞을 각오를 하고 “저, 예수님 믿고 술을 끊었습니다.” 담대히 말했습니다. 이때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선배가 말했습니다. “주인 아저씨, 여기 사이다 갖다 주세요.” 저는 마음속으로 피할 길을 내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참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고, 저의 믿음이 조금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는 1993년 사라목자와 중국 선교가정을 이루고 1994년에 중국선교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던 치과를 처분해야 했습니다. 저는 제가 먼저 중국에 나가고, 치과가 인수되면 아내가 합류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함께 가길 원했고, 스텝목자님의 방향도 함께 가는 것을 추천하였습니다. 이때 기도한 후 가족 모두 함께 나가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가족 모두의 중국행 비행기 표를 끊고 살림살이와 모든 것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런데 치과가 인수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7월은 휴가철인데다가 치과를 개원하는 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인해 전혀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중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날, 극적으로 치과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게 하사 계약하고 치과가 인수되게 하셨습니다. 저희 가정은 가벼운 마음으로 중국선교사로 나갈 수 있었고, 능력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믿음을 배울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굳게 의지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18) 이 믿음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려내지 않을지라도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왜 이들이 이런 결단을 하는 걸까요? 하나님의 선한 주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조국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바벨론 포로로 끌려왔을 때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이 있도록 하셨을까?’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의 대가로 이렇게 되었지만,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끌려간 것처럼 자신들에게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전에 다니엘과 함께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고자 믿음의 시도를 하였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이러한 인격적 관계 속에서 ‘나의 하나님은 나를 잘 아시며, 나를 사랑하시며.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설령 내가 이해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그 일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다’라는 섭리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 서 있습니다. 이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결단하였습니다. 능력의 하나님이 그들을 구해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었습니다. 구차하게 살기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더 좋은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부활신앙이 있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멸망해가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좋은 것, 유익한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환란도, 재앙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결국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입니다. 이것을 믿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손에 내어 맡길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일이 꼬이고, 실패하고, 비난받고, 경제적 손실을 입고, 질병으로 고통하고, 더 나아가 죽게 된다 할지라도, 이것들이 나에게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탁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롬8:28). 우리 주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십자가를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시며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의 문턱에서도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죽음 이후를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십니다. 욥도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완전히 저주 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내가 여전히 그를 신뢰하겠나이다(욥13:15)”고백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사람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제가 대학 본과 1학년 때 써클에서 MT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주일예배와 겹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배에게 주일예배를 봐야 하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선배는 만약 오지 않으면 체벌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래도 주일예배에 가겠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후 MT를 다녀온 선배는 저를 학교 뒤편으로 불러내어 대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10대를 때렸습니다. 저는 맞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고난에 참예하는 특권을 주신 주님께 오히려 감사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그 선배를 만날 때마다 밝은 얼굴로 인사하였으나 선배는 제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저는 대학 시절 학업을 감당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나름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본과 1학년 때 유급을 하였습니다. 믿지 않던 부모님은 신앙생활은 졸업한 후에 하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유급한 것이 전적으로 제 책임이지만 신앙생활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은 저에게 지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공부, 주일예배, 말씀읽기, 기도생활을 절대적으로 감당하고자 힘썼습니다. 과 후배 한 사람을 말씀으로 도왔습니다. 그리고 학업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감당하였습니다. 하지만 암기에 약했던 저는 늘 성적이 좋게 나오지 않아 가슴조리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 4학년 여름수양회를 가고자 하였을 때, 아버지는 수양회에 가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치과의사 국가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번 만은 가지 마라’ 하시며 달래기도 하시며 화를 내시기도 하셨는데, 아버지의 얼굴이 그렇게 무섭게 변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아팠지만, 이것은 타협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단호하게 ‘수양회에 다녀오겠습니다’ 말하였습니다. 수양회를 하던 중, 저는 아버지를 위로하고 수양회가 끝나면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말을 하고자 아버지께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투가 너무나 부드러웠습니다. “수양회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와~. 내가 화낸 것 미안하다. 이번에 너의 납부금통지서가 나왔는데, 네가 성적 장학금을 받았더라” 하나님은 나의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위축된 마음, 송구한 마음, 실패의식을 한 방에 날려버리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희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로 중국 선교사로 나아갔습니다. 일 년 뒤 심양 수양회가 있어 연변대학 병원장 아들을 데리고 수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수양회가 한창이던 때 중국공안원 수십 명이 들이 닥쳤습니다. 저희는 공안국 외사처에 끌려가 심문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함께 간 양은 뺨을 맞으며 심문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연길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당한 일들이 삽시간에 소문이 다 나 있었습니다. 중국 연길 안전부에서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연길에 UBF선교사가 십여 명이 있었기에 저희는 그들을 보호하고자 빨리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희 가정은 종로센타에서 목자님들의 사랑과 섬김으로 치과 연수를 받으며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이때 이 스펄전목자님께서 종로 JBF를 섬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요1:42말씀을 통해 연약하고 부족한 시몬을 불러 교회의 기둥인 반석으로 키우셔서 쓰시고자 하셨던 것처럼, JBF중고생들을 키우사 장차 예수님의 제자요 성경선생으로 쓰고자 하는 하나님의 소망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에 저는 JBF교사로서 부르심을 영접하고 10년째 종로 JBF교사요 교장으로써 섬기고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 믿고 선교사나 고아의 아버지로 살고자 소원하였는데, 하나님은 내가 원했던 선교사의 직분대신에, 현재 중, 고생의 아버지로 사는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세월이 지난 뒤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인생을 선한 주권으로 인도하십니다. 섭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주권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며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제2장.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구원하신 하나님(19-30) 다니엘의 세 친구의 타협치 않는 분명한 자세로 인해 왕은 어떻게 하였나요? 너무 분하여 낯빛이 변하였습니다. 풀무불을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여 그들을 풀무에 던지라고 명하였습니다. 그 불이 얼마나 뜨거웠든지 옆에 붙들고 있던 용사들이 열기에 타 죽을 정도였습니다. 세 사람은 결박된 채 풀무에 던져졌습니다. 이방 땅에서 조국의 해방도 못보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불속에서 금방 형체가 없어질 줄로 알았던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멀쩡했습니다. 왕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세히 보니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신의 아들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불 속에서 그들과 동행하시며 보호하셨습니다. 왕은 그들을 불속에서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을 보니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았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않았고, 불탄 냄새조차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위기의 때에 극적으로 개입하셨습니다. 사람이 생각하기 힘든 신기한 방식으로 세 사람을 도우셨습니다. 기적을 본 느부갓네살왕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의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28) 그리고 그들을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였습니다. 하나님은 세계 최강 바벨론 왕과 모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권능 앞에 굴복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으로 통쾌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신나고 통쾌한 일이 무엇입니까? 내가 좋은 성적을 얻게 된 것, 좋은 직장에 취업하게 된 것, 승진하게 된 것, 보너스를 두둑하게 받게 된 것,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 등이 신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과 세상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보다 더 신나고 통쾌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날 때가 아니겠습니까? 이 시대 풍조와 세속적 우상 앞에 무릎 꿇고 살아가는 대학생들이 예수님을 만나 생명을 얻고 새벽 이슬같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신나고 통쾌 할 것입니다. 2017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영광을 드러내는데 우리가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타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 만큼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악한 세대입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이 악한 세대에 속한 자요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도록 도전합니다. 세상 앞에 무릎을 꿇도록 강요합니다. 이때 우리의 힘만을 의지하여 싸우면 백전백패입니다. 요일5:4말씀은 우리에게 승리의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승리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하기만 하면 백전백승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무장하여, 사단의 진, 세상의 진을 깨부수고 승리의 나팔을 부는 봄 학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세상의 도전 앞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믿음을 축복하사 당신의 크신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이 새 봄 학기 ‘그렇게 하지 아니 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캠퍼스에 나아가 승리하여 우리 하나님께 큰 영광돌리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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