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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년 여름특강 제1강 내 안에 거하라(요15:1-17)2024-07-1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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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에 거하라

 

말씀/15:1-17

요절/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안녕하세요? 한주간 잘 지내셨나요?

지난주 여름수양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 이심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나눴던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들려 주시는 말씀이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1, 포도나무와 가지 (1 ~ 6)

 1절과 5절 상반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1),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5a) 이 두 말씀은 오늘 예수님이 해 주시는 모든 말씀의 대 전제입니다.

 

 예수님은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 사이의 관계를 기초로 오늘 말씀을 전개하고 계십니다. ‘관계는 신앙생활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관계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십니까? 3가지를 잘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1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하십니다. 5절 상반절을 보면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그 가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나무와 가지가 구분이 되십니까? 가지와 나무는 사실 경계가 없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의 일부입니다. 그러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부른다면,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우리도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특권입니다.

 

둘째, 열매의 주도적 역할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5절 상반절을 외우겠습니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5a) 여러분!, 가지의 존재가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특히 포도나무의 가지는 열매가 없다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에스겔 말씀(15:1-5)을 보겠습니다.

 이처럼, 가지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고, 오직 열매로 가치를 증명할 뿐입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가지 자체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왜 우리를 포도나무의 가지로 비유하셨을까요? 그것은 이런 아이러니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어떻게 해서든 과실 맺는데 진심인 농부이신 하나님의 열심이 보이십니까? 저는 농사꾼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며 모든 일에 진심인 농부의 맘이 어떠 한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땅에 심을 작물의 품종부터 신중하게 선별합니다. 하물며 그렇게 심은 작물에서 탐스러운 열매가 맺기까지 쉼 없이 움직이는 손길에 담긴 진심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에 있어 열매 맺게 하는 핵심 작업은가지치기전정 작업입니다. 가지를 그대로 두면 무분별하게 하늘 높이 자라기 때문에 어린 포도나무일수록 약 3년간은 가지치기로 주변을깨끗하게해 주어야 합니다. 이는 가지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일이지만, 열매를 맺게 하려는 농부의 뜻과 판단 가운데 과감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가지인 우리의 삶에도 크고 작은 고난이 찾아온다면, 우리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 줄 믿습니다.

 

 풍성한 포도 열매를 보십시요. 어떻습니까? 가지치기 과정을 거쳐 맺은 포도 열매는 마치 가지가 스스로의 힘으로 맺은 영광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열매에 직접 개입하시지만 그 모든 열매가 가지 스스로 맺은 것처럼 인정해 주십니다.

 

 셋째, 예수님과 우리는 생명을 나눈운명 공동체입니다. 1절 상반절을 외워보겠습니다.“나는 참(true)포도나무요”(1a),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참 포도나무의 (true)’이란 단어는 진짜다!’, ‘실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시편80:8>,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 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나무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이사야5:2> 이스라엘은 자타가 인정하는 하나님의 극상품 포도나무였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구원받았고, 어떻게 가나안에 들어갔는지는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결국 쭉정이 열매만 맺고 그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성경이 이스라엘 역사를 이처럼 기록한 것은 이들은 장차 오실 참포도나무의 그림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열매를 맺을 적임자, 참포도나무임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 열매를 맺을 포도나무의 가지로 누가 붙어 있다고 하셨는가?’ 입니다. 5절 상반절을 외워 보겠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5a) 하나님께서 기대했던 그 역사적 열매를 맺는 일을 우리 통해 하시겠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과는생명을 나눌 뿐 아니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그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다 같이 4~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은거해야 한다는 점을명령형부정형어구를 사용하여 강조하고 또 강조하십니다. 특수 상황이 아니면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질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처럼 강조하시는 것일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12 사도로 부름 받고 예수님과 3년간 동고동락 했습니다. 예수님 안에 누구보다 잘 거하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중 갸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기고자 제자 무리에서 떠나갔습니다. 누구도 이를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을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오히려과연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만만치 않은 커다란 질문이 우리에게 항상 주어졌다는 점입니다.“거한다라는 헬라 원어(메노)에는,‘거주하다’, ‘머물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속에는 지속적으로 교감하며 관계를 맺는 것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 만으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보다 근원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예수님이 직접 하셨던 말씀을 찾아 보겠습니다. 6:56절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이 말씀을 보면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곧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라고 분명 언급되어 있습니다.‘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you are what you eat”이란 속담이 있습니다.‘당신이 먹은 것이 당신이다(당신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자체 입니다.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증명했던 그 살고 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예수님이 실제로 나 같은 자를 위해 죽으셨고, 때가 되면 먼지(Nothing)로 돌아갈 자를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자로 만드시고자 실제 부활 하셨음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의 세계관의 뿌리를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가지는 나무로부터 영양분을 받아 살 수 있듯이, 우리도 주님의 살과 피를 날마다 받아서 먹음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이 맺고자 하는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그래서 내 안에 거하라하신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생명 뿐 아니라, 참된 열매도 맺게된다고 하는 우리 주님의언약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맺는 열매 (7 ~ 17)

 우리는 앞에서 주님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맺게 됨을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맺는 그 열매의 실체/종류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당연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포도나무가 맺는 열매는 무엇인가요? {여기에 힌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우리가 맺는 열매는 과연 무엇일까요? 열매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 있는지 본문을 보겠습니다.

본문에는 우리가 맺는 열매가 기도와 제자/친구, 사랑과 기쁨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봅니다. 기도는 7절과 16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의 기도는 단순히 나만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님을 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나도 구한다는 점에서 주님과 함께 호흡하는 의미의 기도입니다.

 

 둘째, 제자와 친구의 열매입니다. 8절과 13~14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제자나 친구는 분명 다른 존재이지만 같은 것을 추구하여 결국엔 마치 하나가 된다는 공통점을 서로 갖고 있습니다. 셋째, 사랑과 기쁨은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최고 정점에 있는 열매 입니다. 11절과 12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사랑은 이타적이고 희생적 사랑을 말하고, 기쁨은 이 사랑을 시작하셨던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오묘하고도, 신비스러운 열매입니다. 기쁨의 열매가 신비스러운 것은 현재 예수님은 제자의 배반과 십자가 죽음을 앞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당신 속에 기쁨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음 {슬라이드}와 같이 위/아래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카이즘(샌드위치)구조라고 합니다. 샌드위치 기법의 주요 핵심은 에 해당되는 겉과 에 해당되는 중심 부문입니다.

 7절 상반절과 17절이 부분이고, ‘에 해당되는 부문은 11절 하반절(너희~)12절입니다. 이제 요약해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게 되면(7a),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다(17)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명하신서로 사랑하라하신계명을 지키는 것이고(12), 이로 인해 우리 안에 최종적으로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11)고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게 되면 주님이 갖고 계신 그 기쁨이 갖는 그 속성이 하나도 변질됨이 없이 그 성질 그대로 내 속에서 열매(주님의 거룩하고 신비스러운 기쁨)로 맺히게 된다고 하니놀랍지 않습니까?

 이 과정은 우리가 스스로 힘을 써서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듯이, 우리가 주님의 변질되지 않은 기쁨의 열매를 맺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기독교를 기쁨의 종교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쁨의 원천이 자기 희생과 부인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자기가 부인되어 죽음으로 맺은 열매이것이 예수님이 많은 열매를 맺은 비밀입니다. 이 원리는 그의 가지된 우리의 열매 맺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예수님은서로 사랑 하라말씀을 특별히계명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언약을 통해서 관계를 맺고, ‘계명을 통해 그 관계를 발전시키고, 성숙시키십니다. 대표적으로 출애굽기24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마나고자 강림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고 십계명을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언약은 둘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계명은 이 관계를 발전 성장 시키는데 사용되는 수단/도구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계명이란 단어가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을 보면 두가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언약의 말씀이 본문에 있다는 것이고, 언약과 계명을 주신 분이 그 상대방과 관계 지속을 간절히 원하시는 점입니다.‘내 안에 거하라 그러하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성장을 위해 주신계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형식적인 관계에 머물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처럼 날마다 생명을 나누고, 친밀함을 더하여 나가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 공동체에게도 내 안에 거하라하신 말씀을약속으로 주고 계십을 봅니다. 이 음성에 항상 거하는 저희 종로2부 공동체가 되길 기도 드립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 공동체에서로 사랑 하라계명을 주십니다. 이 계명에 순종함으로 생명을 품고 담는 관계뿐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하고, 견고해지는 교회 공동체로 세워져 가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고착화된 사고, 특히 정욕과 음란 강박관념으로 대입 고사장에서도 앞에 앉아 있던 여학생 향수 냄새로 생각이 분산되어 대학에도 낙방했던 자입니다. 이런 제게 이사야53:6절 말씀은 주님과 처음 관계를 맺게 해 주었습니다. 이미 고착화 된 사고방식은 때마다 저를 힘들게 하여 가위에 눌리거나 자살 충동도 있었습니다. 이 때 로마서8:24-25절은사람 앞에 보여진 나의 모습이 아닌, 성경이 말하는 그 소망이 내속에 있는지질문하게 해 주었습니다.

 

 시편23편 말씀은 물질 자립이 어렵고, 장래가 불투명하던 30대 초 시절에 하나님이 나의 목자되심을 자주 고백하도록 벗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07년 현재 기업에 경력으로 입사했으나,‘애굽의 바로와 같은 상사를 만나 들어오지 말라고 한 직장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사람 막대기 훈련을 받았지만,‘광야를 통과했던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많이 체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2015,16년 저와 교회 공동체에 찾아온 큰 환란은 신앙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었습니다. 대신에 아무리 좋은 걸 경험해도 부패밖에 할 것이 없는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였고, 계시록3:18절 말씀은 환란의 끝 지점에 주님을 새롭게 만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91년 대학에 와서 신앙생활 시작할 때, ‘하나님이 정말 계시면이란 말을 자주했는데, 살이 계신 하나님은 지금도 항상 유효한말씀을 통해 당신 안에 거하도록 붙들어 주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주님의 사랑과 은헤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현재 몇 가지 문제로 많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에 노후준비는 안되어 있는데 광풍처럼 불어온 물질문제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지난 522일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다급하게 이동중이라는 형님의 전화였습니다. 아버지만 의지하던 어머니에게도 이것은 큰 충격이요 절망이었습니다. 아버지만 일어난다면, 큰 기쁨이요. 부모님이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더 없는 기회로 알고 기도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일어나지는 못하고 계시지만, 로마서5:1~8절 말씀처럼, 의롭지 못한자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이 사건이 아버지와 저희 가족에게 환란으로 끝나지 않고, 연단과 인내를 거쳐 참소망을 갖게 하시려는 뜻이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현재의 환란이 인내와 연단 속에서 소망이 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길 기도 드립니다. 아버지도 하나님을 목자삼아 의지하며 믿고 살수 있도록 도와 주시길 기도 드립니다.

 

 결론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에게 가장 많이 반복된 단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너희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거해 주겠니?” 이 한마디로 요약 됩니다. 열매, 그것은 예수님이 먼지와 같은 나와 관계하시면서 내 속에서 맺어 가시는 관계의 산물입니다.‘교회라는 장소/공동체 조차 세속화가 되어가는 이 현실에서 우리가 이 주님의 질문에 늘 응답하고, 인도해 주시도록 항상 구하는예수님 안에 거하는 가지들이 되길 기도 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