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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년 창세기 20강 `야곱을 훈련하신 하나님 `(창세기 29-30장)2019-08-12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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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창세기 20

 

야곱을 훈련하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29-30

요절/ 창세기 29: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니 사기를 쳐서 쟁취하였습니다. 복수심에 가득한 형은 그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하란에 있는 어머니의 집에 피신해 있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에서 하란까지는 직선거리로 800km입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없는 불확신한 세계를 향해 정처없는 나그네의 길을 떠나야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은 이런 그를 벧엘에서 만나주시고 그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란까지의 머나 여행길을 감당할 있었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동방 사람의 하란에 도착하였습니다. 야곱이 보니 들에 우물이 있고 곁에 떼가 누워있었습니다. 목자들은 우물에서 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모든 떼가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든 떼가 모이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떼에게 물을 먹인 다시 돌을 원위치로 하였습니다. 야곱은 목자들에게 나홀의 손자 라반을 혹시 아는지 물었습니다. 목자들은 안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너무 기뻐하며 그가 평안한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라반의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29:7-8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야곱이 보니 목자들은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떼들을 몰고 다른 떼들이 모일 때까지 때리며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렇게 하지 말고 얼른 떼들에게 물을 먹인 해가 떨어질 때까지 최대한 풀을 뜯게 하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래야 양들이 튼튼해져 새끼도 낳고 떼가 번성할 것이 아니냐고 조언했습니다. 야곱의 조언을 들은 목자들은 기분나빠하며 너가 뭔대 상관이냐는 투로 우리는 우리 방식이 있고 알아서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 마침내 야곱의 외삼촌 라헬이 떼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야곱은 라헬에게 인사를 하기 전에 먼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의 떼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목자들에게 조언했던 말을 실천했습니다. 양들이 빨리 물을 마시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풀을 뜯을 있도록 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울며 그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임을 알렸습니다.

 

달려온 딸로부터 소식을 들은 라반은 야곱을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들어오도록 하였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라반에게 소상하게 알렸습니다. 야곱이 어느 선까지 말했는지 없습니다. 혹시 다소간 거짓말을 섞었는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말을 들은 라반은 그가 사기꾼이 아니고 정말 리브가의 아들인 것을 확신할 있었습니다. 라반은 그런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걱정하지 말고 우리 집에 당분간 머물라고 말했습니다.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비록 생질이나 어찌 그저 일을 하겠느냐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지난 달간 외삼촌 집에 머물면서 야곱은 빈둥빈둥 놀지 않고 열심히 떼를 돌보는 일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외삼촌은 야곱이 일을 매우 성실하게 하는 것을 보고 품삯을 주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라반에게는 딸이 있었습니다.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었습니다.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시력이 약하다는 것은 눈에 매력이 없고 라헬에 비해 아름답지 못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여 말했습니다. “내가 외삼촌의 작을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년을 섬기리이다

 

고대 사회에서 결혼 지참금은 50세겔 정도였습니다. ( 22:29) 당시 노동자의 품삯이 세겔에서 세겔 사이였던 것을 참조하면 3 정도 일하는 것으로 충분히 결혼 지참금을 갈음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여기에 4년을 더하여 무려 7년을 보수없이 결혼 지참금 대신 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얼핏 야곱을 생각하면 매우 계산적이고 냉정하게 따지는 사람일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heart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라헬을 위해 7년을 일하겠다고, 라헬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라반은 속으로 매우 좋아하며 OK! Deal! 이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위해 7년을 라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년을 며칠 같이 여겼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기한이 찼으니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0절과 21 사이에는 7년의 간극이 있습니다. 성경 저자는 야곱이 라헬을 사랑함으로 7년을 며칠처럼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동 지역에서 양을 치는 것은 결코 낭만적이거나 목가적이거나 여유로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필립 켈러가 지은 「양과 목자」라는 책을 보면 목자의 삶이 얼마나 쉼없이 수고하고 일하는 삶인지 있습니다. 목자의 삶이란 떼들을 적당히 끌고가 근처에 있는 풀밭에서 풀을 뜯도록 하고 사이 휴대폰이나 하면서 여유와 낭만을 즐기는 삶이 결코 아닙니다. 곳에서 계속 풀을 뜯기면 양들이 풀의 뿌리까지 먹어 지역이 사막화됩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계절의 변화를 따라 여름이 가까울수록 고지대로 이동합니다. 여름이 되면 고지대에도 풀이 나기 때문입니다. 과정에서 목자는 떼를 데리고 시편 23편에 나오는 것처럼 험한 골짜기를 지나기도 하고 떼를 해치는 사나운 늑대를 물리쳐야 하기도 합니다. 중에 병이 양이 없는지 보살펴야 하고 특히 여름철 파리 떼가 양의 코에 알을 낳지 못하도록 양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어야 합니다. 기간 목자는 들판에서 노숙생활을 해야 합니다. 야곱이 하란에서 처음 만났던 목자들은 이렇게 힘든 목자생활을 하기 싫어서 떼들에게 풀도 굶어죽지 않을만큼만 먹였습니다. 풀을 열심히 먹이면 떼들은 살이 찌고 새끼도 많이 낳지만 그만큼 새로운 곳으로 이동해 풀을 먹여야 했으므로 이것이 귀찮은 목자들은 조금만 먹이고 새끼도 낳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실한 야곱은 자기가 힘든 것을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고 양을 중심으로 양편에서 생각하였습니다. 대신 그는 쉼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그는 31:40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와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그러나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얻을 것을 생각할 모든 수고를 수고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약속한대로 라헬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사실 문제에 대해서는 마땅히 어른인 삼촌 라반이 먼저 말을 꺼내야 했습니다. “자네 사실 3년만 일해도 신부 지참금으로 부족함이 없고 자네의 성실함과 능력을 생각해 1년만 일해도 내가 오히려 덕을 것인데 무려 7년간이나 일을 주었으니 내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네. 이런 복덩이를 우리 집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네. 이제 딸을 터이니 결혼식 준비를 같이 하세.” 이렇게 말해야 인간의 도리로서 마땅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라반은 7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결혼에 대해 입도 벙끗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삼촌에게 가서 말을 해야 했습니다. “ 기한이 찼으니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표현에서 나라는 말이 4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악덕 사장에게 알바생이 자기 권리를 강하게 주장해야 겨우 약속한대로 임금을 지불하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고용주이며 동시에 외삼촌인 라반은 야곱은 깜빡했다는듯이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러나? 약속한 것은 지켜야지. 내가 딸을 줌세. 혼인식을 올릴터이니 준비하게말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저녁에 그의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놀랍게도 외삼촌 라반은 야곱에게 약속했던 작은 라헬 대신 레아를 혼인식장으로 데려갔습니다. 당시 중동에서 신부는 얼굴을 가리는 복장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식 내내 야곱은 레아가 라헬인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첫날밤을 보낼 때에도 레아는 아마 부끄럽다며 불을 꺼줄 것을 요청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은 신부가 라헬인 것으로 확신하고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첫날밤을 마친 야곱은 다음 아침 신부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일입니까? 신부는 라헬이 아닌 그의 언니 레아가 아닙니까! 야곱은 기절할 듯이 놀랐습니다. 그는 외삼촌이 자기를 속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느낀 감정은 보이스 피싱에 속아 7년간 모은 재산과도 같은 적금을 순간에 날려버린 사람의 기분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는 사기꾼같은 외삼촌 라반에게 쳐들어가 따졌습니다. 지난 7년의 시간 외삼촌을 종처럼 섬기며 헌신했는데 오직 라헬을 바라보고 낮에는 더위를 참고 밤에는 추위를 참으며 외삼촌의 양떼들을 돌보아 주었는데 외삼촌이 어떻게 나에게 이러실 있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나를 동안 섬길지니라 대답에서 마침내 라반의 속셈이 드러납니다. 그는 흥분한 야곱에게 언나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의 관습이 아니라고 둘러댔습니다. 하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지방의 관습에 대해서는 깊이있게 알지 못하는 야곱의 약점을 파고 들어 둘러댄 것입니다. 라반은 조카 야곱에게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우선 결혼식 기간인 칠일을 채우면 곧바로 라헬을 아내로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대신 다시 라헬을 위한 결혼 지참금으로 7년을 일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사실 야곱은 3 정도만 일해도 결혼 지참금으로 충분했습니다. 야곱이 7년을 제안한 것은 그만큼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라헬을 아내로 주신 외삼촌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그런 야곱의 마음을 이용하여 다시 7년을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을 최대한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라반은 오늘날로 치면 류현진과 같이 젊고 유능한 사람을 14년간이나 최저임금만 주고 마음껏 부려먹을 있게 되었습니다.

 

사건을 통해 야곱은 깊은 자기발견을 하게 되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목표를 정하면 목표만을 생각했습니다.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목표로 정하면 그것만을 생각했습니다. 과정에서 사람들을 속이기도 하고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장자권을 얻기 위해 사냥한 매우 배가 고픈 형의 상황을 이용했고 평소 팥죽을 좋아하는 그의 성향을 최대한 이용했습니다. 어머니의 조언을 따라 아버지도 속였습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고단수인 외삼촌 라반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속고 이용당하면서 야곱은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지 자기 발견하고 회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시는 자들이 다른 무엇보다 자기 발견을 하고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도우십니다. 사람이 가장 하기 어려운 하나가 자기 발견입니다. 사람이 각자 자기가 자기를 아는 같지만 사실은 자기를 알지 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치명적인 약점과 단점, 죄성에 대해 눈을 감거나 여러가지 변명을 합니다. 혹은 자신의 장점으로 그러한 죄성을 감춥니다. 야곱의 경우 성실함, 여인에 대한 로미오같은 열정과 사랑 등으로 스스로를 멋진 남자로 포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감추어진 본질은 사기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외삼촌 라반을 통해 그가 사기꾼으로서 얼마나 사람들에게 고통과 아픔을 죄인인지 자기 발견을 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오늘날 신문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도 평소 멋진 정치인, 학자, 사업가, 연예인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추한 본질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드러날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입니다. 역시 감추고 있던 추한 나의 본질이 있습니다. 너무도 오랜 세월 가면을 벗지 않고 있었기에 자신도 나의 추한 본래 모습을 번도 직면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가면 아래 뭔가 추악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가지 사건을 통해, 사람들을 통해 가면을 벗겨내기 원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자기 발견을 때부터 하나님은 그와 죄인과 구주로서 관계성을 맺으실 있고 그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건을 통해 나의 숨겨진 가면을 벗겨내실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마음아픈 일입니다. 수치스럽고 죽을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수술과도 같은 과정을 감당할 다시 태어난 것과 같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과정을 감당하여 주님과 구주와 죄인으로서 관계성을 새롭게 맺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라반의 치밀한 계획과 속임수에 야곱은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다시 7년을 외삼촌을 위해 봉사해야 했습니다. 한편 레아는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마음에 아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레아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르우벤, 보라 아들이라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말하였습니다. 둘째를 낳고서는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다는 의미로 시므온이라 지었습니다. 다시 임신하여 내가 그에게 아들을 낳았으니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라 말하고 그의 이름을 연합이라는 의미의 레위로 지었습니다. 다시 임신하여 넷째를 낳고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말하고 찬송이라는 의미의 유다로 지었습니다.

 

한편 라헬은 자기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데 언니는 계속하여 아들을 낳는 것을 보고 시기심이 가득하여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나로 아들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노라정황상 라헬이 말을 번만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라헬은 야곱이 눈을 때마다 말을 하며 바가지를 득득 긁었을 것입니다. 아에 야곱은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데 나에게 바가지를 긁느냐며 화를 내었습니다. 참다못한 라헬은 자기 여종 빌하에게 들어가라 하였습니다. 야곱은 계속 바가지 긁히느니 편이 낫겠다 생각하고 라헬의 말을 따랐습니다. 마침내 빌하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은 하나님이 마침내 억울함을 풀어주셨다 말하고 그의 이름을 억울함을 푸신다는 의미의 단으로 지었습니다.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낳자 라헬은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이름을 납달리로 지었습니다.

 

한편 레아는 이러한 라헬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아들을 낳도록 하였습니다. 결과 얻은 아들의 이름을 복되다는 의미의 갓으로, 둘째 아들은 기쁨이라는 의미의 아셀로 지었습니다.

 

한편 거둘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습니다. 합환채는 부부생활에 좋은 약초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라헬은 언니에게 그것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언니는 성을 내며네가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아들의 합환채를 빼앗으려 하느냐말했습니다. 이에 레아는 그러면 대신 오늘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흥정의 결과 레아는 다시 아들을 낳게 되었고 내가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값을 주셨다는 의미로 잇사갈로 지었습니다. 이후 아들을 낳게 되었고 내가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는 의미로 스불론으로 지었습니다.

 

한편 하나님은 라헬을 생각하시고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아들을 낳은 라헬은 하나님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말하고 아들을 하나 주시라는 의미의 요셉으로 지었습니다.

 

모든 과정을 통해 야곱은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후 베냐민이라는 아들을 하나 얻으므로 명의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두명의 아들은 이후 이스라엘의 지파의 기초가 됩니다.

 

본문은 야곱이 아들을 얻는 과정을 그의 부인인 레아와 라헬 편에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가 겪는 마음의 깊은 아픔을 보여줍니다. 남편의 사랑은 받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는 라헬의 수치와 결핍으로 인한 아픔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녀의 태를 열어 여러 아들을 낳을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한편으로 라헬도 불쌍히 여기시고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아들을 낳을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야곱에게 지파의 기초가 되는 아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야곱을 지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유능한 청년이었을지는 몰라도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여인을 사랑하는 로맨티스트 가장이었을지는 몰라도 민족의 조상의 내면은 아니었습니다. 자기 일은 성실하게 하고 자기 여자는 챙기는 사람이었지만 민족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시대를 생각하는 인물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를 때였습니다. 민주당 후보는 고어였습니다. 그는 하버드대 출신의 매우 똑똑하고 유능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입을 열면 그의 똑똑함이 흘러넘쳤습니다. 이에 비해 공화당 후보는 죠지 부시였습니다. 죠지 부시는 그렇게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고어와 비교해보면 같은 동네에 사는 옆집 아저씨같은 이미지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똑똑한 고어가 대통령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야구 경기장에 종종 와서 함께 야구를 즐기는 동네 아저씨같은 조시 부시를 그들의 지도자로 선택했습니다. 이는 똑똑한 고어보다 동네 아저씨같은 부시가 그들이 겪고 있는 삶의 어려움과 고난, 아픔을 이해할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여러 모양의 사람들을 품고 섬기는 지도자와 같은 내면, 목자와 같은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야곱에게 성격과 개성이 다양한 아들을 주시고 아들을 마음에 품는 아버지요, 목자요, 지도자가 되기 원하셨습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야곱이 외적으로 무슨 업적을 세우거나 일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임종의 순간 아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해주는 장면을 그가 젊은 유능한 청년의 모습에서, 아들을 품고 기도해주는 아버지요, 목자의 내면으로 변화된 것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업가가 직원들이 무슨 이익을 내는 유능한 직원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에게 그러한 요구를 하시기보다 우리의 내면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내면이 사람을 품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위해서 기도해주는 열국의 어미, 열국의 아비와 같은 내면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크고 위대한 일은 외적인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이 변화되는 순간 하나님 보실 크고 위대한 일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젊은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을 받아 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머니와 같은 내면의 사람으로 변화될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