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메세지

제목2020년 사도행전 여름 성경학교 특강 (종로2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사도행전 1:1-26 )2020-08-17 02:52
작성자

2020년 사도행전 여름 성경학교 특강 (종로2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말씀 / 사도행전 1:1-26
요절 / 사도행전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어제 우리는 여름 성경학교를 통해서 사도행전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성령께서 제자들을 사용하사 어떻게 하나님 나라 확장을 이루었는지를 배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한없이 연약하고 부족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담대하고 성숙하고 역동적입니다. 그들의 활동 범위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확장되어 갑니다. 가는 곳마다 생명이 일어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자!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복음역사와 세계선교에 대한 열망은 점점 사그러들고 내부 갈등으로 힘들어하며 현실에 안주하며 현상 유지만 하고자 하지는 않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사도행전1장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도 우리와 별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변화시키고 역동적으로 살게 하고 능력 있는 복음 증거자로 살게 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배우길 기도합니다.

1,2절은 저자 누가의 인사말입니다. 그는 데오빌로에게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예수님이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감당하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시며 침뱉음을 당하며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 형틀에 죄인의 모습으로 고통스럽게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셔서 육체의 부활을 증거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 가장 큰 관심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의 독립이었습니다. 메시야 왕국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 나라의 일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4,5절을 보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갈릴리에 집도 있고 갈릴리가 삶의 터전이요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반면 예루살렘은 낯선 곳이요 예수님이 잡혀 죽은 곳이요 많은 대적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아마 제자들은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머물도록 한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이며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이라고 예언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하나님 나라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제자들의 힘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때에 가능합니다.
성령 세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세례는 물에 잠기는 것을 말합니다. 죽음을 뜻하죠. 그러므로 성령 세례의 첫 번째 의미는 내가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 의미는 내가 죽고 다른 성도와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동역하고 봉사하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할 책임이 있게 됩니다. (예= 물을 마시고 싶을 때 동역하는 것들/ 눈, 손가락, 팔, 입, 혀) 이제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성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슨 질문을 합니까? 6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우리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졌던 메시야관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면 종말의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불의한 세력을 심판하고 예루살렘에 메시야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하시니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의 권세로 헤롯과 로마를 심판하시고 예루살렘에 메시야 왕국을 세우겠구나’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것과 함께 왕국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자 했던 제자들의 야망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이 40일동안 줄기차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음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세상나라에 대한 관심과 소망이 많았음을 보여줍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이스라엘의 회복은 고유한 하나님의 주권이기에 제자들이 알 바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보다도 그들이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8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직’은 영어로 ‘but’으로서 매우 강한 표현입니다. ‘대신에 너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한 영혼을 살리는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땅끝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셨고 앞으로 성령도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증인이 어떤 사람입니까? 보고 들은 것, 목격한 사실을 그대로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억울하고 창피당하는 예수님의 편에 서서 예수님을 대적하고 욕하는 자들을 고발하고 혼내줘야 할 사명을 가진 것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논쟁을 합니다. 예수님을 옹호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변호사 역할을 할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변호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나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내가 만난 예수님을 확신과 기쁨으로 전하여주고, 내가 경험한 신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럴 때 생명구원역사가 있습니다. 초신자 때는 전도가 잘 되는데 구신자가 되면 전도가 잘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예루살렘부터입니다. 예루살렘은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말합니다. 내가 다니는 학교와 직장에서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또 가족과 친족를 말합니다. 이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유대는 우리의 삶속에서 접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마리아는 우리가 걸끄럽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땅끝은 모든 민족을 말합니다. 북한과 이슬람권과 이스라엘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첫 출발지였는데 이제는 땅끝이 되었습니다. 저명한 스케러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세계선교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파송국이 될 것이며, 마찬가지로 세계 모든 나라가 선교지가 될 것입니다.” 전 세계 국가가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예루살렘이면서 땅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도록 명하였는데 성령을 받고 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 땅끝까지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능력있는 증인의 삶을 살수 있을까요? 말도 잘해야 하고, 붙임성도 있어야 하고, 내 놓을 만한 타이틀도 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라고 하셨습니다. ‘권능’이란 단어는 헬라어에 ‘뒤나미스’로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을 의미합니다. 다이나마이트가 얼마나 위력이 대단합니까? 도로를 만들 때 바위산을 삽시간에 무너뜨려서 터널을 뚫고 길을 만듭니다. 건물을 철거할 때 다이나마이트를 사용하면 순식간에 건물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립니다.  이처럼 다이나마이트의 위력은 대답합니다. 성령의 권능이 이와 같습니다. 사람의 힘과 노력과 지혜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되지 않던 죄악의 산들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산산조각이 나서 허물어져 내립니다. 바위처럼 완악한 심령들이 흙덩이처럼 부서져서 무너져 내립니다. 성령께서 역사하게 되면 그 두려움 많고 소심한 제자들이 제사장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고 폭발적인 회개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앉은뱅이을 일으켜 세우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현재 우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캠퍼스에 나갈 수도 없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증인의 삶을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사를 보면 복음을 전하기 힘든 상황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여 오히려 복음의 진보를 이룬 경우가 많습니다. 로마교회는 핍박가운데서 오히려 성장하여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하였습니다. 중국은 공산화가 되면서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수많은 목회자들을 죽이고 교회를 폐쇄시켰습니다. 하지만 지하교회, 가정교회 형태로 진화하여 더욱 신앙이 뜨거워졌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공산당원 숫자보다 기독교인의 수가 더 많아져 시진핑이 우려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북한에도 현재 여러 지하교회들이 있다고 하는데 목숨을 걸고 예배를 본다고 합니다. 이처럼 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악조건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고 주님의 교회는 부흥이 됩니다. 대하16:9에서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가운데서 하나님께 집중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성령의 권능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증인으로서 열매맺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려져 가셨습니다. 영어로 ‘He was taken up’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왜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 보고 있느냐’ 책망조로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예수님의 재림을 예고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 약 1km 쯤 되는 가까운 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15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였다고 나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를 예수님의 승천 때의 일로 봅니다. 그 중 120명이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13,14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마가의 다락방에 11명의 사도들이 모두 다 모였습니다. 여자들도 모였습니다. 여자들의 명단은 안 나와 있지만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던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살로메와 ,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 마리아가 참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남동생들(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도 모두 모였습니다. 과거 예수님이 70명을 택하여 전도여행 보낸 적이 있는데 그들 중 다수가 모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120명이 모였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했던 주요멤버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모여서 한 것이 무엇입니까? 14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역사는 이렇게 한마음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신약 성경 전체에서 ‘마음을 같이하여’라는 말이 열한 번 나옵니다. 그 중 열 번이 사도행전에서 나옵니다. 이렇게 그들이 한 마음이 되었을 때 그들은 가장 모범적이고 아름다운 교회를 설립할 수가 있었습니다. 가장 효과적으로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있었고,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아름다워지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성도간에 하나됨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고린도 교회를 보십시오. 사도 바울에 의해 설립되었고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거쳐가며 사역을 했던 축복 받은 교회였습니다. 그 어느 교회보다도 많은 영적 은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그 교회는 도리어 바울에게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나뉘어 서로 분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바울파다, 나는 게바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 이렇게 파벌을 만들어 대립하고 다투었습니다. 이럴 때 성장과 부흥은 고사하고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판단 받고 조롱받게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고 하였습니다(약3:16).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 교회가 한 마음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과거 누가 크냐며 서로 다투었습니다.  예수님의 친동생들은 과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정신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취급하며 찾아와 집으로 데려 갈려고 했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무시당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교회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였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영달이나 사람중심이 아닌 예수님 중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에겐 공동의 목표인 성령을 기다리고 증인의 삶을 살도록 명령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중심, 사명 중심이 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무리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한 일이 무엇이죠?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오로지’란 ‘몰입하여’, ‘지속적으로’ 했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선교전략을 짜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장래문제를 토론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합심 기도하였습니다. 혼자 기도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합심하여 기도할 때 기도의 불이 더욱 더 강렬하게 타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이나마이트에 불을 붙이는 것이 바로 합심기도입니다. 아무리 다이나마이트 같은 폭발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불을 붙이지 않으면 터지지 않습니다. 붙이 붙어야 산도 날리고 바위도 깨뜨릴 수 있습니다. 당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숫자는 120여명이었습니다. 120명의 숫자는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인구에 비하면 또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에 비하면, 아니 로마가 통치하는 인구에 비하면 아주 작은 숫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음을 합하여 오로지 기도할 때에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미국에서 제2차 영적 각성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사무엘 밀즈라는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볼품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윌리엄스대학에 들어가 친구 4명과 기도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건초더미로 피신했는데 그곳에서 세계선교를 위해 합심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건초더미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SVM(학생 해외선교 자원운동)이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1896년에 D.L무디를 초청하여 제1회 국제 기독대학생 협의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에 많은 대학생 선교단체가 탄생하게 되었고 선교 대중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언더우드나 아펜젤러같은 선교사님들이 이 운동의 영향을 받고 한국선교사로 왔습니다. 이처럼 다이나마이트 같은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가 합심기도로부터 불붙여졌음을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UBF의 폭발적인 성장도 합심기도에 있었음을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초창기에 우리의 선배들은 대학생이었지만 모일 때마다 무릎을 꿇고 마음을 같이하여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를 위해 합심기도하였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각 사람의 심령에 성령의 불을 붙여주시고 각 대학을 개척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100여개국에 15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이러한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다시 체험하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제2차, 제3차 영적 대각성운동을 일으키신 성령께서 우리UBF의 2차 부흥의 역사를 어찌 일어나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이를 소망하며 마음을 합하여 합심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18:19,20에서 예수님은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종로2부 UBF 마가의 다락방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합심 기도하던 중 베드로가 일어나 유다문제를 끄집어 내어 말을 하였습니다. 유다 문제는 모두가 꺼리는 주제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고통이요 상처요 가시입니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가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리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베드로는 유다의 배신을 성경 말씀의 성취로 보았습니다. ‘마땅하도다’ 이 말은 ‘자업자득’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기도하며 영적 분별력이 생기자 문제를 말씀에 기초하여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비어있는 한 명의 사도직분을 채울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두 사람을 추천하여 기도한 후 제비 뽑아 맛디아를 사도로 선출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성령을 받을 모든 준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종로2부는 삼년 전, 물질주의 누룩이 틈타고 스텝목자 가정의 일로 인해 진통을 겪었습니다. 그 여파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저에게 우리 공동체와 제가 물질을 쫓는 죄를 범하였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나의 죄를 지적하는 하나님 앞에서 저는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은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이제 후로는 돈을 낚는 삶을 살지 말고 사람을 낚는 사명인으로 살라”는 방향을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2부 학사회장으로써 2부 평신도 목자님들과 상의하고 전요한박사님, 윤모세목자님의 도움을 받아 2부 문제를 해결하고자 힘썼습니다. 상황이 어느정도 정리되고 방향을 잡게 되자 저는 책임을 지고 학사회장에서 물러나 백의종군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2부 책임목자로 세우셨습니다. 저는 자격이 없는 자이지만 주님의 주권에 순종하여 2부목자님들과 사랑하는 성도들의 종으로써 지금껏 힘써 일해 왔습니다. 우리의 현재의 형편은 베드로가 ‘마땅하도다’ 말한 것처럼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우리의 죄의 결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기도 합니다. 지난 3년 기간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종로2부를 새롭게 하시고 성령께서 역사할 수 있는 모임으로 바꾸어 가고 계심을 봅니다. 우리가 과거 문제들을 성령을 의지하여 잘 해석해야 합니다. 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대오를 정비하여 코로나시대에 성령께서 쓰시는 교회로 준비되어지길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 바통이 넘어 왔습니다. 성령께서는 새로운 시대, 코로나 시대에 종로2부를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역동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모임으로 만들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시고자 하십니다.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파워스테이션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고 합심기도를 통해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