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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3년 사도행전12강 "이방의 빛 바울" (사도행전 13:1-52)2023-06-05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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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 12

 

이방의 빛 바울

 

말씀 / 사도행전 13:1-52

요절 / 사도행전 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부는 1-12장까지로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개척 역사입니다. 2부는 13장부터 끝까지로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유럽 및 로마 개척 역사에 관한 기록입니다. 여기에는 사도 바울의 3차에 걸친 전도여행과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잡혀가서 복음을 증언하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장과, 다음 장 14장은 제1차 전도여행에 관한 기록입니다. 1차 전도여행은 약 3년이 걸렸습니다. 본문에서 안디옥교회는 성령의 방향에 순종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첫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을 이방의 빛으로 쓰셔서 땅 끝까지 복음 전파를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길 기도합니다.

 

1. 말씀 위에 세운 안디옥 교회

1절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 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지난 강의에서 본 바와 같이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에서 합심 동역하여 1년간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안디옥 교회가 성장하게 하셨고 여러 성경선생들을 세워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입니다. 이들의 지도자였던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으로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니게르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피부가 검었던 것으로 봅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북아프리카 출신이었습니다. 마나엔은 헤롯의 젖 동생이었습니다. 여기의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 안디바를 말하는데 마나엔은 그 헤롯왕의 친척으로 왕족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울은 이름이 맨 마지막에 기록되었는데 그 중에 나이가 제일 젊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가말리엘에게 교육을 받은 정통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이상의 안디옥의 교사들은 인종이 다르고 출신 배경이 달랐습니다. 문화가 다르고 교육 정도도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안디옥 교회를 섬기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되었습니다. 합심 동역하여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안디옥 교회를 축복하셨습니다. 안디옥 신자들은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렸습니다. 신생교회였지만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구제헌금을 보내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예전에 맛보지 못했던 큰 은혜를 누렸습니다. 죄로부터 자유함과 하늘에서 오는 평강을 누렸습니다. 안디옥교회 여름수양회를 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인생소감을 발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들은 한편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을지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 전체가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성령님의 방향을 구했습니다.

 

그랬을 때 성령께서 어떤 방향을 주십니까? 2절입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성령님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하셨습니다. , 이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영적인 아버지입니다. 설립자와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은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직접 초빙해온 유능한 학자요 성경선생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말씀사역을 통해 안디옥교회에 큰 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이 둘을 따로 세우라, 내가 새 일을 맡기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세계선교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꾼들을 파송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신자들이 이에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3절을 보면 안디옥 성도들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냅니다. 안수한다는 것은 두 사람을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그들의 선교 역사를 위해 뜨거운 기도 지원을 하겠다는 결단의 표시였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방향에 순종하여 선교사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진 안디옥교회의 건강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신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세웠을 때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희생적으로 구제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교회를 성장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봉사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우리 교회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을 겸손히 배우고 마음으로 순종하는 신자들이 되도록 섬겨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섬길 때 여러 가지 좋은 계획과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민쎈타 같은 편리한 부대시설을 제공하거나 사교클럽 같은 소모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경영학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배치하고 공동체를 운용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우리나라에서 교회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강남과 같이 아파트 단지가 큰 곳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 둘째는 치유 사역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그런 방식을 따르기도 합니다. 또 그런 것이 일시적으로는 잘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반드시 말씀으로 세우고 말씀에 따라 섬겨야 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 외의 인간적인 방식들은 반드시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돕는 일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 없이 시간만 많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를 볼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는 교회가 가장 건강한 교회가 됨을 믿습니다.

 

영국의 옥스포드를 섬기는 사라 지은 선교사님 엊그제 제게 보내온 소식입니다. "선교사님, 기도 제목 업데이트 드립니다. 어제는 타메라, 에스매 자매님들과 만나 말씀공부하고 교제했습니다. 둘 다 영문과 출신인데 에스매 자매님은 친구 둘과 말씀 공부합니다. 조안나 자매님도 주니어 닥터로 믿음을 잘 지키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티오 형제님도 1:1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재이 자매님이 믿음으로 박사 졸업 후 UCL 포닥이 되었습니다. 같이 UCL 기도의 단을 쌓고 있습니다. 계속 기도 부탁드립니다!" 옥스포드는 작은 대학도시입니다. 이곳은 교수가 드러내어 복음역사를 섬기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소문이 나면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로 교수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브라함, 사라 지은 선교사님들은 조용조용히 양들의 마음에 일대일로 꾸준히 말씀을 심고 있습니다. 수년간 그와 같이 한 결과, 명문 옥스포드 졸업생 양들 중에 목자가 되어 다른 양들을 가르치고, 런던 UCL 대학으로 이동하여 박사후 과정을 하며 동역자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저는 일대일을 통한 제자양성의 폭발적인 힘을 믿고 있습니다. 겉으로 들렐 필요 없습니다. 허리를 낮추어 사람 한 사람을 말씀으로 돕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 제자양성을 통해 복음이 장차 온 세상을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임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을 깊이 공부하고 순종함으로 지금까지 성령님께 귀하게 쓰임 받아 왔습니다. 우리가 계속하여 이런 귀한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가길 기도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각자가 늘 말씀을 가까이 하며 말씀에 기초하여 우리 인생관과 가치관을 세워나가길 기도합니다. 우리 모임이 계속하여 말씀을 삶에서 살아내는 교회, 말씀이 주는 은혜로 기쁨으로 섬기는 교회,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2. 전도는 영적 싸움입니다.

4,5절입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에 갔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항구는 구브로의 동쪽에 있는 살라미였습니다. 살라미는 바나바의 고향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고 회당도 여러 개 있었습니다. 두 사도는 그 곳에 이르러 여러 회당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후 그들은 구브로 섬을 동에서 서로 가로 질러 바보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바예수'라 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예수' '예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이름은엘루마였는데, 주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자기를 예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거짓 선지자로 궁중마술사였습니다. 스스로 하늘의 계시자로 행세하면서 사람들 위에 군림했습니다. 그런데 구브로 총독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나바와 사울을 초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첫 선교지의 총독이 말씀을 듣고자 한다니 심히 기뻤습니다. 그에게 가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듣는 총독의 마음에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8절입니다.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두 사도가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하면 엘루마는 총독에게 귓속말로 말했습니다. "예수는 총독 빌라도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았어요.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었지요." 두 사도가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어요"라고 말하면, 엘루마는 총독에게 "예수가 부활한 것이 아니고, 그와 닮은 동생이 나타난 것이래요." 하였습니다. 엘루마가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도록 힘을 썼습니다. 말씀을 받지 못하도록 애를 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총독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자기의 모든 거짓이 탄로가 나기 때문입니다. 궁중주술사로서의 일자리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사도는 그 마술사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낮에 열심히 말씀을 전할 때는 총독이 은혜를 많이 받은 것 같았는데, 그 다음날 보면 총독의 얼굴이 딱딱해져 있었습니다.

 

이에 사울은 무엇을 합니까? 저자 누가는 이 부분에서부터 사울의 이름을 바울로 기록합니다. 이는 바울의 영적 권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방 선교에는 사울이라는 그의 히브리식 이름보다,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이 자연스럽고 효과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마술사를 주목하고 말합니다. 10,11a절입니다.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바울은 그를 무섭게 책망합니다. ",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 마귀의 자식,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진리의 가르침을 고의로 왜곡하는 그의 악독함을 꾸짖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의 이름으로 그를 저주합니다.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그러자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의 눈을 덮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여 더듬기 시작하였습니다. ", , 누가 나를 좀 잡아줘!" 비틀거리며 방향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를 본 총독 서기오 바울은 놀라워하였습니다. 영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자기의 마술사가 바울의 말 한마디에 졸지에 눈이 먼 것이었습니다. 이 능력은 마술이 아니라 진짜였습니다. 총독은 바울의 말을 통해 예수님을 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승리였습니다.

 

이상에서 배울 점이 무엇입니까? 복음전파는 영적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들이 믿으면 좋고 안 믿으면 말고가 아닙니다. 바울은 총독 한 사람을 돕기 위해 마귀의 세력과 싸웠습니다. 씨름 선수가 샅바를 잡고 넘어뜨리고자 온 힘을 다하듯 영적인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습니다. 마귀를 거꾸러뜨리고 한 영혼을 구해 내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에게 말씀을 심고, 믿음을 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탄이 그 영혼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온갖 속임수와 간계로 사람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힘써 복음을 전해도 마귀가 그 마음을 혼미케 합니다. 고후4:4a는 말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이 세상의 신, 곧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는 마술사가 총독에게 한 것처럼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합니다. 말씀을 영접하지 못하도록 간교하게 훼방합니다. 우리의 복음전파 역사는 이러한 마귀와의 영적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겉모양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는 내적 스피릿이 중요합니다. 복음역사는 영적전쟁이지만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십니다. 반드시 우리가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확신으로 마귀와 싸우는 영적전쟁을 용감하게 치러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3. 복음의 핵심

13절입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바울 일행은 구브로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한 후, 배를 타고 건너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마가라 하는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마가가 왜 그들을 떠났는지 그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여하튼 그가 떠난 후에 바울과 바나바는 힘이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도여행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획대로 버가를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렀습니다. 버가에서 비시디안 안디옥으로 가는 길은 쉬운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3천 미터가 넘는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중에 갈라디아 4:13,1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 갈 때 자기의 육체의 약함 곧 질병으로 인해 갔다고 말합니다. 그에게는 사람들이 업신여길 수 있는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도여행을 위해 홍수와 도적, 풍토병 등의 많은 위험을 겪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하여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15절입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회당장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고 청했습니다. 이에 바울이 일어나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본문 16-37절에서 다음을 말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오시리라 약속된 메시아시다. 둘째,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하였다. 셋째,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으며 그의 부활은 이미 다윗이 시편에 예언한 바 있다고 증언합니다. 이와 같이 길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거론하며 설명한 것은 청중이 조상들의 역사를 잘 아는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뒤에 나오듯이 바울은 회당이 없는 이방 지역에서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의 설교의 결론은 38,39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여기서 키워드는 "죄 사함"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입니다.

 

첫째, 죄 사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문제는 한 마디로 죄 문제입니다. 죄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고의적으로 불순종함으로 반역하였습니다. 죄를 범한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죄를 용납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사람들은 이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필사적인 노력을 하며 다양한 방법을 찾아왔습니다. 동서양의 모든 철학이나 수많은 종교가 다 그런 시도의 방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시도는 철저히 실패하였습니다. 이는 죄가 하나님을 심히 불쾌하게 하고 거역한 것이기에, 하나님만이 해결책을 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온 우주가 떠날 만한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의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공의가 만족되신 하나님은 놀라운 죄 사함의 길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형제들이 알 것, 곧 예수님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38)

 

둘째, 의롭다 하심. 더 나아가 바울은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라고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자기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 그의 부활은 예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1:4는 말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곧 의로운 자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의 부활을 믿는 자는 그의 의를 전가 받습니다. 로마서 4:25절도 말합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래서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로 결합되어 이를 믿는 신자의 죄 사함과 칭의의 온전한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는 온전한 죄 사함과 의로움을 얻어, 거듭나게 되었고 하늘의 산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자 했습니다. 유대인들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구원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이 땅에서의 선행을 요구합니다. 이런 점에서 믿음으로 죄 사함과 의로움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 외의 인간의 모든 시도는 율법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시도는 철저히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인간의 율법의 행위로 결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늪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 결단코 나올 수 없습니다. 오직 외적인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도움이 바로 구원의 복음입니다.

 

요즘 과학기술이 눈부십니다. AI (인공지능), GPT, 로봇시대가 성큼 다가 왔습니다. Deep learning 기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장차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도 실제적인 가능성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환경파괴, 전염병으로 인한 위협, 엉뚱한 한 독재자가 온 인류를 파괴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전쟁이나 전염병이 사람을 더 많이 죽게 하지는 않습니다. 죄가 모든 사람을 죽게 합니다. 사람의 근본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죄 사함을 받고 의로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 입니다. 그에 대한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냐 멸망이냐 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짧은 이 세상의 삶이 끝나면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40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우리는 세상의 율법주의의 덫에 빠져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배우고 깨닫고 믿게 되어 죄 사함과 의로움을 얻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미 주님의 복음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니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언제 세상을 떠나도 감사할 뿐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기가 막힌 인생을 살고 있고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영혼을 구원하는 일 뿐이다. 이 일에 모든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절박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며 어찌하든 복음을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4. 이방의 빛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42절입니다.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았습니다. 두 사도는 그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면했습니다(43). 다음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45절입니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무리를 본 유대인들은 시기심이 타올랐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말을 반박하고 비방했습니다. 이 때 사도들은 어떤 방향을 잡았습니까? 46,47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이사야서 말씀에 기초하여 보았습니다(49:6). 물론 이사야서에 나타나는 '이방의 빛'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메시야의 역사는 결국 복음의 종들을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바울 자신이 이방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의 빛으로 쓰고자 하심을 영접하고, 이방인 사역에 중점을 두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벧후3:9) 이를 위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기 원하십니다. 이방은 빛이 없는 세상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어둡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이방의 빛으로 삼으사 이들에게 가서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을 비추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박해가 기다리는 이방 지역에 기꺼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이방의 빛이 되기 원하십니다. 세상이 밝아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어둡습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이방의 빛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둠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자기들이 어둠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봅시다. 빛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도 어둠에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어둠에 있던 때 우리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한 것 밖에 없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육신의 욕망대로 살아 부끄럽고 아쉬움만이 남는 삶이 아니었습니까? 빛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와 같이 살아갑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건짐 받은 것을 감사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다가오는 여름 수양회에 어둠 가운데 있는 양들을 초청하여 예수님의 빛을 보도록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이방의 빛으로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생명의 빛을 비추는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