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종로 봄맞이 수양회 2강 (2.20)
여호와를 사랑하라
말씀/신 6:1-9
요절/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말씀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모세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모세 앞에 서 있는 백성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복하여 정착할
가나안은 풍요롭지만 우상이 가득한
곳입니다. 모세의 고민은 이것입니다. “이 세대가 거룩한
나라 제사장 백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도 어떻게 보면 이런 모세의 고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K-팝,드라마,푸드등
전세계적으로 Korea의 인기와 위상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풍요속에 빈곤이라는 말처럼 영적으로는 이전보다 더 가난해지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모임은 다음
세대에게 영적계승을 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우리 개인과 모임에 주는 영적 방향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풍요와 우상과 죄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장구히 번영하며 승리할
수 있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양식의 맨 아래
1절을 보십시오.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명령’은 십계명과 같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말씀입니다. ‘규례’는 제사, 절기, 음식, 정결과
같은 각종 의식의 세부 규칙들입니다. ‘법도’는 공정한 재판, 고아와 과부 같은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돌보는 것과 같은 사회·도덕적
질서입니다. 한마디로 명령,규례,법도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말씀입니다. 모세는 이것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하라고 말합니다.
“아니 지금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을 앞두고 있고, 농사 한번 지어본 경험도 없는데 말씀보다 전쟁준비와 농사기술을 배워야 하지 않나요? “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청년들 중에도 명령·규례·법도 같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취업에 뭐가 더 유익할까?”,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돈을 모을까?” 이런 것이 더 관심있는 분 있으시죠? 물론 현실 문제 해결도 중요합니다. 당연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 백성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다릅니다.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합니다. 먼저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지금 그것을 강조합니다. 최우선으로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세대가 왜 실패했을까요? 무능력해서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말씀을 지키고 행할 때 하나님은 전쟁의 승리와 농사의 축복을 주십니다.
더 나아가 그 땅에서 장구히 번영을 약속하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여기서 ‘날이 장구한다’ ‘크게
번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 산다, 수가 늘어난다는
외적인 축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왜 그것이 축복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마음을 다하여 그 분을 섬기는
것’입니다(신10:12)
심판을 두려워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삶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축복일까요?
영어,중국어,일어에 능통하며
직장에서도 인정 받으며 지금 고위공직자로 30년째 일하시는 한 목자님이 계십니다. 말씀공부 시간에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돌아보니 30년 공무원 생활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지금의 삶이 가장 행복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꿈 꾸는 고위공직자로 얼마든지 편하게 누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삶이 더 행복하다니! 이를 볼 때, 진정한 행복은 외적인 조건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키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가나안에서 잘 먹고 잘 산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모세도 이것을 알기에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까지 평생토록 이를 행하라고 강조하여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알면서도 실제로 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졸립다’는
말이 있죠. 이는 사람이 환경에 영향을 쉽게 받는 다는 의미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백성은 어떠했습니까? 낮엔 덥고, 밤엔 춥고, 배고픔과 목마름이 항상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죠. 그래서
하늘만 쳐다보며 하나님의 도우심만 구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들어갈 가나안은 어떻습니까? 시내와 분천과 샘이 곳곳에 흐르고, 밀과 보리,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 열매가 사시사철 열립니다. 그 땅의
돌은 철이고 산에서는 동이 나옵니다. 먹을 것이 모자람이 없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살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춘 ‘파라다이스’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나안은 축복의 땅이면서 동시에 믿음을 잃기 쉬운
땅이기도 합니다. 풍요는 신앙을 강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그 땅에는 애굽 못지않게 수많은 우상을 섬기는 민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유혹합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바알에게 절하면 됩니다~” “아이를 많이 낳으려면 아스다롯에게 제물을 바치세요~” 이 유혹은 단순히 다른 신을 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 다른 길이 더 빠르고 더 현실적이다’라는 유혹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도, 막상 가나안에 들어가면 지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몰라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알지만 지킬 힘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지켜라”라는 명령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세도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지난 40년 광야생활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4~5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모든 것이 쉬워집니다. 저는 연년생 아들을 키우다 보니 고3 수험생 부모의 고충을 그대로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도 아내가 훨씬 더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올해 입시는 어느 해보다 어렵고 치열했습니다. 수시로 지원했던
학교들이 모두 떨어지고, 이제 정시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갑자기 새벽 5시에 일어나 동네 교회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을
졸이며, “꼴등이라도 좋으니 합격만 하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며 저는 깊이 느꼈습니다. ‘아, 어머니의 사랑은 정말 대단하구나.’ 사랑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힘든 것도 기쁨이 되고, 사랑하면 희생도 당연해 집니다. 여러분, 누가 아내에게 새벽기도를 가라고 명령했습니까? 법이 있어서 간 것이 아닙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모세가 말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사랑하라고
하면 마음은 움직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금방 흐려집니다. 왜
일까요? 사랑은 감정만으로 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 대상이 나에게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단순히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선언합니다.
4절을 다시한번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들으라’는 원어로
‘쉐마’로써 듣고 이해하여 행동하는 전 과정을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앞으로 하는 말을 잘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순종하여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의 앞날을 걱정할 때 ‘다윗아, 다니엘아 제발 좀 엄마말좀 들어라’ 하는 것처럼 이런 부모의 심정으로 지금 모세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들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유일한 여호와’ 이 사실이 말해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이 말은 단순히 신의 숫자가 하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섬김의 대상이 오직 한 분이라는 선언입니다. 이사야 45:5절은
말합니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시며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어제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관계를 맺고, 삶에서 역사 속에서 살아 활동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창조주, 생명의 주인, 역사의 주관자라고 부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이적과
기사로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광야에서 먹이시고 보호하시며,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모세는 이러한 특별한 사랑을 보이신 이유를 신4:3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스라엘만 머물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요 3:16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이
장차 들어갈 가나안 땅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농경사회인 그곳에서 사람들은 농사의 신 ‘바알’ 다산의 신 ‘아스다롯’ 전쟁의 신 ‘몰렉’을
숭배했습니다. 이들을 섬길 때 풍요와 번영과 평화를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분만 섬기며
찬양하며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유일하신 하나님을 어떤 자세로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5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은 우리 인격과 생각의
중심입니다. 우리의 판단과 선택이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뜻은
영혼, 곧 생명으로서 육체와 정신을 포함한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힘은
나의 능력과 시간, 물질과 에너지, 곧 내가 가진 모든 삶의
자원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로만 혹은 순간의 감정에 기초하여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가장 잘 보여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시며,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한때 교회를 핍박자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열심으로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을 드렸습니다. 죽음도 이런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90%, 99%도 아닌 100% 다하여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어쩌면 이것이 배타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렇게 요구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너무 쉽게 하나님에게서 돌아서 우상에게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제는 신앙이 잘 자라다가 한 자매에게 마음을 뺏겨 방황하였습니다. 그는
아마 내가 99%는 하나님을 사랑하니 1% 정도야 괜찮겠지
생각하며 적당히 타협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육신의 소욕, 안목의
정욕, 안일을 즐기며 무기력하게 하루 하루 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욕외에도 우리의 마음을 뺏는 것이 많습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대학생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습관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시 돈이 최고야.”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인데
벌써 세상의 가치관이 마음 깊이 자리 잡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돈’만큼 우리의 마음을 빠르게 사로잡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태복음 6:24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러한 재물 뿐 아니라 SNS,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들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멀리하게 만듭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적당히’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적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우상 숭배를 하는 것과 같이 보십니다. 겉으로
우상을 숭배하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데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른 데 빼앗기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잠언 4:23절은
말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나 한 사람의 생명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이 살아나고, 캠퍼스의 영혼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까?
6-9절을 보십시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먼저,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 출발은 감정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지 읽는 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이 내 것이 될 때까지 순종하며 살아보는 것입니다. 어제 배웠던 모세의 믿음과 결단을 실제 삶에서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한 걸음 내딛어 볼 때,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이 되고,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으로 우리 마음 깊이 새겨지게 됩니다. 다음으로 그 말씀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서 자녀는 육신의 자녀만이 아니라
영적인 자녀까지 포함합니다. 자녀들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심지어 집에 앉아 있을 때에도 길을 갈 때에도 누워서 잠을 자기 전에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강론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해야 합니다. 이는 행동과 생각의 모든 곳에 말씀을 가까이하고, 가정과 직장에서도 말씀을 생활화라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이요, 풍요와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혼합주의에 빠질 위험이 가득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장구히 번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삶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유일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나안 입성을 앞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가장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가르치며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하신 하나님께 대한 가장 큰 계명이요, 축복의 원칙입니다. 이러한 분명한 영적 방향 가운데 새 봄학기를 믿음으로 힘있게 출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말씀을 준비하며, 라이프를 쓰는 가운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엄청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 잘 나가는 분인가보다’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 반대의 상황이라면 이해하시겠습니까? 25년전 저는
운명과 패배주의자였습니다. 수능실패, 대입실패가 인생의 패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죽은 시체처럼 살았습니다. 술에 취해
세상과 사람들을 욕하고 다녔습니다. 이런 저를 하나님은 말씀공부로 인도하시고, 구원과 거듭남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후 저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돈과 성공이 아닌 주와 복음을 위해
선교사로 살고자 소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습니다. 선교사가
아닌 직장인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무 자격증도 실력도 없었지만 은혜로 식품대기업에 입사하였고, 믿음과 성실로 버티며 세 자녀를 키웠습니다. 직장에서도 나름 성과도
내고 인정도 받았습니다. ‘엔요’라는 히트 제품도 만들고, 글로벌 유통기업 ‘코스트코’ 전문가로
소문도 났습니다. 하지만 3년전 안정된 회사를 과감히 사표를
낼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시 제마음은 이런 성공의 경험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더 큰 회사에서 더 좋은 자리와 높은 연봉으로 “어서
옵쇼”라며 모셔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제품도, 연구도, 공장도
없는 회사에서 직접 거래처를 상대하며 물건을 팔고, 수금도 해야 했습니다. 급여도 더 깎이고 이로 인해 동역자가 긴급히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렸습니다. 3개월을 못넘기고 1년 동안 3번이나
직장을 옮겨 다니는 ‘메뚜기’같은 자신의 신세가 너무 한심하고
절망스러워, 죽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되어, 신입사원처럼 나이어린 팀장 밑에서 일을 해야했습니다. 사업부장은 필요하면 외부의 다른 곳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나이때문인지, 내가 잘못해서인지 회사내에서 자리를 못잡고 점점 밀려나는 것 같아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퇴근길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되돌아보았습니다. 준비없이 그만둔것부터 잘못된것일까? 아님 사람을 잘못만나서 그런 것일까?’ 여러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했습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드라마속
이야기가 남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중년의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이 상황을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일단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365일 일용할 양식을 먹고자 결단하고, 매일 출근전, 안되면 자기전이라도 양식을 읽고 묵상하며, 소감을 썼습니다. 이때 시편 말씀이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때까지
하리이까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시13: 1~5)
비록 팀장 자리는 잃었지만, 존재감은 약해졌지만,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하나님은 저를 택하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제가 세상의 지위에, 사람들의
인정에 집착하고 원하던 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 것에 힘들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사랑한다는 반증입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는 하나님보다 자기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저를 사랑했고,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아시고, 반대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과정속에서 다시 깨닫도록 하십니다. 잃어버렸던 믿음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되찾도록 도우십니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발견토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다윗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너의 계획대로 바라던 꿈대로 안되고 심지어 거꾸로 가는 것 같은 이런 상황에서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제서야
알게 됩니다. 내가 만약 원하던 대학에 가고 원하던 데로 세상에서 성공했다면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났을까?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소중한 다윗,다니엘,다은이를 볼 수 있었을까? 답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실패와 시련을 통해서 제가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도록 보호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나를 누구보다 엄청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저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세상의
부와 명예, 심지어 나의 생명보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사랑하겠습니다. 그 사랑으로 지금의 시련을 이겨내고, 가족과 또 우리 모임의 형제,자매들, 더 나아가 캠퍼스 영혼들을 사랑하겠습니다.’
이 시간 저를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또 인생의 여러 어려움을 통해 마음을 낮추시고 순수케 하심으로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잃지 않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찬송드립니다. 제가
이 사랑에 힘입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구체적으로 양식과
소감으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가정과 캠퍼스와JBF영혼들을 말씀으로 부지런히 가르치는 목자요 성경선생의
직분을 충성되게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2026년 새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대와 설레임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세상과 캠퍼스는 가나안처럼 풍요로움과
자유함이 있지만 우상과 유혹이 가득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말씀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사랑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영육간의 자녀들을 부지런히
가르치는 봄학기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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