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메세지

제목2023년 느헤미야 1강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느헤미야 1장-3장)2023-11-13 03:27
작성자

2023년 느헤미야 1(메시지)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말씀/ 느헤미야 1-3

요절/ 느헤미야 1: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오늘부터 느헤미야 말씀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원래 에스라서와 함께 한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에스라 10장과 느헤미야 1장 사이에는 13년 정도의 간격이 있습니다.(참고로 느헤미야서는 13장까지 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모두 바벨론에서 태어난 포로 3세인데, 이들이 자신의 안위를 내려놓고 사명의 땅으로 돌아갑니다. 에스라는 영적 재건을 위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귀환합니다. 이처럼 어느 시대든 하나님께부름받고 쓰임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도전하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이루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 ‘하가랴란 이름은 여호와가 어둡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의 아들 느헤미야여호와의 위로란 의미입니다. 본문의 배경과 내용이 어쩜 이렇게 그 이름과 잘 어울리는지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어두움의 때였습니다. 이때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포로백성의 운명을 극복하고 왕의 술관원이라는 고위 공직자가 되었고 이스라엘을 위로하는데 쓰임받습니다

우리는 성공한 재미교포 2세나 3세 이야기를 뉴스로 가끔 접합니다. 그들은 겉모양은 한국인이지만 속은 거의 미국 사람입니다. 부모님의 고향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한국 말도 겨우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이 정도 밖에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바나나라 부릅니다.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얗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포로 3세인 느헤미야는 어떻습니까? 그가 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슬르월에 수산궁에 있었다고 합니다. 기슬르월은 태양력으로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입니다. 수산궁은 페르시아의 수도인데요. 왕은 겨울에는 대개 바벨론에,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 그리고 봄, 가을에는 수산궁에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겨울이니 왕은 바벨론에 가 있고 수산궁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2차 포로귀환에 동참하여 예루살렘에 가서 살고 있던 형제중 한 명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느헤미야를 방문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술관원으로서 궁중 일을 하느라 바뻤지만 그의 관심은 조국 이스라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조국을 사랑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모했습니다

그가 묻습니다. “동생 하나니, 궁금한게 있는데~ 포로에서 돌아가 정착한 사람들의 형편이 지금 어때?” 그러자 하나니가 형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구만요. 동족들이 큰 환란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타 버렸어라~”라고 대답합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예루살렘 성전과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입니다. 이 울타리가 견실해야 도시 전체가 안전하고, 성전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벽이 무너지고 불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차례 성벽을 건축하려 하였지만 대적자들의 지속적인 방해로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에스라 4장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즉위할 때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사마리아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여 왕이 조서를 내려 성벽 건축을 그치게 했습니다. 특히 사마리아 권력자들이 적극적으로 방해해 왔습니다. 왜 이런 짓을 그들이 할까요? 그동안 가나안 지역의 주도권을 사마리아가 쥐고 있었는데 예루살렘 성벽이 지어지면 그 주도권이 예루살렘으로 넘어갈까 봐 극구 막는 것입니다. 에스라 주도로 2차 귀환한 유대인들도 성벽도 한번 건축해보자이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적들이 성벽을 조금 쌓으면 허물어 버리고, 또 쌓으면 허물어 버리고 문도 불태웠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성벽 무너진채로 방치되고 문도 없으니 어떠하겠습니까? 이방인들이 넘나들면서 온갖 나쁜 짓을 해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언제 대적들이 공격해서 사람들을 해칠지 모릅니다. 에스라가 가져온 보물들이 성전에 있는데 도둑들이 호시탐탐 노립니다.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늘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예루살렘을 떠나는 사람도 생겨나 인구가 줄고 땅이 황폐해져 짐승들의 거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필히 성벽을 다시 쌓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루살렘이 안전하고 자유롭고 풍요롭고 번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10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양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합니다. 문이 필요합니다. 그 울타리는 예수님의 몸인 교회이며, 문은 예수님입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마귀와 죄의 세력으로부터 보호을 받습니다. 풍성한 말씀의 꼴을 먹고 부요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마귀와 세상의 악, 거짓교사로부터 진리를 사수하고 양들을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울타리가 무너지면 안됩니다. 무너졌다면 빨리 다시 세워야 합니다.

 

예루살렘 소식을 들은 느혜미야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4절을 읽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헤미야는 자신이 당한 일처럼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그가 술관원이니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했습니까? 문제 있를 해결해 줄 사람을 찾아갔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땅에서 해결책을 찾지 않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진정한 해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세상은 물질적이고 육신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유튜브나 영화를 보면 귀에 거슬리는 욕설들이 난무합니다. 국민들의 귀감이 되어야 할 정치인들조차 정제되지 않는 말들을 쏟아내며 고함을 칩니다. 마약이 우리 주변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삶의 의욕을 잃고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점점 줄어드는데 이단들이 더욱 활개를 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을 받고 사탄의 문화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대해 목자인 우리가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무관심하다면 무책임하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황폐해진 이 민족, 이 시대를 위해서 느헤미야처럼 문제 의식을 갖고 슬퍼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5절부터 11절까지는 느헤미야의 위대한 기도입니다. 5절을 읽습니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그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고백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여호와우리와 차원이 다른 높은 차원,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당시 세상에서 가장 크고 두려운 사람은 페르시아 왕이었습니다. 페르시아왕이 세상을 통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크고 두려워 할 분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바사왕 때문이 아니요 하나님의 주권 섭리에 의해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현재 이스라엘이 당하는 수치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절에서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자신과 조상들이 범죄하여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심으로 현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신다고 합니다. 9절 말씀처럼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주님께 돌아가 주의 계명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시라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성품, 그리고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 내용에는 종의 기도라는 단어가 반복하여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종의 자세로 겸손히 긍휼과 은혜를 구합니다. 그의 구체적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느헤미야는 이제 페르시아 고관으로서의 모든 영화와 평안을 포기하고 이스라엘이 고난당하는 현장으로 뛰어들겠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여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드리고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자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종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형통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 사람들’, 즉 왕을 포함하여 왕후와 같이 영향력있는 사람들에게 허락을 받고 도움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그는 하나님의 크신 위로로 왕의 술관원이 되었고, 이제 이 직분이 환란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는데 쓰여지길 원하고 있습니다. 고후1:3,4절이 생각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느헤미야의 이 기도가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저는 종로2부 목자로써 어떻게 하면 청년 역사를 부흥시킬까? 올 겨울에는 제자양성 프로그램으로 무엇을 할까? 내년 봄학기에 국민대, 상명대에서 신입생 양을 얻기위해 어떻게 관계성을 맺고 전도할까? 그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고 프로그램을 뭘로 할까? 생각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2부 목자님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까? 하나님께 쓰임받도록 할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도해야 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배웁니다. 제가 하늘의 하나님께 나아가 먼저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방향과 능력으로 역사를 섬겨야겠습니다. 느헤미야와 같이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붇잡고 기도하되 특히 우리 공동체 안에 있는 목자들과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2장을 보겠습니다. 니산월이 되었습니다. 태양력으로 3월 중순으로 봄입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한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왕이 수산궁에 왔습니다. 잔치를 합니다. 그런데 느혜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왕후도 있었다고 6절에 나옵니다. 왕의 공적 업무가 아닌 사적 잔치임을 알수 있습니다. 잔치는 흥겨워야 합니다. 누군가 인상을 쓰고 있다거나 근심어린 표정으로 있다면 흥이 깨질 것입니다. 왕이 눈치를 챕니다. “어이~ 느헤미야, 왜 이리 근심어린 표정이야. 무슨 일 있어?” 묻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왕의 잔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잔치자리에서 근심스런 얼굴 표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왕에게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또한 진실을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건축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 왕후 에스더가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나아갈 때 무슨 말을 했습니까? ‘죽으면 죽으리라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왕후가 왕을 만나는 것도 그러할진데, 하물며 신하가 왕 앞에서 예전에 왕이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지 말라고 조서를 내렸던 그 일을 꺼낸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만약 아닥사스다 왕이 네가 왕이냐, 그럼 네가 왕해라라든지 , 반역하겠다는 것이냐하면 끝장입니다. 그러니 느헤미야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왕을 높입니다.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당시 왕이나 귀족들은 조상들의 묘실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전하, 종묘사직을 지켜야 합니다. 굳건히 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한번 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라고 표현함으로 왕을 자극하지 않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습니다. 어떻게 제 얼굴에 수심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습니다. “, 그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느헤미야가 약간 뜸을 드립니다. 이것은 왕에게 들을 준비를 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느헤미야가 짧은 시간에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합니다. 이것을 총알 기도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말합니다. “왕이여~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믿음으로 도전합니다.

 

6절을 보면 그 때에 왕 곁에 왕후도 있었다고 나옵니다. 아마 왕후가 거들어준 것 같습니다. ‘왕이여, 느헤미야 말이 옳은 것 같아요. 나도 느헤미야 말에 찬성!’ 그러자 왕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흔쾌히 승낙하고서 느헤미야, 네가 가면 얼마나 있을거야? 언제 돌아와?” 묻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기뻐하며 기한을 정합니다. 그리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느헤미야가 그동안 생각해 두었던 필요한 것들을 왕에게 요구합니다. “왕이시여~ 조서를 좀 내려주십시오. 두가지인데, 하나는 강서쪽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려 제가 예루살렘에 가기까지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또 하나는 왕의 살림 감독 아사에게 조서를 내려 성전의 문과 성곽 그리고 총독 관저의 기둥에 쓸 재목을 공급해 주도록 해 주십시오이에 왕이 어떻게 합니까? 허락합니다. 뿐만 아니라 왕은 군대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호위를 하도록 지시를 합니다. 그 행렬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느헤미야는 내가 이 일을 해 냈어~’ 이렇게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왔다고 고백을 합니다. 이에 호론 사람 산발랏(그는 사마리아 총독입니다), 그리고 그의 부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도다하며 심히 근심합니다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은 이처럼 대적자들을 심히 근심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했던 스코틀랜드의 피의 여왕메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국의 100만 군사보다 존 녹스의 기도가 더 무섭다그렇습니다. 사단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 믿음의 사람을 제일 두려워합니다. 존 낙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기도하는 한 사람, 믿음으로 도전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역대하 169절에서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사흘동안 휴식하며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에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무엇을 할 것인지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주신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백성 중에 산발랏과 도비야와 연관을 맺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6:18). 


그는 때를 기다립니다. 상황 파악이 먼저입니다. 그는 밤에 아무도 모르게 두어 사람을 데리고 무너진 성벽을 살펴보았습니다. 과연 성벽은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에 타 흉물스러웠습니다(13). 뿐만 아니라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는 성벽 잔해들과 온갖 쓰레기 등으로 길이 메워져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성벽을 둘러본 느헤미야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이렇게 약속하였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22:16,17) 이번 가을 수양회에서 우리는 삼손을 배웠습니다. 삼손이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블레셋의 중심도시인 가사의 성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가지고 어깨에 메고 아브라함의 묘실이 있는 헤브론까지 온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대적들을 정복하고 승리했음을 알리는 포퍼먼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구원자에 대한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이 약속은 마귀를 멸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대로 이스라엘이 대적의 성문을 얻어야 하는데, 반대로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대적들에게 패배했다. 굴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느헤미야가 이것을 바라보고서 무얼 느꼈겠습니까? 수치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생각할 때 잠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어떻습니까?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교회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이 어떻습니까? 아무 느낌도 없습니까? 아니면 수치심을 느끼십니까? 우리가 수치심을 느끼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찾기를 기도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말합니다.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맙자”(17),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를 도우신 일과 왕이 그에게 이른 말을 전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성을 건축할 마음을 자기에 주시고, 이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왕에게 요청하였을 때 왕이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도록 승낙하였고, 필요한 물적, 인적 자원을 제공해 주었음을 알립니다. 이에 백성들이 어떻게 응답합니까? “일어나 건축합시다모두 힘을 내어 합심하여 예루살렘 성 건축에 헌신합니다.

 

이 소식이 대적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조롱하며, 못하도록 협박을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반드시 마귀의 방해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대적들에게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실 것이라며 믿음의 답변을 합니다. 대적들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성도는 지금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기업이 있고, 권리가 있고, 기억된 바가 있습니다. 반면에 대적자들은 영구한 새 예루살렘과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이를 알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대적자들에게 우리가 믿음으로 대응할 수가 있습니다.

 

느헤미야 3장은 예루살렘 성벽 건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알려줍니다. 각자가 감당할 부분을 배분하여 실제적인 수고와 헌신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였습니다. 우리 종로2부도 각 각의 요회를 통해, 그리고 63팀이라는 조직을 통해 각자의 은사를 따라 일을 분배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며 하나님의 교회를 지어 가고 있습니다. 이를 생각할 때 참으로 감사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소중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사역을 이루며, 사랑이 만들어지며, 살아있는 교회가 됩니다. 우리 종로2부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의 몸으로 세워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것을 알고 또 보고서,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였습니다. 수치심을 느끼고 회개하였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도전하였습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성벽 건축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은 느헤미야와 같은 목자 심정을 가지고서 기도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찾습니다. 그들을 통해 무너진 성벽, 즉 주의 몸된 교회를 다시 수축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현재 당한 수치를 씻고서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