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봄맞이 수양회 제 2 강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말씀/ 마태복음 13:24~52 요절/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안녕하십니까? 종로1부 김기현 목자입니다. 먼저 우리 종로센터 목자님들 앞에서 메시지를 전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제가 자격이 없지만, 은혜로 감당하고자 합니다. 잘 경청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감추인 보화와 같은 복음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숨겨진 복음의 가치를 배우고, 자기의 것을 팔아 복음의 가치를 사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살면서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어지러운 세상 속에 그 뜻을 발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계엄 상황을 맞이하며 국정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생각한다기보다 자기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 가운데 살면서, 높은 집값과 빈부격차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낮은 소득과 불안정한 미래로 인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아직 세상에 자리잡지 못한 청년들의 마음이 더 불안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더 이기적이고 더 독해져야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은 천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십니다. 불의한 세상 가운데 천국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말씀을 통해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 천국을 발견하고 누리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원수를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제자들에게 설명을 하셨습니다. 다 같이 24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24절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습니다. 이 좋은 씨가 자라서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2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25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예수님은 좋은 씨를 뿌리는 하나님과 대비되는 존재로 원수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39절의 예수님 말씀을 살펴보면 원수는 바로 사탄 마귀 입니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로서, 사탄 마귀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즉 사탄 마귀가 세상에 악을 뿌리며,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따르므로 세상에 온갖 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27절 종들이 와서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습니까 묻자, 28절 주인은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대답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악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생각에는 당장이라도 이스라엘이 개발한 아이언돔처럼 악한 이를 정밀타격해서 심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도 세상에 기가막힌 악한 소식들을 접할 때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저런 사람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모하시는가 의문을 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요즘에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자기 학생을 살해하여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밖에 매일 같이 이런 비극적인 사건들이 뉴스를 통해 올라옵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러시아의 푸틴이나 3대째 북한을 다스리는 김정은과 같은 악한 지도자를 볼때도 그렇습니다. 28절에서 종들도 우리 마음처럼 주인에게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여쭈어 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주인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2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29절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주인은 가라지를 뽑지 말고 가만히 두라고 하십니다. 주인은 인내심이 많은 분입니다. 당장에 가라지를 뽑지 않습니다. 또한 당장에 뽑는다면 그 옆의 곡식까지 다칠까 염려합니다. 저는 과거 독재국가에 대하여 하나님이 독재자를 없애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천년대에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이라크의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등 악독한 독재자들을 제거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세상이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삶이 더 나아지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습니다. 그 권력의 공백을 두고 더 큰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악을 심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라지를 뽑는 것이 아니라 알곡을 키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심판을 하시는 시기는 마지막 때입니다. 다 같이 30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30절 둘 다 추수할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여기서 추수할 때는 예수님의 설명을 보면, 39절에서 세상 끝입니다. 추수꾼은 천사들입니다. 불사르게 단으로 묶는다는 것은 41절, 42절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영원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는다는 의미입니다. 주인은 가라지를 당장에 심판을 하지 않고, 추수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주인은 자비하여서 가라지에게조차 회개할 시간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서 18장 32절에서 죽을 자의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나서에서 큰 죄악의 성읍인 니느웨조차도 회개하자 용서하시고 그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추수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가 되면 하나님은 더 이상 참지 않으시고 세상의 모든 악한 자를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불의가 가득한 것을 마치 하나님이 없는 증거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때가 되면 하나님은 더이상 악을 용인하신다, 세상에 무관심하시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당장에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결코 악을 용납하는 분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47절부터 50절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다는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49절, 50절에서 예수님은 세상 끝에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악인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하심을 오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알곡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2.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세상 악인에 대해 천국이 심판으로 나타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에게 천국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먼저 예수님은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셨습니다. 다 같이 31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예수님은 그 많은 씨 중에 천국을 특별히 겨자씨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겨자씨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다같이 32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32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예수님은 겨자씨가 모든 씨보다 작다고 하셨습니다. (사진) 그러나 자란 후에는 모든 풀보다 가장 크게 되어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진)한글로는 번역이 단지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된다고 나와있지만, NIV에는 the largest of garden plants라고 하여 the largest라는 최상급 표현이 쓰였습니다. 가장 크게 된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 의미는 첫째로 씨의 성장성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씨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심기면 성령의 은혜에 기초하여 내면이 끊임없이 성장을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이 씨가 마음에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평생 죄만 짓고 아무런 가치있는 것을 행할 줄 몰랐을 사람이 공의와 사랑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한 사람의 마음에 심겨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그 역사가 바로 천국입니다. 둘째로 천국은 그 주변에게 평안과 쉼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가지에 공중의 새들이 와서 깃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아가 높아서 자기를 위하고 남을 낮춥니다. 그래서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주변을 괴롭게 합니다. 저는 군대에 있을 때에 이런 사람의 본성을 경험하였습니다. 저는 소대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소대 내 후임들한테 일을 몰아주고 불필요한 통제를 가하는 악습을 없애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없애도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이 악습이 생겼습니다. 고참들이 자기들이 편하기 위해 자꾸만 후임의 사생활을 통제하려 하였습니다. 또 과거에 제가 개선을 해서 혜택을 받은 소대원들이 고참이 되자 그때는 오히려 후임이 편한 걸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본성으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는 인간관계가 존재하는 어느 곳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살기가 참~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마음에 가진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을 먼저 위합니다. 모든 영광을 자기가 아닌 하나님께 돌리고, 겸손히 이웃들을 먼저 섬깁니다. 가장 모범이 되는 분이 예수님 아닙니까? 참으로 이런 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평안합니다. 저는 최근 우리 종로UBF 이세들이 주축이 돼서 운영하는 축구모임에 나가고 있습니다. 이세들이 은혜로 저를 껴 주어서 제가 운동도 하고 교제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세들과 짧은 시간이지만 교제하며 느낀 점은 우리 형제들이 내면이 구김이 없고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표정이 항상 밝고 자신감이 있습니다. 저도 어느새 우리모임에 20년정도 꽤 오래 있었기 때문에 부모목자님들 라이프를 대부분 알고 있는데, 우리 목자님들이 겪었던 어두운 경험들이 상대적으로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맞나요? 물론 세상에는 치열한 경쟁과 더불어 사탄 마귀의 세력이 있고 우리 내면에도 죄성이 있기 때문에 다들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적어도 이세 형제들이 마음이 평안한 것은 이미 마음에 천국이 임한 우리 목자님들의 사랑과 섬김 덕분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맞겠죠? 제 아들 준성이와 현성이도 아주 평안합니다. (웃음) 기독교의 비범함은 다른 것보다 주변을 평안케 하는 성격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말씀이 심겨 천국이 자라고,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쉼을 주는 겨자씨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길 기도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천국을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누룩은 영어로 이스트라고 해서 빵을 만들 때에 밀가루에 넣는 효모입니다. (사진) 누룩은 아주 적은 양이지만, 밀가루 전체를 크게 부풀게 합니다. 이와 같이 복음은 아주 강력한 영향력과 확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그 양이 적더라도 누룩과 같은 강력함으로 끊임없이 성장하며 든든히 세워졌습니다. 역사적으로 아주 소수에 불과했던 기독교는 말씀과 같이 로마 전 지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온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불과 100여년 전에 우리나라에 심긴 복음도 성장하여 현재 기독교 인구가 천만명 가량 되었습니다. 우리가 느끼기에 마치 지금 복음역사가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 보여도 본질상 복음은 끊임없이 확장합니다.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믿고, 복음 전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천국을 가치의 측면에서 말씀하십니다. 다 같이 44, 45, 46절을 형제자매형제 순으로 읽겠습니다. 시작!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절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예수님은 천국을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에 비유하셨습니다.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는 어떤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매우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유하자면 로또1등과 같습니다. 그러나 보화와 값진 진주가 가진 세상 것과의 차이점은 바로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로또의 가치는 눈에 아주 잘 보입니다. 안볼려고 눈을 가려도 마음에서 떠오릅니다.. 제가 월곡1동주민센터에 근무하는데, 이번달에 저희 월곡시장 내 판매점에서 1등이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가면 플래카드가 붙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였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코인을 한다고 하는데, 어떤 분은 눈을 감아도 차트가 마음에 살아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가치는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과 같이 보화는 밭 밑에 감추어져 있고, 값진 진주는 여러 비스무리한 진주들 사이에 섞여 있습니다. 이것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인 가치관, 영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이 점이 참으로 어려운 점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복음이 정말 로또처럼 여겨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 말씀과 같이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예수님을 얻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되다보니까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자꾸 세상의 것을 돌아보고 팔까말까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남들이 사라고 억지로 떠밀어서 강매 비슷하게 속아서 충동구매 하듯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강조) 사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그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 천국은 대체 무엇입니까? 첫째로 천국은 구원의 은혜입니다. 벌써부터 어렵죠? 구원의 은혜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한 것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는 우리가 죄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런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대속하신 이 사실을 영접할 때 우리에게 임합니다. 나의 존재를 누르던 무거웠던 죄의 짐과 나를 사로잡고 있던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가벼워집니다. 저는 과거 제가 모르는 사이에 저에게 생긴 정욕과 음란과 이기심과 경쟁심의 죄로 인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는 특히 어렸을 때 음란물을 무분별하게 많이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생긴 죄악된 생각의 습관이 항상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또 게임을 많이 해서 현실을 도피하고 게임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마음에서 계속해서 죄들이 올라와서 고통받았습니다. 또한 20대 초에 어머니가 무속인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그런 어두운 영이 나의 인생을 지배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TV를 볼 때에 많은 신내림 받은 무속인들이 나오는데 그것이 제게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님께서 이런 나를 위해 죽으시고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가져가셨다는 것을 믿었을 때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더 이상 죄가 나의 미래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저를 가볍게 했습니다. 이밖에 저는 우리 교회에서 많은 목자님들의 간증을 들으며 다른 분에게 임한 구원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구원은 아무런 대가 없이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굳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모진 고난과 고통을 받으시고 흘리신 피의 값으로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는 곧 예수님의 생명의 가치이자, 복음의 가치요, 그 크기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둘째로 천국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배우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구원의 목적과 방향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사람이 스스로 성숙한 인격을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내면에서 올라오는 죄의 소욕과 세상이 주는 탐심의 유혹을 우리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서에는 말하기를 모든 자들에게 일반인 것은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잃어버린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나이의 많고 적음과 지위 고하와 성별을 막론하고 발견하는 바가 아닙니까? 본질상 죄인인 우리가 영화로우신 그리스도의 인격을 배우는 것 자체가 천사도 흠모하는 엄청난 특권입니다. 옛 구도자들은 올바른 마음의 선생을 찾기 위하여 온 세계를 헤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어졌고, 우리는 말씀과 성령을 따라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와 사랑과 오래참음을 비롯한 하늘에 속한 모든 신성한 성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정말 귀중하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저도 저에게 임한 은혜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는 교만하고 물질에 매여 전전긍긍하는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이런 제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예수님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께 속한 보배로운 성품들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제가 항상 감사하며 계속해서 주님을 배워가길 기도합니다. 셋째로 천국은 영생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1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은 우리가 죽은 후에 이 땅보다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럽고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만나뵐 하나님의 영광은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저절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말할 정도로 큽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죽고 갈 진짜 천국, 영생의 가치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통해 천국이 정말 영광스러운 곳임을 배우며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설령 생생하게 잘 모를지라도, 한번뿐인 우리 인생을 평생 죄만 짓다가 영원한 심판에 떨어지겠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를 배우며 많은 선한 자취를 남기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겠습니까? 두 길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숨겨 두고 기뻐하였다는 것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극상품의 진주를 발견한 상인도 혹시 다른 상인이 알아채고 살까봐 얼른 돌아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그 진주를 샀을 것입니다. 포인트는 그 가치를 알고 기뻐한 것입니다. 이 기쁨이 있다면 정말이지 파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이 기쁨이 있다면, 복음역사를 섬기든, 사업을 하든, 직장을 다니든, 공부를 하든, 집안일을 하든, 인간관계를 맺든, 어떤 형태의 일을 하든, 나의 만족과 영광이 아닌, 모두 주와 복음을 위해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이 없으면, 복음역사도 의지적으로 하게 되고, 세상적인 것들도 계속 뒤돌아보게 됩니다. 주의 역사를 섬기더라도 마지못해 섬기고, 주의 영광보다도 나의 영광과 만족을 위해 살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파는 행위를 하는 것보다도, 천국의 가치를 깊이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데 있어 반드시 예수님과 복음이 가지는 천국의 가치를 깊이 발견하므로 기쁨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저는 과거 이 복음의 가치를 온전히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복음의 가치를 온전하게 발견하지 못한 것은 복음을 세상 성공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복음의 은혜 역시 뭔가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저는 세상 생리를 생각할 때 결국에는 성공을 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별볼일 없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은 이후 세상에 도전하여 성공하는 이 성공스토리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은혜의 표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군대를 제대한 후에 하나님께서 도와만 주신다면 합격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행정고시를 도전했습니다. 저는 합격을 하면 제가 더 가치있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고 하나님을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보았던 수많은 믿음의 성공사례와는 다르게 실패했습니다. 공부기간 중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불확실한 장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믿더라도 이를 뛰어넘으리라는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이후 저는 제가 생각했던 세상적 성공이라는 길이 막히니, 저의 신앙을 점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장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제게 무슨 특별한 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일단은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서 무역일을 하면서 그냥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기도하는 가운데 동역자를 만나 은혜로 결혼을 하였고,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아버지 회사에서는 잘 해서 이번엔 돈을 잘 벌고자 했지만, 이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방향을 두고 아버지와 마찰 끝에 퇴사를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집에 공장이 있는 집이 잘 없잖아요? 잘해보고자 했는데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비록 늦었지만 생계를 위해서 서울시 9급공무원을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떨어지면 안되는 상황에서 은혜로 다음 해에 바로 합격을 했습니다. 21년부터 일을 했고 동역자도 도전을 해서 22년 사회복지직 시험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여태까지 뭐가 잘 안되었는데, 이것은 신기하게 저와 동역자가 연속으로 성공을 해서 생계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을 했습니다. 저는 가정이 있는 입장에서 이렇게 생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고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늦은 나이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정을 이루고 돈을 벌며 사는 와중에 신앙적으로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바로 복음은 그 자체가 천국으로, 밭에 감추인 보화이며, 극상품의 진주와 같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 자체로 완전하며, 더하거나 뺄 것이 없습니다. 복음의 가치는 세상에서의 성공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복음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제가 이 복음의 가치를 예전부터 모르던 바는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알고 있었고, 누가 물어보면 잘 설명을 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상의 성공에 매여서 이 은혜의 가치를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의 성공을 통해 복음의 가치가 완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제가 바라던 성공의 길이 막히자, 비로소 복음이 가진 고유의 가치들이 제게 큰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제게 마음에서 수시로 음란과 이기심과 비교의식, 나태와 안일과 같은 죄가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게 죄 사함의 은혜를 날마다 부어주시는 십자가의 은혜가 감사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배우므로 동역자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전 자라면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이런 것을 잘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또 부모님 사이에 부부싸움이 잦았습니다. 세상에 잘못된 가치관으로 가정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주님의 은혜로 가정을 사랑으로 섬기는 이 일을 잘 수행할 자세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물질주의와 쾌락주의의 세상에서 사탄은 많은 것으로 본질을 흐립니다. 우리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교만감이나 열등감으로 몰아넣어 살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물질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는 삶을 산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또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걱정을 정말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답을 얻지 못해 근심과 걱정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영생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죽음 이후도 걱정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제가 특정한 사건이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게 있는 자본주의적 성공관을 내려놓게 되면서, 기존에 알고 있는 복음의 은혜가 재해석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거듭된 실패로 인해 불평과 불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불평과 불만이 없어지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주의 역사도 한번 잘 섬기고자 하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모임에서 EBF 선생님을 새롭게 맡았습니다. 저는 우리 EBF 초등학생들이 교회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게 잘 섬겨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동료 직원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었습니다. 복음에 대해 잘 모르는 동료 직원분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제게 넉넉하진 않더라도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충분히 만족하게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좀 부족하더라도 이것이 마음의 장애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형편이 부족할 때에 더 기억에 남는 좋은 추억들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제가 앞으로도 성공과 실패의 세상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주시는 보화를 발견한 기쁨으로 이 세상을 살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밭에 감추인 보화요, 극상품의 진주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가치를 깊이 발견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사며, 그 복음 안에 담긴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들을 충만히 누리는 삶 살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