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출애굽기 제 6 강
그 피가 표적이 될지라
말씀/ 출애굽기 11:1-13:16 요절/ 출애굽기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지난 강의에서 하나님께서 애굽에 9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재앙을 더 내리십니다. 이는 지난 9가지와 비교 되지 않게 강한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밤중에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 애굽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을 다 치십니다. 이는 바로가 하나님의 반복된 경고에서 불구하고 끝까지 완악하여 순종하지 않음으로 생긴 결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재앙을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의 천사가 모든 장자를 칠 때에 문에 피가 발린 집은 넘어갑니다. 그날을 유월절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 유월절은 이후 이스라엘의 최대의 절기가 됩니다. 무엇보다 이 유월절 사건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장 현저한 예표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유월절이 무엇인가를 배우며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음의 은혜를 깊이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이 유월절과 무교절 규례를 여러 번 반복하고 있기에 몇 가지 포인트로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유월절 준비. 1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에 내리는 마지막 재앙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재앙이 내리면 완악한 바로도 이제 완전히 항복하고 이스라엘을 내보내게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마지막 재앙은 장자 재앙입니다. 하나님이 밤중에 애굽에 들어가십니다. 애굽에 있는 모든 장자를 치십니다.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치십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이 밤을 준비시키십니까? 12:3절입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들은 먼저 첫 달 10일에 어린 양을 취합니다. 만일 양이 없으면 염소를 취해도 됩니다. 취한다는 것은 양들 중에서 찜하여 집 안에 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양을 4일 동안 잘 간직하고 있다가 14일 해질 때에 그 양을 잡습니다. 그 죽임 당한 양의 피로 자기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릅니다. 설주는 문의 좌우 기둥을 말하고 인방은 설주를 잇는 위에 있는 가로목입니다. 집안에 바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천장이나 벽에 바르면 소용이 없습니다. 누구나 밖에서 볼 수 있게끔 페인트로 칠하듯 우슬초로 피를 발라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하십니까?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갑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를 바른 후에 집 안에서 무엇을 합니까? 그 죽임당한 양의 고기를 먹습니다. 어떻게 먹어야 하나요? 12:8을 보면 양고기를 불에 구워 먹어야 합니다. 날 거로 먹거나 삶아서 먹으면 안됩니다. 반드시 구워서 먹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신속히 요리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양고기를 먹을 때 무교병과 쓴 나물을 같이 먹습니다. 무교병이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말합니다. 우리가 빵을 만들 때 누룩이 들어가지 않으면 딱딱해서 먹기 힘듭니다. 맛도 없습니다. 그런 딱딱하고 맛이 없는 떡과 쓴 나물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도록 하실까요? 이는 백성들이 나중에 그 사건을 기념할 때마다 고생의 떡과 고생의 나물을 먹음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게 하려 함입니다.
또한 유월절 음식을 먹는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12:11입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히브리 사람들은 집에서는 보통 신발을 벗는 데 유월절을 먹을 때에는 신을 신어야 합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 합니다. 이는 완전한 여장을 꾸려 곧 떠나는 사람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의 명령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해야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세의 상징적인 의미는 신자는 이 땅에서 살되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장망성(將亡城)인 이 땅에 나그네로 사는 자들로 언제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라고 하십니다. 유월절은 원어로 '페사흐'인데 이는 '넘어간다' (passover)를 뜻합니다. 즉 죽음의 천사가 피 뭍은 이스라엘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그 위로 그냥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월절 의식은 어쩌다 보니 생겨난 유대인들의 명절이 아닙니다. 모세나 아론이 제정한 것도 아닙니다. 유월절은 여호와의 유월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밤. 드디어 여호와께서 장자 재앙을 실행하시는 밤이 왔습니다. 12:29,30절입니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않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에 들어가셨습니다. 애굽의 온 집을 다니시며 장자를 다 치셨습니다. 장자는 반드시 아이들 중에서 장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장자면 아버지도, 할아버지가 장자면 할아버지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신분에 차별이 없었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장자도,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나 가장 천한 신분인 종의 장자도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의 처음 난 것도 치셨습니다. 오직 그 집 문의 설주와 인방에 피가 있는 집만 넘어가셨습니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국적으로 큰 부르짖음이 있었습니다. 온 나라가 초상집이 된 것입니다.
다시는 모세를 부르지 않겠다던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합니다. 12:31절입니다.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바로가 완전히 백기를 들었습니다. 모세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줍니다. 더 나아가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그는 당초에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5:2) 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인이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내보냅니다. "제발 빨리 나가주세요! 빨리요!" 12:34입니다.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재촉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죽을 따로 싸서 짐가방에 넣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반죽 그릇채 옷에 싸서 어깨에 매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말했던대로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였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두말없이 달라는 대로 다 주었습니다. 빨리 나가만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 백성으로 애굽에서 도망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전리품을 얻어 승리한 하나님의 군대로 나오는 것이요 그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당당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12:37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라암셋은 고센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거기서 출애굽이 시작되었습니다. 고센 전역에 흩어져 살던 백성들이 숙곳에 집결하였습니다. 거기서 대략적인 수를 파악해보니 장정만도 육십만 가량이었습니다. 그외에도 수많은 잡족과 가축이 심히 많았습니다. 이들이 숙곳에 집결하여 드디어 군대와 같이 질서 정연하게 애굽을 나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애굽을 심판하신 그 밤에 출애굽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셋째, 유월절의 의미.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셨지만, 피가 발라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넘어가신 날을 유월절 (Passover)로 정하여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키라고 하십니다. 먼저 유월절이 있는 달을 한 해의 첫 달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본래 고대 애굽 사람들은 태양력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추수기인 가을에 첫 달이 시작되는 민간력을 쓰고 있었습니다. 곧 우리의 7월이 그들의 1월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유월절이 있는 달 (우리의 3,4월 경)을 첫 달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이스라엘에게 출애굽은 그 나라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지내온 세월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 자유인으로서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됩니다. 그때가 인생의 시작, 나라의 시작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출애굽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산 때부터 인생의 참 의미가 있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본문 11:1-13:16 을 보면, 12:29-42까지만 위에 설명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본문의 4배가 넘는 분량이 유월절과 무교절 규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대로 그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유월절, 무교절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백성들이 무엇을 알고 기억하길 원하셨을까요?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사건을 통해, 그들이 죽음에서 구원받은 이유는 오직 어린 양의 피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원하셨습니다. 죽음의 사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 들어가서 누가 선하고 누가 의로운 사람인가를 찾아내지 않았습니다. 악한 자를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그 집에 피만 발라져 있으면 그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 집 안에 있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 집을 넘어갔습니다. 그들이 죽음에서 구원 받은 것은 오직 어린 양의 피 때문이었습니다.
양의 피가 발린 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갑니다. 왜 넘어갈까요? 우리가 어떨 때 "그냥 넘어가!" 라고 말합니까? 이미 일이 끝났을 때 입니다. 피흘림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미 그 집에 누군가가 죽었기 때문에 죽음의 천사가 그 집에 들어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으로 부터 벗어나는 길은 다른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어떤 지위에 올라도 안 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도 안 됩니다. 돈이 많아도, 힘이 세도, 아름다워도 안 됩니다. 착해도 안 되고 스스로 고행을 하여도 안 됩니다. 오직 어린 양이 대신 죽어야 합니다. 그 피가 발라져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2) 유월절 양의 조건은 흠이 없고, 일 년 된, 수컷이어야 했습니다. 흠이 없다는 것은 눈먼 것이나 저는 것, 병든 것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유월절 양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 제물로 그 몸에 조금도 흠이나 결함이 없어야 됩니다. 일 년 된 양을 잡으라는 것은 1년 된 양이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수컷을 잡으라는 것은 애굽에 내린 10번째 재앙의 대상이 장자이므로 그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십니다. 그렇게 흠이 없는 양을 1월10일에 취하여 14일까지 간직합니다. 그러다가 14일 저녁 해 질 때에 그 양을 잡습니다. 10일에 양을 선택하여 14일까지 간직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무엇보다 양을 선택한 후 며칠을 보면서 그 양에게 흠이 없는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검사하도록 함이었습니다. 또한 그 어린 양을 바라보면서 자기가 죽어야 되는데 대신 그 양이 피흘려 죽는 대속의 의미를 깊이 새기도록 함이었습니다.
어린 양이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피흘리시는 사건을 예표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진정한 유월절 양으로서 오셨습니다. 사람이 드리는 그 어떤 제물도 부정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 독생자를 제물로 삼으신 그 양은 점없고 흠없는 완전한 어린 양이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 예수님이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벧전1:19).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여 심판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심판의 결과는 영원한 지옥 형벌입니다. 이 영원한 죽음의 문제를 안고 있는 모든 사람은, 이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결코 그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마치 육신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옆방의 거대한 용광로의 열기를 느끼듯이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를 합리화하고 죽으면 끝이라고 외쳐보지만 그 당할 지옥 형벌을 인하여 그 영혼은 날마다 절망의 심연으로 곤두박질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자화상입니다. 근본적으로 죄로 인한 이러한 불안과 공포는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소유하든, 누리든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죄와 심판,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죄는 그냥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죄지은 것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양심의 평화를 위해 억지로 잊고자 애를 쓰기도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여 죄를 상쇄하고자 애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자기가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죄문제는 울어도 안 되고 자기 몸을 해쳐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그 값을 치르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상 죄는 반드신 사망으로 심판하십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자기의 죄문제를 스스로 해결한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꼼짝달싹 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인간을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놀라운 지혜를 내셨습니다. 죄 없으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 양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가 온 인류의 죄를 뒤집어 쓰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면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의 피를 문 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집과 같이 여기시고 넘어가십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가 죄가 있는가 없는가를 묻지 않으십니다. 그 어린 양이 대신 죽었기에 넘어가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어린 양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있는 자를 죄 없는 자로 쳐 주시는 것, 불의한 자를 의롭다 칭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의 피를 믿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이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주셔서 죄사함의 확신을 주십니다. 실제적인 변화를 이루어가십니다. 그 사람 안에서 구원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영죽을 우리를 오직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 하나를 보시고 죄사함을 주셨습니다. 영생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인하여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죄 없으신 성자 하나님의 피이므로 그 효력이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때 우리의 행위를 보시지 않고, 우리 마음에 피가 발라졌는가 아닌가만 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믿으면 그 피가 우리에게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른 것과 같은 표적이 되어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넘어가게 하십니다. 죄악된 우리에게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사 예수님의 피뿌림을 받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이를 늘 기억하는 가운데 언제나 주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넷째, 무교절을 지키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켜야 합니다. 유월절, 즉 1월14일 밤에는 죽임당한 어린 양의 고기와 함께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습니다. 그리고 그후 일주일 동안 곧 무교절 기간에는 집안의 모든 누룩을 제거합니다. 그 기간에 무교병을 먹으며 지내고 그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성회로 지킵니다. 성회로 지킨다는 것은 거룩한 날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무교절을 대대로 지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대대에 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2:43-51절은 유월절 규례의 보충 내용으로 이방인들이 유월절에 참여하고자 하면 할례를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 중 자유인이나 종이나 누구든지 할례를 받으면 유월절 식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영적공동체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신약 시대에 세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마음에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의 유월절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기회는 유대인에게나 이방인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13장은 장자를 바칠 것(1-2,11-16)과 무교절에 관한 규례(3-10)입니다. 13:2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장자나 짐승의 초태생은 애굽에서 모두 죽었어야 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우리는 실상 하나님의 소유입니다.(사43:1)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19-20에서 말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무엇보다 그들은 유월절을 대대로 기념하여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그 절기의 의미를 가르쳐야 합니다. 본문에는 유월절 또는 무교절을 지키라, 기념하라는 말씀이 여러번 반복됩니다. 유월절 절기는 출애굽 당시에는 가족 절기였지만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성전을 건축한 다음에는 성전절기로 발전하였고 나중에 수백만이 모이는 이스라엘 최대의 국가절기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의 최대의 의미는 그 미래 예언적인 것에 있습니다. 이는 세상 만민을 위해 죽임 당하신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죄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항상 기념하며 기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월절을 대대로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그리스도 공동체는 성찬 의식을 통하여 교회 내에서 그 기념식을 행합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이것에서 더 나가야 합니다. 이는 죄의 노예 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감사하며 자유의 백성으로 살며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삶, 다른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데 쓰임 받는 삶을 사는 것이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어린 양 예수님을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을 믿는 자를 죄 없다 하십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 길을 오직 하나입니다. 나를 위해 대신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대속의 은혜를 주신 이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감사하며 적극적으로 우리의 삶에서 유월절의 참된 정신을 실천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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