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출애굽기 1강
학대받는 백성을 번성하게 하신 하나님
말씀/ 출애굽기 1:1-22 요절/ 출애굽기 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2025년 봄학기에 출애굽기 말씀을 허락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출애굽기는 창세기의 연속편입니다. 하나님은 그 크신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사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를 통한 인류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믿음의 조상들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간 것은 형들의 죄 때문인 것처럼 보입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 70명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도 기근 때문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키우시고 그들을 연단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출애굽기는 시작합니다. 출애굽은 “탈출, 떠남”(Exodus)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내시는 역사 기록입니다. 그 목적은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번 출애굽기 말씀 공부를 통해서 우리를 애굽과 같은 세상에 얽매인 삶에서 떠나게 해주시며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온전히 삼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를 이 시대의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야곱의 후손을 온 땅에 가득하게 하신 하나님 1-5절입니다.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이 부분은 출(出)애굽기의 도입 부분으로, 야곱 가족의 입(入)애굽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아브라함과 횃불 언약을 맺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15:13,14)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 땅에서 사백 년 동안 고난을 받게 될 것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야곱에게도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하시고 그곳에서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46:3)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애굽에 내려간 현실적인 이유는 가나안 땅의 기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기근도 사용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손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2-5절에는 야곱의 아들들 11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이 6명은 레아의 소생이고, 베냐민은 라헬, 단과 납달리는 빌하, 갓과 아셀은 실바의 소생입니다. 아들들의 이름이 출생 순서대로 기록되지 않고 그 모친의 지위에 따라 기록되었습니다.
애굽에 내려간 사람은 요셉을 포함하여 모두 70명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어떻게 됩니까? 약 400년 후에는 장정만 60만 명이 됩니다. 출 12:37을 보면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합하면 적어도 200만 명 정도 되는 큰 민족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후손들을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신 뜻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는 믿음의 조상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한 민족을 세우고자 하십니다.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할 많은 영적인 목자들을 세우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야곱의 후손들의 인구 증가가 필요하였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계속 머물고 있었더라면 사방에서 치고 들어오는 이방 민족들로 인하여 제대로 번성할 수 없었습니다. 유목 민족으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야 했기에 인구 증가가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애굽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당시 최 강대국인 애굽의 보호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에 내려 갔을 때 그들의 직업이 목축업이었기에 고센 땅에 따로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창46:34) 애굽 사람들은 목축하는 자들을 가증히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고센은 나일강 하구 삼각주 지대로 애굽의 곡창지대였습니다. 목축보다 농업을 주로 하며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뱃속 같은 보호막에 싸여 풍요로운 환경 가운데 번성하였습니다. 애굽 북동쪽에 위치하여 국경에서 가까워 출애굽을 할 때도 쉽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고센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됩니까? 7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그들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네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엄청나게 수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와 같이 번성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활 환경이 좋은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조상들에게 주신 그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고자 애굽 이주, 고센 정착, 농경 생활 등 모든 것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하신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이를 볼 때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봅니다. 애쓰고 노력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기묘하게 사용하여 그 하신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의 영육간의 자녀들을 섬길 때도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이주한 후 별로 한 일이 없어 보입니다. 풍요로운 땅에서 평화를 누리며 농사와 목축을 하며 살았습니다. 자녀들을 낳고 또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 가운데도 하나님은 꾸준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인구가 불어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생육하고 불어나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목적하신 큰 민족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는 하나님이 역사의 현장에 전혀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일하고 계심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20, 21절에 하나님에 대한 저자의 코멘트가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꾸준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나의 삶,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학교와 직장을 반복하여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삽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삶의 변화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캠퍼스 양들도 영적 소원이 없는 것 같고 매일 빈 그물만 던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 역사를 위해 줄기차게 일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일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5:17)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4)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막13:10) 이 세상의 끝, 곧 주님의 심판의 때가 올 것이며 그때까지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복음 역사는 하나님이 주장하십니다. 그가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언제나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에 기초하여 복음 역사에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고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2. 학대받는 이스라엘 8절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과거에 요셉은 애굽의 전설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애굽과 인근 지역을 극심한 기근에서 구한 국가의 영웅이었습니다. 이런 그도 300 여년을 지나고 왕조가 바뀜에 따라 조금씩 잊혀져 갔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났습니다. 애굽의 새 왕이 어떤 정책을 취합니까? 9-11절입니다.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백성보다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구 증가 속도를 볼 때 위협적이었습니다. 조만간 인구 수가 역전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더 강해지면 전쟁이 발발할 시 적들과 동맹하여 애굽을 치고 그 땅에서 나갈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취한 정책이 무엇입니까?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시행합니다. 비돔과 라암셋 두 곳에 대규모 국고성, 곧 국유 곡식 창고를 짓습니다. 그 건축 프로젝트에 이스라엘 백성을 건설 노동자로 동원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졸지에 공사장의 건설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학대하였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중노동을 시켰습니다. 12절에 “학대했다”, 13절에 “일을 엄하게” 시켰다, 14절에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했다”,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했다”라고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중노동을 함으로 공사장에서 사고로 다치거나 죽기도 합니다. 과로로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수명이 단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노동으로 탈진하여 가정을 돌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고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떻게 됩니까? 12a절입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그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였습니다. “학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번성한 것이 아니라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한 것입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설명이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에는 출산 중에 산모나 아기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영아 사망율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여인들은 아무 어려움 없이 아기를 쑥쑥 잘 낳았습니다. 그들은 쉽게 임신을 하고 쌍둥이도 많이 낳았습니다. 태어난 아기들마다 아무도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잘 컸습니다. 자손이 증가되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사람이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여전히 중노동을 해야 하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잘 지내는 그들이 이런 학대를 받도록 하셨을까요?
첫째, 이는 그들이 애굽을 나오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당초에 이들이 애굽에 들어가도록 하실 때 그곳에서 영원히 살도록 함이 아니셨습니다. 애굽에서 일정한 수로 번성하면 그들을 다시 가나안 약속의 땅에 오도록 뜻하셨습니다. 목축업을 하던 그들에게 애굽의 고센 땅은 실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나중에 광야에서 고생할 때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11:5)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민16:13)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에 차서 한 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고센 땅은 생선과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 같은 신선한 채소가 풍부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평안이 자손 대대로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가야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고자 하는 소원을 갖도록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중노동이 너무 심해지자 그들은 애굽에서 어찌하든 탈출하고자 간절히 바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상치 못했던 이 고난은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행복과 위대성은 그저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사는 데 있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좀 고생되더라도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요 고귀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이러한 고귀한 삶을 살도록 출애굽을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학대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민족의식을 갖도록 함입니다. 학대를 받을 때 그들은 자기들이 애굽 백성이 아님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적당히 애굽의 선진 문화를 본받아 그들과 동화되고자 했던 마음을 버립니다. 함께 학대를 받음으로 동일 민족의식을 굳게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심으로 이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정체성을 갖게 하셨습니다.
셋째, 학대받음을 통해 학대받는 자를 이해하도록 하십니다. 히브리서 13:3절도 말합니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출22:21도 말합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학대받은 자가 학대받는 자를 이해합니다. 나그네였던 자가 나그네 심정을 이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은 그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A kingdom of priests.” 곧, 많은 제사장들이 모인 그런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무엇보다 백성들의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백성들의 문제를 알려면 그들의 고난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겪어보아야 이해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중보자, 곧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학대를 받는 것은 당장은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학생들은 어려운 학업을 감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학사님들은 직장의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또한 요즘에 캠퍼스 역사를 섬기는 데에도 고난이 많습니다. 지난번에 한 아프리카 선교사님의 소감을 들으니 아프리카가 아니라 이제는 한국이 선교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복음의 수용력이 떨어져 한국이 선교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캠퍼스 학생들을 제자양성하는 것은 고난입니다. 캠퍼스에 올라가도 학생들을 멀뚱멀뚱 쳐다만 보다 밥만 먹고 내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내가 무슨 목자냐 하며 탄식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고난 가운데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난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알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난 가운데도 감사하며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로 연단이 되며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들 중노동을 통한 인구억제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자 바로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합니다. 15, 16절입니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를 약 200만 명이라고 보면, 하루에 태어나는 아기는 약 100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런 아기들이 태어나는 데 산파들의 도움이 필요하였습니다. 본문의 십브라와 부아는 산파 중에 대표자였던 사람들로 보입니다. 바로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아기들이 태어나면 자세히 보아 딸이면 살려두되 아들이거는 죽이라" 그 당시에는 초음파 기술이 없었으므로 출산 후에나 성별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는 아들이거든 바로 죽이라고 명하였습니다. 갓 태어난 생명은 얼마나 연약합니까! 얼마나 고귀한 생명입니까! 전적인 돌봄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런 아기를 남자이거든 죽이라니 이 얼마나 잔인한 명령입니까! 이런 명령이 산파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산파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17절입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당시 바로는 살아있는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바로의 말을 거역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산파들은 눈에 보이는 바로 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마10:28) 여인들의 이름이 성경에 오르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더욱이 산파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도 아닌데 여기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그녀들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버금가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아살해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바로는 산파들을 불러 어찌하여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고 심문하였습니다. 이때 그들은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전적으로 진실된 말은 아니었지만 옳은 측면도 있습니다. 애굽 여인들은 지배 계급으로 풍요롭게 사는 가운데 인생 훈련이 안 되었지만, 히브리 여인들은 남편들을 모두 공사장으로 보낸 가운데 고된 농사일과 집안 일을 홀로 감당해야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강한 여인들로 성장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할머니 시대에는 산파의 도움 없이도 혼자 아기를 낳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와 같이 히브리 여인들은 산파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또는 산파가 도착하기 전에 아기를 낳고는 하였습니다.
산파들의 믿음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번성하고 강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산파들을 축복하사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습니다. 산파들의 가정 문제까지 복을 주셨습니다. 성경이 산파들의 집안까지 흥왕하게 하셨다고 기록한 것은 하나님이 그만큼 산파들의 믿음을 기뻐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출애굽기 1장을 보면 산파에 대한 내용이 15-22절까지 할애되어 있습니다. 단어 수를 보면 1장의 거의 반이 산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본문의 산파들과 같이 생명을 살리는 자들을 매우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새 학기 캠퍼스에 들어온 학생들은 마치 영적으로 갓 태어난 아기들과 같습니다. 이들은 아직 어떤 사상도 들어가지 않아 마치 백지와 같이 그 마음이 깨끗합니다. 이런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들어가면 생명 길을 가고 세상 사상이 들어가면 죽음의 길을 갑니다. 우리는 이런 면에서 캠퍼스의 산파들과 같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탄은 생명을 죽이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살리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로 캠퍼스 영혼들을 지켜야 합니다. 죽이고자 하는 마귀와 싸우며 생명의 말씀으로 살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영적 산파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 각자의 삶도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22절입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바로는 산파들을 통한 자기의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제는 공공연히 남아 학살 명령을 내립니다.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히브리 여인들이 남자 아기를 낳으면 그를 나일강에 던져 죽이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닥친 큰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의 이러란 잔인한 명령도 쓰십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에 들어가 장차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궁중 교육을 받는 기회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허물과 죄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지혜가 뛰어난 분이십니다. 바로는 힘써 하나님을 대적하며 이스라엘을 핍박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런 바로를 쓰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은 애굽의 절대 권력의 압제 아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그들은 차고 넘치는 번성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은 꼭 필요하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새 학기가 되어 캠퍼스에 양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영적 신생아와 같습니다. 우리가 캠퍼스의 새 생명들을 보호하며 살리는 영적 산파로서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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