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송년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
말씀 시편 50:1-23 요절 시편 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긴 파트는 어디일까요? 시편입니다. 그럼 시편은 몇 편 까지 있나요? 150편입니다. 시편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저는 시편 1편, 23편이 생각이 납니다. 시편의 대부분은 감사와 찬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누가 시편의 저자 입니까? 다윗입니까? 다윗의 찬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편의 150편 중에서 다윗이 쓴 시편은 73편이나 됩니다. 모든 시편을 다윗이 쓴 것은 아닙니다. 오늘 시편 50편은 누가 썼을까요? ‘아삽’이 썼습니다. 아삽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전의 찬양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아삽의 가족은 성소의 예배를 위해 음악을 책임을 맡았던 제사장이나 레위인이었습니다(대하 5:12). 이들은 무엇을 많이 볼 수 있었나요? 제사를 통해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광경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임의로 제사를 지내다가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는 끔직한 경우도 보았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가? 깊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1장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50:1~6)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절을 읽겠습니다.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히브리어로 엘로힘입니다. 하나님은 동으로부터 서쪽까지 모든 나라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나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하나님은 시온에 임하시어 빛을 비추셨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입니다.예루살렘은 왜 아름답습니까? 가보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보고 들어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빛의 세상이며 온전히 아름다운 곳이 됩니다.
그럼 우리나라 캠퍼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는 어딜까요? 저의 모교인 국민대학교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모교의 캠퍼스가 예수님의 말씀이 임하기 전에는 별로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캠퍼스에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제 내면에도 말씀이 뿌려졌습니다. 저의 어두운 내면도 변화되었습니다. 복음이 있는 곳은 아름답고 빛나는 곳으로 변화 됩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나타나십니까? 3절을 읽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은 불과 광풍으로 강하게 임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알도록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를 두렵고 떨림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4,5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누구를 세우십니까?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신 것입니다.(신32:1, 사1:2, 미6:1,2) 자기 백성의 모든 행동을 하늘에서 땅에서 지켜보신 분이시기 때문에 공의를 선포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재판장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모으십니다. 성도들은 누구입니까?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입니다. 즉,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럼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도들은 세상의 법과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동시에 그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성도입니다. 모세의 시내산 언약을 시작하여 지금 성경 말씀까지 다 지키고 따라야 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말씀을 지키고 살아왔는지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앞에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온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요셉을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창39:7 보면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그러나 요셉은 단호하였습니다. 어떻게 이 유혹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9b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하나님 앞에 살 때 우리는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모세의 언약부터 지금의 우리의 삶을 하늘에서 다 보신 분이십니다. 시편 11편 4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으며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을 지켜보시며 그들의 마음과 행위를 감찰하십니다. 악인들의 음모와 의인들의 고난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내면도 감찰하시고 공의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앞에 살 때 우리는 진정한 보호를 받고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구 앞에 살고 있습니까?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 학교에서는 교수님의 눈치 아래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언약 백성의 자부심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감찰하시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 하려고 하나요? 죄를 심판하시려는 걸까요?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도록 도와주시고자 함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죄의 유혹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삶은 유한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에 죄로 병든 모습이 아니라 맑고 아름답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맞이하고자 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종으로 판결받도록 하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고 생명의 삶을 살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공의의 하나님을 생각하면 어찌 인생을 조심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주와 복음을 위해 열심히 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세상 재물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2장을 보겠습니다.
제2장 모든 재물의 주인되신 하나님(7-13)
7절을 읽겠습니다.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이로다. 네 하나님은 바로 너를 지키고 보호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보호하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나를 지키시고 구원하시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은 제사를 통해서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재물이 적다고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번제를 항상 받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제의 제사를 드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번제는 어떤 제사입니까? 태워서 향기를 올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를 위한 제물로는 무엇을 드렸습니까? 다양한 짐승을 드렸습니다. 주로 소나 숫양이나 숫염소 등 모두 흠이 없는 수컷으로 드려졌습니다. 비둘기도 허용되었습니다. 이는 각자의 형편에 맞게 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예배자인 백성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짐승을 가져와서 잡아서 죽이고,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짐승의 더러운 부위를 깨끗하게 하고 각을 떴습니다. 제사장은 무엇을 하였나요?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고기를 불에 태웠습니다. 불의 태운 향기를 올림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제사장이 피를 뿌림으로 예배자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짐승이 대신 지게 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짐승을 잡는 일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죽이는 것은요? 게다가 각을 뜨는 것은? 갈수록 어렵습니다.
왜 하나님은 제사의 율법을 어렵게 행하도록 하신 것일까요? 죄의 고통을 알고 고통의 시간을 통해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깊이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택하신 백성들을 언약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제사를 통해 정결케 되어 하나님앞에 거룩한 삶을 살도록 보호해 주시고자 하십니다.
9~13절을 읽겠습니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당시 고대인들은 제사를 드린 재물들을 신들이 먹고살기 때문에 신들에게 귀한 재물을 드리고 많이 드릴 때 신들이 살아가고 기뻐하고 축복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미신적인 헛된 것입니다. 세상의 것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산림의 짐승도 뭇산의 가축도, 산의 새도, 들의 짐승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백성에게 재물을 빼앗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제물을 드시지 않습니다.
세상 만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물질의 주인이십니다. 내가 수고하였다고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기에 우리의 삶도 유지되고 건강도 유지하고, 물질도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재물도 건강도 몸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잘 관리하고 다스려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말씀하십니다. 재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로 드리는 제사는 어떤 제사입니까? 3장을 보겠습니다. 제3장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받으시는 하나님(14~23)
14~15절을 읽겠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의 종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까? 제사을 통해 피흘림의 대속으로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9:22을 말합니다.“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우리가 죄의 종으로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갚아야 합니다. 제사를 통하여 환난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부르짖고 해결받아야 합니다. 시편 40:13절은 말합니다.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부르짖는 기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무엘 상 1장을 보면 주께 부르짖는 한나가 나옵니다. 한나는 엘가나의 아내입니다. 엘가나는 두 아내는 브닌나와 한나입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때마나 아이가 있는 브닌나가 한나를 심히 격분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머리채를 잡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한나는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의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아픔을 해결해 주시고 환난에서 건져내 주신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한나는 서원기도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자신의 어려움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뜨겁게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의 대학시절은 중고시절 테스트한 IQ가 평균보다 낮아 학업은 일찍 포기하였습니다. 무능력한 자신을 원망하고 내면은 인생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으로 절망하였습니다. 외적으로도 키도 작아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별것 아닌 일에도 상처받고 분노가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죄의 종으로 살며 괴성을 지르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하여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되고 저의 내면에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저의 간절한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장학생으로 졸업할 뿐아니라 박사학위도 주셨습니다. 기업인이 되게 하시고 의약합성 분야에 전문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번 12월 26일에 저희 회사가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상장기업이 되게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고전 15:10절 바울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아니요 오직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제사를 통해 나에게 은총 베푸신 하나님! 하나님이 나에게 이루어 주신 전능하신 손길을 고백하고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영화롭께 하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자신의 문제를 주님께 들고 나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손길을 깊이 체험하고 있습니까? 반복된 제사로 인하여 감사함이 없지는 않습니까? 올 한해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배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립니다. 예배를 통하여 구원의 복음과 도우심의 손길을 고백하는 한 해가 되었음을 감사찬송드립니다. 올 한 해, 2024년도 변함없이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예배를 통해 기도를 들으시는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 때 어떻게 살게 됩니까? 악인이 됩니다. 16~20절을 읽겠습니다.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은 네 뒤로 던지며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내어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본문의 악인은 누구입니까? 악인은 이중성을 가진자로 말할 수 있습니다. 언약도 전하고 율법도 전합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여전히 죄악된 삶을 살고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뒤로 던지며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즉 앞과 뒤가 다른 사람입니다. 이는 목자인 우리가 깨어 조심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또 악인은 특징이 있습니다. 늘 불평하고 불만족하여 입을 악에게 내어 줍니다. 말로 비방을 잘합니다. 동역자들의 허물 만 봅니다. 가짜뉴스를 만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허물없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허물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악인들은 자신의 모습에는 조용합니다. 그리고 은밀히 죄를 즐깁니다. 자신의 죄는 합리화하고 동역자들을 비방하고 교회를 비방합니다.
21절을 읽겠습니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 도다.” 그러나 나중에는 죄가 다 들어나 심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됩니다. 악인의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22,23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이를 생각해야 합니다. 은혜를 잊어버릴 때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리멤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은혜를 기억할 때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약의 백성들을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제사를 통해 다시 기회를 주시고 회개함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결론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신약시대에는 예배로 이어집니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주시고 죄의 종으로 살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요3:16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우리를 멸망의 대상에서 영생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재물도 감사함에 감격하여 드릴 수 있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는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5년도 예배를 통하여 생명을 얻는 기쁨과 기도를 들으시며 위로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 연속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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