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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년 여름특강 제2강 예수님의 첫 표적(요2:1-11)2024-07-2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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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한복음 21-11(요절: 11)


예수님의 첫 표적

 

제가 성경공부를 하기 시작 한 후에, 오늘 말씀을 공부하고 나서는 뭔가 모르게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 인생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세계에 빠져서 살다가 신경성병으로 고통을 받던 제게 예수님의 첫 표적은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를 소망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았었는데, 오늘 말씀은 희망의 빛줄기를 비추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어 보고자 여름특강 말씀으로 선정하였습니다.

 

퀴즈를 좋아하시나요? 퀴즈를 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총 몇 개나 될까요? 32개입니다. 다수의 기적은 병고침의 기적이었고, 나머지는 자연적 현상을 뛰어넘는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에는 몇가지 기적이 나올까요? , 7개의 기적이 나옵니다. 기적 중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표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기적과 표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적이란 인간이 증명할 수 있는 과학법칙에 의하여 설명될 수 없는 어떤 놀라운 사건을 의미하는 반면에, 표적이란 헬라어로 세메이온 영어로는 sign , 어떤 것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기적 중에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려주는 기적을 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행하신 표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바로 오늘 행하신 표적입니다. 처음 행하셨다는 뜻은 앞으로도 그런 일을 계속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행하신 표적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 뜻을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 그러면 예수님의 첫 표적을 살펴보러 갈까요? 때는 예수님이 빌립을 제자로 부르신 때로부터 사흘되던 날이었습니다. 장소는 갈릴리 가나라는 곳이었습니다. 가나는 갈릴리 호수 서쪽에 있는 인구 1만명 정도의 당시로는 꽤 큰 도시였습니다. 거기에서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가나 출신의 씩씩하고 용감한 요셉이와 아름답고 지혜로운 한나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결혼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당시 결혼식은 그 지방의 축제였습니다. 보통 먼저 정혼을 하고 일년 정도 후에 신랑은 신부를 집으로 데려와서 결혼예식을 올립니다. 예식을 마치고 일주일 정도 흥겨운 축제를 벌입니다. 결혼축하연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포도주입니다. 포도주는 유대인들에게 기쁨이요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이었습니다. 시편 10415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전도서 97절도 말씀합니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결혼축하연이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평소 과묵하기로 소문난 이삭이도 포도주가 들어가자 얼굴이 불그레하게 상기되고 말수도 늘어났습니다. 타인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한 바돌로매도 흥겹게 춤사위를 덩실덩실 추었습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흥겹게 축하연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였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포도주를 쌓아둔 창고에 포도주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의 결혼식이어서 하객들이 너무 많이 마셨을까요? 하객들이 마실 포도주를 잘못 계산해서 너무 적게 준비했기 때문일까요? 혹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원인이었을까요? 당시 뱃사람들은 술을 아주 잘 마셨다고 합니다. 아무튼 포도주가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마리아로부터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 말은 다소 생뚱맞게 들립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는 말은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데 대하여, 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포도주를 만들겠다든지, 아니면 포도주를 마련할 대책을 강구해 보겠다든지 하는 분명한 답을 주시지는 않고,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다소 모호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는 마리아는 한편으로는 아니! 이 아들 놈이! 내가 키워주었더니 엄마 말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엄마가 말을 하면, ! 어머니! 그런 일이 있군요! 걱정마세요! 제가 얼른 이웃집이나 가게로 가서 포도주를 구해 볼께요!”라고 대답을 해도 부족할 판에, “나와 무슨 상관! 무슨 내 때! 뭐라꼬?” 이런 생각으로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감정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곰곰히 묵상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취지를 파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파악하면, 예수님께서는 자기 때가 이르면 무슨 일을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취지를 파악한다고 합니다. 취지를 잘 파악하여야, 타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취지를 파악하지 못하면,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한마디에 꽂혀서 타인의 말의 전체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잘못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취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컬어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 내지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말씀의 취지를 잘 파악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때에 이 어려움을 해결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파악하고 하인들을 준비시켰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들을 준비하면서 예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조근조근 설명을 하면서 하인들의 심령을 잘 준비시켰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무슨 일을 하도록 하셨나요? 6절과 7절을 읽겠습니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그곳에는 유대인의 정결예식에 사용하는 돌항아리 여섯이 있었습니다. 정결예식이란 당시 하객들이 길을 오가는 중에 먼지도 많이 나고 땀도 나고 해서 타인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 입구에서 손과 발을 물로 씻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라는 것은 부피단위로서 약 40리터 정도가 됩니다. 두세통 정도의 용량이므로 약 100리터 정도됩니다. 이러한 통이 여섯 개나 있었는데, 예수님은 여기에 물을 채우도록 하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정도 크기의 통에 물을 채우는 일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당시 물을 긷는 것은 오늘날과 다릅니다. 오늘날은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옵니다. 물을 통에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물을 통에 채우기 위해서는 바구니에 담아 들거나, 머리에 이고 날라야 합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기우뚱 하면서 물이 바구니를 넘쳐서 흘리게 됩니다. 처음 가득찬 물바구니가 집에 도착하면 거의 밑바닥에 찰랑거릴 정도만 남습니다. 그리고 물을 뜨는 것도 당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주로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 태양이 쨍쨍 내려쬐면 2~3분만 움직여도 땀이 비오듯 나고 지칩니다. 물웅덩이도 깊어서 줄에 달린 바구니를 깊게 내려 물을 퍼올려야 합니다.

 

이처럼 물 긷는 것이 쉽지 아니함에도 하인들은 물항아리에 어디까지 물을 채웠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아귀까지란 항아리의 목까지라는 말입니다. 물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목까지 가득 채울 수 있었을까요? 사실 하인들은 주인이 아니므로, 하인의식이 충만합니다. 하인의식이 충만하다는 것은, 주어진 일을 최소한으로만 하고자 하는 습성을 말합니다. 보통 눈치를 보면서 일을 건성으로 하고, 주어진 일의 반쯤만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하인들은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일을 120% 넘치게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본문의 하인들이 성품이 훌륭한 하인들이어서 그럴까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인들이 이렇게 넘치게 물통을 채운 배경에는 마리아가 하인들을 단단히 준비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강압적으로 명령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일을 하여야 하는 지에 대한 소상한 설명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상황이 포도주가 부족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시고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조근조근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하인들이 물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운 것을 보신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제2차 명령을 하셨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결례통으로부터 물을 떠서 포도주병에 넣어서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인들은 물을 떠서 포도주병에 넣을 때, 찜찜할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맹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연회장은 하인들이 가져온 물이 든 포도주병을 받았습니다. 먼저 자신이 포도주 잔에 따라서 시음을 해 보았습니다. 연회장은 한모금 꿀꺽 시음을 하고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신랑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이 칭찬은 칭찬 중의 칭찬입니다. “아니! 어디서 이 백년 묵은 포도주를 가져 왔는가? ”“이건희 회장님이 삼성사장단이 모였을 때 제공하였다는,“샤토 라투르와인과 같이 한 병에 700만원이 넘는 포도주보다도 더 맛이 좋도다.”“흠흠~!”

 

그런데, 이 상황에서 연회장보다 더 놀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하인들이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하인들은 자신들이 물을 길러서 결례통에 채웠고, 그 물을 직접 포도주병에 담았고, 그 병을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신들이 떠 온 것은 분명 우물에서 길러온 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 누구도 몰래 개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것도 최고급 포도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인들의 심령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아니, 아니, 이럴 수가! 어찌 이런 일이!” 하면서 부르르 떨지 않았을까요?

사도 요한은 첫 표적을 보고 그의 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점들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째, 마리아의 분별력과 준비하는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로서의 자식에 대한 감정적인 면을 극복하고, 예수님의 말씀의 취지를 파악하였습니다. 분별력이란 감정을 내려놓고 전체적인 취지를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 사이의 갈등은 취지를 파악하기 보다는, 내가 보고 싶은 면만 보고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취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의 취지를 파악하고 그냥 가만히 있은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하였습니다. 포도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하면서 하인들의 내면을 준비시켰습니다. 마리아의 준비로 인해서 하인들은 자기 생각을 극복하고 끝까지 순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도 마리아처럼 분별력이 있고 준비를 잘 하는 지혜로운 여인들을 세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하인들의 순종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하인들은 뭐라구요! 결례는 벌써 끝나버렸다구요. 물이 더 이상 필요없다구요. 나는 물을 못길어요! 쓸데없는 일을 왜 자꾸 하라고만 하세요!” 라고 반발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어떻게 해서 물을 긷기는 하였지만, 이를 포도주병에 넣어서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는 것만큼은 못하겠다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연회장이 맛을 보고 맹물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는 꽥~ 죽어요!”하면서 거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자기 생각을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알더라! 알더라!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맹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과 이 변화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은 이성적인 생각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깨달음은 이성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우리의 이성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보다 크고 놀라운 세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꿈도 꾸지 못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우리의 생각에 갇혀 있기 보다는,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우리의 세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물은 화학식이 HO 입니다. 포도주는 여러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성분의 하나가 에탄올입니다. 에탄올의 화학식이 CH3CH2OH 입니다. 물에는 전혀 없는 C 즉 탄소가 들어 있습니다. 물로부터는 어떻게 해도 C가 생길 수는 없습니다. C가 생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창조를 하는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무로부터 유를 창조하신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창조주가 되십니다.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혼인잔치에서 그 첫표적으로 포도주를 풍성하게 제공하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의 취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취지는 우리 인생들을 결혼잔치와 같이 기쁘고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이사야 91절과 2절은 말씀합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살아보니 인생은 변화의 능력자시요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물과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 중에서도 맹물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꾸중물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인생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조차 해보지를 못했습니다.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음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냥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동생들을 함부로 대하고, 사람들과 인간다운 교제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너무나 한심하고 더러운 짓만 골라하면서 살았습니다. 대학 시절 공부를 하면서도 욕심만 부렸습니다. 그러다가, 신경성병에 걸렸습니다. 책만 들면 가슴이 답답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가슴이 답답하여 왔습니다. 나중에는 내의가 위부근에 닿기만 해도 통증으로 느끼게 되었고, 내의가 닿을까봐 걱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 손으로 내의를 잡아서 살갗에 닿지 않도록 하든지, 아니면 손으로 내의를 꽉 눌러서 살갗에 붙어 있도록 해야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런 제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 그냥 죽는 것이 낫겠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과친구를 통해서 성경공부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오늘 말씀을 공부한 후에 예수님은 변화의 능력자이심을 배웠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조금씩 순종하였습니다. 많은 말씀들 가운데 특히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말씀공부와 소감쓰기 그리고 영적인 훈련을 감당하였습니다.

말씀 안에서의 삶을 통해서 꾸중물 같던 제가 오늘의 제가 되었습니다. 법대를 무사히 졸업하고 또한 독일 법학박사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저의 부족한 점을 잘 보완하는 이화연 사모님과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마음씨가 곱고 부모를 잘 섬기는 프리스카와 미소를 자녀로 허락하여 주시고 기쁨을 주셨습니다. 종로2부와 우리 UBF모임 안에서 믿음의 동역자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한국과 이방땅에서 몇몇 영혼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데 쓰임을 받았습니다. 제게 있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꾸중물인 제가 포도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아직도 꾸중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더러운 죄인을 인도하여 주시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로 옷입혀 주신 것을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무슨 선한 생각이나 선한 일을 한다면 그 모든 것은 다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벌써 40년 전에 죽어 지옥에 떨어졌어야만 할 죄인이 아직도 살아서 이처럼 아름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신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감사 찬양드립니다.

 

결론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부족한 문제가 있나요? 예수님께서는 변화의 능력자가 되십니다. 그 어떤 문제라도 다 해결해 주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인생들은 저마다 각자의 문제를 안고 끙끙거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예수님께 나오지 않는 것 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문제가 있습니까? 그 어떤 문제라도 들고 변화의 능력자 창조의 주님께 나아오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놀라우신 변화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창조의 영광을 보고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