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말씀/ 마태복음 13:24-58
요절/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태복음의 전체 맥락에서 현재 예수님의 사역은 (제자들 편에서 볼 때) 예기치 못한 불신과 강한 반발, 적대감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13장은 이런 맥락 가운데 특히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들도 삶의 현장에서 예상치 못했던 여러 어려움, 역경에 처할 때 낙심하거나 좌절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낙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4-30절은 가라지 비유입니다. 먼저 비유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람들이 다 자고 있는 밤 중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원수는 최대한 가라지를 제거하기 힘들도록 좋은 씨 사이에 가라지씨를 골고루 뿌렸습니다.
본문에서 좋은 씨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재배하던 밀을 가리킵니다. 가라지는 이른바 독보리를 가리킵니다. 독보리는 밀과 매우 유사하게 생겼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벼와 구분하게 힘들 정도로 비슷하게 생긴 ‘피’에 해당합니다. 피는 벼와 유사하게 생겼지만 딱히 독성은 없습니다. 오히려 구황작물로 쌀이 떨어졌을 때 피죽같은 것을 끓여먹었습니다. 이에비해 독보리는 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보리의 과실에 붙는 기생균이 독성을 가짐으로 사람이 먹을 경우 설사와 구토를 일으키고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또한 독보리는 그 뿌리가 밀의 뿌리에 엉켜 있어서 독보리를 잡아 뽑으면 밀의 줄기까지 함께 뽑히게 됩니다.
마침내 뿌린 씨가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가 보였습니다. 종들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습니까?” 밭의 주인이 대답합니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은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가라지를 왕창 다 뽑아버릴까요?” 이에 주인은 무엇이라 대답합니까?
29-30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주인은 가라지가 한쪽에 몰려있는 것이 아니라 밭에 골고루 분포되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힐 것이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라는 방향을 주었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추수꾼을 통해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에 사를 연료로 쓸 수 있도록 단으로 묶고 곡식은 따로 모아 곳간에 넣으리라 하였습니다.
36-43절에서 예수님은 이 비유의 내용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분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입니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입니다.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입니다.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처럼 세상 끝에도 그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그 천사들을 보내실 때 그들이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따로 거두어 낸 후 풀무 불에 던져넣게 됩니다. 그 때에 그들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반면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제자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5장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주옥과 같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으면 마치 천국의 향취가 느껴지는 듯 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제자들은 이와같은 거룩한 산상수훈의 말씀이 선포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에 큰 감동과 은혜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등록 원서를 들고 밤을 새며 줄을 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중앙언론을 도배하고 그의 말씀이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 셀러가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의 사역은 강한 반발심과 불신, 적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으로 처음에 예수님의 사역에 관심을 보이던 무리들도 점차 예수님의 가르침에 등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 예수님은 본문의 비유를 주신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예수님을 불신하고 대적하는 이들의 배후에 악한 사탄이 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일은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특히 인터넷 매체를 보면 젊은 청년들이 기독교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글과 영상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글과 주장에는 일부 사실도 있지만, 사실 근거가 없는 것도 많이 섞여 있습니다. 또 ‘악마의 편집’이라는 표현도 있는 것처럼 내용을 의도적으로 짜집기하여 기독교에 대해 매우 좋지 못한 편견을 갖도록 되어있는 것도 많습니다. 매일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이런 의도가 배후에 담긴 글과 영상을 접한 젊은이들은 복음의 수용성이 매우 낮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를 흉내낸 사이비 집단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신천지’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친밀함과 사랑의 교제, 깊이있는 성경공부를 흉내내 결론적으로 이만희가 재림 예수라고 가르칩니다. 이들의 배후에도 역시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은 사랑과 진리에 목마른 청년들에게 비슷한 것을 제공하여 이들이 가라지와 같은 인생을 살도록 유혹합니다.
우리가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젊은이들의 손과 눈과 마음을 붙들고 있는 휴대폰, 이 휴대폰의 콘텐츠를 점령한 안티 기독교 세력, 그 배후의 사탄의 역사로 인해 젊은이들을 전부 뺏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탄이 그처럼 날뛰고 있는 중에도 알곡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알곡은 사탄의 강력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무럭무럭 잘 자라나고 있습니다.
한때 온 세계에 기독교를 전파했던 영국이 오늘날은 온 세상에 무신론을 전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영국에서 성경을 정말 그 기록된 의미 그대로 믿는다 말하면 거의 정신병자 혹은 위험한 근본주의자 취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직장에서 큰 불이익을 당할 뿐 아니라 쫓겨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영국에는 과거 청교도와 같은 신자들이 거의 없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 청교도와 같은 아니 그보다 어려운 시대 가운데 연단을 받아 더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80년대를 그리스도의 계절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만큼 대학가가 영적으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이 가운데 많은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탄생했습니다. 사탄은 이것을 시기하여 위에서 언급한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대학가가 안티 기독교 분위기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이제는 80년대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가라지가 가득한 가운데서도 알곡은 자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위기 가운데서도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나오도록 하십니다. 그중 어떤 이들은 지금은 아닌 것 같아도 어느 순간 변화되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고 어떤 시대 분위기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큰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는 그 크기가 매우 작아 한 개의 지름이 채 일 밀리미터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씨를 밭에 심으면 본래 풀에 해당하는 겨자가 무려 2~3미터의 크기로 자라 마치 나무처럼 됩니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정도가 됩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마치 한 알의 겨자씨와 같다는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실 때 크고 강한 권능으로 오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심판의 불이 나와 그를 대적하는 자들을 모두 불사르고 그의 왕권을 굳게 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예수님의 사역이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온유와 겸손으로 섬기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대적하는 무리들의 악랄한 비난에 맞서 심판의 불을 뿜는 대신 그들의 논리에 맞지 않는 점을 차분하게 지적하시고 양들이 잘 분별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의 사역은 한 알의 겨자씨와 같았습니다. 그는 3년간 천국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몸이 벌거벗겨진 채로 십자가에 매달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삶과 죽음은 그가 가르치고 전했던 천국복음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삶이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가르쳤던 그대로 원수와 같은 군병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과 삶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먼저는 12제자들이 굳게 섰습니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시대에 이르러 120명의 제자 그룹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통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끝에 이르기까지 천국 복음이 전파되고 각 지역에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천국복음이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해 조선에까지 전파되었고 오늘날 대한민국 전국 방방 곳곳에 교회의 십자가가 없는 지역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기독교인의 숫자가 늘어났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미 나무가 된 것은 아닙니다.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종말의 때에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권능으로 임하기 전까지 천국은 늘 언제나 한 알의 겨자씨와 같습니다. 작고 미미해 보이지만 그 안에 놀라운 생명력과 가능성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무슨 큰 일을 할 때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예산도 크게 잡고 인력도 큰 규모로 확보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지극히 작고 미미한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크고 놀랍고 위대한 일이 나 한 사람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을 받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마음을 다해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제가 현재 몇 사람과 함께 성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일로 보입니다.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 보실 때 큰 일인 것을 믿습니다. 제가 이 믿음으로 마음을 다해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심전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가루 서 말은 약 40리터 분량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누룩은 약 1리터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루 서 말에 누룩을 섞어 부풀리면 무려 150명 분량의 빵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적은 양의 누룩이 밀가루를 부풀려 많은 사람을 먹이는 것입니다. 누룩은 비록 양은 적지만 순전하며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이 천국 복음에는 예수님의 영혼을 향한 사랑, 십자가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짧은 3년간의 공생애 기간을 사셨고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은 약 6시간에 불과했지만 그의 십자가 사랑, 양들을 위해 생명을 다한 사랑은 강한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랑이 2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의 마음을 사랑의 누룩에 부풀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사랑에 사로잡힐 때 다른 많은 이들의 마음도 사랑의 누룩에 부풀리게 됩니다.
34-35절에서 저자 마태는 예수님께서 이와같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시편 78:2절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말씀을 이루신 것을 증거합니다.
44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고대에는 자신의 귀한 재산을 은밀한 곳에 감추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사건이나 재난 등을 통해 그 보화가 주인을 잃은 채 오랜기간 묻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소작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가 곡괭이를 힘껏 내리쳤는데 ‘퍽’ 소리 대신 ‘깽’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닙니까! 놀란 농부는 밭을 파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한 상자가 있는데 그 상자 안에는 각종 진귀한 보화가 가득하였습니다. 농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는 보화 상자를 다시 숨겨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그 보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당시 법을 조사해보니 이 경우 밭을 사면 되고 계약서에 그 밭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까지 다 판다는 조항을 넣으면 되었습니다. 그 조항을 추가할 경우 더 비싼 값에 밭을 사야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든 그 밭을 사기로 결심했습니다. 알아보니 자기의 전 재산을 다 팔아야 그 밭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는 기쁨으로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놀라 호들갑을 떠는 마누라에게 “아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조용히 좀 하고 있어!” 말하고 정말로 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사고야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천국은 모든 것을 다 팔아 소유하기에 아깝지 않을만큼 큰 가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소작 농부가 밭을 사기 위해 전 재산을 판다 하여도 이로 인해 소유하게 될 보화 상자 안에 든 다이아몬드 하나 가격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오징어로 보인다’는 표현을 종종 씁니다. 처음에는 좋아보이던 것이 정말 excellent한 것과 비교해 보니까 오징어처럼 별로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멋진 차라고 생각하고 차를 샀는데 친구가 몰고 온 최고급 차와 비교해 보니 갑자기 자기 차가 오징어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내가 오징어같이 생긴 이 차를 왜 샀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 멋진 부와 명예와 성공과 심지어 행복까지도 천국 보화와 비교해 보면 오징어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7-9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둘째는 이 비밀을 아는 자의 마음에는 놀라운 기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유에서 농부의 기쁨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농부의 가족들은 아마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농부는 미쳤다고 생각하든 말든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그가 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천국 복음이 전파된 이래 많은 이들이 비유의 농부와 같이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소유하였습니다. 우리 모임의 많은 선배님들도 젊은 시절 성경을 공부하고 이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랬을 때 젊음을 드리고 인생을 드리고 재능을 천국복음을 위해 드렸습니다. 드릴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큰 기쁨 가운데 다 드렸습니다. 그러한 삶을 지난 30년, 40년, 50년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청년 대학 시절 느꼈던 그 놀라움과 기쁨이 여전합니다.
안티 기독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은 그저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해도 놀라운 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런 청년들 가운데서도 본문의 비유에 나오는 농부처럼 천국의 놀라운 가치를 깨닫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가 가진 모든 시간과 재능과 열정을 다하여 주님을 위한 삶에 헌신합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조금도 손해의식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쁨이 충만합니다. 우리 가운데 이러한 청년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5-46절을 보십시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당시 극히 값진 진주 하나는 다른 모든 진주를 다 합해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한 진주 장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천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귀한 진주가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진주를 찾고 또 찾았습니다. 마침내 그러한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농부의 비유에서 농부가 우연히 그러한 보화를 발견한 것과 비교하여 본문의 진주 장사는 값진 진주를 찾고 또 찾았습니다. 어떤 이는 우연히 천국 복음을 듣고 그 안에 보배가 감추어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에 비해 어떤 이는 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참된 진리가 있을 것을 믿고 찾고 또 찾습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찾고 또 찾는 자에게 보화를 발견하도록 도우십니다. 잠언 2:3-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우리가 본문의 진주 장사와 같이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닌 하늘 보화를 찾고 또 찾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47-50절을 보십시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당시 갈릴리 호수에는 20가지가 넘는 물고기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비늘이 없고 뱀처럼 생겨서 율법의 기준으로 먹을 수 없는 물고기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물고기는 잡은 후 버렸습니다. 종말의 때에도 이러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천사들이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며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51-52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을 마치신 후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들은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집주인은 때마다 적절한 필요를 따라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옵니다. 이와같이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들은 구약의 옛 말씀과 신약의 새 말씀을 적절하게 다루며 천국 복음의 비밀을 많이 간직한 영적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 말씀은 제자들의 마음에 큰 힘과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천국 비유 말씀을 통해 천국 복음의 일꾼으로서 자부심과 아이덴터티를 갖고 기쁨으로 주의 일에 헌신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