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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년 누가복음 17강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누가복음 10:1-24)2022-07-0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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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 17 (이아브라함)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말씀 / 누가복음 10:1-24

요절 / 누가복음 10: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누가복음 9 51절부터 19 10절까지는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도중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 와중에 주께서 칠십 명의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시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어떤 의도가 담겨 있을까요?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따로 칠십인을 세우셨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9장에서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전도여행을 보내셨습니다. 오늘 10장에서는 칠십명의 제자를 파송하십니다. 12제자를 파송하신 기사는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지만 칠십인 제자 파송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누가복음이 이방인을 위하여 쓰여진 성경이라는 특성을 보여줍니다. ‘12’라는 숫자는 구약의 12지파, 즉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숫자라면 ‘70’은 무엇을 나타낼까요?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칠십 개의 민족, 즉 온 인류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특히 누가는 역사학자로써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칠십 명의 제자를 따로 세워 파송하심으로 창12:2에 나오는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예수님 안에서 실현됨을 나타냅니다. 본문은 70인을 보내신 분이예수께서라고 하지 않고주께서라고 표현합니다. 헬라어로큐리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구약에 나오는여호와와 같은 의미입니다. 칠십인 제자 파송이 전 세계 열국에 대한 파송을 상징하는 만큼, 저자 누가는 이 중요한 사역을 지시하시는 예수님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시죠. ‘예수께서 나아와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28:18,19)’ 그렇습니다. 우리를 파송하시는 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칠십 인을 보내시되 지난번 열 두 제자를 파송했을 때처럼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떠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서로 돕고 격려하며 유효한 증인이 되도록 하십니다. (35:30; 19:15).



이들을 파송하시며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전에 12제자를 파송하실 때는 이런 말씀을 안 하셨는데, 12명보다 더 많은 70명을 파송하시면서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이 말씀을 왜 하시는 걸까요?


!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현재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요? 예루살렘입니까? 이스라엘일까요?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이 구원받을 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죠? “너희는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그때 예수님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습니까? 사마리아 한 영혼의 구원을 통해 희어져 추수하게 된 사마리아 땅을 보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은 70인을 파송하시면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거죠? 온 세계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본문 말씀을 볼 때 단지 내가 속한 캠퍼스나 나라만을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보고 계신 전 세계를 보아야 예수님의 마음과 의도를 알게 됩니다.


구약에서 추수는 보통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며, 추수하는 자는 주로 천사들로 묘사됩니다. (3:13) 그러나 여기서 추수는 심판이 아니라 은혜의 측면에서 구원의 복음의 전파하는 것을  말하며 그 임무가 제자들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세계는 어떤 형국이었습니까? ‘팍스로마나로 세계를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착취를 하였고 분봉왕들은 사리 사욕을 채우며 사치를 즐겼습니다. 각 민족들은 해방을 꿈꾸며 여기 저기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서민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 힘들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떻습니까? 물가 폭등, 부익부 빈익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핵 전쟁의 위험, 지구 온난화,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았는데도 원숭이두창의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가 암울합니다. ! 이때 예수님은 세계에 대하여 어느 부분을 바라보고 있나요? 영적 상태를 보고 계십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 곡간에 들여야 하는 영혼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다는 소망가운데 보십니다.



‘추수할 것이 많다’. 그 의미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시고 승천하시면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완성이 됩니다. 성령이 오실 것입니다. 추수의 범위가 이제 전 세계로 확대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추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떤 대기업 회장이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을 했는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추수를 해야 하니 복음의 일군이 얼마나 턱없이 부족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 주의 제자들은 정말 할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세계를 마음에 품으십시오. 그리고추수할 일군을 보내어주소서기도하십시오. UBF 창시자인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이 비전에 불타 올랐습니다. 그래서성서한국 세계선교 장막터를 넓히라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적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바라볼 때 너무나 일꾼들이 부족하여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있는 일꾼들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십니다. 현재 UBF에서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은 국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233개국에 수많은 캠퍼스가 있습니다. 추수할 일군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국민대, 상명대, 외대만 해도 일군이 부족합니다. 복음을 한번이라도 들어보고 졸업하는 학생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요? 10%? 5%? 국민대 2만명, 상명대 만명, 외대 2만명이라면 최소한 그들이 복음을 한 번이라도 들어보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일꾼이 뭐하는 사람입니까? 네이버 사전을 보니삯을 받고 어떤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 ‘일처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우리는 복음의 일꾼으로 하나님께 삯을 받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힘과 마음과 뜻을 다해 행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인에게 일꾼을 증원해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임의로 일꾼을 부를 수 없습니다. 일꾼을 뽑아 보내는 권한이 하나님께 있으며 그 분이 보내주는 일꾼만이 진정으로 그 분의 추수를 돕는 일꾼이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일꾼들을 세우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디모데에게 말하였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2:2) 예수님도 지상 명령으로 모든 민족에게 나아가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28:19.20) 제자를 세우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양성을 통하여 온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추수하여 천국 곡간에 들여지는 비전을 지금 보고 계십니다.


 

오늘날 무리는 많은데 제자가 드문 시대입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청중을 감동시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고 어떤 교회는 대형 콘서트를 방불하게 하는 집회를 합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모임에 참석하여 공연을 즐기듯이 잠깐의 감동을 받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풍년에 밥 굶는다고, 말씀은 넘치는데 각 개인에게 효과적으로 공급되지 못합니다. 제자는 일시적인 감동이나 은혜를 받는다고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몇 주 참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오랫동안 꾸준한 말씀과 기도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영적공동체를 이루어주시고 장막훈련, 목자훈련, 양식훈련, 소감훈련, 메시지훈련, 여러 섬기는 훈련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물론 이러한 영적훈련으로 제자가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제자로 세워시는데 좋은 방편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이러한 훈련을 잘 받을 때 빼어난 제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전쟁에서 훈련 받은 군사가 필요하듯이 영적 전쟁에도 훈련받은 제자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훈련을 귀히 여기고 잘 받아 훈련받은 제자, 빼어난 성경선생이 되길 기도합니다.


 

3절에서 예수님은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하십니다. 예수님은 70명의 제자들을어린 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선 제자 그룹이라 연약한 그들이 염려되어 이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할 때 뭐라고 하였나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예수님은 마귀를 멸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승리하십니까? 어린 양처럼 고난받고 죽임을 당함으로 이리와 같은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승리 방식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승리방식은 무엇입니까? 약육강식입니다. ‘양처럼 하면 먹힌다. 이리처럼 해야 이긴다.’ ! 생각해 봅시다. 어린 양을 이리가운데 보내면 어떻게 되겠어요? 십중팔구나 잡아먹으세요하는 꼴이 됩니다. 양도 쉬운 먹이감인데 어린양은 진짜 무방비로 당하는 너무나 쉬운 먹이감이 되지 않겠어요? 순진한 양이 어떻게 이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이리를 어떻게 이기겠어요? 닳고 닳은 세상을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순간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뒤집어 버리는 세상 사람들을 성도들이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래서 교인들도 세상을 이겨보고자 어떤 실수를 합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 같아 질려고 합니다. 양이 이리가 되어서는 안되는데 양이 이리가 되어가고 있어요. 똑같이 맞서 싸워요. ‘우리도 날카롭게 이를 갈자’, ‘우리도 목소리를 높여야 된다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대책없이 보내는게 아닙니다.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4-11절까지 예수님은 여행 매뉴얼을 제자들에게 제시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여행에 필수적인 소지품들을 먼저 빼앗아 버립니다. 전대나 배낭이나 여분의 신발을 가지지 말라고 합니다. 왜죠? 그걸 가지는 순간 그것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보낸 자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없어야 그 분만을 죽기 살기로 의지할 것 아닙니까? 대신에 하나님께서 일꾼들에게 친히 그 삯을 주십니다. 의식주를 제공해 주십니다. 그리고 영적 권위와 권세를 주십니다. 전도자가 머문 집에평안을 선포하면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그에게 머물게 됩니다. 만약 평안을 안 받으면 어떻게 되죠? 그 빌었던 평안이 일군 몫으로 되돌아옵니다. 우리가 캠퍼스에서 양들에게 평안의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받아들이면 그들에게 복이요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복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전도하는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또한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만큼 사명이 긴급합니다.


전도자는 여러 집을 옮겨 다니지 말고 한 집에 머물라고 합니다. 더 나은 대접을 받고자하는 육체의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절제해야 합니다.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집에 있으면서 가정교회를 세우고 그 집을 중심으로 다른 제자들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 집에서 주는대로 먹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먹을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따져서 가려먹기 쉽습니다. 그러지 말라는 거죠. 복음 전도자는 문화의 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한편 그들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병자들을 고치고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복음을 단순하고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만일 어느 동네에서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동네에서 나와서 이렇게 말하라고 합니다.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11) 복음을 거부하면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걸로 알고 먼지를 털어버리고 개의치 말라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초래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선포하라고 합니다.


 

실제로 제자들이 전한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어떤 심판이 임하나요?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전도자의 권위가 얼마나 높은가를 알려주십니다. 복음의 일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중한 죄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도 가장 심각한 죄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죄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동네가 있었습니다. 고라신,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동네들을 보시며 탄식하십니다. 13-15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두로와 시돈은 이방 땅 항구도시로 부와 사치, 향락, 우상숭배로 유명했습니다. 구약에서 대표적인 저주의 대상이었던 지역입니다. (23, 39). 현재 그 도시들은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어요. 그런데 심판의 날에 두로와 시돈이 고라신과 벳새다보다 견디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만큼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해 분노하셨습니다. 그 중에 가버나움을 생각할 때 더욱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가버나움에서 활동했어요. 가장 많은 표적을 행했어요. 회개의 메시지도 가장 많이 전했어요. 그런데 그들은 마음이 높아져서 회개하지 않았어요. 이들은 결국 음부에까지 낮아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교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치 않는 자들은 음부에까지 낮아집니다. 우리 중에서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 사람들과 같이 신앙생활 오래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회개하는 생활을 하지 않는 분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마음을 버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회개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칠십인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은 모두 기쁨에 넘쳐 있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아무도 건들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귀신들에게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가라~’ 하면 귀신들이 당장 도망을 치는 신기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기쁨에 공감해 주셨습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18)’. 칠십 인의 전도활동은 언뜻 보기에는 별로 대단치 않게 보이는 사람들이 시골 동네들을 돌아다니며 몇 마디 말을 전하고 몇 사람 병 고쳐 주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상은 사단을 곳곳에서 완전히 격퇴시키는 엄청난 승리였습니다. 그것은 마치번개가 땅에 떨어지는것처럼 사탄이 급속도로 추락하게 되는, 실로 압도적이고도 명백한 승리였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19절에서제자들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의 승리는 바로 주님의 능력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한번의 승리에 도취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며 늘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구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정말로 기뻐해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귀신에게 항복을 받아내는 것~ 정말 기분좋고 신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뿌듯한 기쁨이죠, 하지만 제자들이 더욱 기뻐해야 할 진짜 이유는 그런 외면적인 승리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그들 자신에 대하여 확인시켜 주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것은 곧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기록되다라는 단어는 수동태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그들 자신의 능력이나 공로때문에 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임을 뜻합니다. 추수하는 일꾼의 가장 큰 기쁨은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 올려지게 된다는 확신입니다. 사후보장이 확실히 됩니다. ‘하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었다’, ‘영생을 얻었다이 확신은 어떤 어려움, 어떤 슬픔속에서도, 죽음앞에서 조차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최고의 참된 기쁨입니다.


 

21절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성령으로 기뻐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께서 기뻐하게 되신 동기가 다른데에 있지 않고 바로 성령께서 그처럼 기뻐하도록 감동시키셨다는 뜻입니다. ‘기쁨이 흘러 넘치다’, ‘기쁨으로 흥분 상태에 이르다그런 뜻입니다. 무엇이 그토록 예수님으로 하여금 성령충만한 큰 기쁨에 젖게 하셨을까요? 바로 성부 하나님께서 내리신 한 특별한 계시 사역 때문이었습니다. 그 계시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반면에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난 아주 톡특한 계시입니다. 진리를 탐구하는데에 있어서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 자처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숨기셨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처하는 그 교만 때문에 오히려 깨닫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는 줄로 아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으로 겸손히 받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나타내 보이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 특별 계시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22절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이말은 하나님의 모든 신성이 예수님 안에 충만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예수님과 또 예수님의 뜻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을 쉽게 풀이하면 성자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성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예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7:3에서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한 것 아닙니까? 예수님 만이 하나님과 그의 나라로 나아가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십니다. (14:6) 이러한 특별한 계시가 되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 지금 스스로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길을 열게 됨을 인하여 성령으로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은기쁨이란 단어가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성육신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인생 여정이 기쁨이라는 것이죠. 제자의 길도 기쁨이라는 것이에요. 주님의 일군으로 추수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기쁨이라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이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3,2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그들에게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너희가 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뵙옵고 있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구체적인 복이 무엇이죠?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던 실로 위대한 선지자들조차도 예수님을 친히 만나지 못했고, 온갖 것을 다 가지고 누리던 임금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친히 듣는 복 만큼은 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친히 뵙고 그 음성을 제 귀로 듣는 이 축복이야말로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너희는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복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복된 자일까요?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마무리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세계를 마음에 품고 70명의 제자를 전도여행 보내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하십니다. 상한 마음으로 이 기도제목을 나의 것으로 삼고 기도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일군들에게 영적 권위와 권세를 주시고 의식주 문제도 해결해주시고 사후보장까지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고 추수하는 일군으로서 우리의 책무를 힘써 감당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