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5강
우리는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11장까지 나팔 재앙이 있었고 12-14장은 사탄과 전투를 벌이는 144,000이라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또한 마지막 날에 벌어질 구원과 심판의 모습을 간략히 보았습니다. 이제 15장,16장은 대접 재앙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는 마지막 재앙이며 지금까지의 재앙이 심화된 모습입니다. 15장은 대접 재앙을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1절. 요한은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았습니다. ‘이적’은 앞의 12장에서 한 여자와 용의 싸움에서도 나왔는데 그것을 이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일곱 대접 재앙도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긴 기이한 사건입니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쳐질 것을 예고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진노하는 것을 재앙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재앙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재앙은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해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거룩한 심판입니다.
2절.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14장에서 본 144,000이요 예수님이 그 낫으로 수확한 곡식일 것입니다. ‘유리 바다’라는 표현은 4장에서 하나님의 보좌 앞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4:6).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엄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불이 섞인 유리 바다라고 표현합니다. 불은 태우고 정결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불로서 정결하게도 하시고 또 자신의 위엄을 나타내기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도는 이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건넌 사람들입니다.
또한 무엇을 건넌 사람들입니까?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입니다. 짐승을 이겼습니다. 그의 공포 정치와 탄압을 이겼습니다. 우상의 유혹을 이겼습니다. 그 생존을 위협하는 경제제재를 이겨냈습니다. 실로 성도는 이긴 자들입니다. 그 짐승과 우상의 산을 넘고 넘어 유리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요즘 극장가에서 조용하게 세몰이를 하고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레버넌트(Revenant)’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는 ‘죽음의 땅에서 살아서 돌아온 자’란 뜻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요, 한 불곰에 의해 사지가 뜯긴 사냥꾼이 동료의 배신과 인디언들의 공격과 매서운 한파를 극복하고 때로는 물고기를 입으로 뜯어 먹으면서 때로는 죽은 말 속 내장을 다 드러내고 거기에 들어가 잠을 자면서 결국 돌아와 원수를 갚는다는 내용입니다. 죽음과 극한의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이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성도들은 용과 짐승과 우상과 666의 강력한 통치 앞에서도 인내와 믿음으로 이기고 넘어서 하나님 보좌 앞까지 다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또 새 노래를 부릅니다. 14장에서 불렀던 노래입니다. 3절을 보면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맞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크고 놀랍습니다. 모세의 때에 홍해를 갈라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이나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도 크고 놀랍습니다. 죄와 사망의 바다에 허우적대는 인생들을 어린 양의 보배피로 구원하신 것도 크고 놀랍습니다. 그가 하는 일이 다 놀랍습니다. 삼 세트로 진행되는 일곱 번의 재앙들 또한 크고 놀랍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그가 가시는 길이 의롭고 참됩니다.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여섯 번째 뇌수술과 두 번째 척추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이동원 형제라고 있습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몇 천 명밖에 없는 희귀한 중에서도 최고로 희귀한 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유전성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다리와 등과 머리와 눈과 모든 곳이 종양으로 제대로 가눌 수 없습니다. 그 병으로 어머니는 십 여 년 전에 소천하셨고 그는 15년째 투병중입니다. 70이 넘으신 아버지는 아내와 아들 간병하느라 재산을 탕진하셨고 마지막 남은 아파트도 내놓으셨고 본인도 지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인생이 이리도 불공평해보인단 말입니까? 그런데 동원 형제는 오래 전에 자살방지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의 삶을 보면서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살도록 희망을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생을 포기하지 않으며 틈틈이 번역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건지셨고 비록 몸은 제대로 가눌 수 없지만 영적으로는 이긴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8년 전에 심장마비로 소천한 홍두만 형제라고 있는데 그의 친구가 되어서 예수님을 잘 믿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재앙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의 일이 크고 놀라우시며 그의 길이 의롭고 참되심을 믿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절.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심판과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피조물이 없습니다. 그를 영화롭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만국이 경배합니다.
5-8절은 대접 재앙이 준비되는 광경입니다. 5절. 요한이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옵니다. 마치 무대 커튼이 열리고 출연자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성전으로부터 천사들이 나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보내심과 명령하심에 의해서 일을 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 마지막 재앙도 출처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계획과 약속대로 이루어지는 일임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착용했습니다. 마치 구약에 나오는 성소에서 일하는 대제사장이 입는 것과 같은 옷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영화로운 존재요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하는 왕같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현재 천사들이 그러합니다.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줍니다. 여기서 대접은 5장에서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가졌던 대접, 곧 성도들의 기도가 가득 담겼던 그 금 대접과 같은 대접입니다(5:8). 성도들의 기도를 담았던 그 대접이 이제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담은 대접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 그 눈물과 통곡을 담은 기도가 이제 하나님의 진노가 되어 세상에 임하려고 합니다.
8절. 금 대접을 수여하는 의식이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마치 출40장에서 회막에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가득차서 모세가 능히 회막에 들어가 섬길 수 없었던 장면을 기억나게 합니다(40:34,35). 8절은 두 가지를 알려줍니다. 첫째는 대접 재앙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나타나는 일이란 사실입니다. 우리는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일곱 재앙이 다 이루어져야 천사들은 그 일을 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친다’ 하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인 ‘다 이루었다’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전력을 다해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 이루셨습니다. 일곱 대접 재앙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 할 일이며 천사들도 기필코 완수해야 할 사명인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얼마나 불 시련을 통과하고 짐승과 우상의 유혹의 다리를 건넜을까요?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요? 우리도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천사들처럼 온전히 완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