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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3년 에스라 3강 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에스라 5,6장)2023-10-02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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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에스라 제 3

 

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말씀 / 에스라 5,6

요절 / 에스라 6:14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지난 3,4장에서 예루살렘에 귀환한 백성들은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불렀습니다.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과거의 첫 성전을 보았던 나이 많은 족장들은 대성통곡하였지만 여러 사람들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성전 건축 역사가 사마리아에서 내려온 대적자들의 방해 공작에 부딪쳤습니다. 대적자들은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였습니다. 고레스왕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건 건축을 중단하게 하였습니다. 그 중단된 때가 고레스왕 3(BC 536) 경이었는데, 바사의 제 4대왕 다리오가 즉위(BC 521)한 후, 다음 해가 되기까지 약 16년간 중단된 상태로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성전 건축이 재개됩니다. 마침내 완공을 하고 봉헌식을 드립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도우셔서 형통하게 건축이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백성들이 건축 역사를 형통하게 되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배우길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

1,2절입니다.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16년간 중단되었던 성전건축이 재개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백성들에게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인간의 미래를 미리 말하는 예언(predict)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말씀을 전한다, 즉 신탁(神託)을 말하는(prophesy) 것입니다. 미리 예()자가 아니라 맡길 예()자에 말씀 언()자를 사용한 말입니다. 선지자들이 예언을 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임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 임하사 그가 일어나 예언하니라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학개서1장을 보면 다리오 왕 제26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합니다. 그러자 그가 일어나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이 백성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는구나.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1:2-4)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하시며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를 중단하고 자기 집만 짓고 안일하게 살고 있는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당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선진 문화를 거절하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귀환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결단하고 온 것입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홀로 건축하리라" 하며 분명한 자세로 성전 건축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대적들의 방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고레스 아래 있던 관리들이 뇌물을 받고 성전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건축 재료 이송도 원활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였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런 그들에게 눌려 그만 건축을 중단했습니다. 그런 상태로 세월이 지났습니다. 5, 10, 15... 다시 지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집짓기에 바쁘게 되었습니다. 판벽된 집, 곧 각이 반듯한 집을 짓고 고급 내장재로 내부를 꾸몄습니다. 성전 건축은 아직 때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며 손을 놓았습니다. 사실 대적자들과 바사 관리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으로 계속 지어 나가면 되었습니다. 고레스왕이 칙령을 변경한 것도 아니고 부패한 관리들이 중간에 농간을 부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종이호랑이에 놀란 것처럼 겁을 먹고 건축을 계속할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선지가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이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고 성전 건축을 재개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그들은 믿음을 잃고 두려움에 빠져 살아온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전은 황무한 채 버려두고 자기들 집짓기에만 빨랐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회복하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힘차게 일어나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겉으로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청의 건축허가와 건축자재 같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영적인 분별력이 생겼습니다. 불신과 두려움의 죄를 발견하였습니다. 이기심의 죄를 발견하였습니다.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을 각성하게 합니다.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합니다. 연약한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두려움을 극복하게 합니다.

 

2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들과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백성들과 계속하여 함께 있으며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한 번 들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불신과 의심을 지속적으로 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말씀을 받고 믿는 것 외에는 영적 싸움에서 이길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선지자들은 백성들과 함께 있으며 수시로 말씀으로 백성들을 도왔습니다. 건축하는 그들의 손을 힘 있게 하였습니다.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3절입니다.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 앞에 회개하고 다시 믿음으로 성전건축 역사를 시작했을 때, 페르시아의 사마리아 총독 닷드내가 관리들을 데리고 와서 추궁합니다.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NIV 에는 "Who authorized you to rebuild this temple and restore this structure?" 라고 되어 있는데 아직 성곽 건설을 마친 것은 아닙니다. 누가 이 성전과 성곽을 지으라는 허락을 했느냐 입니다. 내가 이 유브라데 강 서부 지역을 관할하는 총독인데 왜 나한데 허락을 받지도 않고 짓느냐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예전 같았으면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못했을 것입니다. 곧 중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 그들은 기가 죽지 않았습니다.

 

11-16절을 보면 백성들이 사마리아 총독에게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백성들은 천지의 하나님을 믿는 종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했습니다. 11a절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그들의 신분은 아직 바사왕의 권세 아래 있는 노예 백성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지의 하나님을 믿는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그들의 하나님은 사마리아 총독은 물론이고 바사의 고레스왕보다도 높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천지의 하나님의 종으로 그 분의 성전을 짓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당당했지만 무례하지는 않았습니다. 겸손히 사실을 말합니다. 그곳에는 원래 그들의 큰 왕 솔로몬이 지었던 웅장한 성전이 있었는데, 조상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다 포로로 잡혀갔었음을 말합니다. 자기들이 그 범죄했던 포로들의 후손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고레스왕이 어떻게 조서를 내려 자기들이 이곳에 와서 건축을 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겸손히 설명을 합니다. 그들에게는 당당함이 있었지만 겸손했습니다. 팩트에 기초하여 분명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이런 백성들의 태도에 사마리아 총독도 은혜를 받고 객관적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백성들이 이와 같이 잘 설명을 하고 사마리아 총독도 잘 수용한 것의 이유를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하나님이 돌보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돌보셨다"는 말씀은 watch over입니다. 원문의 뜻은 "하나님의 눈이 그들 위에 있었다"입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어디를 가면 경호원들이 부리부리한 눈에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사방에서 경호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경호하셨다",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살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경호 대장이 되셨을진대, 누가 감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하고, 믿음으로 도전하여 성전건축 역사를 재개했을 때, 그 백성들을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돌보심이 백성들의 당당함과 겸손함과 지혜로 나타났고 총독의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2. 닷드네의 상소문과 다리오의 조서

지난 4장을 보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문을 올립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악의적인 내용이 가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고 있는데 만일 건축을 마치면 그들이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예로부터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한 자들이다, 하며 악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닷드네 총독의 상소문은 다릅니다. 그는 먼저 "다리오 왕은 평안하옵소서 왕께 아뢰옵나이다" 하며 아주 겸손한 어투로, 자기의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객관적이고 호의적인 보고서를 씁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백성답지 않게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는 당당한 자세를 가졌고, 또한 자기 조상들의 죄를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를 가진 것을 보고했습니다.

 

무엇보다 위대하신 바사 제국의 초대 황제 고레스가 허락하여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11-16). 그리고 17절에 보면, 사마리아 총독은 황제께서 사실을 조사하여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를 지시해주시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와 같이 호의적인 보고서를 올린 것도 하나님께서 돌보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돌보실 때, 세상의 권력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지 못합니다. 성공과 실패의 열쇠는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느냐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아보셨으므로 목자 모세가 지팡이 하나로 애굽의 바로의 권세를 꺾고, 200만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보셨으므로 목동 다윗이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보셨으므로 선지자 엘리야가 혈혈단신으로 바알 선지자 450명을 멸하고, 백성들을 우상숭배의 죄에서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을 돌아보십니까? 선지자들의 말씀을 받고 겸손히 회개하고 믿는 자들을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돌아보실 때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6:1,2절입니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에 기록하였으되" 상소문을 받은 다리오 왕은 즉시로 조서를 내려 고레스왕의 조서를 찾도록 했습니다. 당시 바사는 제국을 127도로 나누어 (1:1) 20총독을 통하여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유다 도는 127도 중의 하나입니다. 다리오 왕은 사마리아 총독의 상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총독이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리오 왕 자신이 즉시 나서서 그 일을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고레스왕이 칙령을 내린지 거의 20년이 지났기에 그 문서가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레스왕의 조서 사본이 메데 제국의 수도였던 악메다 궁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바벨론 제국에는 4개의 수도가 있었는데, 악메다 궁은 그중 하나로써 해발 1800미터로 서늘하여 황제의 여름궁전이 있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그 조서를 통해서 고레스왕이 내렸던 예루살렘 성전건축 명령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건축 비용도 다 바사 왕실에서 부담하고 예전에 느브갓네살 왕이 탈취해왔던 보물도 다 돌려보내라고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다리오는 사마리아 총독에게 어떤 명령을 내립니까? 첫째로, 이스라엘 하나님의 성전 건축 현장에 접근하지 말라고 명합니다. 그들의 작업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강 서편 사마리아 지역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에서 건축 경비를 계속하여 주어 건축이 중단되지 않게 하라고 명합니다. 셋째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제물을 유대의 제사장이 요구하는 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라고 명합니다. 넷째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고 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돌아보실 때 일어나는 역사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11,12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신의 명령을 어기면 그 집의 들보를 빼어 그 위에 목을 매달 것이며, 그의 집은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는 무시무시한 포고문까지 덧붙였습니다. 당시 제국의 황제의 권한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다리오 왕의 조서를 받은 사마리아 총독부 관리들은 신속히 준행합니다. 그들은 권세를 부리다가 황제의 조서를 받고서 포로 백성들 앞에 기가 꺾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에 감사하며 꾸준히 건축 작업을 감당하였습니다.

 

3. 선지자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14,15절입니다.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다리오 왕 제 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했습니다. 형통했다는 것은 배가 뒷바람을 받아 나아가듯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사마리아 총독이 호의적인 상소문을 올린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리오 왕이 즉시 조치를 취한 것도, 고레스왕의 조서 사본이 발견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리오 왕이 성전 건축을 위해 파격적인 지원을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자 모든 일이 형통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14절을 다시 봅니다.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백성들이 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랐기 때문이라도 합니다. NIV 에는 "So the elders of the Jews continued to build and prosper under the preaching of Haggai the prophet and Zechariah"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Under the preaching" , 백성들은 선지자들의 말씀 아래서건축을 계속하였기에 형통했다는 것입니다. 계속 말씀을 들어가면서 건축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매일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일이 끝난 저녁에는 모여서 선지자들의 말씀을 공부하며 묵상하였습니다. 지속적으로 말씀 아래 거하면서 건축을 할 때 하나님이 그들을 형통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속적으로 듣고 지켜 행하는 것이 형통의 비결이라고 성경은 반복하여 말씀합니다.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모압 평지에 진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이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그 땅을 차지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29:7-9)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게 하며 앞으로도 그들이 형통하기 위한 단순하고도 분명한 방향을 줍니다.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모세가 죽은 후에 후계자 여호수아는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사명 앞에 심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그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흉내라도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1:7,8)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전쟁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병법을 익히라든가, 군사를 증강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말씀을 그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다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6:4)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것이 지혜요 지식입니다. 우리나라가 큰 나라(a great nation)가 되는 길은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 외교를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형통한 나라, 지혜와 지식이 있는 나라,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귀합니다. 저자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바로 그 점이 핵심임을 알았기 때문에 바사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두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의 조서로 인해 성전 건축공사가 형통하게 되었고 드디어 완공되었습니다. 이때가 BC 516년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 봉헌식을 합니다.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그들에게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유월절과 이어서 무교절을 지킵니다.

 

22절입니다. "즐거움으로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이었더라" 그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왜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셨기 때문이요, 둘째는,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섬긴 자기들의 손을 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손을 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격하였습니다. 이 기쁨은 성전건축을 완성했다는 기쁨,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데서 오는 기쁨이요, 여호와 신앙과 예배를 온전히 회복한데서 오는 기쁨이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심령에 부어주시는 진정한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섬기는 자들의 손을 힘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하고 허물이 많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손을 힘 있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전 봉헌 후에 유월절을 지킨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공동체가 회복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되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신분이 완전히 회복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결단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이방 왕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은 그 분의 말씀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따르는 것이 형통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제2성전 건축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입니다. 우리가 어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순종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형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