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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5년 출애굽기 3강 들으시고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애굽기 3장, 4장)2025-03-2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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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출애굽기 3강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 출애굽기 3장, 4장

요절/ 출애굽기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지난 말씀 출애굽기 2장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나일강에 버려졌지만 기묘한 과정을 통해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어 궁중에서 자랍니다. 이런 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결혼하고 첫아들 게르솜을 낳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모세 한 사람을 준비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지도자로 부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 부르심을 여러 번 거절합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양치는 목자로 지낸 자기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어떻게 도우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1)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

1절입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모세는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였습니다. 우물가에서 만나 십보라와 결혼하여 이드로의 양을 치는 목자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가 벌써 40년 전이었습니다. 이제 모세의 나이는 80세. 힘이 넘치던 청년의 때가 다 지났습니다. 모세가 쓴 것으로 알려진 시편 90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10). 모세는 80세 노년에 양치는 목자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과거 애굽의 왕자로 살며 애굽 백성들의 칭송과 찬양을 받았던 기억들도 이제 한여름 밤의 꿈처럼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양 떼를 먹이고 있던 어느날이었습니다. 풀이 풍부한 서쪽 산지로 양 떼를 인도하여 호렙이라고 불리는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 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모세가 보니 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습니다. 떨기나무는 아카시아 덤불을 의미하는데, 호렙산에 많이 있는 식물입니다. 그 지역은 매우 건조하였기 때문에 나무들이 쓰러지면서 부딪쳐 불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한 떨기나무가 불타는 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불붙은 나무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저렇게 불이 계속 타고 있는데 어떻게 나무가 그대로 있을까?" 그는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불꽃 가운데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이 하나님은 430년 전에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셨던 분이셨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 중에서도 번성하도록 하신 분이셨습니다.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동안 크신 뜻 가운데 모세를 궁중교육과 광야 훈련을 시키시던 하나님이 드디어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의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를 인격적으로 잘 알고 계시는 것을 말해줍니다. “모세야, 모세야!” 이는 그를 친밀하게 부르시는 사랑의 음성이었습니다.


5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모세가 지금 서 있는 호렙산의 떨기나무 부근이 거룩한 땅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곳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가 신고 있었던 신은 샌들이었습니다. 쉽게 흙먼지가 달라붙어 발이 더러워지는 슬리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신을 신고 더러운 것들을 밟으며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이 순간 그는 자기 신을 벗어야 합니다. 곧 그의 모든 더러움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가져야 하는 자세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도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여러 측면에서 표현하는데 그분의 가장 중요한 성품은 거룩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한번 보면 좋겠다고 합니다. 천사라도 한 번 보고 싶다고 합니다. 날개 달린 예쁜 천사를 보면 자기 소원을 아뢰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부로 하나님이나 천사를 보겠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을 모두 그 앞에서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그의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단10:9)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또한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땅한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더욱 배우길 기도합니다.


6-10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것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씀이 7번이나 반복됩니다. 


애굽에 있는 백성들의 고통을 보셨고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때가 되자 모세를 부르십니다. 이때는 모세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때입니다. 그는 40년 전이 자기의 타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굽의 왕자로 인생의 전성기였던 그때가 자기가 백성을 구원할 수 있는 타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그 일은 불발로 끝났습니다. 모세는 이제 자기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디안에서 살면서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는 자기가 Somebody로 Something을 할 수 있는 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Nobody로 할 수 있는 게 Nothing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믿음으로 무엇이든지(Anything) 할 수 있는 자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약한 그 때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강한 때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12:10) 강함과 약함은 내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는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얼음같이 차가워진 모세의 마음에 불을 붙이셨습니다. 우리 중의 어떤 분들은 과거에 불같은 열정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려운 현실로 인해 그 마음이 냉랭해졌습니다. 이런 우리가 불꽃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다시 만나야겠습니다.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다시 한번 불붙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2)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그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1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한 마디로 "내가 누구이기에 그 엄청난 일을 하겠습니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어떻게 도우십니까? 12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하였습니다. "나는 양치는 목자에 불과합니다. 나는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수도관이 물을 흘러가게 하는 게 있어서 하는 역할이 무엇입니까? 통로가 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모세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드시면 들리고, 흔들어 치면 때리는 하나님의 지팡이에 불과합니다. 모세는 출애굽 전 과정에 있어서 한 가지만 믿으면 되었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때 이러한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캠퍼스 역사를 섬길 때 쉽게 낙심이 되는 이유는 우리 자신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는커녕 내 자신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우리를 움츠리게 합니다. 양들과 1~2년 말씀 공부해도 마음을 잘 안 여는 것을 볼 때 어렵게 느껴집니다. 한 사람의 리더를 세우는 것이 참 오래 걸리고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합니다. 물론 이럴 때 자기 발견도 합니다. 성경 선생으로, 목자로 사는 나 한 사람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의 종들의 많은 수고와 간절한 기도를 통해 세우신 그의 백성들입니다. 이런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건전한 자존감을 지키며 또한 서로를 귀히 여기고 뜨겁게 사랑해야겠습니다. 캠퍼스 역사도 매사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이야말로 100만 대군을 얻는 것보다 더 확실한 보장입니다. 그 어떤 세력도 능히 무찌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25학번 신입생 역사를 섬길 때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섬기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도우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두 번째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셨다는 증거를 그에게 주시는데, 그것은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이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으로 보면 미래에 성취될 일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출발할 용기를 얻기 위해서는 현재적인 증거가 필요할 것 같은데 어째서 하나님은 미래의 사건으로 증거를 삼으시는 것일까요? 이는 첫째로, 하나님은 모세가 믿음으로 이 약속을 받아들이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알게 됩니다. 둘째는, 미래에 그 일이 실제에 이루어질 때 모세가 정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을 확신하고 그 이후 40년간의 출애굽의 역사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심입니다. 이 증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증거가 아니고 모세 한 사람을 돕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이때 모세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생깁니다. 이는 그가 백성들에게 가서 말할 때,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셨다고 하면, 그들이 그 하나님의 이름을 물을 텐데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무엇이라 하십니까? 14절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이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신 말은 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 (אֶהְיֶה אֲשֶׁר אֶהְיֶה)입니다. 아셰르는 관계 대명사인데, 곧 에흐예는 예흐예다. "I AM WHO I AM" 으로 번역합니다. 하나님이 이름은 "예흐예"(I AM) 라고 하십니다. 학자들은 가장 근접한 발음이 “야훼” (우리 성경으로는 ‘여호와’) 라고 합니다. 그 뜻은 "나는 있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라고 하시지만 하나님은 그 이름에 제한받지 아니하십니다. 실상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 말고도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엘로힘(창1:1, 전능자), 엘샤다이(창17:1, 전능자), 엘엘리온(창14:18, 지극히 높으신 분), 엘올람(사40:28, 영원하신 분) 등입니다. “야훼”라는 명칭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의 일부를 말해줄 뿐입니다. 여호와 곧 "나는 있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은 자존자이십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계시는 분입니다. 완전하고, 독립적이시며, 모든 존재의 근거, 곧 우주의 제 1원인이십니다. 그가 자존자요 다른 모든 것은 그에게 의존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옵니다. 만물이 그로부터 생명을 받고 지금도 생존하는 힘을 공급받습니다. (골1:16, 17) 그로부터 존재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인간이 대단한 것 같지만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되어 있습니다. 시104:28,29은 말합니다.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만물이 그로부터 생명을 부여받고 그가 주시는 것을 먹고 존재하다가, 결국 죽어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로마서 11:36절은 말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영원토록 현재형으로 계신 이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함께하십니다. 임마누엘 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과 사람은 변하나 이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삼상15:29) 그분이 하신 말씀도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막13;31) 우리 인간은 결단코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스스로 계시는 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에게 찬양과 경배를 드릴 뿐입니다.


(3)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14:1절입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세 번째로 사양합니다. 그는 3:11에서 "내가 누구이기에 그들을 인도해 내겠습니까?", 3:13에서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고 해도 그들이 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할 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들이 내 말을 믿지도 듣지도 않을 거라는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모세의 마음에는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40년 전에 그는 애굽의 왕자라는 신분을 버리고 분연히 동족 편에 섰습니다. 그는 이런 자기를 백성들이 따를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그들을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배척을 받았습니다.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그는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미디안에서 양을 치면서도 늘 이 소리가 그의 귀에 맴돌았습니다.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왕자였던 자기의 말도 듣지 않았던 백성들이 이제 아무 지위도 없이 늙어버린 자기를 따라주겠는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이해하시고 도우십니다. 첫째, 그로 하여금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는 표적을 행하게 하십니다. 둘째,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겼다가 품에 넣자 다시 회복되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만일 백성들이 이 두 이적도 믿지 않으면 나일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어 그 물이 피가 되는 기적을 행하도록 하십니다. 이제 모세는 더 이상 변명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어떻게 말합니까? 10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모세는 과거에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였습니다. (행7:22) 말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40년간 양떼를 치며 처가살이하다 보니 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내와 여섯 처제의 말을 들어주다 보니 말할 기회가 없었고 할 말도 별로 없었습니다. 실제로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13) 모세는 끈질기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의 형 아론을 대언자로 준비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면 모세는 아론에게 말하고 아론이 백성들에게 말하는 대언자 시스템을 구축해 주십니다. 이제 모세가 더 이상 거절할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한 것일까요? 4:18절을 보면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 말합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모세는 자신이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을 장인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엄청난 사명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애굽에 있는 자기 동족들이 잘 있는지 한번 보러 가겠다고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기는 한 것 같은데 뭔가 자신이 없는 듯한 태도입니다. 그러고도 아직 떠나지 않고 꾸물대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명하십니다. 1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애굽으로 돌아가라! 명하십니다. 그의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마지막까지 주저하고 있던 이유는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바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죽은 사실을 알려주심으로 모세의 두려움도 제거해 주십니다. 그리고 가도록 명하십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점이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부르심을 거절하는 모세, 그리고 끝까지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모세가 무슨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이 끈질기게 부르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기업체에 취업하려면 서류를 내고 시험을 봅니다. 까다로운 면접도 보아야 합니다. 채용하고도 일을 잘 못하면 나가게 합니다. 세상에서는 능력과 자격 있는 사람을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당신의 주권 가운데 일방적으로 부르십니다.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임신하였을 때,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갈1:15)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신비에 속하는 영역입니다. 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은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끝까지 소망을 두고 부르시고 세우시고 도우심으로 그 뜻하신 바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자기의 연약함을 주장할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부르심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해 주십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어떻게 반응하나요? 모세처럼 완곡히 사양합니다. 그러다가 아주 고집스럽게 거절합니다. "아, 부르심, 참 좋아요. 그런데 지금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 저도 알아요. 제가 언젠가는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게 될것을..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Not now! Please~ 저를 그냥 두세요"합니다. 예, 이해됩니다. 모세도 부르심을 받을 때 이런저런 변명을 하였습니다. 모세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사6:13), 이사야, 예레미야(렘1:6)도 그랬습니다. 많은 주의 일꾼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고사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즉흥적으로 이루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주권 가운데 뜻하시는 일로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의 부르심을 순종하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생명의 길, 참 행복의 길입니다. 그 길만이!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참 만족을 누립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그것을 좇아감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부르심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 물질 문제, 직장문제, 결혼문제, 자녀문제 다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함께하시는 이 하나님을 믿기를 기도합니다. "모세야, 모세야!"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4) 피 남편  

4:24-26절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조금 당혹스러운 내용입니다. 4:20절을 보면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여호와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안 가겠다고 고집 피우던 모세를 잘 도와서 애굽으로 가도록 하신 하나님이 갑자기 그를 죽이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이는 다음 구절들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25절을 보면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었습니다. 여기서 아들은 단수형으로 한 아들입니다. 모세와 같이 애굽으로 돌아가는 아들들은 첫째 아들 게르솜과 둘째 아들 엘리에셀이었습니다. (출18:3,4) 성경학자들은 둘째 아들 엘리에셀이 할례를 받지 않았었던 것으로 봅니다. 아마 그가 태어난 지 며칠 안 되어 애굽으로의 여행을 떠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십보라가 그에게 할례를 행하자 하나님이 모세를 놓아주셨습니다. 이 사건이 말해주는 바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쓰임 받는 자는 먼저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율법이 아직 주어지지 않은 때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중요한 의무였습니다. 모세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과 가족을 성결케 해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명보다 성결을 우선적으로 보십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출애굽의 지도자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주장하는 모세를 여러모로 도우셨습니다. 그와 반드시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 구속 역사의 주체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선한 주권 가운데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부르심에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