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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0년 마태복음 22강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마태복음 14:1-36)2020-07-27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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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 22 강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말씀 / 마태복음 14:1-36

요절 / 마태복음 14:20,21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예수님이 살던 시대는 왕과 지도자들이 참으로 불의하고 음란하였습니다. 백성들은 갈 길 몰라 방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돈도 권력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상황을 자주 만납니다. 예수님은 이를 어떻게 도전하고 극복하여 기적을 이룰 수 있는지 무리를 섬길 수 있는지 그 비밀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시며 훈련하십니다. 지도자들로 키우십니다. 우리도 현재 코로나19라는 불확실하고 부정적인 상황에 맞닿뜨려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배우고, 이 시대를 섬기는 목자로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때란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각 촌으로 흩어져 천국 복음을 전하고 예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침으로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때를 말합니다. 헤롯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왕궁에만 있다가 자기가 통치하는 지역에서 행하여진 예수의 소문을 이제야 뒤늦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헤롯은 누구입니까? 헤롯 안티파스로서 헤롯대왕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헤롯은 예수님이 태어날 때 두 살 아래 어린아이를 죽인 잔인무도한 왕이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고 아들 헤롯 안티파스도 잔인했고 음란했습니다. 그는 자기 이복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취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남편 있는 여자를, 그것도 동생의 아내를 빼앗은 것입니다. 이때 세례 요한은 그의 행위가 옳지 않다며 회개하도록 책망했습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이고자 했으나 무리들이 선지자로 여기므로 죽이지 못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한번은 헤롯의 큰 생일잔치가 있었습니다. 그는 각종 산해진미의 음식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헤로디아의 딸로 하여금 춤을 추도록 하였습니다. 헤롯은 헤로디아의 딸의 요사스런 춤을 보고는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맹세로 그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헤로디아가 세례요한의 목을 달라 하라고 부추겼습니다. 헤롯은 자기가 맹세로 한 말과 체면 때문에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됩니다. 의인 세례요한의 목이 소반에 담기어 잔치상 위에 올라왔습니다. 생일 때 케이크를 커팅해야 하는데 세례요한의 목을 커팅하고 있습니다. 이게 생일 잔치입니까? 피의 잔치요 불의의 잔치입니다. 왕이라고 해서 이렇게 사람을 함부로 처형해도 되나요? 최소한 심문과 재판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자리에 대신들과 천부장과 갈릴리 귀족들이 있었을 터인데 아무도 말 한마디 못하고 말리지 않았습니다. 이를 볼 때 당시 시대 상황이 어떠합니까? 정말 불의하고 악합니다. 법은 있으나 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헬 이스라엘입니다. 백성들은 이게 나라냐?’ 탄식하게 됩니다. 민중 봉기라도 일으켜 헤롯을 처단하고 새 나라를 건설해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 이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13a) 예수님은 헤롯이 자신을 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음을 간파하셨습니다. 헤롯이 이제 여차하면 세례요한에게 한 것처럼 예수를 손보고자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나를 손 본다고 한번 붙어봐이렇게 않으시고 떠나서 빈들로 가셨습니다. 헤롯의 통치영역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겁쟁이인가요?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도록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원하는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가 아니기에 물리적 충돌을 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썩어 빠진 정권을 없애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정말 백성들을 위하고, 백성들을 섬기고, 백성들을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릴 하나님 나라의 일군들을 세우길 원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하는데 집중하십니다.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방황하는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그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열심히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고 했습니다. 불의한 지도자로 인해서 고통하는 시대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밑바닥에 있는 백성들입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챙기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질병을 치료해 주시고 영의 양식인 말씀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피폐해진 영혼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목자의 심정이야말로 시대를 이끌 지도자의 첫 번째 덕목입니다.

 

예수님께서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문제의식을 갖고서 예수께 나와 말합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15) ‘이곳은 빈들이다이 말은 아무 것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때도 이미 저물었다이 말은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방법은 무리를 빨리 보내서 마을로 들어가 각자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의 제안은 합리적이며 현실적이며 시의적절한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를 바라볼 때 제자들과 같은 심정이 들기 쉽습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우리가 처한 영적 환경은 빈들처럼 황량합니다. 코로나가 와서 피싱철인 1학기에 학생들도 만나보지 못하고 속절없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벌써 여름방학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처럼 교회에서는 모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형국입니다. 청년층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예전보다 많아졌습니다. 있는 양도 빈들 빈들 말을 잘 안 듣습니다. 내 나이를 보니 벌써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결론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니 자포자기 하게 되고 손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16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16). ‘갈 것 없다며 단호하게 막아서고 있습니다. 한술 더 떠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하죠?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께서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고 영접한 것처럼 너희도 무리를 불쌍히 여기라’, ‘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목자 심정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다른 것은 좀 부족해도 목자 심정이 있으면 기적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 없나?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제자들이 이걸로는 택도 없을 것 같은데요하는 심정으로 예수님께 내 놓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 그것 가지고 누구 입에 풀칠하겠어. 더 찾아봐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그거야 그거’, ‘그거면 족해’, ‘됐어이런 뜻입니다. 제자들이 생각할 때는 자기들이 가져온 것은 너무나 작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것 가지고는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그걸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님께서 하셔서 무리들을 먹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나머지는 예수님께 맡기면 됩니다. 기적의 주체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후에 어떻게 하십니까?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게 하였습니다. 제자들과 무리들은 왜 이렇게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순종하여 여러 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잔디에 앉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져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축복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져온 그것을 소중히 여기시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축복하셔서 오천 명을 먹이는 생명의 씨앗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재물이 많아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있어야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뭔가 대단한 것이 있어야 양들을 먹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812절에서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우리에게 있는 것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은 그것을 통해서 무리를 먹이십니다.

 

죠지 뮐러는 그의 호주머니에 돈이 없었지만 수천, 수만 명의 고아들을 길러냈습니다. 하루는 고아들이 아침식사를 해야 하는데 먹을 것이 다 떨어져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모두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빈 접시를 놓게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심을 감사하나이다기도가 끝나자마자 대문 밖에서 마차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대문을 쿵쿵쿵~’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빵가게 주인이 마차에 빵을 잔뜩 실고 온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제 비가 와서 빵이 하나도 안 팔렸데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나?’ 기도하던 중에 죠지뮐러의 고아원에 갖다 주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아침 일찍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아이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죠지 뮐러는 어찌하든지 이 고아들을 먹이고자 하는 심정이 있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빈 접시를 놓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본인이 빵을 줄 수 없었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먹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신 후에 그것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떡과 물고기를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 후에 다시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은 또다시 떡과 물고기를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하여 반복되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떼고 또 떼어서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육 간에 풍족하게 먹이시는 천국의 왕이십니다.

 

나중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경제 문제를 해결할 왕으로 삼고자 하죠. 그때 예수님은 이들에게 요한복음 6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예수님께서 진정으로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생명을 주는 떡입니다. 굶주린 영혼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셔서 그 영혼이 영원토록 배부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이 그의 백성들 내면에 살아 역사하여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생명의 역사를 홀로 행하지 않으시고 목자 심정으로 오병이어를 드리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무리들을 통해서 동역하여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UBF 역사는 오병이어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4.195.16 군사쿠데타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대학생들은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마더베리 선교사님은 한국 대학생들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UBF가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은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이 가진 것들을 드렸습니다. 먼저는 매일 저녁에 모여서 양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5명이 모이든, 10명이 모이든, 50명이 모이든, 모여서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다보면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였습니다. 또한 배고픈 양들을 먹이기 위해서 먼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차비를 아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양들을 먹일 물질을 모았습니다. 양들에게 말씀의 꼴을 먹이기 위해 부족하지만 배운 말씀을 잘 정리하여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오병이어, 물질의 오병이어, 일대일의 오병이어, 심방의 오병이어를 드렸을 때 예수님은 이를 축사하셔서 배고픈 캠퍼스 양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이런 역사가 광주와 서울과 동남아, 독일, 미국, 전 세계 캠퍼스를 먹이는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초창기보다 더 좋은 환경과 더 많은 물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없다’ ‘저것이 없다며 부정적 생각을 하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늘 의구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2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고무리들을 배불리 먹인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무리로부터 떠나 배를 타고 가게 합니다. 그런 후에 무리들을 흩으시고 산에 올라가 기도하십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무리들이 배불리 먹고 나서 예수님을 경제적인 왕으로 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리들의 그릇된 열광에 충동을 받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하나님 나라 완성과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산에 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의해서 반 강제로 배를 타고 가는 제자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나요?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밤 사경까지 이 고난이 계속됩니다. 밤 사경이 몇 시죠? 새벽 세시부터 여섯시까지입니다. 동트기 전 가장 캄캄한 때입니다. 전에는 예수님이 배 고물에서 주무시고 있어서 깨워서라도 도움을 받았는데, 지금은 제자들 스스로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제자들을 훈련하시고 도움을 주십니다. ! 예수님이 어떻게 제자들에게 오셨나요? 바다 위로 걸어서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라서 유령이다~’며 무서워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며 진정시키십니다.

이때 베드로가 기발한 생각을 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28).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베드로가 성경속의 엘론 머스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론 머스크가 누구인지 아시죠? 테슬라의 CEO로서 이 시대 도전과 모험정신의 아이콘입니다. 우주 여행을 기획하고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사람이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누가 감히 이런 제안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자기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000도 이렇게 해 보실래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라하시죠.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갑니다. 인류 최초로 물위를 걷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말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실행에 옮깁니다. 대단합니다. 나중에 물결을 보고 무서워 빠져 들어가긴 했지만 베드로의 이러한 믿음의 모험을 우리가 배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믿음의 여정가운데 실패한 이유를 알려줍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그가 아직 믿음이 작다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갖도록 조언해 주십니다. 훗날 베드로는 자신의 이러한 체험을 통해 믿음의 도전을 하죠. 성전에 기도하러 가던 중에 미문에 앉아 있는 구걸하는 앉은뱅이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이렇게 도전하여 명령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그러자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어가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안 계셔도 성령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였습니다.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도 베드로와 같은 믿음과 도전 정신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1960-70대 한국은 선교 대상국이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한국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특히 미국과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는 선교사를 파송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무엘 선교사님은 밈음으로 도전하여 독일로 떠나는 간호사들을 단기간에 성경공부해 주고 안수 기도하여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전 세계로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되었죠.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도 이러한 창조적인 믿음과 도전정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붙들어서 배에 함께 오르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배에 있는 제자들이 예수께 절을 하며 고백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예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연계를 지배하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도 제자들이 한 고백을 예수님께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예수님 일행은 게네사렛 땅에 이릅니다. 그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자들을 예수께 데리고 옵니다.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기를 간구하였는데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코로나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고민하며 기도하며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디모데후서 29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메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메이지 아니하니라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사람은 메일 수 있지만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복음역사는 메이지 않고 전파되어 나가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심령에 새겨지자 불안과 염려가 사라지고 복음역사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기고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 종로2부가 할 수 있는 것을 주께 드리고 나머지는 주님께서 하도록 주님을 의뢰하자이런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오병이어를 찾을 때 먼저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종로2부 파송 선교사님들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의 기도제목을 알고 필요한 경우 도움을 주고자 하고 있고, 한국 소식과 함께 선교사님들에게 힘이 되는 글을 매일 종로2부 선교사 카톡방에 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올린 글을 제가 돌아보아야 할 몇 분의 목자님들에게도 카톡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 주 토요일 청년 비전스쿨 모임을 이루어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형제 장막 카톡방에 일용할 양식을 써서 올림으로 양식을 서로 나누고 있습니다. 심방이 필요한 2부 목자님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교제하며 기도제목을 알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공부로 섬겨야 할 분들이 있는데 일대일과 그룹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필요한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여기 계신 우리 목자님들이 다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사소하고 작은 것들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평신도목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종로 2부는 코로나19 기간동안 국민대 모퉁이돌 하우스를 리모델링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완공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국민대 학생들과 청년들이 들며 날며 생명의 꼴을 먹고 주님을 만나는 전도와 제자 양성의 플랫폼으로 사용되어지길 기도하며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하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면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내게 부족함이 없는 길이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시대를 섬기는 목자로 세우시고 우리와 동역하여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길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먹여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이들이 부담이 되고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내게 있는 것을 찾아 최선의 것을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친히 기적을 이루십니다. 새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목자 심정을 가지고 코로나 환경을 극복하고 이 시대 영혼들을 주님의 능력으로 풍성히 먹이는데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