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메세지

제목2023년 성탄 제2강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누가복음 2:1-14)2023-12-26 12:07
작성자

2023년 성탄 메시지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말씀/ 누가복음 2:1-14 

요절/ 누가복음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은 특별히 주일이자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모두 즐거워합니다. 선물을 교환하고 축하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한 해를 보내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는 구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말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뭐라고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요? 아니 요즘 시대에 그런 좋은 소식이 있을까요? 요즘은 모든 것이 초스피드로 변하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며 조금이라도 뒤쳐질까봐 불안해합니다. 청년들은 취업과 결혼 등 장래 문제로 염려합니다. 시니어들은 노후 문제를 걱정합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의 전쟁이 한반도로 불똥이 튈까 두려워합니다. 조마조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요? , 그렇습니다. 여기에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최고로 기쁜 톱뉴스가 있습니다. 영원토록 헤드라인을 장식할 뉴스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입니다.  

 

때는 지금으로 부터 약 2천 년 전이었습니다. 당시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권세는 실로 막강하였습니다. 그가 명령을 내립니다. "온 천하로 다 호적하게 하라!" 이는 당시에 세금을 안 내거나 군대 징집을 피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호적하라!" 이 한 마디에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든 세상에서 생업을 중단해야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가서 주민등록을 새로 해야 하는 식민지 백성들은 얼마나 울분이 넘쳤을까요? 자기들을 좀 더 수탈을 잘 하도록 하는 조치를 스스로 취해야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사렛에 살던 청년 요셉도 자기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야 되었습니다. 그는 약혼녀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마리아! 이제 우리 베들레헴에 다녀와야 해요. 호적 명령이 내려졌어요. 마리아는 꼭 가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홀로 남겨두고 가기에는 내 맘이 놓이지 않아요, 같이 가도록 해요."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약 700년 전 미가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미가서 5:2절은 말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는 장차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곧 왕이 나시는데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나실 그 분은 영원 전 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호적 명령이 없었다면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갈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이사의 명령을 쓰셔서 구주 탄생의 장소를 예언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분이십니다. 오늘날 지구 각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재난, 전염병과 기후변화는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핵위협으로부터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조금의 실수도 없으십니다. 사람들의 선과 악을 모두 쓰셔서 하나님의 뜻을 완벽히 이루어가십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이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기도합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염려와 두려움 없이 우리가 가야할 길을 힘차게 가기를 기도합니다.  

 

요셉은 나귀를 구하여 마리아를 태웠습니다. 그는 마리아가 잉태한 아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하여 마리아와 아기를 보호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조금도 힘들지 않도록 섬겼습니다. 드디어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습니다. "! 마리아 드디어 우리가 도착했어요!" 이제 빨리 방을 찾아 쉬도록 해야겠어요." 그런데 베들레헴은 이미 전국에서 모여든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호적 특수로 인해 방 값이 폭등했습니다. 가난한 요셉은 도저히 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리 저리 방을 구하는 와중에 마리아의 산통이 시작되었습니다. ", 이를 어쩌나!" SOS 상황을 맞은 요셉은 여기 저기 여관 문을 두드리며 말합니다. "제 아내가 아기를 낳아요. 제발 방을 하나 내어 주세요!" 오늘날 이런 경우에는 여관 주인이 자기가 쓰는 방이라도 내어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로마제국은 Pax Romana 라는 기치아래 제국을 평화롭게 다스린다고 주장하였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할 수 없이 마리아를 어느 마구간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곳은 말똥 냄새가 진동하였고 파리와 벌레들이 득실득실한 곳이었습니다. 요셉은 지푸라기들을 모아 바닥에 깔고 마리아를 눕게 합니다. 초산의 경우 보통 10시간 이상 산통을 한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마구간 바닥에 누워 그런 산통을 하였습니다. 의사나 간호사는 커녕 해산을 도와주는 조산원도 없었습니다. 요셉이 아기를 받았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말들도 고개를 돌렸습니다. 요셉은 아기를 강보에 싸서 말구유에 올려놓았습니다.  

 

제가 예전에 한 외국 손님을 만나러 강남의 코엑스 빌딩에 갔습니다. 무역 센터 건물 옆에 현대백화점이 있었습니다. 그 백화점 앞에 보니 아기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탄생한 모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구간 안에 요셉과 마리아가 있고 아기 예수님이 구유에 누여 있었습니다. 그 마구간과 구유는 너무나 깨끗하고 예쁘게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엄마들이 자기 아기를 그 안에 누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이 나신 구유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 말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십시오. 세상에 누가 날파리와 각종 벌레들이 드글드글한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말입니까? 그 아기를 받아서 광목천에 싸서 구유, 곧 말 밥통에 올려놓는다는 말입니까? 강보는 두꺼운 광목천을 말합니다. 예전에 어머니들은 보약을 다릴 때 광목에 넣어 다리고 나무젓가락을 끼워 한약을 짜내고는 하였습니다. 광목은 아주 거친 천인데 이에 반해 갓난아기 살은 가장 보드랍습니다. 광목을 아기의 살에 댈 수 없습니다. 가시가 찌르듯 아프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실 때부터 가시에 찔림 받는 삶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작년에 저의 손녀딸이 태어났습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모든 과정을 살펴주고 산모의 출산을 도와주었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기의 출생을 축하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환영하는 사람도 없는 가운데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나셨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존귀하고 영광스런 성자 하나님이 이와 같이 나시다니요! 우리가 어찌 이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는 마치 사람이 바퀴벌레가 되어 바퀴벌레들 가운데 사는 것과 같다.” 성자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 낮아져 우리와 함께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기 예수님을 생각할 때 무한한 위로를 받습니다. 아무리 슬프고 운명적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도 예수님을 생각할 때 모든 슬픔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가장 슬픈 사람, 가장 운명적인 사람들보다도 더 낮은 자리에 오셨습니다

 

성탄은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이신 성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성자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삼위의 하나님이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말구유에 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마태복음 1:23은 말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예수님은 왜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하셨을까요?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슬픔에 동참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친구요 목자가 되사 우리를 돕기 위함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그 분을 믿도록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레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였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이 그를 매국노라고 하며 멸시하였습니다. 그의 아내도 그가 벌어다 주는 돈은 좋아하였지만 그를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지극히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외로움과 깊은 절망으로 고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찾아오사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그와 함께 하셔서 그의 모든 약점을 감당해 주시며 제자로 키워주셨습니다. 마침내 성 마태가 되기까지! 예수님은 다른 세리 삭개오도 찾아가셨습니다. 돌무화과나무 위에 숨어 있던 그를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의 집을 심방하시고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온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우리의 모든 질고와 허물을 감당해 주시기 위해 이 땅 가장 낮은 곳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 앞에 어느 누구도 교만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를 낮추어도 이 예수님 앞에서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시간 구유에 나신 예수님을 우리가 깊이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모든 교만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겸손을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사건은 아담의 타락 이후 우주에서 가장 큰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 소식을 누구에게 제일 먼저 알리십니까? 헤롯왕에게입니까? 대제사장들에게입니까? 아닙니다. 그 지역에서 밤에 양떼들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알리십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말합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0) 천사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합니다. 첫째, 온 백성에게! 세상에서의 소식은 누구에게는 좋으나 누구에게는 좋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전하는 이 소식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좋은 소식입니다. 아니 도대체 그런 소식이 있다고요?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나요? 이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 소식은 큰 소식입니다. 세상에서 큰 소식은 신문의 1면 톱으로 나옵니다. 천사가 지금 전하는 소식은 매일 매일의 톱뉴스입니다. 셋째, 이 소식은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나쁜 소식이 아니라 기쁜 소식입니다. 영원토록 계속되는 좋은 소식입니다

 

아니 세상에 그런 뉴스가 정말 있단 말입니까? 그 소식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11절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바로 구주가 나신 것입니다. 구주란 구원하시는 주라는 뜻입니다. 그럼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센터까지 갈 차비가 없는데 누가 차비를 대 주는 것을 갖고 내가 구원받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위험에서 건짐 받는 것을 말합니다. 자 여기, 한 어린 아이가 언덕 밑에서 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덤프트럭이 브레이크가 고장 나 아래로 달려 내려옵니다. 어떤 사람이 급히 달려들어 그 아이를 건져냅니다. 이런 것이 구원입니다.  

 

예전에 제가 시카고에서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쎈트루이스 지부의 폴최 선교사님이 아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주방에 있는 엄마에게 와서 말합니다. “엄마! 빨리 와 봐요! 갑자기 아빠가 이상해!” 가보니 폴최 선교사님의 숨이 멈췄고 얼굴이 창백하였습니다. Cardiac Arrest(심정지)가 온 것이었습니다. 간호사인 메리최 선교사님은 아들에게 911 전화를 하도록 하고, 자기는 즉시 CPR(심폐소생술)을 시작하였습니다. 갈비뼈가 거의 부러질 정도로 30분 이상 CPR을 하였습니다. 앰뷸런스가 와서 그를 즉시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하여 그는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메리최 선교사님은 그를 살려내기 위해 정말 사투를 벌였습니다. 폴최 선교사님은 그 당시가 전혀 기억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여하튼 지금은 온전히 건강을 회복하여 선교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폴최 선교사는 아내에게 자주 말합니다. “당신이 나를 구원했어요이런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신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덤프트럭이나 심정지의 위험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파멸에 처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아니 뭐라고요? 잠깐만요! 우리가 영원한 파멸에 처해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우리가 그저 세상에서 죄짓지 않고 착하게 살다가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 들어보십시오. 지금 온 세상은 사탄이라고 하는 마귀에게 속아 살고 있습니다. 사탄은 속이는 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다 우연히 태어났어. 세상에서 즐기며 잘 사는 것이 인생 목적이지. , 물론 나쁜 일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야지. 어차피 죽으면 다 끝이지만 좋은 일하면서 하는 게 좋겠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고 이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나 한 번 다 죽으며 그 죽음 후 심판이 있다고 하십니다. (9:27)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집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어떤 사람도 거룩하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 노력으로 이 영원한 심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직면한 큰 위험입니다. 이 위험에서 건짐 받기 위해 우리는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천사가 전하는 소식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우리를 이 영원한 위험에서 구원하시는 분이 나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구주이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1절도 말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저는 신앙생활 초기에 죄에 대한 성경적 개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교회에 잘 다니고 착하게 살면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축복하시고 결국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그 이상의 문제의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가운데 죄가 근본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으나 막강한 힘을 가진 죄가 나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멸망으로 이끌어가는 근본 원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가 인생의 근본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eye opening 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죄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 오셨던 세계대표 란워드 목자님은 쓸개에 돌이 수십 개가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옆구리에 통증이 계속 있었고 때마다 약을 복용했습니다. 그런데 약을 복용하는 것은 일시적인 대응 방법입니다. 근본적으로 쓸개의 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가 며칠 전에 쓸개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의 통증의 근본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내면을 병들게 하며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그 근본원인은 죄입니다

 

죄는 우리 몸을 숙주로 하여 증식하는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죄는 보이지 않으나 우리 내면에 거하며 역사합니다. 나는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죄가 나의 정욕과 교만을 부추겨 결국 악을 행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자유의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우리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습니다. 선을 행할 자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아갈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원치 않지만 죄가 시키는 대로 행하는 죄의 종이 된 것입니다. 어떤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하루에 딱 30분만 게임을 하고 공부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런데 한 번도 그것을 지킨 적이 없어요다음날이 시험인데도 게임하다가 늦게 자서 시험 시간에 늦었어요. , 나는 정말 소망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 형제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분노 조절 장애가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때때로 폭발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미움의 종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정욕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죄에 빠져 절망하고 자책입니다. 자괴함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사람은 아무도 이런 상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노예가 스스로 자기를 자유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종 된 값을 치루고 나를 사서 자유케 해 주어야만 내가 자유를 얻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죽으셔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은 죽을 수 있는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와 동일한 출생 과정을 겪으셨고 우리와 똑 같은 사람으로 33년을 세상에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죄 없으신 그 분이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십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의 죄 값이 영원히 치러집니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 한 사람의 죽으심이 어떻게 지구상에 존재했고 또 존재할 모든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할 수 있나요? 이는 그가 사람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수 있다면 나도 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죄인으로서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해 죽을 뿐입니다. 그의 가치는 그 한사람의 가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의 피 한 방울이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생명보다 귀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온 세상의 죄를 사할 능력이 있습니다

 

둘째, 그의 죽으심이 어떻게 나의 죽음이 되어 나의 죄사함이 가능한 것인가요? 이는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서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그와 연합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됩니다. 믿음은 하나 됨, 연합입니다. 우리가 버스를 타면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잡습니다. 손잡이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잡음으로 우리는 손잡이와 연합, 곧 하나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됩니다. 그가 죽으신 순간 나도 죽고 그가 다시 살아나신 순간 우리도 다시 산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믿음으로 경험하는 신비입니다. 예수님! 그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10:9,10절은 말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다른 조건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과거를 살았던, 어떤 죄를 지었던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은 어차피 자기 의, 곧 선행을 기준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기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조건을 우리의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가 그를 믿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의 의를 나의 것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를 의로운 자로 여기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인해 믿음으로 말미암는 죄 사함과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 분을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즉시 받습니다. 즉시! 생각해보십시오. 죄로 인해 추하고 더럽고 욕된 인생을 살다가 영원한 불 심판에 들어갈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가 구주로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 안에 하늘의 새 생명을 주십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시며, 이 세상을 떠날 때에서 영원한 낙원으로 인도해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그를 믿는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죽음이 없습니다. 더 이상 죄의 세력이 나를 이기지 못합니다. 날마다 내면이 회복되어 예수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덧입어 갑니다. , 생명보다 귀한 죄 사함, 내게 주어진 이 영원한 생명! 이것이 어찌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분들은 늘 감사를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세상의 작은 현실적인 문제로 요동치는 나의 불신을 회개하고, 우리가 이미 받은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풍성한가를 알아 심령으로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는 크리스마스 때 뿐 아니라 1365일 매일,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다하는 날까지 언제나 기뻐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입니다. 우리에게 구주 예수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