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추수감사절 특강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말씀/ 하박국 3장
요절/ 하박국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코로나 기간 가운데서도 추수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올해 추수감사 예배는 하박국 말씀으로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국가적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한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을 배우는 귀한 은혜의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박국 3장을 살펴보기 전 먼저 하박국 전체의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박국이 활동하던 시기는 남유다 말기입니다. 이 시기 남유다의 영적인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1~24장을 보면 당시 상황에 대해 잘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히스기야 왕, 하나님께 기도하여 앗수르 대군을 물리치고 또 기도하여 자신의 수명을 15년 연장시켰던 기도의 용사였던 그 히스기야의 왕에게서 역사상 최악의 왕 므낫세가 태어났습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렸던 우상의 산당들, 우리식으로 하자면 점집, 굿하는 집을 전국 방방곡곡에 세웠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진노케 한 것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셨던 그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을 위한 제단을 쌓은 것이었습니다. 또 점을 치며 신접한 자, 박수무당을 측근에 두며 그들의 조언을 따라 중요한 국가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또 율법에 따른 사법 체계의 정의를 무너뜨리고 죄없는 사람들을 정당한 재판절차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성경은 그로 인해 흘린 무죄한 사람들의 피가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므낫세 이후 잠간 요시야라는 훌륭한 왕이 나타나 개혁을 했지만 다시 그의 아들 여호아야스는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을 따라 그대로 행했습니다. 이때 이집트의 왕 바로 느고가 남유다를 침공하여 여호아야스를 폐위시키고 그의 동생 엘리야김을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고친 후 그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하박국이 활동하던 때가 바로 이 여호야김이 왕으로 재위하던 시절이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박국 1장에서 하박국이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의 내용을 보면 당시 남유다의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버전으로 바꾸어 본다면 대략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강력범죄를 저지른 용의자로 긴급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온갖 강압적인 수사를 받고 고문을 당하여 허위자백을 했습니다. 그 결과 수십년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어떤 고위급 관리의 아들이 저지른 범죄를 그가 대신 뒤집어 쓴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뺑소니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생사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부패에 연루된 관리들로 인해 모든 증거가 다 사라지고 또 조작되었습니다. 우리가 만약 나나 내 가족 중에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얼마나 그 원한이 하늘에 사무치겠습니까.
하박국 당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으므로 아마도 하박국 선지자를 찾아갔던 것 같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들이 당한 원통한 일을 듣고 하늘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억울함과 원통함을 풀어주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박국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모든 원통함을 풀어주셨습니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하나님은 마치 주무시는 것처럼 아무 응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요 백성들을 위한 목자로 활동하던 하박국은 그만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하나님께 데모하는 항의성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때 그 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의 말씀이 하박국에게 임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을 일으켜 악한 남유다의 죄악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놀란 하박국은 다시 따져 물었습니다. 남유다가 악한 죄 가운데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왜 유다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쓰셔서 유다를 징계하시는지, 이것이 옳은지 물었습니다.
하박국의 질문에 하나님은 두 가지 답변을 주십니다. 첫째는 악한 바벨론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박국 2:4절 말씀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바로 이 말씀이 하박국 전체의 요절입니다. 또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7절에서 인용했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당시 남유다를 침공한 바벨론은 그 마음이 교만했습니다. 자기들이 가진 무력과 힘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하루 아침에 망하게 됩니다. 이에 비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의인은 어떻게 됩니까? 그 의인은 악인으로 인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살게 됩니다.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박국 3장은 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 하박국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3장은 노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시기오놋에 맞추어 이 노래를 불렀다고 되어 있습니다. 시기오놋은 아마도 매우 격정적으로 불렀다는 의미로 추정됩니다. 또한 이 하박국의 찬양과 노래는 공식 예배 순서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로 치자면 찬송가에 수록되었다는 것입니다. 19절에서 하박국은 자신의 노래가 지휘하는 사람을 위해 내 수금에 맞춘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면 배경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하바국의 기도와 찬양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2장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들은 하박국은 다시 성경을 열어 처음부터 읽는 가운데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행하셨던 일들을 하나하나 묵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일하셨던 하나님에 대해 다소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지금 자기 시대에 다시 강림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생각할 때 그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수금을 타며 노래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주의 일,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강림하셔서 일하시는 이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해 달라고 노래로 자신의 기도를 표현했습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시도록 간구했습니다.
3-15절은 하박국이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을 위해 강림하시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셨는지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데만과 바란 산은 시내 산 부근 남쪽 산악 지역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거룩한 십계명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 시내 산에 강림하셨습니다. 그 때에 그의 영광이 온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온 세계에 가득하였습니다.
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하박국은 시인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햇빛에 비유합니다. 새벽 하늘을 가르고 떠 오르는 햇빛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햇빛은 온 세상 구석구석을 따스하게 비추어 줍니다. 또한 캄캄하여 앞을 볼 수 없었던 어둠의 세계에 빛을 매개로 만물을 밝히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면 우리의 마음에 햇살이 깃듭니다. 우리의 마음이 따스해지고 밝아집니다.
4절 하반절과 5절을 보십시오.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 하나님은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에서 나옵니다. 하박국은 아마도 출애굽 때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셨던 하나님을 묵상하던 중 본문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은 10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권능의 하나님이신지를 체험했습니다. 특히 이 하나님의 권능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로의 장자와 애굽의 모든 집안의 장자를 치신 장자 재앙 때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대적하는 자를 그 크고 강한 권능의 손으로 치십니다.
6-7절을 보십시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는도다”
6-7절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특별히 2가지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먼저는 출애굽 때 10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치시고 이후 홍해를 가르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를 추격하는 이집트의 군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킨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던 주변의 나라들은 마치 영원한 산이 무너지고 여호와께서 일으키시는 바람에 홍해 바다 양 옆에 있던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사 기드온 때에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친 것입니다. 기드온 때에 미디안은 아말렉 족속을 비롯한 동방 모든 족속들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그들은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매년 추수할 때만 되면 기어 올라와 이스라엘의 모든 농작물과 가축을 약탈해갔습니다. 그들은 마치 메뚜기 떼 같았습니다. 이러한 때 청년 기드온은 산에 몰래 숨어서 밀타작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소심하여 두려워 떠는 기드온에게 적진에 들어가 적군이 하는 이야기를 듣도록 하셨습니다. 기드온이 들어보니 적진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것은 보리떡 하나가 미디안 진영으로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렀는데 그 장막이 환난을 당하여 쓰러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을 들은 친구가 해몽을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을 쳐서 승리할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대화를 들은 기드온은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리떡 같은 자기를 쓰셔서 큰 승리를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보리떡처럼 소심하고 특별할 것이 없었던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부르시고 쓰셨습니다.
8~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날아가는 주의 화살의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으며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셨나이다”
이 말씀 역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여러가지 사건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역시 출애굽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홍해 바다를 가르신 후 자기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하셨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을 맹추격하는 바로의 부대를 하나님은 성난 파도와 같은 홍해 바다로 그들을 수장하셨습니다.
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여자 사사로 활동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이는 가나안 왕 야빈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철병거 구백대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전차 부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6.25 전쟁 때 단기간에 낙동강 최후전선까지 확 밀렸던 것은 당시 북한군에게 소련제 전차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전차 부대의 위력은 막강합니다. 가나안 왕 야빈은 이 철병거 부대로 이스라엘을 무진장 괴롭혔습니다. 이러한 국난의 때에 여자 사사 드보라는 바락에게 일어나 이 철병거 부대와 싸우라고 방향을 주었습니다. 바락은 드보라가 같이 가주면 자기도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드보라는 바락이 전쟁에서 승리는 하겠지만 영광은 얻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드디어 야빈 왕의 장수 시스라가 이끄는 철병거 부대와 이스라엘 군은 기손 강에서 나라의 명운을 건 전투를 하게 되었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바락의 부대가 철병거 부대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기손 강은 이른바 와디로서 우기에는 강이 되지만 건기는 말라서 평지처럼 되는 강이었습니다. 이 전투가 벌어진 때는 당연히 건기였습니다. 그런데 전투가 시작되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와디였던 기손 강은 순식간에 범람하였습니다. 물이 범람하자 시스라의 전차부대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오히려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시스라는 부대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는 한 여인의 집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안심하고 여인에게 청하여 우유을 받아 마시고 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잠든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장막 말뚝을 박아 죽였습니다. 이로써 적의 장수를 죽인 영광이 여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은 하늘의 구름과 번개, 또 여인의 손길을 전쟁 무기로 쓰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그들이 회오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 적군이 스스로의 창으로 스스로를 찌르도록 하신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드온과 미디안 연합군의 전쟁 때였습니다. 당시 기드온의 부대는 겨우 300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비해 미디안 연합군은 무려 13만 5천명이었습니다. 그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300명의 부대로 13만 5천의 대군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드온의 부대가 항아리를 부수고 나팔을 불자 미디안 연합군은 큰 혼돈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연합군이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부대와 언어가 다르고 복장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옆에 있던 동료 부대를 적으로 오인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 밤에 12만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새벽이 되어 남은 1만 5천명은 도망을 쳤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하박국은 남유다를 침공하기 위해 쳐들어오는 바벨론 군대의 말발굽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서슴치 않고 살육을 행하는 그들을 생각할 때 하박국은 창자가 흔들리고 뼈가 썩으며 온 몸이 떨렸습니다. 또 전쟁의 결과 나라가 폐허가 될 것을 생각했습니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감람나무를 돌볼 농부가 사라짐으로 그 나무에 열매가 없고 소출이 없습니다. 밭에도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도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도 소가 없습니다.
18-19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외적으로 볼 때 남유다는 완전히 망했습니다. 건질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박국은 하필 나라가 망하는 그 시대에 선지자가 되어 그의 사역은 아무 열매도 없이, 아무 의미도 없이 끝날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하박국은 놀라운 노래를 부릅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이 눈에 보이는 열매가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암울한 상황 가운데 이처럼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여호와께서 그의 힘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힘을 얻습니다. 무화과 농사를 짓는 사람은 초여름이 되어 탐스러운 무화과 열매가 맺히면 그 열매를 눈으로 보며 큰 기쁨을 얻습니다. 포도 농사를 짓는 사람은 가을이 되어 알알이 맺힌 풍성한 포도 열매를 눈으로 보며 큰 기쁨을 느낍니다. 지난 한 해 뙤약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더위를 참고 일한 보람을 느낍니다. 가축을 키우는 사람은 양들이 새끼를 낳아 우리가 양들 소리로 시끌벅적하고 외양간의 소가 날이 갈수록 살이 오르고 힘이 세지는 것을 보고 큰 기쁨을 누립니다.
하박국에는 이처럼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눈을 통해 전달되는 기쁨의 원천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데 바로 그 때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 기쁨을 얻고 힘을 얻는 비밀을 배웠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없으므로 하박국은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하였습니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며 광야 시절의 모세를 묵상했습니다. 모세가 40년간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을까 허비되고 낭비된 것 같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얼마나 회한에 빠졌을까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을 통해 하나님은 그를 장차 200만이 넘는 큰 백성의 지도자로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참고 인내하며 온유함으로 백성들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의 내면으로 그를 연단하고 계셨습니다.
또 그는 성경을 읽으며 요셉을 묵상했습니다. 아무 잘못한 것이 없지만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려 감옥생활할 때의 요셉을 묵상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했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생각할 때 하박국의 마음에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요셉이 장차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서 일할 수 있는 실력과 능력을 갖추도록 돕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하박국은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 때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하고 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나오는 큰 기쁨과 위로를 체험했습니다. 이 하나님은 그의 발을 마치 사슴의 발처럼 만들었습니다. 중동 지방의 사슴은 놀라운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슴의 발은 막대기처럼 얇지만 아주 단단하고, 또 이 발을 받치고 있는 근육은 매우 크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슴의 발은 험한 절벽을 마치 평지처럼 사뿐사뿐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욥기에서 사탄은 욥이 많은 재산과 멋진 자녀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참소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욥은 그런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전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자랑하셨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그 모든 것을 다 빼앗아 보라고, 그러면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다만 그의 목숨만을 건드리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인해 욥은 큰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불순물이 하나도 없는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인해 기쁨을 얻는 신앙은 가파른 절벽을 오를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평지에 점프하는 수준입니다. 가파른 산을 오를 수 있는 높은 신앙의 경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만들어집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때 드리는 기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때 읽고 묵상하는 성경 - 이것이 그의 영적인 다리를 사슴의 발과 같이 되게 합니다.
절벽 위를 오를 수 있는 발을 가진 사슴은 그러한 발이 없는 자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높은 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특권을 누립니다. 높은 곳의 그 신선한 공기와 바람을 맛볼 수 있습니다. 저 낮은 곳에 있는 자는 무과화 열매를 먹고 포도 열매를 따 먹으며 기쁨을 누리지만, 높은 곳을 오른 사슴은 신령한 양식을 먹으며 천상의 기쁨을 누립니다. 하박국에게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둘째,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비록 지금 현실은 망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고 소망하였습니다. 실제 하박국이 믿은대로 남유다는 망하였지만 오히려 나라가 망하였기 때문에 신앙은 살아남았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 중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들, 또 에스겔과 같은 청년들을 통해 남유다의 신앙은 부흥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메시야의 계보를 이어가시고 때가 되어 메시야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 가운데 보내십니다. 하박국은 안타깝지만 자신의 생애에서는 이 구원의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의 말씀을 지키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에게 이 믿음과 소망이 있었을 때 그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이기고 내적 승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볼 때 코로나 사태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올 한 해 코로나 사태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주일예배도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늘 당연하게 생각하던 성도들의 모임과 교제가 중단되고 심한 제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보람과 기쁨을 얻는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늘 당연하게 생각하던 주일예배를 현장에서 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깊이 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늘 당연히 내 옆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신앙 동역자들을 한 동안 만나볼 수 없는 시간을 통해 그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분들인지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하여 살던 우리의 눈을 잠시 감게 하시고 영원 너머의 세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주일 예배에 해당하는 본문만 겨우 보고 가르치고 설교하던 우리의 성경읽기를 그 지평을 넓혀 모든 성경을 다 읽고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발견하던 나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발견하도록 하셨습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아픔도 주었지만 우리를 다시 거듭나도록 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귀한 2020년 추수 감사절을 맞아 우리의 마음에 하박국 선지자의 마음에 넘쳤던 그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