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메세지

제목2023년 가을 학개서 특강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학개 1:1-2:23)2023-10-30 03:22
작성자

2023 가을 특강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학개 1:1-2:23

학개 2: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난번에 우리는 에스라서를 공부했습니다. 에스라서는 전체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6장까지는 1차 귀환자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내용이었고, 7-10장은 에스라의 영적 갱신으로 이방 여인들을 내어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라 3장에서는 귀환한 유대인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는데 4장에 보면 어떻게 되었죠? , 중단되었습니다. 유대인의 대적들이 페르시아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공사를 중지시켰습니다. 그래서 그 공사가 약 16년간 페르시아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중단됩니다. (4:24) 그런데 에스라 5장을 보면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들이 회개하고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학개 말씀은 바로 그 부분에 연결됩니다. , 선지자 학개가 일어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다시금 성전 건축을 재개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구절마다 설명하지 않고 주요 요점을 정리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1절입니다.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때 성전 건축이 중단된 상태로 제 4대 왕인 다리오 2년이 되었습니다. 그 때가 BC 520년입니다. 기초만 놓인 성전은 돌들이 널브러지고 잡초에 덮여 황폐한 상태였습니다. 밤이면 여우들이 돌아다니는 썰렁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선지자 학개가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2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4절입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그 당시 유대인들은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였습니다. "때가 되지 않았어, 아직 페르시아의 관리들이 허락을 하지 않았어, 북쪽의 대적들이 저렇게 우리를 노려보고 있잖아, 때가 되어야 무슨 일이라도 하지!" 하면서 성전 건축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각자 판벽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판벽하다('사판')라는 말은 "벽판을 대다"라는 뜻으로 당시 백향목이나 아로새긴 판자로 벽을 두르고 지붕을 덮은 집을 말합니다. 당시 이런 방식으로 지은 집은 매우 화려한 것에 속했습니다. (왕상 7:3, 22:14) 맨 처음에 페르시아 관리들이 건축을 중단시킬 때 고레스 왕의 칙령이 변했던 것이 아니기에,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도전하여 건축을 지속해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 태어난 유대인 2, 3세들은 아직 믿음의 연륜이 약했습니다. 대적들이 방해를 하자 중단해 버렸습니다. 관리들의 눈치를 보며 호의적인 때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어차피 성전을 짓기 어려우니 이때를 이용하여 자기 집들을 짓게 되었습니다. 모아둔 성전 건축 재료를 조금씩 갖다 쓰기도 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방해 조치도 약해짐으로 유대인들은 얼마든지 다시 성전건축을 시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트라우마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재개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을 짓기보다 자기 집이나 잘 짓고 편히 살고자 한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선지가 학개는 이 점을 언급합니다. 5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7절에서도 반복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의 행위를 살피라" 하십니다. 그들의 행위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9b절입니다.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그들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 일을 먼저 돌아본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영적 질서를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6:33절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는 만고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신자의 삶의 대 원칙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영육간의 모든 필요를 넘치게 채우십니다. 이는 학개 시대나, 예수님 시대나 우리 시대나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선지자 학개 당시 유대인들이 이러한 삶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 그들의 형편이 어떠했습니까? 6절입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씨를 많이 뿌렸으면 수확이 많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가을에 거두어보니 수확이 적었습니다.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양식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만족이 있어야 되는데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습니다. 마셔도 흡족하지 못했습니다. 옷을 많이 껴입어도 추웠습니다. 월급을 많이 받았는데 이상하게도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았습니다.

 

제가 아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지만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컨설팅 일을 하며 많은 수입을 벌어들입니다. 그 아내도 전문직 일에 종사합니다. 이 가정은 돈을 벌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결정적일 때 하나님을 먼저 구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아까워하여 드리지 못합니다. 이 가정에 자녀들로 인한 과다 지출이 많습니다. 이런 저런 우환과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밑창이 뚫어진 돈 주머니에 돈을 넣는 것처럼 남는 것이 없습니다. 카드 돌려막기를 하고 대부업체에서 빌립니다. 고리를 갚아나가야 하니 악순환입니다. 매일 매일 허덕허덕 살아갑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않으시면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곤고함을 벗어날 수 없음을 봅니다. 그가 하나님을 먼저 구하기만 하면 마음과 몸에 쉼을 누리며 복된 삶을 살 수 있으련만 하는 생각일 뿐입니다. 학개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9-11절입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않으시면 사람이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이 불어버리시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재, 곧 가뭄을 들게 하시면 땅의 모든 것이 시들고 말라버립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방향을 주십니까? 8절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라 하십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성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었듯이 이 성전도 나중에 파괴됩니다. 솔로몬 성전이나 스룹바벨 성전 모두 참 성전되시는 예수님의 모형일 뿐입니다. 그러나 계시의 점진성을 볼 때 당시에는 성전이 필요하였습니다. 성전을 지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그들의 죄를 속해야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오실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상에서 두 가지 점을 정리해 봅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공급받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예루살렘에 귀환한 백성들은 나름대로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결단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진 문명 바벨론을 떠나 고생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큰 결심, 한 번의 큰 믿음이 다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말씀을 공급하는 선지자가 없었을 때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건 건축 중단 16년 동안에 말씀이 없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지 못하고 자기 앞가림만 우선시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회개하고 삶의 자세를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건축 역사를 재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곡식과 포도주와 고기를 먼저 주시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생명이 있고, 길이 있고,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로와 격려가 있고,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주의 말씀은 우리의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입니다. (119:105) 우리의 본성은, 믿음을 잃고 낙심에 빠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합니다. 이때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꼭 붙들어야 하는 그 때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1:2,3)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주 지속적으로 말씀을 공부하고 소감을 쓰며 말씀을 영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을 장사가 없습니다. 이 시대의 교묘하게 파고드는 물질주의 유혹과 이기심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결국 세상 사람들처럼 살게 됩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드려져야 할 고귀한 내 인생을 하찮은 세상의 것들을 좇아 살며 낭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자세로 매주 말씀 공부를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복을 받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지구에 대기권이 있습니다. 지면으로부터 상층부 약 30Km 까지 공기가 존재하는 층입니다. 대기권에는 산소와 수증기 및 여러 원소들이 있습니다. 대기권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산소를 보존하고,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 등 여러 유해 광선을 차단해 줍니다. 우주에서 날아드는 유성들을 태워 버려 우리를 보호합니다. 우리가 대기권의 보호 아래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 같이, 우리는 일거수일투족 하나님의 은혜의 대기권 아래 살고 있습니다. 이 은혜의 대기권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섬기는 자를 축복하시고 자기를 멸시하는 자를 멸시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본문 7, 9절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먼저 섬기지 않고 자기 뜻을 좇아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기 앞에 있는 복을 차 버리는 사람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떠나 자기 꾀로 살면 세상적으로 잘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외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이 마음이요 영혼입니다.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기쁨, 하나님이 주신 소유를 누리는 즐거움, 영육간의 강건함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성,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 이 모든 총합적인 복됨은 하나님이 축복하셔야 우리가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자기 성실과 능력으로 잘 살아보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축복하지 않으시자 땅의 모든 소산과 육축과, 사람이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에 빠져있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니라!" 우리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전능하시며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들 영원하신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고 주지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잘 알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단순한 순종을 통해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만히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2.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선지자 학개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백성들은 일어나 성전 공사를 재개하였습니다. 공사가 시작된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7/20,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선지자 학개에게 임합니다. 23절입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예전의 솔로몬 성전은 남유다 멸망 때 파괴되었습니다. (BC 586) 지금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한 때는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2년입니다. (BC 520) 1차 성전이 파괴된 지 66년이 지났습니다. 비록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백성들 중에 아주 나이 많은 시니어들 중에는 그 옛 성전을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성전을 짓는 데 걸린 기간이 76개월이었습니다. 동원된 인원이 총 18만 명이 넘었습니다. (183,850) 두로 왕 히람이 레바논의 백향목을 공급해 주었는데 그 목재 값으로 솔로몬은 매년 밀 4만 석과 많은 양의 기름을 주었습니다. 돌은 멀리 있는 채석장에서 다듬어서 운반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금과 은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솔로몬 성전은 그 당시 온 세상 건축물의 금자탑이었습니다. 그러한 옛 성전에 비해 새 성전은 참으로 초라했습니다. 나무도 저마다 산에 가서 베어 온 것으로 길이도 들쭉날쭉하였습니다. 곧고 긴 재목이 별로 없었습니다. 돌도 그러했고 금이나 은도 별로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하십니다.

 

그러나 또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6-9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 곧 현재 짓고 있는 제 2성전 (스룹바벨 성전)은 겉으로는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 2성전에 만국의 보배가 이릅니다. 그래서 그 보배로 인해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성전에 평강을 주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째,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라. NIV 에는 "the desired of all nations" (만국 백성들이 사모하는 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NAS "the treasures of all nations" (만국의 보배)라고 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사모하는 보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보배가 누구일까요? 온 인류가 고대하는 메시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왜 만국의 보배가 되십니까?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영혼을 구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을 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죄로 인한 결과로 허무한 데 굴복하고 있습니다. 모두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인해 그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세상에서 죽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그가 이루신 공로, 그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님은 모든 인간에게 보배가 되십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습니다. 그 분에게 나오면 어떤 인생의 상처도 치유받고 새로운 삶을 삽니다. 예수님은 만민이 사모하는 하는 구주요 목자요 왕이시오 아버지가 되십니다. 만민의 소망이 되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배로 삼고 있습니까? 돈이나 명예, 세상 지위를 보배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경제적 자유를 얻고 일찍 은퇴하는 FIRE 족을 꿈꾸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참된 보배, 만민의 보배는 예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 분만이 유일한 길이 되사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주십니다. 그 분만이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십니다. 그 분만이 유일한 중보자요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만민의 사모하는 보배 되신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예루살렘에 귀환한 백성들이 세우는 성전은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만국의 보배를 보내셔서 그 전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2천 년 전 만국의 보배 되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창조주께서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조용히 나셨습니다. 그 사건은 온 우주를 진동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규례에 따라 아기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질 때 그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시므온은 그 영광을 보고 찬송하였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2:22-32) 예수님이 12살 때 성전에서 랍비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실 때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였습니다. 메시야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예루살렘 성전에 오셨을 때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였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 사랑의 영광, 예수님의 겸손의 영광, 구원의 영광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영광이 충만한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신 후 이제 그의 영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삶을 통해 그의 영광이 비추게 하십니다. 이제 누구나 영광의 예수님을 모시고 그 분의 다스림을 받을 때 영광스런 삶을 살게 됩니다. 솔로몬 성전이나 스룹바벨 성전이나 모두 참 성전 되신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예수님이 실체입니다. 그 예수님은 영광이 충만하신 분이시요 겸손하셔서 우리 신자들 안에 거하사 우리로 영광스런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영광스런 삶이라고 해서 세상 왕처럼 높은 자리에 앉아 호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같이 겸손히 낮아지는 삶이 영광스런 삶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과 진리로 섬기는 목자의 삶을 사는 것이 영광스런 삶입니다. 친구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주기까지 사랑하는 것이 영광의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우리 힘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살아내실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안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고후 13:5) 우리 각자의 삶 가운데 예수님이 충만할 때 우리 교회 공동체가 예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우리 각자와 우리 공동체에 대한 뜻은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1:23)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이것입니다. 영광의 주 예수님, 우리 안에서 당신의 영광이 충만하게 하소서. 우리 공동체가 이 어두운 세상에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9b절은 말합니다.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성전에 평강을 주신다고 합니다. 참 평강은 참 성전 되신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목이 주어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참 평강을 누립니다. 하늘에서의 평강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하늘의 평강을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우리가 매 순간 믿음 없음과 안일을 사랑하는 죄를 회개하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만국의 보배가 되십니다. 우리의 참 보배이시요, 완전하고 영원한 참 성전 되신 예수님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만국의 보배이신 예수님을 힘써 전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